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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능력을 믿느냐

기사승인 2021.03.13  22:2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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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능력주의라는 허상

▲ 능력을 키우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는 현대의 신화. 성서의 바벨탑과 다를 것이 없다. ⓒGetty Image

현대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는 ‘능력주의’다. 능력주의는 신분과 세습이 아닌 자신의 노력과 능력으로 지위와 재화가 배분되는 사회체제를 말한다. 근대사회는 타고난 신분이 아니라 동등한 출발선에서 스스로 노력하여 자신의 능력으로 그에 맞는 지위와 재화를 얻을 수 있는 사회다. 그렇기에 중요해진 것은 능력을 평가하는 시스템이다. 어떤 이가 좋은 결과를 얻었는데 그것이 신분 때문이 아니라 능력 때문이라는 것을 검증해줄 평가시스템이 무엇보다 중요해진다. 그래서 온갖 시험이 난무한다. 우리는 ‘시험사회’에 살고 있다.

성공한 사람이나 실패한 사람이나 경쟁적인 사람이나 불공정과 싸우는 사람이나 다 ‘능력주의’에 물들어 있다. 능력주의 사회에서는 성공한 사람들과 부자들은 자신들의 성공과 부를 정당화할 수 있으며 자신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게 된다. 오만할만한 충분한 성과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실패한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의 실패와 가난함에 대해 정당화하기 어려우며 자신에 대해 수치심을 가지게 된다. 그들은 결핍으로 인한 불편함과 어려움으로 인한 고통만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굴욕까지 경험한다. 그런 굴욕을 당하고 있으니 안에 분노가 쌓여있지 않겠는가? 지금 사회는 ‘분노사회’다.

“기회는 평등해야 하고, 과정은 공정해야 하며, 결과는 정의로워야 한다.”는 말이 있다. 능력주의를 매우 정확하게 표현한 말이다. 자기 능력을 만들고 발휘할 기회가 동등하게 주어지고 결과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공정하기만 하면 정의로운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말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신분사회가 아니기 때문에 능력주의에서 말하는 기회의 평등은 대체로 이루어진 것으로 여긴다. 모두 똑같은 의무 교육을 받고 정당한 평가시스템을 통해 능력을 평가받고 정당한 과정을 거쳐 결과가 만들어진다. 민주주의가 발달할수록 과정은 공정하다. 따라서 공정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결과는 정의롭다.

그런데 우리는 요즘 결과가 그리 정의롭지 못하다고 느낀다. 양극화는 극에 달하고 아무리 노력해도 성공할 확률은 낮아졌다. 뭔가 부당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분노가 가득하다. 분노하는 사람들은 사회를 의심한다. 뭔가 문제가 있지 않을까? 하지만 ‘능력주의’ 자체를 의심해본 적 없는 사람들은 ‘기회의 평등-과정의 공정-결과의 정의’에 이르는 프로세스 자체에 대해서는 결코 의심하지 않는다. 그 시스템 자체가 부정의와 불평등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불공정한 사회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들조차 능력대로 보상을 받지 못하는 제도의 한계에 대해 문제제기할 뿐 능력주의 자체는 긍정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기회의 평등’은 이미 이루어졌고 시스템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면 결국 중간 단계인 ‘과정의 공정’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경기의 규칙 자체는 문제가 없는데 누군가 불법이나 편법을 쓰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현대 사회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공정’이다. 불평등한 분배와 무시라는 불의를 해결하는 ‘공평과 정의’라는 의미가 아니라 ‘과정의 공정’을 의미한다.

근래에 공정이 최고의 화두가 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 자주 발생한다. 조국 사태, 인국공 사태, 의료파업 사태 등에 특정한 사람들이 분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무임승차론’과 ‘역차별론’을 들이대며 공정을 외친다. 자신은 정당하게 어려운 과정을 거쳐 시험을 통과했거나 통과하려하고 있는데 어쩌다가 운으로 비정규직으로 들어왔다가 정규직이 된다는 것은 불공정한 일이라고 주장한다. 자신은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거쳐 최고의 실력을 갖추었는데 공공의대를 만들어 형편없는 의사를 만드는 일은 공정하지 못한 일이기에 의료파업도 마다하지 않는다. 참으로 참혹한 공정이다.

이처럼 혐오를 정당화하고 차별받는 노동을 정당화하는 능력주의에 대해 『능력주의와 불평등』의 저자들은 다양한 사례를 들어 문제제기하고 있으니 참고하라. 이렇게 공정을 내세우는 사람들은 ‘기회의 평등-과정의 공정-결과의 정의’라는 프로세스 자체를 의심하지는 않는다. 불공정에 대해 분노할 뿐 불평등과 부정의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다.

