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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에 대한 균열을 깨는 우리와 사회가 되기를

기사승인 2022.08.17  23: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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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세희, 『납작하고 투명한 사람들: 변호사가 바라본 미디어 속 소수자 이야기』를 읽고

최근 소수자 혐오와 인권을 논하는 책들이 많이 발간되고 그만큼 읽히고 있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10만 부 발간 기념판이 나왔다. 그런데 인권을 주제로 한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과는 별개로 우리 사회의 차별과 혐오는 여전하다. 여성 혐오를 대놓고 공약으로 내거는 후보가 대통령이 되고, 장애인 이동권 시위에 대해 대다수 언론은 장애인 연대 측에서 시민들을 볼모로 삼고 있다는 여당 대표의 자극적 표현을 문제의식 없이 받아 적으며, SPC 노동자들이 57일간 단식하며 기본권을 주장하는 동안 사측은 협상에 관한 이야기조차 꺼내지 않았다. 이렇듯 우리 사회 인권이 회귀하는 것만 같은 요즘이어서, 『납작하고 투명한 사람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다룬 우리 사회 소수자들에게 가해지는 차별과 그들의 인권 이야기가 낯설지 않았다. 그래서 반가웠다.

저자인 백세희 변호사는 1장- 아무개 씨는 서울에 삽니다(서울중심주의), 2장- 아무개 씨는 젊은 성인입니다(에이지즘), 3장- 아무개 씨는 대대로 한국 사람입니다(인종), 4장- 아무개 씨는 남성입니다(젠더), 5장- 아무개 씨는 비장애인입니다(장애), 6장- 아무개 씨는 정규직 근로자입니다(노동), 7장- 아무개 씨는 이성애자입니다(퀴어)를 한 챕터 씩 다루고 있다.

각 챕터의 시작은 아무개 씨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아무개 씨는 한국 사회에서 흔히 ‘보통 사람’이라고 일컫는다. 서울에 살고, 젊은 성인이고, 한국 사람이며, 남성이고, 비장애인이자 정규직 근로자, 이성애자인 사람이다. 어느 부분으로 묶더라도 비주류보다는 주류에 속하는 사람인 것 같다. 아무개 씨는 미디어와 사람들 사이에서 등장하는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보고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 오히려 그들이 표현하는 일에 거부감을 느끼기도 한다. 

저자는 ‘K-콘텐츠’, 즉 한국 대중문화의 콘텐츠들, 그중에서도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작품들을 예로 들며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차별과 혐오를 지적하고 있다. 정말 다양한 장르의 콘텐츠가 예로 등장해서, 책 소개에서 밝힌 대로 이 많은 콘텐츠를 끝까지 열람하느라 상당한 시간과 돈을 썼다는 저자의 말이 충분히 믿음직할 정도이다. 고전이 된 한국 드라마 <모래시계> 속 서울중심주의부터 <프리드로우>나 <복학왕>과 같은 최신 웹툰이 그려내는 이주민 및 성소수자 혐오까지 낱낱이 다루고 있다. 마치 ‘요즘 세상에는 그런 거 없다’라거나 ‘예민한 거 아니냐’는 식으로 말하며 눈 가리고 아웅하는 이들에게 이 책 한 권만 내밀면 입을 다물게 만들 수 있도록 철저히 조사하고 선별하여 다뤄낸 책 같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이다.

동시에 이 책은 내 안의 편견과 혐오도 돌아보게 해주었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대로 “모든 면에서 완전히 주류인 사람의 숫자가 적은 것처럼 모든 면에서 전부 비주류인 사람도 드물다.” 분명 나도 어떤 면에서는 주류에 속하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고 해당 측면에서 비주류인 사람들을 배척하거나 혐오하지 않았는지 점검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비청소년, 비장애인, 한국인(내국인) 등의 정체성이 주류로서의 편견을 가질 수 있음을 지적하는 책 속 문장들이 마음 곳곳에 남았다.

대중문화 콘텐츠와 언론이 청소년의 비행을 흥밋거리로 소비하는 건 대한민국의 주류 집단인 성인들에 의한 전형적인 낙인찍기다. 선량한 비주류만 보호받아야 하는 건 아니다. 불량한 비주류에게 씌워진 프레임은 이들이 선량한 쪽으로 회심할 기회를 원천 차단한다. 아무개 씨가 믿는 영화 속 ‘현실고증’이라는 것, 그걸 곧이곧대로 믿을 수 있는지는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겠다. 묘사 자체는 사실이라 해도 그게 내 머릿속에서 어떤 프레임을 만들지는 모르니 말이다.(56, 특별한 언급이 없는 한 괄호 안에 숫자는 이 책의 쪽수이다.)

