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setNet1_2

이제 우리의 부활

기사승인 2021.04.05  23:04:15

공유
default_news_ad1

-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복음 16:25-33)

▲ 예수께서 잡히시기 전 날 밤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나누시며 부활에 관해 말씀하셨다. ⓒGetty Image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평안이 우리 안에 주어졌습니다. 이 평안을 누릴 수 있는지는 전적으로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날마다 평안을 선택하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의 부활이 참 된 기쁨이 되기 위해 지난 사순절, 고난주간을 어떻게 보내셨나요? 예수님의 부활이 나에게 참 된 기쁨이 되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성도는 자신의 뜻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셨던 예수님의 삶과 피조물들을 향한 사랑으로 자신의 생명까지 내어 놓으신 예수님의 삶을 푯대로 삼고 전진해야 합니다. 이런 삶이 고난에 동참하는 삶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성도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차고 넘치도록 받게 되는 줄 믿습니다.

오늘 부활주일은 축제의 날이고 기쁨의 날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사는 사람들은 결코 단죄 받는 일이 없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생명을 누리게 하는 성령의 법이 나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로마서 8:1-2)

우리는 두 가지 면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죄와 죽음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죄와 죽음으로부터 해방’이라는 말씀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신 후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본문에 나와 있는 말씀처럼 비유로 말씀하시지 않고, 분명하게 말씀하시겠다는 제자들과의 약속이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25 지금까지는 이런 것들을 내가 너희에게 비유로 말하였으나, 다시는 내가 비유로 말하지 아니하고 아버지에 대하여 분명히 말해 줄 때가 올 것이다. 26 그 날에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할 것이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는 말이 아니다. 27 아버지께서는 친히 너희를 사랑하신다. 그것은,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고, 또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28 나는 아버지에게서 나와서 세상에 왔다. 나는 세상을 떠나서 아버지께로 간다.”

사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실 때 제자들은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본문에 제자들이 “30 이제야 우리는, 선생님께서 모든 것을 알고 계시다는 것과, 누가 선생님께 물어볼 필요가 없을 정도로 환히 알려 주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선생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것을 믿습니다.”라고 고백은 하지만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이후에야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여전히 깨닫지 못한 제자들을 향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1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32 보아라, 너희가 나를 혼자 버려두고, 제각기 자기 집으로 흩어져 갈 때가 올 것이다. 그 때가 벌써 왔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니, 나는 혼자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라고 제자들에게 질문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를 향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으십니까?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자 되심을 믿으십니까? 부활하심으로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이기신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33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말한 것은,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환난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죄와 사망으로부터 해방하셨지만, 현실은 단 한 가지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은 단 한 가지도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나빠졌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리 부활에 관해 말씀해 주시면서 “용기를 내라!”고 하셨습니다. 용기를 낼 수 있는 이유는 이 싸움은 이미 승리한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을 이미 이겨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제가 초도제일교회에 부임하기 전 처음으로 차를 타고 교회를 오면서 피식 웃게 만든 문구하나를 볼 수 있었습니다. “이겨놓고 싸우는 부대” 성도님들도 보신 적이 있으시지요? ‘아니 싸워봐야 어느 편이 이기는지 아는 건데, 어떻게 이겨놓고 싸운다고 써놨냐.’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전쟁에서 99%로도 아니고 100% 승리한다는 보장이 되어 있어서 전쟁을 하고 있다면 전쟁이 어떻게 두려울 수 있겠습니까? 내가 어떤 일을 할 때 이미 성공한다는 보장이 되어 있다면 누가 그 일을 하면서 실수하거나, 손해를 보더라도 걱정하거나 두려워하겠습니까? 이 모든 일이 보장된 성공을 향한 과정이라는 걸 알고 있다면 걱정과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세상을 이겼다!” 제자들아 너희도 이겼다! 그러니 세상에서 환난을 겪더라도 두려워하지 말아라. 이미 끝은 정해져있다.

