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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와 신학 언어를 교회 인권 언어로 연결하는 다리 역할 하고파”

기사승인 2022.05.02  16: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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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인근 NCCK인권센터 신임 소장의 각오를 들어본다

▲ 레크리에이션 강사까지 했다는 황인근 NCCK인권센터 소장, 활발하다 못해 기운이 넘칠 것 같았지만, 수줍어하는 아이 같아서 놀랐다. 이런 순수함이 지금까지의 어려움을 넘게 한 힘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정리연

“이 길이 내 길이다!” 머리가 ‘띵!!’ 울리면서 심장이 콩닥거리다 못해 튀어나올 것 같은 경험 해보셨나요? 너무 설레고 기대돼서 다 잘될 것 같은, 그런 거 있잖아요. 혹은 그 반대도 있죠. “에이, 이 길은 내 길이 아닌가 봐~” 꾸역꾸역 자리를 지키고 있기는 하지만, 의욕도 없고 재미도 없고 점점 컴컴해지는 느낌! 그런데 전자는 임금이 아주, 엄청, 매우 박복하고 후자는 웬만큼 하고 싶은 거 할 수 있는 여유가 주어진다면, 어떤 길을 가실래요?

자본주의 세상에서 우리는 대부분 가치와 신념보다 욕망이 이끄는 길을 갈 때가 많다. 둘 사이에서 고민조차 안 하기도 하죠. 저 역시 그런 사람이니 누구를 욕하지는 못하지만, 나와 다른 길을 걷는 사람들을 보면 마구마구 존경심이 생긴다.

그러면서 궁금해진다. 대체 그 사람은 그 길이 자기의 길임을 어떻게 깨달았을까? 어쩌다가 그 발걸음을 내디뎠을까? 진짜 하고 싶은 걸까, 어쩔 수 없어서 하는 걸까?

모든 길에는 자기만의 이름이 있고

몸을 움츠리게 하던 바람이 어느새 따뜻해지고 여기저기에 생명을 틔우는 4월 어느 날, 그 답을 듣고자 ‘그분’을 만났다. 봄처럼 종로 5가 한국기독교회관에 새 기운을 듬뿍 들고 온, NCCK인권센터(이하 ‘인권센터’) 신임 소장 황인근 목사가 주인공이다. 예전에 레크레이션 강사로 전국을 누볐다고 해서 매우 외향적인 사람이겠거니 생각했었는데, 웬걸! 아니었다. 어찌나 쑥스러워하던지. 사진도 겨우 찍었다!

▲ 목사님, 안녕하세요! 매우 오랜만에 뵙습니다. 아니, 어쩌자고 인권센터 소장을 맡으신 거예요? 평화교회연구소(이하 평교연) 일로도 벅차실 텐데. 이전에 어떤 활동을 해오셨길래 이 자리까지 오게 되셨나요?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모임’에서 일꾼을 했어요. 일명, 자원활동가죠. 일꾼을 거쳐서 사무 간사를 2년, 사무국장을 2년 하고 이어서 총무와 실무를 한 다음에 조금 어려움이 있어서 안산에서 목회만 했어요. 그러다가 문수산성교회 담임 목사를 맡게 됐고요.

그전에 제가 고난함께에 있으면서 평화학교의 연구모임을 하고 있었거든요. 지금 평교연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전남병 목사가 주도해서 막 설립되고 있었을 때 연구소 운영위원장을 맡아서 3, 4년 정도 했어요. 그러다가 소장이었던 전남병 목사가 고난함께 사무총장을 맡게 되면서 소장이 공석이 된 거죠. 초창기부터 평화교회에 대한 고민을 같이 했던 사람이니까 내가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연구소 소장을 맡은 지 3년 좀 지났네요.

인권센터 소장으로 오게 된 건, 얼마 전에 연락이 왔어요. 교회 연합 모임이니까 이번에는 감리교단에서 소장직을 맡아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정말 일언지하에 거절했죠.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그보다 우선은 제 깜냥이 안 되니까 선배님들이 좀 더 하셨으면 했는데 상황이 여의치가 않았고, 많은 선배님이 같이 돕겠다고 하셔서 하기로 했습니다.

