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흐와 산책하기 (64)
▲ <오베르의 교회> (1890. 6, 오베르 쉬르와즈, 캔버스에 유채, 74×94cm, 오르세미술관, 파리) |
빈센트에게 교회는 고향이자 종착지였다. 그는 교회에서 태어나 자랐고 주일학교 교사를 하였다. 목사가 되려고 신학교 문을 두드리기도 하였다. 신학교 입학이 좌절되자 보리나주 탄광촌에서 1년이 넘도록 설교자로 살기도 하였다. 부모를 떠나 직장생활을 할 때에도 성탄절이 되면 꼭 아버지의 교회를 찾아가 가족과 함께 성탄 예배를 드리곤 하였다.
교회는 그의 삶의 중심이었다. 그가 아직 화가 되기를 결심하기 전에 그린 교회 그림 <에텐의 목사관과 교회>(1876)는 뚜렷한 개성도 보이지 않고 서툴기 짝이 없어 보지만 교회에 대한 그의 애정이 매우 깊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그 후 교회를 주제로 몇 점의 작품을 그렸다. 그가 그린 교회는 대부분 아버지가 목회하던 교회이거나 시골 교회였다. <교회 신자석>(1882), <신자들과 함께 있는 뉘넌교회>(1884), <뉘넌의 오래된 종탑>(1884), <별이 빛나는 밤>(1889) 등이 있다. 빈센트는 런던과 헤이그와 암스테르담, 파리 등 대도시에서도 살았다.
그런데 그의 작품에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이나 몽마르트르의 샤크레쾨르 대성당은 없다. 예술적 가치가 뛰어난 이런 교회를 자신의 캔버스에 담는 일은 자연스럽다. 그런데 그의 작품에서 유명 교회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뿌리를 갖고 있어서 그렇다 치더라도 암스테르담이나 헤이그의 개혁교회를 그릴 법도 한데 전혀 보이지 않는다.
빈센트에게 교회는 그려야 할 교회와 그릴 가치가 없는 교회가 있다고 보면 지나친 예측일까.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교회 신자석>의 교인들은 경건해야 할 예배자의 모습과는 거리감이 있어 보인다. 피곤하여 졸거나 지쳐 보이고 다른 생각을 하느라 예배에 집중하지 않는다.
<별이 빛나는 밤>에 묘사한 교회는 하늘의 은총에 화답하지 않는다. 이즈음에서 교회를 그린 빈센트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 그는 맹목적으로 교회를 미화하기보다 교회를 비판적으로 묘사하므로 교회의 정체성을 세우고 싶었던 것 아닐까?
<오베르의 교회>(1890)는 짙은 푸른색이 하늘에 가득하다. 스테인드글라스의 창문도 하늘의 색을 가감 없이 투영하고 있다. 그에게 하늘은 진리 자체였고 교회는 진리를 담는(또는 닮는) 기관이었다. 빈센트는 형태와 색을 초월하고 있다. 왜곡과 과장이 아니라 제도와 전통에 연연하지 않고자 하는 태도로 읽힌다.
신학에서는 교회를 보이는 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 전투적 교회와 승리의 교회로도 구분한다. 빈센트가 캔버스에 담고 싶었던 교회는 어떤 교회였을까? 그가 오늘의 교회를 그린다면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다.
최광열(기독교미술연구소) webmaster@ecumen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