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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땅에서 동양종교를 만나다

기사승인 2021.08.12  22: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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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생애에서 잊지 못할 순간들-자전적(自傳的) 고백(告白) ⑶

▲ 오강남 교수가 출간한 종교학 서적들 ⓒ현암사 제공

나의 독백에 공감하신다는 분들, 더욱이 다음 이야기가 기대된다는 분들도 계서서 감사합니다. 특히 박충구 교수님은 조금 전 “심오한 것에 대하여 편하고 쉽게 써주셔서 재미가 있습니다. 다음 글도 기대됩니다!”고 하셔서 이 글을 올릴 수 있는 용기를 주셨습니다. 약간 “깔때기”성 발언이 있더라도 널리 이해해주시기 부탁드립니다. (혹시 ‘깔때기’라는 신조어를 모르시는 분이 계실까 하여 말씀드리면, ‘자화자찬’이라 할까요.)

캐나다에서 동양종교 사상에 눈뜨다

한국에서 종교학과를 다니면서 주로 서양의 종교 사상을 공부하는 데 집중했다. 주 관심은 기독교 사상이었다. 라틴어, 희랍어, 히브리어를 수강하고 성경을 원문으로 읽기도 하고,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이나 바티칸 공의회 문헌을 라틴어로 읽었다. 아우구스티누를 1년에 걸쳐 공부하는가 하면 기독교 사상사, 칸트 독어 강독, 하이데거 강의 등에 더 큰 관심을 기울였다. 물론 류승국 교수로부터 유교도 배우고, 대학원 때 홍제동 이기영 교수님 댁에 가서 『선가귀감(禪家龜鑑)』을 같이 읽었지만 그 때만 해도 유교나 불교에 심취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1971년 초 캐나다 토론토 옆 해밀턴에 있는 맥매스터 대학교(McMaster University) 종교학과로 유학을 갔다. 대학원 학생만 80명으로 캐나다 최대의 종교학과가 있는 대학이었다. 그 때 서양에서는 동양종교에 대한 관심이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대학원 박사과정이 동양종교를 전공으로 하면 서양종교를 부전공으로 하고, 서양종교를 전공으로 하면 동양종교를 부전공으로 하도록 했다. 나는 서양종교는 한국에서 열심히 했기에 동양종교를 전공으로 하고 서양 종교사회학을 부전공으로 택했다.

대학원 과정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강좌는 용수(龍樹, Nāgārjuna)의 중관론(中觀論, Mādhyamika system)의 세계적인 권위 T. V. R. Murti교수에게서 1년에 걸쳐 배운 불교 중관론 강좌였다. 인도 Banaras에 있는 Hindu University 교수인 그가 마침 방문 교수로 와서 그가 직접 쓴 The Central Philosophy of Buddhism(이 책은 한국어로도 번역되었다)를 교재로 하고, 강의 중 산스크리트 원문을 줄줄 외우면서 차근차근 풀어나간 그의 강의도 훌륭했지만 특히 그의 책은 눈을 확 뜨게 해주기에 충분했다.

절대적인 것은 공(空, śūnyatā)이다. 절대적인 것에는 인간의 사견(邪見, dŗṣṭi)이 들어갈 수 없다. 그래서 완전히 빈 상태다. 우리가 절대적인 것에 갖다 붙이는 온갖 범주 온갖 사견에서 해방되어 직관과 통찰, 프라즈나파라미타(般若波羅蜜多)로 직접 꿰뚫고 들어가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어느 날 집에서 소파에 앉아 그의 책을 읽다가 크게 소리를 지를 뻔했다. 공사상이 이렇게 심오할 줄이야!  어떻게 인간으로서 이렇게까지 생각했을 수 있을까. 골수를 깨고 들어오는 듯한 지적 희열을 느꼈는데, 그 순간을 아직 잊을 수가 없다.

그 외에 인도 베단타 철학, 도가 사상, 선불교 사상, 산스크리트 등을 이 분야의 전문가 교수들과 함께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공부하면서 또 다른 충격적으로 다가온 것은 선불교에서 강조하는 ‘깨침’이었다. “깨침(悟)이 없는 선(禪)은 빛과 열이 없는 태양과 같다.”고 한 스즈키(D. T. Suzuki)나, 자명종 시계는 그것으로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 중요하지 그 시계를 해부해서 그 기계적 구조를 연구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한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 등의 지적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결국 종교의 핵심은 깨침이라는 것, 모든 종교적 교설이나 의식(儀式) 등은 깨침을 위한 수단이라는 것, 손가락을 보지 말고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을 보아야 한다는 표월지(標月指), 깨침에 방해가 된다면 부처도 죽이고 조사도 죽이라는 살불살조(殺佛殺祖) 등이 내 마음에 굳게 자리 잡게 되었다.

종교는 체험의 문제였다

이런 일련의 공부를 통해 그 문제의 책 『예수는 없다』 서문에서도 “아, 종교라는 것은 결국 ‘체험’의 문제로구나!”하는 말을 외치게 되었다. 이런 기본적인 확신에서 학생들에게 러시아의 무명 저자가 쓴 『예수의 기도』를 읽고 독후감을 쓰라는 과제도 내고, 내 자신도 그것을 한국어로 번역했다. 번역 서문에 “종교라는 것이 결국 교리나 믿음의 문제라기보다 체험과 깨달음의 문제라는 사실을 더욱 분명히 깨닫도록 도와주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썼다.

동양종교를 전공으로 택하고 동양종교 중 하나로 한국의 동학(東學)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내 속에 하느님을 모시고 있다(侍天主)고 선언하고, 그 하느님과 내가 하나다. 내가 곧 하느님이다(人乃天). 나만 하느님이 아니라 내 이웃도 하느님이니 이웃 섬기기를 하느님 섬기듯 하라(事人如天)라는 기본 가르침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힌두교 『우파니샤드』의 “내가 곧 브라흐만이다”고 하는 범아일여(梵我一如)보다 윤리적으로 한 발 더 나간 것이다. 그날 이후 기회 있을 때마다 세계 종교사에서 본 동학의 위대한 가르침에 대해 이야기하고 글로도 썼다.

학위논문 재료 수집차 일본 동경대학으로 가는 길에 한국에 들려 수운회관을 방문했다. 교령님을 만나 내가 본 동학, 그 놀라운 가르침, 21세기 대안 종교로서의 훌륭한 자격 등을 말씀드렸다. (은퇴하고 한국 가서 천도교로 초청되어 여러 번 강연하기도 하고, 여러 곳에서 책이나 강연을 통해 동학을 널리 알렸는데 그것이 공헌이라고 수운 선생 기일인가의 큰 모임에서 상패와 금일봉도 받았다.)

오강남 명예교수(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 soft103@hotmail.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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