▲ 평교연과 인권센터, 겉으로만 봤을 땐 결이 좀 다르게 보여요. 기독교 내에서 각자가 감당하고 있는 역할도 다를 것 같고요. 이건 그냥 제 표현인데요, 평교연이 교회 안쪽을 향한다고 한다면, 인권센터는 바깥을 향한다고 할까요? 그렇다고 서로 대립하는 건 아니지만요. 근데, 한 사람이 두 곳의 소장이라면 따로 떼어놓기가 어려우실 거 같아요. 어떻게 협력하면서 꾸려 가실 것인지, 어떤 고민을 하셨나요?

아직 협력까지는 모르겠는데, 어차피 평교연이 가는 길이나 인권센터가 가는 길이 그렇게 다르지 않아요. 마침 평교연도 요즘 한참 차별에 대한 것들이 이슈이기도 하고 건강한 교회를 만드는 일이 연구소의 일이니까요. 또 인권센터는 한국교회와 사회의 에큐메니칼 운동에서 맡고 있는 역할과 역사가 있으니 같은 길을 갈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어요. 다만 처음부터 이걸 염두에 두고 시작한 건 아니었으니까 앞으로 고민을 해봐야죠.

▲ 두 곳 모두 내부, 외부적으로 활동이 많은 곳인데, 계속 같이 하시는 건가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궁금한 건데 인권센터 소장 수락 후, 평교연 식구들의 반응은 어땠어요? 싫어하지는 않았어요? 우리 소장님 뺏겼네~ 이러면서요. (웃음)

당장은 같이 해야죠. 요일을 나눠서 출근하고 있어요. 하지만 계속 이렇게 하기는 어렵겠죠. 임기도 있고요. 평교연도 후임이 올 수 있도록 준비를 해야죠. 그런데, 워낙 열악해서 누가 오려고나 할지 고민이네요. (웃음)

인권센터 소장이 되었다고 했을 때요? (웃음) 싫어했다기보다는 우려라고 할까요? 소장이라는 자리가 책임감이 좀 크잖아요. 평교연에도 할 게 많으니 전념해야 하는데 두 곳으로 마음이 나누어지면 그게 힘들어질까 봐 그러는 거죠. 흔히 분심이라고 하잖아요.

저도 지금 그게 제일 힘든 것 같아요. 마음은 딱 시간대별로 나눠서 쓰면 좋겠는데 이쪽에 신경 쓰다 보면 저게 소홀해지고 저거 하다 보면 이걸 놓치는 것들이 있어요. 요즘은 정말 잠드는 순간까지 고민해요. 어느 걸 먼저 해야 할지 생각나는 대로 메모를 하고 아침에 일어나게 되죠. 그런데 평교연이나 인권센터나 실무자들이 워낙 알아서 잘하는 친구들이라서 그게 고맙죠.

정체된 현재를 뛰어넘어서 계속되는 길

따로 듣지 않아도 에큐메니칼 운동이 하는 거에 비해서 뒷받침 해주는 것도 별로 없고 발로 계속 뛰어야 하니 어려운 길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후원도 많았고, 역사도 길고 선배들도 자리를 잘 잡고 있으니까 에큐메니칼 진영의 내실이 튼튼할 거라는 생각도 있었고. 그런데 주변에서 들리는 말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다들 너무 힘들다, 젊은 활동가들의 미래가 불투명하다 등 부정적인 것뿐이었다. 왜 이렇게까지 됐을까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계속 이야기를 나눴다.

▲ 평교연을 통해서 계속 에큐메니칼 운동을 하실 수도 있는데, 인권센터까지 맡으면서 어깨가 더 무거워졌겠어요. 처음에 말씀하셨듯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요?

아마도 평교연이랑 인권센터 소장은 열악하기로는 첫째 둘째를 앞 다투는 자리일 거예요. 연구소는 시작한 지 이제 7년 된 단체이고 인권센터는 역사는 오래되긴 했으나 처음부터 재정적인 자립 구조가 쉽지 않았으니 실은 두 단체 활동비를 다 합쳐도 얼마 되지 않아요. 그만큼 재정적으로도 어렵죠.

