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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률

기사승인 2015.05.27  16:4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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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명수 칼럼>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여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본뜻이다."(마7:12; 새번역)

"In everything, therefore, treat people the same way you want them to treat you, for this is the Law and the Prophets.“(Matthew7:12; NIV)

노무현 전대통령이 우리 곁을 떠난 지 6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헌데도 그의 이름은 지금도 여전히 살아있어서,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간에 한국정치 현실에서 자주 회자되곤 합니다.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 130명은 노무현이라는 지나간 인물과 친한 사이인가 아니한가에 따라서 그들의 정체성을 찾고 있습니다. 그의 죽음도 비극적이었지만, 그 후로 전개된 한국정치 현실 또한 비극적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제1야당 정치인들은 노무현과의 친소親疎관계에 따라 양분되어, 서로 치고받고 쌈질하면서 차기 공천권 쟁취를 둘러싸고 내분에 내분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국민들이 얼마나 고통을 받고 있으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고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예 관심도 없습니다. 특히 호남출신 국회의원들은 마치 새누리당 2중대처럼 행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는 동안 새누리당의원들은 미소를 지으면서, 영구집권 야욕을 불태우며, 박정희독재정권 시대에로의 회귀 의지를 노골화하고 있습니다. 내년 총선, 후년 대선, 이대로 가다가는 야당의 패배는 불 보듯 뻔합니다. 단언컨대 50석 건지기도 힘들 것입니다.

지금 한국경제 현실은 점점 위기국면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청년실업문제는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경제문제로 결혼을 포기해야 하는 청년들의 숫자가 급증되어가고 있고, 솔로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아가고 있습니다. 퇴행적이며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양극화된 사회구조, 부자감세 서민증세의 경제프레임, 부익부빈익빈의 불평등 사회구조 속에서, 보편복지사회를 향한 우리의 꿈은 점점 멀어져가고 있습니다. 현금 진행되고 있는 초등학생들 밥 한 끼 먹이는 의무급식 문제로 정치인들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이전투구 현상을 바라보면서 저들이 과연 국민을 대표하는 정치인들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게 합니다.

노무현 정신은 무엇입니까? 비록 상업고등학교 출신이지만, 국민 모두가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받고 살 수 있는 민주복지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는 희망과 그러한 사회를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당위성을 온 국민에게 준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노무현정신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사유화되어 가는 한국자본주의 사회에서 ‘공공公共의 가치’를 지키며 이를 수호하는 일과 분리되지 않을 것입니다.

마빈 토케이어(Marvin Tokayer)가 편집한 유대인들의 지혜서 <탈무드>(소담출판사, 1996)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유대인 랍비 힐렐(BC60–AD20)에 관한 일화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힐렐은 예수님보다 나이가 60세 많은 분이었지만 80세까지 살았습니다. 그는 당대 유대사회에서 최고의 랍비로 명성을 떨치고 있던 분이었습니다.

그는 바빌론에서 태어나 스무 살이 되던 해에 예루살렘으로 이주했습니다. 직업은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날 품꾼이었습니다. 일용직 노동자였던 셈이지요. 그는 하루 번 돈의 절반으로 생활을 하고, 나머지 절반은 학비로 썼습니다. 힐렐이 청년시절에 예루살렘에 랍비 쉐마이어(Shemaiah)에게서 율법을 배웠는데요. 힐렐은 율법의 기본정신을 사회정의에서 찾았고요. 누구보다도 가난한 사람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랍비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바울이 청년시절 예루살렘에 유학하여 랍비 가말리엘 밑에서 율법공부를 했는데요. 그 분이 바로 힐렐의 손자입니다.

어느 날 힐렐은 몸이 아파서 일을 나갈 수 없었어요. 당시는 오늘날처럼 한 학기 등록금을  선불하는 제도가 아니었어요. 하루 단위로 강의료를 지불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는 돈이 없어 강의를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도강하기로 미음 먹고 야간 강의시간에 몰래 학교 건물 지붕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굴뚝 창문에 귀를 대고 선생의 강의하는 소리를 듣고 있었습니다. 추운 겨울날이었습니다. 그는 강의를 듣다가 그만 잠이 들어버렸습니다. 밤새 내리기 시작한 눈이 그의 몸에 쌓였습니다.