우리는 죄와 사망으로부터 승리하는 삶을 삽니다. 죄란 무엇입니까? 과녁으로부터 벗어난 삶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의 뜻으로부터 벗어난 모든 삶을 말하는데요. 그래서 죄로부터 승리한다는 건, 우리가 다시 과녁으로 돌아온다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됨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예수는 우리의 범죄 때문에 죽임을 당하셨고, 우리를 의롭게 하시려고 살아나셨습니다.”(로마서 4:25) 한 마디로 자기 멋대로 살아왔던 삶을 멈추게 하고, 삶의 방향을 하나님께로 다시 재조정 해주시기 위해 살아나셨다는 고백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이제 거룩한 삶의 열매를 맺으며 살 것 이라고 사도 바울은 이야기 합니다. “이제 여러분은 죄에서 해방을 받고, 하나님의 종이 되어서, 거룩함에 이르는 삶의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그 마지막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죄의 삯은 죽음이요, 하나님의 선물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영원한 생명입니다.”(로마서 6:22-23)

삶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거룩함에 이르는 삶의 열매를 맺기 위한 삶을 살아갑니다. 불의와 거짓으로부터 멀어집니다. 이기적인 욕망과 목적으로부터도 멀어집니다. 세상이 말하는 승리의 법칙과 인정으로부터도 멀어집니다. 이제는 이러한 것들이 우리에게 더 이상 중요하지 않습니다.

거룩함에 이르는 길을 찾아 나서게 되고, 또한 거룩함에 이르게 됩니다. 끝은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다시 태어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유대 사람의 지도자였던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3:3-7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다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 니고데모가 예수께 말하였다. ‘사람이 늙었는데, 그가 어떻게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갔다가 태어날 수야 없지 않습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육에서 난 것은 육이요, 영에서 난 것은 영이다. 너희가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내가 말한 것을, 너는 이상히 여기지 말아라.’”

다시 태어나면 나의 삶과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게 됩니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환경을 다르게 바라보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와는 다르게 삶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제는 거룩함에 이르는 삶의 열매가 우리에게 무엇보다 중요하게 되었습니다.

성도님들은 김은희 씨를 아시나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가죠. 이 작가분의 남편이 영화감독인 장항준 씨 인데요. MBC ‘라디오스타’라는 프로그램에 나와서 자신의 아내인 김은희 씨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저는 가장이란 경제적 도덕적 우위를 점한 자가 돼야 한다고 생각을 해요. 가장은 가족 구성원들이 본받을 점이 있어야 돼요. 저희 집 가장은 김은희 씨다. 한번은 큰 회사에서 제안을 받았었는데, (누가?) 김은희 씨가요. (웃음) 계약을 하는데 회사 지분(주식)의 몇 %를 받기로 한 거예요.

그런데 다른 분들은 그 지분을 자녀 이름으로 계약을 한다는 거예요. 그게 불법이 아니래요. 그런데 그 주식이 이를테면, 50만원이면, 나중에 상장이 돼서 막 몇 십 배가 되면 그 50만 원에 대한 세금만 내면 된다는 거예요. 거의 다 (다른 분들은) 그렇게 하셨대요.

(그런데 김은희 씨는) “그러면 저희는 이렇게 하면 안 되죠! 제가 그런 거 나쁘다고 드라마 쓰는 사람인데. 저는 세금 다 내도되니까 그냥 제 명의로 해주세요.”

남들도 다 그렇게 하는데, 본인도 그냥 그렇게 하며 되잖아요. 불법이 아니라는데. 하지만 옳지 않다는 걸 알기에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비유하자면 이런 삶이 거룩한 삶의 열매를 맺는 모습입니다. 돈 더 버는 것 보다 내 안의 정직, 선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해지는 거죠.