그런데 이게 저한테 주신 달란트인가 봐요. 오히려 마음이 더 가는 것 같아요. 누구든지 서로 맡겠다고 한다면 잘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실 테니까 괜찮지만, 누구도 안 하려고 한다면 그거는 내가 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우선 들었고요.

또 하나는 제일 매력적이었던 건데 저는 에큐메니칼 운동에서 제일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신앙의 언어로 운동을 하는 거였어요. 제가 여기까지 온 건 신앙 때문이었죠. 교회 때문에요. 그리고 아직 교회가 이 땅에 남아 있는 건 필요해서가 아닐까, 필요 없는 곳이라면 없어지겠죠. 선배들에 비하면 아직 어리지만 그래도 벌써 에큐메니컬 운동의 실무자로 참여한 지 20년이 다 돼 가는데 시민사회 운동에서 흥망성쇠, 사멸하는 단체들도 많거든요.

그래서 평교연에 대해 사람들이 가끔 물어보면 제가 이렇게 얘기해요. 여기는 기독교연구소도 아니고 신학연구소도 아니다. 여기는 가장 일상의 언어, 신앙의 언어로 삶의 태도를 바꾸는 거를 하고 싶다고요. 인권센터는 오히려 그런 부분에서 본다면, 기독교의 기본 정신으로 가장 첨예한 문제에 정면 돌파를 하는 신학이라는 언어가 그것들을 설명해내고 탐구해내는 거라면 인권센터는 뭔가를 번역해내고 설명해내는 언어가 아니라 직접적인 참여로, 신앙의 힘으로 그 안에서 부딪히는 단체니까 두 개는 묘하게 닮았다고 생각해요.

종교는 성역이 없어야 하는데 종교 자체가 이상한 성역이 돼버렸고 성역을 넘지 못 하게 하고 있어요. 가장 쉽게는 동성애의 문제죠.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는 반공 열공 이런 언어들로 한국 사회의 많은 것들을 금기시키도 있는데 인권센터는 그냥 가는 거죠. 여러 교회나 그 교회 연합체들은 그걸 좀 불편해하거나 그 앞에서 주저하고 있는데 인권센터는 할 수 있잖아요. 종교는 넘지 못할 것도, 넘지 못할 곳도 없으니까요. 이런 게 굉장히 매력적이었고 또 재밌고 좋으니까요. 그러니까 하는 거죠.

‘종교는 넘지 못할 게 없다’라는 문장이 와닿았다. 그러고 보니 국경과 사상, 인종을 넘어서 치유와 평화의 손길을 내밀 수 있는 게 종교인 거 같다. 서로를 가르는 장벽이 있고 멀리 떨어져 있어서 물리적으로는 건너기 힘들 수도 있지만, 이쪽과 저쪽이 한발 차이인 것처럼 훌쩍 뛰어넘을 수 있는 게 종교 아닌가? 그게 꼭 기독교가 아니라고 해도 말이다.

▲  인권센터의 그런 매력을 느끼셨는데, 지금까지 소장님들과 비교하면 황 소장님은 대개 어린 편(?)에 속하잖아요. 인권센터는 소장님께 어떤 매력을 느껴서 함께 하자고 한 걸까요? 그리고 이전 소장님이신 박승렬 목사님 활동을 보면 정말 대단하시더라고요. 종교 내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 운동 연대 활동(40일 단식투쟁까지)도 활발히 하셨던데, 후임자로서 부담은 없나요? 

네, 훌륭하신 분이죠. 따라갈 만하면 질투도 하고 부담감이 있을 텐데, 이건 정말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그건 제가 따라갈 수 없는 것들이거든요. 그렇게까지는 못할 거 같아요. 영역 자체가 달라요. 그런 부분에서 저는 그분의 팬으로 있겠고요. 아마 저에게 인권센터 소장을 제안한 건 조금 다른 변화, 다른 위치와 입장에서 다른 태도를 가지고 하기를 원하셨던 게 아닌가 싶어요.

인권센터 사무국장님과도 얘기했는데 아마 제가 제일 잘하는 건 이런 것들을 교회의 언어로 교회가 같이 인권 선교를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다리 역할을 하는 게 아닐까 해요.