그 다음 날, 아침 수업이 시작되었습니다. 헌데 교실 안이 다른 날보다 어두웠어요. 천정을 보니 한 사람이 굴뚝 창을 막고 있었던 것입니다. 랍비 쉐마이어는 깜짝 놀라 지붕위로 올라갔습니다. 꽁꽁 얼어붙은 힐렐의 몸을 따스하게 녹여주었습니다. 자초지종의 이야기를 다 들은 랍비 쉐마이어는 힐렐의 수업료를 면제해 주었습니다. 그 이후로 유대인 율법학교에서는 학비를 받지 않는 무상교육제도가 실시되었다고 합니다. 힐렐은 열심히 공부하여 유대인들의 존경을 받았고요. 예수님이 살던 시기에 유대사회 최고의 명성을 날리는 랍비가 되었습니다.

하루는 이방 헬라인이 예루살렘에 무역을 하러 왔다가 힐렐의 명성을 듣고 찾아갔습니다. 아마 그는 지식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가 힐렐에게 물었어요. “당신이 예루살렘에서 최고가는 율법학자라는 소식을 듣고 찾아왔습니다. 내가 이렇게 한 발로 서 있는 동안, 율법내용 전부를 내게 가르쳐보시오.” 그러자 힐렐이 서슴없이 입을 떼었습니다. “당신이 당해서 싫은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마십시오.”

흔히 황금률Golden Rule이라 불리고 있는 말씀이지요. 3세기 로마황제 세베르투스 알렉산더가 힐렐의 이 말씀을 황금으로 써서 자기 거실에 걸어놓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황금률이라는 명호名號가 붙게 된 것이지요. 힐렐의 어록 중에, 제 마음에 와 닿는 또 한 구절 있어요.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는 판단하지 말라”는 말씀인데요. 역지사지易地思之하라는 말씀이지요. 먼저 상대방과 처지를 바꾸어 놓고 생각해보라는 말씀이지요.
본문말씀은 원래 큐Q복음에 있던 예수말씀인데요. 마태복음이 받아 기록하고 있어요.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마태복음은 큐Q가 전해준 예수의 이 말씀을 율법과 예언의 기본정신이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예수의 이 말씀이 보편적 가치의 지평에서 전해주고 있습니다. “대접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눅6:31) 

황금률은 『탈무드」나 성경에만 나오는 말씀이 아니고요. 외경(Apocrypha, 外經)에도 나옵니다. 정경 밖의 정경을 외경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원래 유대교의 경전인 구약성경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된 맛소라 텍스트가 있고요. 헬라어로 번역된 셉투아진트(LXX)가 있습니다. 원래 맛소라 히브리성경은 39권으로 되어있는데요. 거기에 외경 15권을 더해진 셉투아진트 구약성경은 54권으로 짜여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1500년 동안 그리스어로 된 셉투아진트 구약성경을 정경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어요.

헌데 가톨릭 신부였던 마르틴루터가 종교개혁을 단행하면서, 맛소라 텍스트를 정경canon으로 채택했습니다. 로마가톨릭과 차별화하기 위해서였죠. 그 이후로 개신교는 맛소라 텍스드를 정경으로 채택하여 사용하고 없습니다. 이와 달리 가톨릭은 지금까지 여전히 외경이 포함된 셉투아진트를 구약정경으로 사용하고 있지요.

외경 중 하나로 『토비트경』이 있는데요. 여기에도  “네가 싫어하는 일은 남에게 시키지 말라.”(토빗4:15)는 황금률 말씀이 나옵니다.

『논어』“위령공편”편에도 “기소불욕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중국 춘추시대 위(衛)나라의 유학자 자공(子貢:BC 520∼BC 456)이 공자에게 "제가 평생 동안 실천할 수 있는 한 마디의 말이 무엇인가요?" 하고 묻자, 공자는 "그것은 바로 서이다[其恕乎]라고 말합니다. 서(恕)는 여심(如心)인데요, 상대방과 같은 마음을 지닌다는 뜻이지요. 공자는 서(恕)를 해석하면서“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은 남에게 시키지 말라(己所不欲勿施於人)”라고 합니다. 남에게 굽실거리고 싶지 않으면, 남도 나에게 굽실거리길 바라지 말라는 것이지요. 상대방과 같은 마음이 되어야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인륜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는 가르침이지요.

이와 같이 황금률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역사에서 보편적인 가치를 지닌 지혜의 말씀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대접받고 싶으면 먼저 대접하라’는 적극적인 말씀(예수)이나, ‘네가 싫어하는 일은 남에게 시키지 말라’는 부정적인 말씀(공자, 힐렐, 토비트)을 막론하고, 황금률은 인류 보편적 가치입니다. 모든 사람이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받고 사람답게 살기 위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 될 기본윤리입니다. 

