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명수 칼럼>
25.그런데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아 온 여자가 있었다. 26.여러 의사에게 보이면서, 고생도 많이 하고, 재산도 다 없앴으나, 아무 효력이 없었고, 상태는 더 악화되었다. 27.이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서, 뒤에서 무리 가운데로 끼여 들어와서는, 예수의 옷에 손을 대었다. 28.(그 여자는 "내가 그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나을 터인데!" 하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29.그래서 곧 출혈의 근원이 마르니, 그 여자는 몸이 나은 것을 느꼈다. 30.예수께서는 곧 자기에게서 능력이 나간 것을 몸으로 느끼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아서서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고 물으셨다. 31.제자들이 예수께 "무리가 선생님을 에워싸고 떠밀고 있는데, 누가 손을 대었느냐고 물으십니까?" 하고 반문하였다. 32.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렇게 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보셨다. 33.그 여자는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알므로, 두려워하여 떨면서, 예수께로 나아와 엎드려서 사실대로 다 말하였다. 34.그러자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안심하고 가거라. 그리고 이 병에서 벗어나서 건강하여라."(막5:25-34;새번역) 25.A woman who had a hemorrhage for twelve years, 26.and had endured much at the hands of many physicians, and had spent all that she had and was not helped at all, but rather had grown worse. 7.after hearing about Jesus, she came up in the crowd behind Him and touched His cloak. 28.For she thought, "If I just touch His garments, I will get well." 29.Immediately the flow of her blood was dried up; and she felt in her body that she was healed of her affliction. 30.Immediately Jesus, perceiving in Himself that the power proceeding from Him had gone forth, turned around in the crowd and said, "Who touched My garments?" 31.And His disciples said to Him, "You see the crowd pressing in on You, and You say, 'Who touched Me?'" 32.And He looked around to see the woman who had done this. 33.But the woman fearing and trembling, aware of what had happened to her, came and fell down before Him and told Him the whole truth. 34.And He said to her, "Daughter, your faith has made you well; go in peace and be healed of your affliction."(Mark5:25-34; NASB) |
하루는 예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병 고치는 치유능력이 있어서 갖가지 질병으로 고생하고 있는 사람들을 고쳐주셨습니다. 이 날도 많은 병자들이 고침을 받기 위해 몰려들었습니다.
그 마을에 12년동안 하혈로 고생하는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이 여인은 병을 고치기 위해 용하다는 병원과 의사들을 찾아다녔으나 모두 허사였습니다. 병원비로 재산만 다 날리고, 병은 점점 깊어져만 갔습니다. 이 여인은 부정하다는 이유로, 마을 사람들한테 배척을 당하고요. 심지어 집안 식구들한테도 따돌림을 받고 인생을 포기한 채 죽을 날만 기다리며 외딴 곳에서 오두막을 짓고 홀로 지내야 했습니다.
예수께서 마을을 지나가신다는 소문이 이 여인에게도 들려왔습니다. 혹여 그 분이면 내 병을 고쳐주시지 않을까 하는 한 가닥 희망을 품게 된 이 여인은 사람들 틈에 끼어들어 예수에게 가까이 갔습니다. 이 여인은 속으로 ‘예수님의 옷깃만 만져도 나는 병 고침을 받을 것이다’라는 굳은 믿음을 가지고 용기를 내어 예수의 옷자락에 손을 대었습니다.
그러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예수의 몸에 손을 대는 순간, 이 여인은 몸에 이상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계속되던 하혈이 순간 뚝 그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때 예수께서는 당신 몸에서 능력이 빠져나가는 것을 즉시 알아챘습니다. 뒤를 돌아보면서 물었습니다. “누가 내 몸에 손을 댔습니까?”그러자 제자들이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이렇게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데 선생님 몸에 손 댄 사람이 한둘이겠습니까?” 제자들의 퉁명스런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예수님은 그에게 손 댄 사람을 찾으려고 두리번거렸습니다. 그러자 한 여인이 두려워 떨며 앞으로 나왔습니다. 이 여인은 엎드려 자기에게 일어난 일의 자초지종을 이야기했습니다. 이야기를 귀담아 들으신 예수께서 말씀했습니다. “여인이여, 당신의 믿음이 그대의 병을 낫게 했습니다. 평안히 가서 건강하게 사십시오.”
▲ 혈루증 앓는 여인. |
네 믿음이 널 고쳤다고 하실 때, 예수님은 질병과 믿음 사이에는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지요. 여기에서 ‘믿음’은 예수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임을 믿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를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숭배하는 이른바 교리(도그마) 차원에서의 믿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지요.