그리고 저는 근본적인 믿음의 몇 가지 포인트가 있어요. 하나님이 필요한 사람들을 보내주시겠지, 하나님이 안 하시고 제가 다 할 거라고 절대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못해서 그만두게 되더라도 필요한 일이라면 주님이 또 다른 일들을 준비하시지 않을까요? 다만 지금의 자리에서 제가 부름을 받았거나 지금 쓰여야 하지 않나, 그래서 이 자리에 있는 거 아닌가 생각합니다.

▲ 종교와 사회가 금기시하고 있는 것들을 교회의 언어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 같아요. 하지만, 꼭 필요한 일이기도 하고요. 그렇기 위해서는 뭔가 더 핵심적인 게 필요하지 않을까요? 전임 소장님이 여러 방면에서 활동하고 애쓰신 것에 비해 “여러 교단 내 조직의 소통과 연합이나 협력, 인권센터만의 아우라는 약하지 않았나”라는 우려도 좀 있거든요.

네, 그런 것 같아요. 마침 박승열 목사님이 소장으로 있을 때 한국 사회가 정말 아팠던 사건들이 있었어요. 세월호도 그렇고 스텔라데이지호도 그렇고요. 성소수자 문제도 그렇죠. 사실 이런 문제들은 그 당시에 너무 뜨거웠던 거죠. 이 뜨거운 감자를 같이 만지자고 하는 건 아마 누가 봐서도 안 됐을 것 같아요. 저는 박 소장님의 역할이 그 감자를 놓지 않고 당신 손바닥에서 계속 붙들고 있었던 거 아니었나 싶어요.

그런데 다행인 건 시간이 좀 지나면 분노나 증오, 이런 것들이 좀 희석되잖아요. 그런 아팠던 문제들이 시간 지나면서 지금은 한두 단체들이 손을 댈 수 있는 때가 온 것 같아요. 박 소장님이 서로서로 연대하고 어떤 지경을 넓히지 못했다기보다는 그럴 수 없는 상황에서 그걸 지킨 거 아닌가, 저는 이제 조금 식었으니, 날카롭던 것들이 좀 무뎌지고 있으니 조금씩 대화의 물꼬를 트거나 신앙의 눈으로 신앙인으로서 다가설 수 있게 할 수 있는 여지가 좀 더 생긴 거 아닌가 해요.

미국이나 유럽을 보면 이런 문제들을 한 4~50년 쌓아왔는데 한국교회는 이제 10년이 채 안 됐어요. 사실은 4~5년 사이에 막 벌어졌던 일들이에요. 본격적으로 논의가 되면 아마 40년까지는 안 가고 한 20년이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지 않을까 그리고 인권센터는 처음에 그 아젠다를 잡았다면 이제는 그 아젠다를 조금 펼치는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취임한 지 이제 3주 지났고 연구소 일도 있으니 구체적인 계획은 생각하지 못했지만, 교단 연합체에 있는 모임들과 어떻게 손을 잡을 수 있을까, 어떻게 발굴해야 할까, 그다음엔 교회가 이걸 어떻게 좀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할까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사실은 교회가 이런 것들을 무조건 반대하거나 무시하는 건 아니거든요. 다만 이게 여전히 너무 날카로운 칼 같아서 잡으면 피가 나니까 못 잡고 있는 거죠. 이제 이걸 신앙의 언어, 그러면서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그리스도의 정신을 고백하게 하면서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내야겠죠. 그 일들은 좀 지난한 운동일 것 같아요.

앞에 나가서 머리에 띠 두르고 싸우는 운동도 매우 중요하고 집회나 기도회 여는 것도 정말 소중하지만, 지금 인권센터가 맞이하는 어떤 사회의 분열이라든지 혐오에 대한 문제는 좀 긴 시간을 가지고 작업을 해나가야겠다고 생각해요.

그리스도가 먼저 걸으신 그 길을 따라

▲ 황인근 소장은 사회와 신학의 인권 언어를 교회의 언어로 바꾸는 다리 역할을 하고 싶다는 각오를 내비쳤다. ⓒ정리연

전임 소장이 날카로운 칼에 직접 맞섰다면 이젠 조금 무뎌진 상황에서 황 소장의 앞으로의 걸음이 기대되는 답변이었다. 차별금지나 성소수자 문제뿐만 아니라, 성폭력 등 교회 앞에 산적해 있는 안건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럼에도 궁금증은 풀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또 질문을 했다.