신중하지 못한 대중문화 콘텐츠에서 조선족 남성은 범죄자로, 조선족 여성은 각종 ‘이모님’으로 묘사되곤 한다. 식당 이모, 가사도우미 이모, 간병인 이모 등 주로 돌봄 영역에서 아무런 서사를 갖지 못한 채 뜬금없이 무력하거나 교활한 엑스트라로 재현된다.(74)

한편으로 여성에 대한 가부장제 사회의 뿌리 깊은 차별과 혐오에 관한 내용을 다룬 4장의 내용은 모두 밑줄을 긋고 싶을 만큼 공감이 가기도 하였다. 저자는 ‘꽃뱀 서사’와 ‘여적여 프레임’이 어떻게 여성 인권에 해악을 끼치는지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차별과 혐오가 소위 사회 계층을 따지지 않고 대선 후보의 배우자에게까지 말 그대로 ‘차별 없이’ 공격에 사용되는 것을 예로 들면서, 재산의 많고 적음이나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여성이라면 그러한 혐오에 노출되는 현상을 통해 우리 사회 여성 인권의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지적하고 있다.

미투 이후, 그리고 웹툰 <성경의 역사> 이후 여성에 대한 꽃뱀 프레임은 조금이라도 변화를 겪고 있을까? 꽃뱀 서사를 제3기까지 거쳐 얻은 결실이 있나?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꽃뱀은 2022년 제20대 대통령선거 정국에서도 등장했다. 대선 후보도 아닌, 후보자의 배우자에 대한 의혹이었다. 벽화로 조롱당한 여성은 유흥업소 접대부를 거치며 사회적으로 성공한 남성들과 교제하며 목표를 이루겠다는 서사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진영을 초월해 과연 이런 여성 혐오적 공세가 정치적인 공격으로서 온당한 것인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있다. 벽화의 내용에 동조하는 목소리가 더 크긴 하지만 말이다. 아직은 작은 비판의 목소리. 작으니까 앞으로는 커질 일만 남았다고 생각하는 건 지나친 낙관일까.(104)

여성이 물건에 비유되는 가장 대표적인 대중문화적 현상은 바로 ‘트로피 와이프’가 아닐까 생각한다. 트로피 와이프는 1989년 미국의 종합 경제지 포춘이 커버스토리에서 보도한 신조어다. 사회·경제적으로 성공한 중장년 남성들이 몇 차례의 결혼 끝에 마치 부상(副賞)으로 트로피를 받듯이 젊고 아름다운 전업주부, 즉 아내를 얻는다는 뜻에서 이런 명칭이 생겼다. 여성이 상으로 주어진다는 것인데 단어 자체에서 노골적으로 물건과 여성을 연결하고 있다.(117)

또한 이 책에서 지적하는 소위 ‘질병이 없고 건강한 정상인’ 프레임이 가진 혐오의 특성은 이전에 읽었던 조한진희의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를 떠올리게 했다. 책에서는 2018년 SBS 드라마 <황후의 품격>에서 극 중 테러가 발생하자 “테러범은 조현병 환자였습니다. 망상에 빠져 폐하를 공격한 모양이에요”라고 말하는 장면과 같은 방송사의 같은 해 드라마 <여우각시별>에서 조현병 환자가 복용해야 할 약을 두고 인천공항 출국장 안으로 들어간 상황에서 남자주인공이 “상대는 조현병으로 의심되는 환자고, 무슨 상황이 벌어질지 몰라요. 혼자 떨어지지 마세요”라고 여주인공에게 말하는 장면을 예로 든다. 이 두 드라마 모두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행정지도를 받았다고 하지만, 그러한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을 테고 시청자들은 드라마 속 대사만을 듣게 될 테니 결국 혐오는 고스란히 전파를 타고 양산되었음을 이 책은 지적하고 있다.

을 중의 을이라고 불릴 수 있는 직업인 경비원, 가사도우미, 배달노동자. 경비원은 늘 잡일을 하면서 입주자들의 비위를 맞춰야 하는 머슴이었다. 가사도우미는 영화에서 약간 선정적이거나 부정적으로 인식되어진 직업이다. 돌이켜보니 가사도우미에 대한 영화는 전부 19금인 성적인 묘사를 하는 대상으로 기억에 남는다. 경비원을 향한 갑질과 이로 인한 안타까운 죽음이 잊힐만하면 발생함에도 깊이 인식하지 못한 사실이 떠오르기도 했다. 또한 발달장애인을 순수한 바보형 또는 천재로 우상화하는 서사, 결혼이주여성은 무조건 고부갈등의 원인 제공자로 보는 미디어 등의 편견과 차별에 대한 시선에 나도 모르게 동조하고 있었음이 부끄러웠다.

