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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치는 서러워

기사승인 2024.07.27  02:4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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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사립학교 생존기 10

▲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에서 모든 사람이 모든 일에 적합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서로를 이해하며 함께 살아가는 지혜와 인내가 필요하다. ⓒGetty Images

나는 길치다. 내가 걸어왔던 길도 되돌아가려고 하면 좌우가 바뀌어서 전혀 낯선 길이 되어버린다. 애초부터 두뇌에 방향감각이나 공간지각력에 대한 뉴런이 형성되어 있지 않은듯한데, 나뿐만 아니라 어머니부터 형제들이 다 길치니 이것은 유전임이 틀림없다.

그나마 현대 과학의 발달로 내비게이션이라는 것을 쓸 수가 있어서 운전도 하고 사람도 만나는 등의 일상생활이 가능하다. 게다가 길에 대한 감각하고 교육하고는 중요한 연결점이 없기 때문에 내 직장 생활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런데 이 ‘지리감각’ 때문에 직장생활에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을 줄은 몰랐다.

사립학교는 스쿨버스를 운행한다. 각 아이들이 타고 내리는 위치가 정해져있는데, 이런 정보는 버스를 운전해주시는 기사님에게 필요한 것이지, 교사에게 반드시 필수적인 정보는 아니다. 그러나 새로 옮긴 학교에서는 이 정보를 매우 중요하게 취급했고, 길치인 나는 상당한 스트레스와 압박을 받았다.

왜냐하면 그 학교는 수학여행이나 체험학습을 다녀올 때 학교에서 한꺼번에 하차하는 것이 아니라, 교사가 버스 기사 옆에서 길을 인도하면서 스쿨버스 운행코스를 돌아야만 했다. 각 아이들이 내리는 지점을 일일이 파악하고 있어야만 했으며 이 '서비스'가 교사에게 요구되는 중요한 덕목 중 하나였다.

이 정보를 익히기 위해 나는 방학때마다 3일 정도의 시간을 냈다. 친한 동료교사를 조수석에 태우고 스쿨버스 코스와 내리는 지점을 확인하며 몇 번을 돌았는지 모른다. 당시에는 내비게이션이 그리 정확하지 않아서 육안으로 지형지물과 길을 익히는 감각이 매우 중요했는데,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길은 쉽게 익혀지지 않았다.

승용차로 돌 때 봤던 길의 모습과 지형지물은 관광버스를 타고 시야가 변하니 완전 새로운 길이 되어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교장은 꼭 내가 인솔하는 버스에 타서 나를 갈궜다. 물론 내가 길을 잘 모르니 옆에서 관광버스 기사에게 길을 설명해주는 등 도움을 줬지만, 그 댓가로 얻는 잔소리는 사람을 미치기 직전까지 만들었다.

이제 그것도 십수년전의 일이 되어버렸다. 나는 여전히 길치고 주변 사람들에게 어이없다는 핀잔을 듣기는 하지만, 적어도 아이들을 가르치고 사람들을 사랑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길치라도 살아가는 방식이 있고, 그 나름대로의 행복을 누리면서 살아갈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홍경종 교사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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