본문에서 ‘믿음(피스티스)’이란 사람의 ‘정신자세’나 ‘신뢰하는 마음가짐’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습니다. 네 믿음이 널 고쳤다는 예수 말씀 속에는 몸이 아플 때, 어떤 정신자세로 병을 대하느냐가 관건이라는 말이지요. 어떤 마음가짐으로 질병을 대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세상만물을 창조하신 다음, 세계를 둘러보시고 하신 말씀이 무엇이었나요? “참 좋았다”였습니다.(창1:31) 불완전한 것이 없고요.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완전하고 무결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 중에는 폐기처분해야 할 불량품이 하나도 없었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세상 만물은 ‘있는 그 모습 그대로’ 완전합니다. 흠이 없어요. 부족함이나 결함이 없어요. 하등동물이다. 고등동물이다. 이런 분류는 인간중심주의의 산물일 뿐, 실재의 창조세계를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주생명을 창조하실 때, 고등하고 하등하다는 차별을 두지 않으셨습니다. 인간과 초파리의 DNA도 90% 이상이 동일합니다. 촌수가 그리 멀지 않은 한 가족인 셈이지요. 일체 생명은 평등하지요. 우열이나 높낮이가 없지요. 차별 관념을 만들어놓고, 인간들은 자연을 인간의 욕구를 채우기 위한 도구로 수단화하였습니다.
인간은 어떻게 창조되었나요? 하나님의 모습대로 창조되었다고 했어요(창1:27). 피조물 가운데 가장 하나님의 모습을 닮은 것이 인간이라는 말이지요. 물론 모든 생명에는 존귀비천尊貴卑賤이 따로 없지만, 하나님의 피조물 가운데 자랑스럽게 내놓을 수 있는 작품 하나를 꼽으라면 인간이라는 말입니다. 모든 인간은 ‘있는 그대로’ 완전합니다. 성스러운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애초에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완전무결하고 건강한 몸으로 창조하신 것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이를 운영하는 방식으로 인과법因果法을 선택하셨어요. 인과법이라는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따라 우주만물은 생주이멸生住異滅을 거듭하지요. 인간도 예외가 아닙니다. 인과법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건강한 몸으로 태어났는데, 실상은 질병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인데요. 무엇이 문제인가요? 어디에서 문제가 생긴 것인가요? 현재 내 몸은 무엇인가요? 세상에 태어나면서 내가 먹고, 행동하고, 움직인 결과물이지요. 내가 먹고 움직인 결과가 내 몸이지요. 몸은 내 생활습관입니다. 나 개인의 역사와 인류역사, 그리고 우주의 역사가 내 한 몸에 다 들어있습니다.
몸이 아픈 데는 원인이 있지요. 병들어 고통을 당하는 데도 원인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잘못 먹고요. 잘못 행동하고요. 잘못 생활한 데 있습니다. 잘못된 생활습관이 질병의 원인입니다. 지금 병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은, 내가 그동안 몸을 잘못 관리했다는 증거이지요. 그동안의 생활습관이나 마음상태를 반성하고 성찰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타고 다니는 차는 누가 운전하나요? 여러분입니다. 여러분이 차의 주인이에요. 운전기사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몸은 누가 운전하고 다니나요? 여러분의 마음이지요. 생각이에요. 마음의 명령에 따라, 여러분은 말하고 행동하고 움직입니다. 마음이 여러분의 몸을 끌고 다니는 운전기사인 셈이지요. 여러분 몸의 주인은 여러분의 마음입니다. 우리는 생각대로 말하고 행동합니다. 생각대로 먹고 생각대로 살아갑니다. 생각이 우리 몸을 끌고 다니는 주인임을 알 수 있어요.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신 첫 설교말씀이 무엇이었나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것이었어요. ‘회개하라’는 것은 그리스어로 메타노이아metanoia인데요. 인간의 시선은 항상 밖을 향해 있습니다. 보고 듣는 것을 구하여 자기 것으로 삼음으로써 자기 존재감을 확인하려고 해요.
허나, 예수님은 우리의 시선을 안으로 돌리게 합니다. 네 마음을 보라고 합니다. 생각을 보라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무엇을 생각하고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메타노이아는 마음을 돌이키라는 말이에요. 비뚤어지고 빗나가고 잘못된 마음을 돌이키라는 것입니다. 생각을 고쳐먹으라는 말입니다. 생각의 중요성을 말씀하신 것이에요. 마음자세의 중요함을 말씀하신 것이지요. 생각을 고쳐먹지 않고는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 예수님의 첫 설교말씀이에요.