▲ 그런데, 기독교 운동이라는 게 예전보다 힘이 없다고 해야 하나, 호소력이나 영향력이 없다고 해야 할까요? 소장님이 이쪽에서 활동하신 지 20년 넘었다고 하셨는데 그런 고민은 해보신 적 없나요?

사실은 그때도 어렵다, 어렵다 했었어요. 그런데 “어렵다”라는 건 살아있으니까 하는 말인 것 같아요. 죽는 조직은 어렵다는 말도 안 해요. 그냥 없어지는 거죠. 어쩌면 에큐메니칼 운동이 워낙 자본주의라고 하는 거대한, 거의 종교에 가까운 체제와 싸우고 있다 보니까 어렵죠. 어려울 수밖에 없어요. 쉬운 건 두 개밖에 없는데 죽었거나 거기에 들어간 거예요.

에큐메니칼 운동이 지금 아파하는 건 살아 있으니까. 다만 제가 좀 염려되는 게 있다면 사실은 이게 신학 운동이라는 거죠. 이건 되게 보수적인 얘기일 수도 있는데 우리 안에 가장 중요한 본령을 잃어버리고 그리스도는 자기를 수식하는 언어가 돼요. 그러면서 “나 기독교 운동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진짜 기독교 운동은 안 해요. 그게 제일 무서워요.

그 얘기는 신앙 운동에 대해서 더 깊은 고민이 없이, (저도 여전히 부족하지만) 사회과학을 배우면서 어떤 사회 속에서의 지식을 통해 사회를 읽는 것들도 중요하지만 그럴 거면 그냥 사회 운동해도 되요. 그런 대안을 가지고 기독교 운동을 한다는 건 좀 다른 것 같아요. 내가 신앙인으로 사는 게 내 정체성인데.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사실 제 문제이기도 한데요. 가난에 관해 얘기하면 어떤 사람들은 콧방귀 끼면서 아직도 그런 얘기 하냐고 그래요. 그런데 어떻게 하겠어요. 그리스도 신앙에서 가난은 중요한 신앙의 질문이고 부름이고 삶의 태도인데요. 그런데 실제로는 죄인이 될지언정 가난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게 우리 마음인 거예요.

기독교 운동도 그래요. 그리스도께서 명제로 희생해라 이런 말 안 하셨지만,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 누군가의 발을 닦아주는 것 등에 희생하라는 얘기가 담겨 있는데 기독교 운동에서는 이런 걸 마치 보수 신앙인들이나 하는 이야기인 것처럼 대하고 실제로 안 하죠. 그런 게 기독교 운동일까 싶어요. 그렇다면 그냥 사회 운동이어도 되겠다, 거기에 기독교를 붙일 필요는 없겠다 싶은 거죠. 그리스도가 가르쳐준 청사진이 없으면 지금이라도 얼른 다른 걸 봐야죠. 가진 척했다가는 오히려 자기도 길을 잃고 다른 사람도 헛갈리게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나이가 이제 50이 다 되니까 누구는 꼰대 같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자신의 생각을 버릴 수는 없다고 말하는 사람.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날 사랑해주셨으니까, 내가 그리스도께 배웠으니까, 그분이 이게 내 길이라고 하니까 여기까지 왔다고 말하는 사람. 황인근 소장의 수줍은 진심을 마주하니 오히려 그 모습이 더 단단하고, 그리스도의 결이 느껴졌다.

▲ 연결되는 질문이 될 것 같은데 인권 운동하는 단체가 사회에도 많이 있잖아요. 종교마다 있고, 국가적으로도 있고요. 인권센터만의 차별성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건 뭘까요?

