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조신앙(창세기 1,1-2; 마태복음 1,18-21)
▲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의 빛은 어둠과 불의 보다 빠르게 세상을 비추신다. ⓒGetty Image |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어둠을 향해 빛이 있으라 하심으로써 빛을 창조하시고 어둠을 물리치십니다. 물로 뒤덮여 무생명이던 곳에 물의 경계를 정하시고 생명이 살 수 있는 시공간으로 바꾸십니다. 하나님은 어둠과 무질서와 무의미로만 가득해 보이던 곳에 생명이 흐르게 하시고 생명과 평화가 꽃피우게 하십니다. 그가 생명의 근원이시고 빛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활동은 단지 세상의 시작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죽음 앞에, 무질서와 무의미 앞에 생명과 삶이 위협받고 있는 지금 여기에서도 일어납니다. 창조는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세상이 다시 어둠 속으로 이끌려 들어가고 죽음의 세력에 삼켜질 때 그에 맞서 새로운 생명의 질서를 펼쳐 내시는 하나님의 현재적 활동입니다.
어둠만이 끝없이 이어져 아무런 희망도 없는 것처럼 보일 때도, 알을 품듯 어둠을 품으시며 거기서 빛을, 생명과 희망을 깨워 내십니다. 그런 하나님이 지금 여기서 활동하시기에 우리는 살아갈 수 있고, 그 믿음으로 죽음과 무의미에 직면해서도 끝내 절망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창조 이후 인간의 역사는 아주 빠르게 그 목적에서 벗어났으며, 하나님의 창조 활동에 비견될 만큼 반창조적, 반생명적으로 흘러갔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고 탄성을 지르신 그 평화의 세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조화와 존중과 사랑이 지배하는 세상을 창조하셨는데, 우리가 경험하는 세상이란 대립과 갈등이 지배적이고 불의와 불공정이 언제나 이 땅에 군림해 왔으며, 하나님의 질서가 아닌 이러한 세상의 질서가 불변하고 필연적인 것으로 여겨집니다. 권력이 우리의 눈을 어둡게 하고 하나님의 계속되는 창조 활동을 못 보게 하며 저 거짓 필연성에 대한 복종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권력 앞에 우리의 무력함을 느끼고 체념하며 때로 우리는 신앙을 배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가 아무런 생명도 없는 곳에 생명을 깨우시고 흑암 속에 빛을 일으키셨듯이, 우리의 어두운 마음을 밝히시고 우리 안에 다시 신앙을 창조하십니다. 여전히 빛나고 있는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보고 하나님의 새 창조 활동을 바로 보며 기대하게 하십니다. 권력이 양산하는 어떤 어둠과 무의미 앞에서도 흔들지 않는 신앙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지탱해 주시는 신앙입니다.
창조의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신앙은 악과 불의에 굴복할 수 없게 하며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게 합니다. 이 어둠을 빛이라, 불의를 정의라 선전하는 자들을 바로 보고 그들의 거짓과 추악함을 드러냅니다. 새 창조를 기대하는 이들의 마음은 사랑과 자비와 정의로 가득 차 있으며 그 마음으로 함께 연대하며 반창조 세력에 저항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까지 그들의 반항은 거셀 테지만, 그들에게서 이미 승리를 거두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힘과 생명이 되시고 인내과 용기를 주실 것입니다.
인간의 끊임없는 반창조적 활동 앞에서도 하나님은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창조 활동을 계속하셨으며 그의 아들을 보내기까지 그리하십니다. 창조된 목적을 저버리고 불의와 억압이 지배하는 인간 세상에 대해 하나님은 그의 형상이신 예수를 통해 자기를 드러내십니다. 예수 안에서 그 어둠을 비추시고 거짓 역사를 청산하시며 다시 그의 역사를 진행시키고자 하십니다.
하나님의 창조 세계가 번번이 인간의 반역에 부딪혔듯이, 예수에게서 드러난 하나님의 활동은 외면받고 거부당하며 결국 예수는 죽음으로 치닫게 됩니다. 스스로를 다시 어둠과 무의미로 뒤덮으며 파멸의 길로 달려가는 세상 속으로 하나님은 예수를 보내십니다. 예수 안에서 인간과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자신의 몸으로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의 그 사랑도 권력 앞에 무력하기만 하고 죽음과 무의미에 삼켜진 듯 보였지만, 하나님은 예수를 죽음에서 건져 내심으로써 죽음의 세력에 균열을 일으키십니다. 그렇기에 죽음은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하고 삶의 의미를 앗아가는 무소불위의 어떤 것일 수 없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보여주신 죄로부터의 구원과 구원의 길입니다. 인간이 되시고 말할 수 없는 고난 속에서도 새 하늘 새 땅을 위해 그 길을 기쁨으로 가십니다.
세상을 생명으로 꽃피우기 위해 땅을 갈 사람을 지으시고, 갈릴리로 제자들을 부르셨듯이, 하나님을 새 세상을 향한 그 길로 지금 우리를 부르십니다. 우리가 직면하는 깊은 어둠은 창조의 하나님 앞에서 어둠 그대로 있지 못합니다. 비록 어둠과의 싸움이 길 수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탄식에 응답하시고 어둠으로부터 빛을 비추실 것입니다. 다시 생명과 정의와 평화가 꽃피우게 하실 것입니다.
그날을 간절히 기다리는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빛이 비치고 그 빛으로 세상의 어둠을 뚫고 그 너머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기를 빕니다. 창조의 하나님에 대한 신앙으로 세상 속에서 희망을 포착하고 그 희망을 널리 전할 수 있기를 빕니다. 예수를 죽음에서 일으키신 하나님에 대한 신앙으로 죽임당한 자들과 연대하며 이 땅의 죽음의 자리를 생명의 자리로 바꿔 갈 수 있기를 간절히 빕니다.
이경훈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