‘삭제’가 소극적인 방법이라면 ‘희화화’는 적극적 차별행위다. 현재 동성애자에 대한 노골적인 희화화는 웹툰이 주도하고 있다. 네이버 토요 웹툰 <프리드로우>는 2013년부터 현재까지 1등 웹툰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작품 속 인물인 장봉남은 격투 능력으로는 최강에 가까운 동성애 남성으로 설정되어 있다. 주로 상의를 탈의하고 있고 분홍색 팬티(삼각형을 넘어서 T자에 가깝다)를 즐겨 입는 고등학생이다. 웹툰 속에서 그는 예외 없이 우스꽝스러운 존재로 묘사된다. 분홍색 팬티만 입고 나왔을 때 가장 강력한 격투 능력을 보이는 그는, 상의를 탈의한 뇌쇄적인 포즈로 얼굴을 붉힌 채 2022년 4월 1일 만우절 이벤트에 “장봉남 일일 데이트권”으로 등장했다. 작품 밖에서조차 희화화된 게이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낸 것이다.(196)

이렇듯 성소수자, 노인, 장애인, 외국인 근로자 등으로 대중매체에 등장해 ‘희화화’되거나 그저 엑스트라로 사라지는 존재들이 실제는 평생을 낙인찍힌 채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임을 지적하면서, 이 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문화도 결국에는 바뀔 수 있으며, 균열은 바로 독자들로부터 시작하는 거라고 이야기하면서 포괄적 차별금지법 이야기로 마무리를 짓는다. 저자는 법이 제정되면 고용, 교육, 행정 등에서 자유롭게 행하던 차별행위를 계속하고자 하는 이들은 상당한 불편을 겪을 것이라며, 이런 불편이 평등한 사회를 위한 대가라면 기꺼이 치를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나 역시 차별금지법은 단죄하기 위한 법이 아닌 평등을 제도적으로 권장하는 법이라는 점에 적극적으로 동의하기에, 저자의 말대로 평등이 법으로 보장되는 세상에서는 우리 모두가 지금보다 더 안전하고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보다 더 많은 이들이 읽고 나처럼 자기 안의 혐오를 점검해보는 기회를 얻기를 바라면서 출판사의 편집후기를 덧붙인다.

편집후기

차별금지법을 주제로 다음 책을 써보면 어떻겠냐고 작가님께 처음 제안할 때, 가장 큰 걱정은 콘텐츠의 차별성이었다. 혐오와 차별을 다룬 책, 차별금지법의 필요성에 대해 다룬 책은 이미 많이 나와 있었고, 소수자 인권과 관련한 사회 담론도 많이 형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콘텐츠는 이러한 흐름과는 사뭇 다르게 다가왔다.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은 한국 드라마에는 소수자에 대한 혐오 표현이 녹아 있었고, 인기 웹툰에는 10대 남성 청소년들의 싸움 이야기로 가득했다. 또한 여성을 성적대상화하거나 성공의 상징으로 묘사하는 힙합 가사, 우스꽝스러운 복장과 말투, 행동으로 트랜스젠더를 희화화하는 영화 등이 아무렇지 않게 소비되고 있었다.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가 주목한 건 소수자 인권에 대한 담론이 일상과 어떻게 맞닿아있는가였다.

책에 필요한 자료를 찾는 행위는 소수자 인권이 과거에 비해 많이 개선되었다는 인식이 얼마나 편협하고 오만한 생각이었는지 깨닫는 과정이기도 했다. 10~20년 전 나온 콘텐츠를 보면서 느낀 불편함은 최근에 나오는 콘텐츠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졌다. 오히려 과거에는 투박하고 노골적인 느낌이라면, 최근에는 좀 더 교묘한 방식으로 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혐오를 재생산하고 있었다. 언제나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빠르게 바뀌지 않았다. 모두가 소수자 인권에 관심을 기울이고 소수자의 모습을 왜곡하는 콘텐츠가 나오지 않는다면, 이러한 책은 세상에 나올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만하면 괜찮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여정은 여전히 험난해 보인다.

정리연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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