두 가지인 것 같아요. 하나는 큰 구조적인 운동은 오히려 사회에서 하는 게 더 많고 잘하고 있어요. 하지만 어쩌면 성소수자 문제 같은 경우는 여전히 한국 사회 인권단체들조차 잘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 있어요. 교회가 작다고 보지만 국가를 이루고 있는 국민의 5분의 1 정도를 교회 멤버십이 갖고 있잖아요. 교회 운동을 했을 때 파급 효과가 크죠. 지금 사회단체가 큰 돌들을 맡고 있다면 우리는 그들이 놓치는 부분들 그러나 파급 효과를 쉽게 분명하게 낼 수 있는 노력을 하고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근본적으로 죄의식의 반대편에는 사실 수련의 부제가 있는 것 같아요. 내 안에 하나님이 사신다는 말이 그냥 말이 아니라 진짜로 내가 그런 존재, 영적인 존재라고 하는 자기 정체성인데 그게 없으면 교리를 통해서 자기를 딱딱하게 만드는 거죠. 갑각류처럼요. 갑각류는 척추가 없으니까 껍질이 단단해야 하고 껍질이 깨지면 죽잖아요. 사실 우린 그런 존재가 아니죠. 기독교 운동이라고 하는 건 가장 깊은 곳에 저 사람이 하나님의 거룩한 존재라고 하는, 하나님이 사신다고 보는 게 있는 거예요. 모양은 다 같아 보일지 모르나 그 사람을 바라보는 눈이 다르죠.

사회 운동이 갖고 있는 한계는 사회 인식인 것 같아요. 교회 운동이 한때 왜 그것보다 더 앞섰냐 하면 사회 인식이 아주 많이 앞서서 지금은 교회의 인식보다 앞서긴 했으나 교회는 인식 너머에 인간에 대한 이해가 있었단 말이죠. 그래서 여기까지 왔던 거예요. 근데 요즘 그게 좀 시들해지니까 사회 운동과 기독교 운동이 구별이 잘 안 되고 변별점이 없게 된 거 같아요. 80년대에는 아무리 인권 운동을 해도 간첩을 도와주는 건 안 돼, 빨갱인데 왜! 그랬단 말이에요.

그런데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모임이나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 같은 인간에 대한 깊은 사랑이나 이해가 되는 단체는 하는 거예요. 교회는 하는 거예요. 그리스도의 사람은 넘나들지 못할 곳이 없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그 사회 인식보다 교회가 뒤처지니까 더 앞으로 못 나가고 있는 것 같고 마치 그냥 쫓아가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그런 질문이 생기지 않았나 싶어요.

지금의 기독교 운동이 나태하거나 힘이 없다고만 할 게 아니라, 그리스도의 길을 가는 동지로서 함께 고민하고 더 탄탄한 길을 갈 수 있도록 힘을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 운동이 가지 못하는 곳을 교회는, 기독교 운동은 갈 수 있으니까. 이쪽과 저쪽을 구분하는 경계도 없고, 바람처럼 가지 못할 곳이 없을 테니까.

▲ 마지막으로 좀 식상하지만, 인권센터 소장에 임하는 각오를 들어볼게요!

교회와 함께 가는 인권센터에요. 제가 할 수 있다면 인권센터의 사명이 교회의 사명과 다르지 않고 교회의 아젠다가 인권센터가 전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교회 운동이 되는 인권센터. 예를 들면 만약에 차별금지법에 관해서 저는 그걸 신앙의 언어로 교회에 잘 전할 수 있게끔 준비를 해야죠. 교회야말로 진정한 그리스도의 사랑, 그 안에 평등이건 공평이건 평화건 자비건 그런 것들이 들어갈 수 있도록 언어들을 만들어내는 거죠. 여전히 전위 조직이니까 그것에 대한 가장 첨예한 곳에 제일 처음에 가고 끝까지 가볼 수 있는 단체로 같이 하면 좋겠다 싶어요.

앞에 있는 길을 뚜벅뚜벅 걸을 뿐

황인근 소장과 얘기를 나누면서 앞으로 인권센터뿐만 아니라, 기독교 운동의 새로운 도약을 기대하게 되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가난한 마음으로, 실제 가난한 길을 걷고자 기쁘게 인권센터 소장의 자리를 맡아주신 황인근 소장께 모두를 대신해서 감사를 드렸다. 에둘러 가든 곧장 가든 언젠가는 만나게 될 지점, 그곳을 향해 함께 걸어가는 친구로서 인권센터와 우리가 같은 길을 함께 걸으면 좋겠다. 아울러 인권센터와 평교연이 한국교회의 길이 되기를 기도한다.

정호승 시인 <봄길>에 등장하는 ‘길’과 ‘사람’처럼요.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떨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정리연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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