마음이 항상 불안, 걱정, 근심으로 가득 차있으면 어찌되나요? 위와 장이 운동을 멈추게 되지요. 그러니 소화 장애를 일으킵니다. 소화불량인 사람은 걱정근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걱정근심에서 해방되어야 위장이 정상기능을 회복합니다. 소화가 잘 될 것입니다. 화나 성질을 자주 내는 사람은 어찌 되나요? 간이 정상기능을 멈추지요. 신진대사가 원만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면 몸이 붓게 됩니다. 화는 언제 생기나요? 내가 옳고 너는 그르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있을 때입니다. 상대방이 내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을 때, 화가 치밀어 오르지요. 옳고 그름도 상대적인 가치이지요. 내 생각이 만들어낸 가치들입니다. 시비지심是非之心을 내려놓고 상대방을 대해보세요. 그러면 화나 분노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음에 불평불만으로 가득하면 어찌 되나요? 스트레스가 쌓이게 되지요. 스트레스가 쌓여 생기는 병이 암이지요. 암에 걸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과도한 스트레스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루하루 지금 이 상태에서 만족하고 살면 됩니다. 하루 세끼 밥 먹고 잠자고 살 수 있는 것으로 만족하고 감사하는 생활을 하면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어요. 남과 비교하는 마음을 내려놓고요. 불안하거나 초조한 마음을 벗어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어진 여건에서 자족自足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 암 예방의 지름길입니다. 올 때도 빈손이고요. 갈 때도 빈손이지요. 어떻게 살든 결국 인생은 본전이지요. 지나치게 이해득실에 매어 살다보면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마음관리를 잘 해야 합니다. 내 마음 상태를 항상 점검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살펴볼 필요가 있어요. 지금 내 마음상태가 어떤가? 불안한가, 걱정이 있는가, 초조하고 불평불만으로 가득 차 있는가? 그렇다면 마음이 비정상이지요. 병든 상태입니다. 이러한 마음의 병을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스트레스가 쌓이게 되고요. 질병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대부분 현대인이 겪게 되는 질병의 대다수는 내 마음이 만든 것입니다.
살다보면 사업에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생활에 여유가 생기기도 하고요. 생활에 쪼들리기도 합니다. 돈이 많으면 많은 대로요. 부족함이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쪼들리면 쪼들리는 대로요. 부족함이 없음을 알아차려야 하지요. 하루 세끼 굶지 않으면, 그것으로 감사하면 됩니다.
어떤 상태에 있든지, “나는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사는 것이 중요하지요. 돈 있고 없음에 휘둘리지 않고 사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스스로 만족함으로 알고 사는 것이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는 지름길이지요. 어디에서 스트레스를 받게 되나요? 비교하는 데서입니다. 남과 비교할 때, 부족함을 느끼게 되고요. 바라고 구하는 것이 채워지지 않을 때 스트레스를 받게 되지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어요. 욕구를 채우는 방법이 있고요, 욕구를 내려놓는 방법이 있어요. 바라고 구하는 것을 얻는데서 스트레스를 풀려고 하면, 끝이 없습니다. 욕망이란 끝이 없기 때문이지요. 한 가지 바라는 것이 충족되면, 또 다른 바라는 것이 생기게 되지요. 구하는 것을 얻어도 만족감은 잠시뿐입니다. 또 다른 것을 구하게 되지요. 서 있으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은 것입니다. 20평짜리 아파트에 살면 30평에서 살고 싶고요. 30평에서 살게 되면 40평 아파트로 이사 가고 싶은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습니다. 욕망을 쫓는 삶이 계속되는 한 결코 스트레스의 굴레에서 해방될 수 없어요.
나를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추구했던 돈, 명예, 인기를 얻는 순간, 그것들이 부메랑이 되어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경우가 허다하지요. 돈 때문에 불행하게 되는 기업가들, 명예 때문에 불행하게 되는 정치하는 사람들, 누리는 인기 때문에 자살로 인생을 마감 짓는 연예인들을 우리는 흔히 보게 되지요.
