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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그렇게 일 하시지 않는다

기사승인 2022.11.28  01: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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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왕이 네게로 오신다!”(스가랴 9:9-12)

▲ 강한 바람에 교회 지붕이 이웃집 마당에 떨어졌다. 필자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은 전혀 다름을 또 한 번 체험했다. ⓒ이상중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반복해서 말씀드리지만, 평안은 외부의 조건과 상관없이 누릴 수 있습니다. 평안은 이미 우리 안에 있습니다. 그렇기에 “평안 누리기를 원합니다.”라고 요청하면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만약 평안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면, 그 이유는 스스로가 평안 누리기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를 만신창이로 만들고 말겠어!’, ‘더 비뚤어 질테다!’ 이런 마음을 먹었기 때문에 평안을 누리지 못할 뿐입니다. 평안을 선택하십시오. “하나님, 평안 누리기를 원합니다.” 이 한마디면 충분합니다. 두려움과 절망, 불안을 넘어 우리 안에 주어진 평안을 누릴 수 있게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은 교회력으로 대림절 절기의 첫날입니다. 성도는 성탄절 전까지의 4주간의 대림절에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심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기간으로 삼습니다. 이 기간 성도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겠습니까?

중요한 손님이 집을 방문하게 되면 성도님들은 무엇을 하십니까? 먼저 집을 깨끗이 치웁니다. 먼지를 털고, 더러운 곳을 깨끗하게 닦아냅니다. 만약 손님이 잠을 자고 간다면, 잠자리가 불편하지 않도록 만들어 놓습니다.

손님을 위해 조금 더 정성을 기울인다면 손님이 좋아할 만한 음식이나 간식을 준비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더 정성을 기울인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손님이 기뻐할 만한 선물 또는 손님이 평상시에 가질 수 없는 지역 특산물을 준비하기도 합니다.

살면서 만나게 되는 중요한 손님보다도 더 중요하신 분, 우리 삶에 가장 중요하신 예수님이 우리 삶으로 오십니다. 사실 예수님은 이미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의 탄생, 예수님의 오심을 매해 절기로 지키는 이유는, 우리가 아직 온전히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여전히 우리에게 오실 그분이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온전히 예수님을 영접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깨달아 대림절 4주간 동안 저와 성도님들이 마음을 다해 예수님의 오심과 탄생을 준비할 수 있게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네 왕이 네게로 오신다!” 이 선포를 들은 유대인들은 엄청난 희망과 기쁨의 감정을 경험했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오랜 기간 왕이 부재한 시간, 나라가 망하고 포로와 노예의 신분으로 시간을 보냈기 때문입니다.

“네 왕이 네게로 오신다!” 왕이 오신다는 건 어떤 의미입니까? 망했던 나라가 다시 나라가 회복된다는 소식입니다. 의지할 곳 아무것도 없었는데 드디어 의지할 수 있는 이가 생겼다는 소식입니다. 갈 길 못 찾아 헤매고 방황했지만 이제 제대로 된 길, 가야 할 길을 안내하며 다스려줄 이가 나타났다는 소식입니다. 기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읽은 스가랴서는 예루살렘이 폐허가 되었을 때 예언한 스가랴라는 선지자의 이름으로 기록된 말씀입니다. 주전 586년에 바벨론 제국에 의해 남유다가 멸망하고 예루살렘은 폐허가 되고, 백성들은 바벨론 도성으로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50년이 지난 주전 536년에 페르시아 제국에 의해 바벨론이 멸망하자 페르시아 제국의 고레스 왕은 바벨론에 남은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땅으로 돌아가도록 허락했습니다.

그리고 주전 535년에 이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의 기초를 놓았으나 일은 중단되고 15년이 지난 주전 520년이 되어서야 다시 성전을 건축하게 됩니다. 다시 성전을 건축하면서 스가랴는 오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네 왕이 네게로 오신다!”