고성에 와서 가장 많이 들었던 감탄사는, ‘어우!’입니다. 그런데 ‘어우!’ 다음에 나오는 말씀들은 대게가 상황에 대한 부정적인 말이거나 사람을 판단하는 말들이었습니다. ‘어우! 계는 왜 그랬다니, 어우! 계는 왜 그렇게 생겨먹었다니’ 등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태도가 달라진다는 거에요. 더 이상 상황을 그렇게 바라보지도, 사람을 판단하지도 않게 됩니다. 성도님들께 바라기는 ‘어우!’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게 되시거든 그 순간을 축복으로 돌리게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이뿐인가요. 미얀마에 상황을 우리는 실시간으로 뉴스를 통해 보게 되는데요. 부활의 소망을 가진 성도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노래할 수 있습니다. 미얀마 Saya Sangpi 목사님의 곡을 번역하여 부른 노래입니다.

고통과 절망의 순간 주 거기 계시네
희망은 먼 듯만 해도 주 함께 하리
우리 이 소망으로 살리라 승리의 새벽 밝도록
내 주여 우릴 도와주소서 살아갈 날들을 위해

비틀거리는 우리의 걸음 주 붙드시네
그날에 새 여정 길도 주 힘 주시리
우리 이 소망으로 살리라 승리의 새벽 밝도록
내 주여 우릴 도와주소서 살아갈 날들을 위해
- 사·곡 Saya Sangpi, 번역 이동현, 노래 한웅재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삶은 정의, 평화, 선, 사랑을 최우선 순위로 합니다. 그래서 사람과 삶을 대하는 태도가 놀랍게 변합니다. 정말 놀랍게 변하고 맙니다. 그리고 이 삶의 끝은 사도 바울이 말 한 것처럼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은 두 가지 의미에서 우리에게 축복입니다. 한 가지는 우리도 죽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것에서 축복이고 또 다른 한 가지는 우리가 다시 태어난다는 것에서 축복입니다.

요한복음 11:25-26 “예수께서 마르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할 것이다. 네가 이것을 믿느냐?’”

요한복음 14:1-3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아라. 하나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내 아버지의 집에는 있을 곳이 많다. 그렇지 않다면, 내가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러 간다고 너희에게 말했겠느냐? 나는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러 간다. 내가 가서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나에게로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함께 있게 하겠다.”

사도 바울은 이런 예수님의 말씀을 이어 받아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예수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분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살아 계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신 자기의 영으로 여러분의 죽을 몸도 살리실 것입니다.”(로마서 8:11)

고린도전서 15:12-14 “그리스도께서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아나셨다고 우리가 전파하는데, 어찌하여 여러분 가운데 더러는 죽은 사람의 부활이 없다고 말합니까? 죽은 사람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도 살아나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선포도 헛되고, 여러분의 믿음도 헛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16-19 “죽은 사람들이 살아나는 일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신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헛된 것이 되고, 여러분은 아직도 죄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사람들도 멸망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이 세상에만 해당되는 것이라면, 우리는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사도 바울은 증거하며 증인으로 살았습니다. 어떠한 상황이 닥쳐올지라도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그 자신도 승리자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시 자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우리는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주님의 일을 더욱 많이 하십시오. 여러분이 아는 대로, 여러분의 수고가 주님 안에서 헛되지 않습니다.”(고린도전서 15:57-58)

이제는 우리 차례입니다. 우리도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된 삶, 승리의 삶을 살면서 부활을 노래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이 모든 일의 증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말씀을 마치는 기도는 이지음 님이 지은 ‘부활의 날’이라는 찬양의 가사로 대신 하겠습니다.

부활의 날

삶이 어둡고 피곤에 지친
모든 이들과 더불어
주여 부활의 능력으로 우리 가운데 임하소서

의심과 절망으로 가득찬
모든 이들과 더불어
주여 부활의 능력으로 우리 가운데 임하소서

두려움과 괴로움에 휩싸인
모든 이들과 더불어
주여 부활의 능력으로 우리 가운데 임하소서

병들고 약해진
모든 이들과 더불어
주여 부활의 능력으로 우리 가운데 임하소서

죽음에 이른 이들과 쇠잔한
모든 이들과 더불어
주여 부활의 능력으로 우리 가운데 임하소서
주여 부활의 능력으로 우리 가운데 임하소서

이 모든 말씀 영원한 생명과 이 땅에서의 거듭남의 은혜를 베풀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