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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빈 청년이 산업재해 현장에서 다시 만난 예수와 교회

기사승인 2022.01.15  16:4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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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청년현장심방 II: ‘더 가까이’ 참가자 증언 ⑵

▲ 최동빈 청년이 기독청년 현장심방 증언대회 및 수료식에서 수료증을 받고 있다. ⓒ영등포산업선교회 제공
4회에 걸쳐 게재되는 “기독청년현장심방 II: ‘더 가까이’ 참가자 증언”은 영등포산업선교회가 지난해 8월부터 12월까지 진행한 “기독청년현장심방 II: 심화과정 – 산재현장을 중심으로”를 수료한 청년들의 후기입니다. 현장을 보고 들은 청년들이 남긴 글을 통해 우리 사회 노동의 현실과 교회의 나아갈 방향을 가늠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래봅니다. 글의 게재를 허락해 주신 청년들과 영등포산업선교회 실무자들께 감사를 전합니다. - 편집자 주

2021년 8월부터 격주로 현장심방 발바닥으로 읽는 성서의 심화과정으로서 ‘더 가까이’ 모임을 시작하게 되었다. 기존 진행되던 ‘발바닥으로 읽는 성서’ 프로그램도 현장 방문을 통해 많은 것을 느끼고 이를 다른 참여자들과 이야기해 볼 수 있는 좋은 프로그램이지만, 생각을 더 숙성시키고 깊은 성찰을 해 내기에 3박 4일이라는 시간은 짧은 감이 있었다. ‘발바닥으로 읽는 성서’ 심화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는 ‘더 가까이’에서는 약 5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산업재해를 주제로 격주 간격으로 모여 산재 문제와 관련된 곳들을 방문하거나, 유족들의 이야기들을 들었다. 그리고 각자 느낀 점들을 글로 정리하고 서로 나누는 시간을 통해서 더 깊게 노동선교에 대한 성찰해 볼 수 있었다.

우리는 ‘태안 화력발전소’, ‘구의역 스크린도어’,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이천 한익스프레스 물류센터’에서 각각 발생한 산업재해의 이야기를 들었고, 추가로 포천과 오산의 ‘이주노동자센터’에도 방문하여 이주노동자들의 노동환경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다. 각각의 이야기를 들으며 매번 들었던 생각은, 우리 사회는 욕망이 발전이라는 가면을 쓰고 활개치고 있는 사회라는 것이다. 이 사회는 발전을 위해서는 약한 이의 희생을 당연시하고, 폭력까지도 정당화한다. 특히 삼성이 무노조 경영을 위해 납치나 협박 등의 반인륜적인 행위들로 노조를 결성하려는 노동자들에게 압박을 가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는 군부 독재 시절 정부가 민주화 운동 열사들에게 했던 참혹한 짓들이 떠오르기까지 했다.

직접적인 폭력을 행사하지 않더라도, 각각의 산재들은 모두 간접적인 폭력이었다. 혼자서는 위험한 작업을 단독으로 시켰으며, 시간 단축을 위해 함께 진행해서는 안 되는 작업을 동시에 진행시켰고, 한 달에 2일의 휴일로 하루 10시간씩의 일을 시키기도 했다. 노동자들은 사고가 날 수밖에 없고, 몸이 망가질 수밖에 없는 노동 환경에 내몰려 있었다. 산업재해는 노동자 개인의 운이 나빠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었다. 위험한 작업을, 혼자서, 휴식이 부족한 상태로 매일같이 한다면 언젠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산업재해가 일어나 한 노동자가 생을 마감하게 되면 그 가족들에게는 커다란 상실감과 슬픔, 쉽게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남게 된다. 기업이 져야 할 책임을 노동자에게 떠넘기지 않았다면 충분히 방지할 수 있었던 사고라면 더욱 그렇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충격에 자기 마음을 살피는 것도 벅찬 유족들이 많지만, 어떤 유족들은 같은 아픔을 겪은 이들을 위로하고, 이런 아픔을 겪는 이들이 없도록 애쓰기도 한다.

마지막 모임 때 만난 이천 물류센터 화재 피해자 유족이신 ‘선애’ 님께서는 산업재해 피해가족 네트워크 ‘다시는’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셨다. ‘다시는’은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숨진 김용균 씨의 어머니, 삼성 반도체공장 백혈병 피해 가족들, 고교 현장실습생 유가족들 등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거나 병을 얻은 사람들의 가족들이 모여 만든 공동체이다. ‘다시는’ 모임은 산재 피해자 추모, 유족의 마음 치유 활동과 동시에 피해자를 만들어 내는 제도 개선을 위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입법운동에 앞장서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해 나가고 있다. 선애 님께서는 ‘다시는’ 모임에 참여하며 그 안에서 교회의 모습을 보았다고 하셨고, 이런 활동이야말로 교회가 보여야 할 모습이 아닌가 하고 말씀하셨다.

교회는 우리의 지친 영혼이 회복되는 곳이다. 그러나 이는 절대 개인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지친 이들, 다친 이들이 서로의 아픔을 나누며 서로를 회복시키는 곳이며, 다른 아픔을 가진 이들을 찾아 나서는 곳이고, 그 아픔을 다른 이들이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서는 곳이다. 함께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훈 님은 보고서에 이런 이야기를 기록했다.

“교회는 죽음과 친숙한 집단이다. 교회는 유족들의 증언으로 시작되었고, 죽음으로 국가와 사회의 폭력에 저항했다. 우리는 신앙을 고백하며 동시에 죽음을 고백한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고 난 이후, 그를 알던 이들은 모여서 식사하며 서로를 위로하고, 생전 예수의 삶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을 것이며, 그가 이루 고자 했던 약하고 소외된 이들이 더 이상 고통 받지 않는 세상을 실현시키고자 다짐했을 것이다. 나는 이것이 교회와 예배의 시작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다시는’이 하고 있는 활동들과 별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가 어떻게,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손은정 목사님께서 모임 때마다 하셨던 질문이다. 프로그램을 참여하며 이 질문은 내 속에서 ‘교회는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로 바뀌었고, 지금까지 나름대로 고민한 대답은 다음과 같다.

교회는 우리 사회에서 하나님의 구원이 필요한 이들을 힘써 찾고, 그들에게 구원을 가져다주어야 한다. 단지 내세의 구원만을 약속할 것이 아닌, 현재 그들이 처한 억압되고 고통 받는 상황에서의 구원을 가져다주어야 한다. 발전이라는 이름의 가면을 쓴 욕망에 짓눌려 희생당한 이들을, 그로 인해 아픔을 겪는 이들을 찾아가 치유해야 하고, 그런 아픔들이 다시는 생겨나지 않도록 사회 변화를 촉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지금까지의 잘못된 복음 이해를 내려놓고, ‘마음이 상한 자를 싸매어 주고, 포로에게 자유를 선포하고, 갇힌 사람에게 석방을 선언하는’ 참된 복음 을 마음에 새기고 외쳐야 할 것이다.

최동빈 ydpuim@gmail.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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