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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으로 죽임 당한 그들을 위해

기사승인 2024.08.11  02:3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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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기 목사와 함께 하는 <성서와 위로>

▲ Charles Po&#235;rson, 「St. Peter Preaching in Jerusalem」 (1642) ⓒWikidata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너희 가운데서 행하신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으로 너희에게 증언된 나사렛 예수 그 사람, 곧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심에 따라 넘겨진 그를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잡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일으키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사도행전 2,22-24)

사도행전 기자 누가가 베드로의 입으로 전하는 초대교회 처음 설교의 한 부분입니다. 그때는 각지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모이는 칠칠절 내지 오순절 때입니다. 이들은 제자들이 하는 말을 자기가 사는 지역의 말로 들었습니다.

바로 진짜 ‘방언’ 사건입니다. 이를 계기로 그들 앞에서 예수 사건을 증언합니다. 그에 따르면 예수 사건은 철저하게 하나님께서 일으키신 사건입니다. 사람들이 예수에게서 보고 듣고 겪은 모든 일들이 하나님께서 예수를 통해 하신 일들입니다. 예수는 그의 일들을 통해 자기가 아니라 하나님을 드러내십니다.

예수는 심지어 자기 뜻대로 하는 것은 없다고까지 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를 증언하고, 더나아가 그를 주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고 하니 놀랍습니다. 하나님과 예수의 상호작용이 예수를 존재케 하고 예수 되게 하십니다.

누가는 이 말들로 그의 역사적 자취를 요약합니다. 그렇지만 그 속에 수많은 일들이 있고, 그 일들 하나하나는 따로따로 살펴보아야 하는 것들입니다. 그런데도 그가 이렇게 하는 것은 짤막한 설교인 탓도 있겠고 당시 사람들이 예수의 행적을 상당부분 아는 탓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이렇게만 해도 예수를 머리에 떠올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물론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들은 충분히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방언 사건에서 이들을 배려하는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예수의 죽음은 하나님께서 뜻하시고 그리될 것을 미리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의 죽음은 결코 우발적인 것이 아닙니다. 죽음의 길이 고통스럽고 피하고 싶은 길임은 예수의 겟세마네 기도가 보여주듯 그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길을 간 까닭은 그것이 사회적, 정치적, 영적 어둠 속에서 신음하며 빛을 찾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길이 아니면 이들에게 한줄기 희망의 빛도 줄 수 없습니다.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그의 마음이 그 길을 가도록 독려합니다.

그 길을 마련한 사람들, 법 없는 사람들로 일컬어집니다. 이 말로 소위 ‘이방인’들을 생각하게 될 것 같습니다. 유대인들은 최종적으로 로마의 힘을 빌려 그를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최종행위자들이 그들이니 이 말에 그들이 포함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여기까지의 과정을 보면 다른 이들이 눈에 띕니다. 종교 귀족들이 한편에 있고 종교적 열광주의자들과 예수에게 실망한 군중들이 있습니다. 이들에게 법은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자랑스러운 것이었습니다. 그들에게 법은 실칠적으로 있었을까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들은 법을 저버리고 예수를 죽였습니다. 그들은 또 다른 의미에서 법없는 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법을 지키기로 약속했던 사람들, 법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임을 가르치고 배워왔던 사람들, 그들이 법없는 사람들이 됩니다. 하나님이 그 법으로 세우려고 하셨던 세상을 그들은 알지도 못했고 그려보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 앞에서 그러한 폭력의 세상 앞에서 하나님은 그들이 죽인 자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의 부활은 죽음의 극복일 뿐 아니라 그를 죽인 권력과 세상에 대한 부정이고 심판입니다. 부활의 이 의미를 포착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이 부활로 그리는 세상을 알 수 없습니다. 억울한 죽음이 없는 세상, 억울함이 없는 세상, 하나님의 세심한 배려가 구석구석을 따뜻하게 하는 세상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로 동터오는 이 세상에 참여하는 오늘이기를. 법을 가지고 법이 없는 것처럼 법을 폐기하는 세상에서 사랑의 법을 몸으로 지키며 사는 이날이기를.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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