하나님은 스가랴를 통해 이렇게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나 주가 이렇게 선언한다. 나는 예루살렘을 불쌍히 여기는 심정으로 이 도성에 돌아왔다. 그 가운데 내 집을 다시 세우겠다. 예루살렘 위에 측량줄을 다시 긋겠다. 나 만군의 주의 말이다.' 너는 또 외쳐라.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내 성읍마다 좋은 것들로 다시 풍성하게 될 것이다. 나 주가 다시 한 번 시온을 위로하겠다. 예루살렘은 다시 내가 택한 내 도성이 될 것이다.”(스가랴 1:16-17)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나는 시온을 열렬히 사랑한다. 누구라도 시온을 대적하면 용서하지 못할 만큼 나는 시온을 열렬히 사랑한다. 나 주가 말한다. 내가 시온으로 돌아왔다. 내가 예루살렘에서 살겠다. 예루살렘은 ‘성실한 도성’이라고 불리고, 나 만군의 주의 산은 ‘거룩한 산’이라고 불릴 것이다.”(스가랴 8:2-3)

그리고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도성 시온아, 크게 기뻐하여라. 도성 예루살렘아, 환성을 올려라. 네 왕이 네게로 오신다. 그는 공의로우신 왕, 구원을 베푸시는 왕이시다. 그는 온순하셔서, 나귀 곧 나귀 새끼인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신다. 내가 에브라임에서 병거를 없애고, 예루살렘에서 군마를 없애며, 전쟁할 때에 쓰는 활도 꺾으려 한다. 그 왕은 이방 민족들에게 평화를 선포할 것이며, 그의 다스림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유프라테스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를 것이다. 너에게는 특별히, 너와 나 사이에 피로 맺은 언약이 있으니, 사로잡힌 네 백성을 내가 물 없는 구덩이에서 건져 낼 것이다. 사로잡혔어도 희망을 잃지 않은 사람들아, 이제 요새로 돌아오너라. 오늘도 또 말한다. 내가 네게 두 배로 갚아 주겠다.”

하나님은 스가랴를 통해 예루살렘의 절망에 빠진 백성들에게 반복적으로 희망의 말씀을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내가 그곳에 거하겠다.”, “내가 일으켜 세우겠다.” 얼마나 위로가 되고 희망이 되는 말씀입니까?

하지만 그냥 하시겠다고는 하지 않으셨습니다. 조건이 있었습니다.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너희 조상들이 나를 노하게 하였을 때에, 나는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기로 작정하고, 또 그 뜻을 돌이키지도 않았다.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그러나 이제는, 내가 다시 예루살렘과 유다 백성에게 복을 내려 주기로 작정하였으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희가 해야 할 일은 이러하다. 서로 진실을 말하여라. 너희의 성문 법정에서는 참되고 공의롭게 재판하여, 평화를 이루어라. 이웃을 해칠 생각을 서로 마음에 품지 말고, 거짓으로 맹세하기를 좋아하지 말아라. 이 모든 것은, 내가 미워하는 것이다. 나 주가 말한다.”(스가랴 8:14-17)

‘아니, 하나님이 쩨쩨하게 조건을 걸고 그러신대요?’라는 생각이 혹시나 드시나요? 이 조건은 하나님에게 좋은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의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해 거신 조건일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대림절 주간에 성도는 구원의 주, 생명의 주로 우리에게 오시는 예수님이 오실 길을 닦아야 하고, 오셔서 머무실 장소를 마련해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을 온전히 영접할 수 있습니다.

시편 24편의 저자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누가 주님의 산에 오를 수 있으며, 누가 그 거룩한 곳에 들어설 수 있느냐? 깨끗한 손과 해맑은 마음을 가진 사람, 헛된 우상에게 마음이 팔리지 않고, 거짓 맹세를 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주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고, 그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로부터 의롭다고 인정받을 사람이다.”(시편 24:3-5)

대림절 기간 성도는 회개함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실 삶을 살아 오실 길을 닦고, 마음의 찌꺼기를 제거함으로 거하실 처소를 마련해야 합니다.

처음에 성도님들께 평안을 누리지 못한다면 그것은 오로지 본인의 책임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평안을 누리지 않을테다!, 비뚤어진 마음으로 보낼테다!’라고 스스로 여기며 평안의 마음으로 돌아서지 않아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어제 이런 마음으로, 어리석은 태도로 온 하루를 보냈습니다. 아침에 장로님으로부터 “교회 지붕이 날아갔다.”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교회 뒤편에서, 지붕의 파편을 발견하고서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저 지붕의 파편은 우리 교회 것일 리가 없다.’

