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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당신이 그립습니다

기사승인 2016.09.20  13:5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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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수호 칼럼>

故 이소선 어머니

지난 9월 3일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의 어머니 묘지 앞 잔디는 가을을 불러오는 선선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남은 여름 따가운 햇살 아래 누런빛을 띄어가고 있었습니다. 이소선 어머니가 왼 팔을 쭉 뻗기만 하면, 안길 듯 다소곳이 앉아 있는 맏아들 태일이의 묘, 고뇌와 연민, 분노가 어우러져 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작은 흉상의 머리띠는 바랠 대로 바랬어도, ‘비정규직 철폐’의 구호는 선명하게 아로새겨져 있었습니다. 어머니 이곳에 오신 지 5년, 전태일 동지는 벌써 46년이나 되었네요.

어머니 살아 계실 때, 크고 작은 투쟁집회의 현장 그 앞자리에 언제나 나란히 앉아 계시던 백기완 선생님과, 유가협 가족들의 집 한울삶에서 동고동락하며 같이 지내던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을 비롯한 유가협 식구들이 어머니 무릎 발치에 앉고, 어머니께서 친자식처럼 아끼고 사랑하던 태일이 친구들과 청우회 회원들, 그리고 투쟁 중에도 한 걸음에 달려온 양 노총 노동자들, 시민들, 청년들, 학생들 둘러서고, 어머니 장례 때 평소 어머니 말씀대로 하나 되기 위해, 이쪽저쪽 모두 모여 구성한 이소선 합창단의 추모의 합창을 시작으로, 우리는 어머니 5주기 추모행사를 시작했습니다.

5년 전, 어머님이 갑자기 쓰러지셔서 의식이 없는 상태로도, 한 많은 명줄을 놓지 못하고 가쁜 숨만 몰아쉬시던 어느 날 아침, 당시 한국노총 위원장 이용득이 먼저인지 민주노총 위원장 김영훈이 먼저인지 서로 통화를 하면서, 오늘은 우리가 같이 이소선 어머니를 찾아뵈었으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에, 기꺼이 그렇게 하기로 하고, 당시 입원 중이던 한전 한일병원으로 달려가서 나란히 어머니 손 하나씩을 잡고, “어머니, 저희들 왔어요. 양 노총 하나 되어 단결해서 싸우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하신 말씀 따라, 그렇게 하려고 이렇게 달려왔어요. 어머니!”, 이렇게 아뢰며 어서 일어나시라 간곡히 빌었는데, 어머니는 한 말씀도 못 하시고 오히려 오랜만에 편안한 얼굴로, “잘 알았다 부디 꼭 그렇게 하여라” 당부하는 듯하며 조용히 눈을 감으셨다니, 참 묘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마 어머니께서는 태일이 숨을 거둘 때, 부디 내 죽음을 헛되이 말고 노동자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싸워줄 것을 당부하며, “어머니, 제가 못다 이룬 일 어머니께서 꼭 이루어 주세요.”라고 하던 태일이의 유언을, 양 노총 위원장에게 그대로 전달하는 것 같았답니다.

그날 추모 행사에서는 백기완 선생님이나 장남수 유가협 회장, 양 노총 위원장의 추모사도 절절했지만, 민선영 청년참여연대 운영위원장이나 김동수 전태일 문학상 르뽀부문 수상 작가, 전태일의 길 걷기 현장교육 참여자인 경희대학교 학생인 정시운 씨 등, 젊은이들의 추모사가 한층 더 의미 깊었습니다. 이 젊은이들에게는 전태일, 이소선 모두 지나간 인물들이었지만, 노동자의 힘든 삶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한, 그 의미가 새롭게 되살아나야 한다는 각성과 실천의 다짐은, 그날 모인 모든 사람에게 희망의 메시지였습니다.

추석이 되면 우리 아이들 앞세워 이소선 어머니 뵈러, 작은 과일 바구니 하나 들고 창신동 골목을 헤매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골목이 좁고 꼬불꼬불하고 길어서 찾아갈 때마다 길을 묻곤 했었지요. 겨우 찾아가서 바깥으로 난 가파르고 좁은 계단을 올라가면, 거기 작은 단간 방에 늘 앉아 계시던 어머니, 평생 가난이 그렇게도 자연스럽던 어머니, 어머니는 그렇게 평생을 가난한 노동자의 어머니로 가난하게 사시다가 가셨습니다. 내가 찾아 뵐 때 마다 그리 말씀은 안 하셔도 온 몸으로, “아직도 생존권과 노동자의 자존심을 위해 싸우다가 쫓겨나 길거리에서 농성하며 지내는 노동자들이 곳곳에 있는데, 내가 어찌 좋은 방에서 편히 자겠어요?”,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어머니는 오늘도 말씀하고 계십니다. “노동자가 세상의 주인이다. 하나 되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그래서 세상도 바꾸고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 부디 매년 11월 13일이면 열리는 전태일정신 계승 전국노동자대회와, 5월 1일에 열리는 세계 노동절대회 만이라도, 한국노총, 민주노총, 정규직, 비정규직, 특수고용노동자 할 것 없이 모든 노동자가 함께 모여, 하나 되는 모습 보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노동자가 세상을 바꾸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전태일과 어머니께서 지금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따뜻한 한 마디입니다.

 

   
▲ 필자 이수호.

 

 

 

그는 전 전교조 위원장, 전 서울시 교육위원, 전 민주노총 위원장, 전 방송문화진흥회(MBC) 이사, 전 민주노동당 최고위원, 전 박원순 서울시장 공동선거대책위원장, 현 한국갈등해결센터 상임이사로 활동 중에 있다.

이수호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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