바울선생은 예수를 전파하는 과정에서 온갖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감방생활을 자주하셨어요. 56년 경 바울이 에베소 감방에 있을 때, 빌립보교회 신도들에게 보낸 편지가 성경에 있어요. 빌립보서가 그것인데요. 이 편지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사실 나는 어떤 처지에서도 자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나는 궁핍하게 살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배고프거나, 풍부하거나 궁핍하거나, 나는 어떤 일 어떤 경우에도 적응할 수 있는 비결을 배웠습니다. 내게 힘을 주시는 분을 통해서 나는 모든 어려움을 견디어낼 수 있습니다.(빌4:11-13)
행복과 불행, 기쁨과 슬픔, 만족과 불만족, 이런 것들을 결정하는 잣대는 외부환경이 아니라, 결국은 내 마음이 짓는 것들이라는 것을 바울은 깨달았어요. 감방이라는 제한된 상황 에서, 바울은 스스로 만족하는 비결을 터득했다고 합니다. 배고프고 궁핍한 가운데서도 스스로 만족했다고 합니다. 부족함 가운데서 부족함을 느끼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어떤 경우에서도 스스로 만족하는 비결을 배웠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통해서인가요? 신앙의 힘을 통해서이지요. 마음관리를 통해서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내 것으로 삼아 살았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을 강조하고 있어요. 자족自足하는 삶의 비결이지요.
모든 것은 마음이 짓는 것입니다. 여기에 물컵이 있습니다. 우리는 객관적인 물컵을 보고 있는 것 같지만요. 실은 내 마음의 거울에 비친 물컵을 보고 있을 뿐이지요. 마음작용 없이 인간은 아무 것도 볼 수 도 없고요. 의식 없이 그 무엇도 인식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외부세계를 보는 것 같지만, 실상은 마음이 짓는 것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본다는 것은 마음이 보는 것이지요. 헌데, 우리는 이것을 잊고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 마음과 분리된 그 무엇이 따로 있다고 설정하고 그것을 본다고 생각하기 쉽지요.
일반적으로 나이 먹고 노인이 되면, 세 가지 고통이 따릅니다. 첫째로, 빈고貧苦가 따릅니다. 노인이 되면 가난의 고통이 따라와요. 경제활동을 할 수 없고 모아놓은 돈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자식들에 의탁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되지요.
둘째로, 병고病苦가 따라옵니다. 노인이 되면 이런저런 자질구레한 병이 자꾸 붙습니다. 면역력이 저하되어 그렇지요. 늙으면 자주 아프게 되지요. 헌데, 아플 때마다 병원에 가자고 하면 어리석은 짓이지요. 병원에 간다고 해서 병이 낫는 것도 아닙니다. 병원비를 대느라 자식들만 힘들게 되지요.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과도하게 병원신세를 지지 않는 것이 현명한 처신입니다.
전과 비교해서 요즘은 오래는 사는 분들이 많습니다. 병 없이 오래 사는 무병장수無病長壽하는 것은 바람직하지요. 헌데, 실상은 그렇지 않아요. 병으로 골골하면서 오래 사는 유병장수有病長壽하는 노인들이 많습니다. 병원에 가보면 노인환자들이 절대다수를 이루고 있어요. 국민세금 축내는 일입니다.
셋째로 독고獨苦가 따릅니다. 노인이 되면 사람들이 싫어합니다. 손주들도 냄새난다고 할아버지가 가까이 오는 것을 싫어하지요. 늙으면 쓸쓸하고 고독한 가운데서 홀로 지내야 하는 경우가 많아집니다. 외로움을 스스로 이겨내지 못하고, 자식들에게 매일 몇 차례씩 전화를 해서 부담을 준다면, 자식들은 부모를 지겹게 생각할 것입니다.
늙으면서 찾아오는 이 세 가지 불청객을 어떻게 대해야 하나요? 지혜로 대해야 합니다. 빈곤의 고통을 거부하려고 하지 말고, 친구삼아 함께 살아가면 됩니다. 질병의 고통을 피하려고 하지 말고요. 친구삼아 더불어 살아가려고 생각을 고쳐먹으면 됩니다. 외로움의 고통을 친구삼아 함께 살아가려고 마음을 고쳐먹으면 되지요.
이제 새로운 무엇을 구하거나 찾으려고 하지 말고, 지금 주어진 상황에서 만족하기 바랍니다. 여러분 스스로가 여러분 삶의 주인이 되어 살기를 바랍니다. 늙어서 찾아오는 불청객들을 친구 삼아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발휘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이 세상을 떠나는 날, 후손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는 여러분이 되길 빕니다.
김명수(경성대명예교수, 충주예함의집) kmsi@k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