개인의 문제, 사회의 문제는 근본원인은 무엇인가요? 황금률의 실종입니다. 나는 대접받기를 좋아하면서, 남에게 베풀기를 싫어하는데서 생깁니다. 내가 싫어하는 일을 남에게 강제하는데서 생기지요. 결국은 ‘나’ 문제로 귀결되지요.  ‘나’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나에는 소아(小我)와 대아(大我)가 있어요. ‘육의 나’가 있고 ‘영의 나’가 있습니다. ‘제나’가 있고 ‘얼나’가 있습니다. 내 속에 있는 두 자아 사이의 긴장과 조화 속에서 모든 인간은 실존하게 되지요.(롬7:21-23)

모든 인간에게는 양심이 있습니다. 자연법에 근거하고 있는 양심은 하늘의 소리입니다. 양심을 어기는 행동을 하거나 욕심에 매어 행동을 하면 어떤가요? 마음이 찜찜합니다. 양심에 따라 행동을 하거나 욕심을 절제하는 행동을 하면 어떤가요? 마음이 편합니다. 우리의 행동에 대해서 양심의 법이 심판을 내리기 때문이지요. 양심은 하나님께서 우주를 경영하시는 창조프로그램에 접속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우주공식에 접속되어 있는 양심의 결에 따른 행위를 일컬어 노자는 무위無爲로 설명하고 있어요. 욕심의 결에 따른 행위인 유위有爲에 반대되는 개념이지요. ‘양심의 결에 어긋나지 않는 행동을 할 때, 되지 않는 일이 없다는 것’(爲無爲無不爲; 『노자』37장)이 노자의 평소 생각이었습니다.

양심의 결에 따른 행동을 고양시킴으로써 우주의 한 구성원으로써의 자기를 이해하고, 전체와 조화로움을 추구하는 삶이야말로 영성지능을 높이는 지름길일 것입니다. 우주공식인 양심의 결을 한 마디로 요약해 놓은 것이 황금률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대접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 ‘내가 싫어하는 일을 남에게 강요하지 말라.’ 이 말씀은 우주공식을 따른 양심의 명령입니다. 양심의 결에 따라 행동하면 비록 개인적으로 손해 보는 것 같지만 마음은 편하게 됩니다. 허나, 양심의 결을 어기는 행동을 하면 어찌 되나요? 비록 개인적으로는 이익을 보았다 하더라도 무언가 마음이 찜찜합니다. 대박을 쳐서 큰돈을 벌었다 해도, 맘이 찜찜하면 양심에 어긋난 것임을 알아채려야 합니다. 비록 개인적으로 손해 보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맘이 편할 때가 있습니다. 양심에 따른 행위를 했을 때입니다. 무슨 일을 했을 때, 항상 맘이 편안한가 아니면 찜찜한가를 살펴야 합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양심이 결에 따른 행위를 증폭시켜나가는 일이 영성지능을 높여가는 것입니다.

영성지능이 높은 사람은 누구입니까? 나 개인의 이익보다 모두의 이로움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사사로움보다 공공의 이로움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합니다.(好善惡惡) 영성지능이 낮은 사람은 어떤 사람들인가요? 공공의 이해관계보다 사적인 이해관계를 우선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입니다. 공공의 이익을 희생시켜서라도 사적인 이익을 챙기는 사람들입니다.(取利捨公) 영성지능이 낮은 지도자가 많을수록, 그런 사회에는 부정부패가 만연하게 됩니다.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오며, 대통령은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 헌법의 기본정신입니다. 그 반대가 아닙니다. 대통령은 국민의 생각을 자기 생각으로 삼아 국민의 마음을 사는 정치를 해야 합니다. 영성지능이 높은 사람을 정치지도자로 선출해야 나라가 바로 섭니다. 

인간은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기준으로 삼느냐에 따라 영성지능이 구분됩니다. 황금률이나 이웃사랑하기를 네 몸처럼 하라는 예수의 말씀들은 이웃을 우선으로 살고 공익公益을 우선으로 인생을 경영할 때, 공감과 소통이 가능한 사회를 이룰 수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양심의 결에 따른 황금률을 생활 속에서 실천함으로써 땅위에서 하늘의 뜻을 이루어가는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김명수(경성대명예교수,충주예함의집) kmsi@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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