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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고 구린 교회, 탈출구 찾기

기사승인 2021.10.24  01: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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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 밖의 교회를 찾아서”를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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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이제 한국 개신교는 ‘위기’라는 단어마저, 사용하기에 그 시기를 한참 지난 듯하다. ‘전광훈’으로 상징되는 비합리성, 반지성성, 일방성, 폐쇄성… 이것은 비단 전광훈이라는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한국개신교에 대해 가지는 보편적 인식이 아닐까 싶다. 지금 대한민국의 교회는 후지고 구리다.

이 지질이도 매력 없는 종교는 코로나19라는 전 지구적 재앙 앞에서 더욱 심각한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감염을 숨기는 것도 모자라 방역수칙위반을 핍박에 대한 저항이라 외쳤던 신천지(뭐 신천지는 기독교가 아니라고 외칠 분도 계시겠으나 이를 어쩌랴. 비개신교인의 눈에 비춰진 행태 상 결코 구별 할 수 없을 것을…), 목구멍에 소금물을 뿌리면 문제없다던 교회, 이곳저곳의 예배당과 교회모임 발 집단감염, 그럼에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종교탄압이라 말하는 교회, 교회, 교회… 이제 교회는 사회구성원들로부터 혐오스런 반사회적 집단으로 규정되기에 이르렀다.

게다가 마스크를 쓰고 산지 2년이 지나는 동안 예배당에 가지 않은 신자들은 ‘주일성수’를 하지 않아도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뿐 아니라, 비대면 예배의 편리함을 만끽하게 되었다. 생각해 보라. 안방에서 클릭 몇 번으로 궁금했던 예배접속이 가능하고, 원하는 목사의 설교를 듣고 비교할 수 있게 되었으니, 가히 ‘예배 쇼핑’이 가능해 진 것이 아닌가? 게다가 분명 예배를 드린 것이니 혹시 있을지도 모를 마음의 ‘켕김’도 산뜻하게 정리되는 신박한 시대가 바야흐로 시작된 것이다. 전염병 창궐을 통해 갑자기 열려버린 이 시대의 문은 교인들에게는 신세계를 향한 입구, 끌어 모으는 것 이외의 재주가 없는 교권주의자들에게는 헬 게이트가 될 것임에 분명하다.

인기가 없어도 너무 없으니, 외부유입은 차단되어가고, 구성원들의 유동과 이탈은 가속화되는 2021년 한국개신교, 항우는 일찍이 이천이백 여 년 전에 이 같은 상황이 도래할 것을 미리 아시고 ‘사면초가(四面楚歌)’라는 말을 지어놓으셨나 보다.

▲ 프라하 국립박물관 정문 앞 바닥에 놓인 십자가. 프라하의 봄 당시 소련군의 전차를 저지하기 위해 분신자살 했던 청년을 기리는 공간이다. ⓒ고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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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우리는 교회를 포기할 수 없다. 에클레시아(ἐκκλησία)가 어쩌구 하는 교회론은 접어두자. 그리 딱딱한 규정이 아니더라도 뭔가를 좀 해보려 한다면, 결국 어떤 형태로든 뜻을 함께 하는 이들이 모여야 할 것인데, 신앙인들이 모이면 그게 결국 교회 뭐 그런 것이지 않겠는가? 위에서 열거했듯 참 답 없는 집단인 것이 교회이지만, 신앙이라는 정체성으로 공유하는 이들의 모임인 교회, 우리는 무너진 제단을 다시 쌓는 마음으로 다시금 교회를 살피고 뒤돌아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1세기가 넘어가는 역사를 지닌 한국개신교 내에도 기성교단의 여러 문제에 대한 대안과 변혁을 고민하며 시도된 교회운동은 다양한 족적을 남겼다. 민중교회운동이 그랬고, 여성교회가 그랬으며, 생태・성평등・영성 등 다양한 선교주제를 교회를 통해 실천하려 했던 공동체들이 또한 그랬다. 그리고 그 작지만 소중한 흐름들은 지금도 교회가 여전히 유효하다 믿는 ‘존경스런 바보’들에 의해 이어지고 있다.

에큐메니안은 이들을 ‘교회 밖의 교회’라는 명명을 통해 조명해 보고자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교회 밖’이라는 말은 두 가지의 뜻을 담는다. 먼저, 기성 교회의 틀과 형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꿈을 일궈가는 모임을 뜻한다. 작지만 생동감 있는 교회, 기성교회가 다루지 않았던 이야기를 소중히 간직한 교회, 후지지 않다고는 할 수 없지만 덜 후진 교회들을 만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또 일요일마다 모여 예배드리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소망을 실현해 나가는 자리 역시 기성교회의 울타리를 벗어난 교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형태의 공부모임을 우선 생각해 보았다. 작은이들과 어울리는 밥상모임도 좋겠다.

가능한 신생공동체나 활동현장을 찾아가보려 한다. 관록이 있거나 이미 크게 알려진 곳은 나 같은 ‘듣보잡’에게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거나, 가지 않아도 충분할 듯싶기 때문이다.

작은이가 꾸는 꿈이라 하여 그 꿈까지 작을 리는 없다. 교회 밖의 교회들이 간직한 이야기들을 통해 생명력을 잃고 쓰러지는 한국교계가 신선한 충격과 가능성의 단초에 이를 수 있길 바래본다.

추신

‘교회 밖의 교회를 찾아서’ 그 첫 번째는 미주 한인 성소수자/엘라이 신앙 공동체 “크레파스 프로젝트”를 살펴보려 한다. 한국에서 미주 한인 교회를? 그것도 성소수자 중심 공동체를 어떻게 만날 수 있단 말인가? 궁금하다면 이어지는 내용을 꼭 봐주시길 바란다. 커밍 쑨!

고상균 팀장(에큐메니안 미디어 취재부)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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