마치 지난 6월 교회 화재가 있었을 때, ‘이건 현실이 아닐 것이다.’라고 생각했던 것과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남의 집 마당에 널부러져 있는 파편을 우리 교회 것이라고 인정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제가 처한 현실을 깨달은 뒤에는 바로 지붕을 수리했던 송 사장님에게 연락해서 수습을 부탁드렸습니다. 제 마음은 얼음이 녹으면서 갈라지는 것처럼 조각조각이 나고 있었습니다.

교회 지붕 파편으로 인해 인사 사고가 나지 않은 것, 재산상의 피해를 주지 않은 것, 교회의 소식을 알리자마자 지인들이 보내준 위로와 격려의 따뜻한 말들, 교회에 헌금을 보내주신 분들과 헌금을 보내주겠다고 말씀해 주신 분들, 심지어 힘내라며 저희 가정에 보내준 위로금까지 단 하나도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하나만 생각났습니다. ‘또 공사야. 와, 지긋지긋하다.’

사택 화장실 공사를 마치면서 아내에게 말했고, 성도님들에게 말씀드렸고, 많은 사람에게도 말했던 것이 “이제 공사는 하고 싶지 않다. 공사하지 않겠다.”였습니다. ‘공사 할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 ‘공사 할 일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였습니다.

그런데 또, 공사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니 제 마음은 시간이 흐를수록 갈라지다 못해 황폐해졌습니다. 제일 원하지 않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성도님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놀랍지 않습니까? 어떻게 이렇게도 정확하게, 너무나 정확하게 제가 가장 원하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이 말입니다.

하나님과 이런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생각되었습니다. “공사 하고 싶지 않아?”, “네! 공사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 공사하고 싶지 않다 이거지?”, “네! 정말 하고 싶지 않습니다!”, “응~ 그건 네 생각이고”라고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교회 지붕이 날아간 사건은 어디 건방지게 ‘뭘 하고 싶지 않다.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고 먼저 생각하는가? 네가 뭔데 그런 생각을? 이라고 물으시며 일부러 저를 완전히 산산조각내시려고 작정하신 일처럼 느껴졌습니다. 나중에는 저도, “네, 이제 알아서 하십시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든지, 말든지 이제 알아서 하십시오!”라고 말입니다. 한 마디로 포기했다는 고백입니다.

아마도 성도님들에게도 이런 상황이 허락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내가 원하지 않는 바로 그 일을 겪어야만 하는 상황’을 말입니다. 나를 비워 하나님께 완전히 내어 맡겨야만 하는 상황, ‘이제 알아서 하십시오!’라고 외칠 수밖에 없도록 말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오시지 않으면 안 되도록, 예수 그리스도가 내 삶을 다스리지 않으면 안 되도록 상황을 만들어 가십니다. 스가랴를 통해 유대인들에게 “내가 거하겠다. 내가 일으키겠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오늘날 우리의 삶에도 “내가 거하겠다. 내가 일으키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조건은 온전히 오실 예수님을 영접하기 위해 오실 길을 닦고, 거하실 처소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성도님들은 대림절 기간 어떤 준비를 하시겠습니까? 마음을 비우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강권적으로 비우게 하십니다. 

마음에 아무것도 남지 않도록, 예수님이 스스로 자리를 마련하십니다. 발렌틴 틸로라는 사람의 고백으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사람의 자녀들이여, 여러분의 마음을 진지하게 준비하십시오. 이제 곧 죄인들에게 구원을 주고, 기적을 일으키실 분이 오십니다. 그분은 은총으로 세상에 빛과 생명을 줄 것이고 모든 이에게 임하실 것을 약속하신 분입니다.”(2022 헤른후트 성경묵상집)

길 잃은 우리를 온전한 길로 인도하실, 두려움과 절망 가운데서 구원의 길로 인도하실 왕이 오고 계십니다! 할렐루야!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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