 

 『능력주의는 허구다』에 의하면 우리의 삶을 결정하는 요인 중 ‘내적 요인’과 ‘외적 요인’이 있다. 그 둘 사이에는 긴장감이 있다. 내적 요인인 ‘능력적 요인’과 외적 요인인 ‘비능력적 요인’은 상호작용하면서 어떤 결과를 만들어낸다. 여기서 능력적 요인에 정말 개인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대두된다. 많은 경우 능력적 요인도 내 개인적 노력과 거의 상관없고 노력의 강도조차 타고난 기질적 차이에서 비롯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큰 문제는 지금 시대가 능력적 요인보다 비능력적 요인이 성공에 훨씬 더 큰 역할을 한다는 데 있다. 능력주의 이데올로기는 능력적 요인이 결과에 미치는 영향은 과대평가하고 있으며 비능력적 요인이 미치는 영향은 과소평가하고 있다.

능력주의를 설명하는 비유가 달리기 경주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제를 감추고 허상을 보게 한다. 인생을 달리기 경주로 이해하는 시각은 첫째, 모든 문제를 개인적 차원으로 접근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둘째, 삶의 모든 문제를 경쟁에서 이기는 경주로 풀이하는 데 문제가 있다. 셋째, 무엇보다 문제인 것은 삶의 현실은 우리의 경주가 혼자서 하는 달리기 경주가 아니라 ‘릴레이 경주’라는 데 있다. 우리는 부모에게서 자녀에게 바통을 건네주는 릴레이 경주에 참여하고 있다.

세대 간 릴레이 경주에서 유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도 있고 불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도 있다. 할아버지의 재산과 엄마의 정보력을 갖춘 사람만이 성공한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정유라가 “부모의 재력도 실력이다.”라고 말했는데 최순실의 딸이기 때문에 이런 말은 한 것이 아니라 실제 사회적 현실을 그는 당당하게 하지만 뻔뻔하게 말했을 뿐이다. 현대 사회는 ‘릴레이 경주’를 치르는 새로운 세습사회이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기독교는 도리어 능력주의를 지지하고 있다. 기독교인들조차 부자들의 논리를 내면화하면서 능력주의를 지지하며 부자들을 축복하는 데 성경을 사용한다. ‘마태 효과’라느니 달란트 비유를 내세우면서 말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의 동생인 야고보 또한 크게 두 가지 면에서 부자들을 비판한다.

첫째는 부자들이 재물을 써야 할 때 쓰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부자들은 재물을 모으기만 하고 베풀지 않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약 5:2-3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 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땅에 재물을 쌓지 말고 하늘에 재물을 쌓아야 한다. 하늘에 재물을 쌓는 것은 무슨 뜻인가? 바로 구제와 자선 그리고 정의를 실천하는 일이다.

많이 쌓은 다음 시혜를 베풀면 될까? 미국의 부자들 중에는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성경적인 해답은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 쌓는 것 자체를 하지 말라고 한다. 쌓은 다음 베풀지 말고 쌓기 전에 베풀라고 한다. 쌓는 것 자체가 정의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모두에게 적당하게 돌아가도록 쌓기 전에 베풀면 쌓을 일도 없을 뿐더러 가난한 자들이 시혜를 받는 낮은 위치에 있을 필요도 없다.

둘째로 부자들이 재물을 주어야 할 때 주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약 5:4-5 “보라 너희 밭에서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그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방종하여 살륙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찌게 하였도다” 부자들이 부자가 될 수 있는 이유는 주어야 할 것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이 불평등한 이유는 부자들이 삯을 지불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야고보는 말한다. 삯을 지불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예수님이 말한 포도원 품꾼의 비유에 의하면 나중에 온 사람에게도 동일하게 품삯을 주는 것을 말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조건의 평등’을 실현하는 일이다. 기독교인들은 ‘기회의 평등’만 주장하면 안 되고 ‘조건의 평등’을 주장해야 한다.

마이클 샌델은 『공정하다는 착각』이라는 책에서 ‘조건의 평등’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막대한 부를 쌓거나 빛나는 자리에 앉지 못한 사람들도 고상하고 존엄한 삶을 살도록 할 수 있는 것이 ‘조건의 평등’인데, 그것은 사회적 존경을 받는 일에서 역량을 계발하고 발휘하며 널리 보급된 학습 문화를 공유하고 동료 시민들과 공적 문제에 대해 숙의하는 것 등으로 이루어진다. 나는 이런 정치적인 관점 이외에 경제적인 ‘조건의 평등’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기본소득’을 강력히 지지한다. 『기본소득이 세상을 바꾼다』에 의하면 기본소득이 정당한 이유는 공유자원은 모두의 것이며, 협업에 대한 보상이며, 자유의 필수 수단인 동시에 주권 실현의 필수조건이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이야말로 포도원 주인의 비유에 나타난 ‘조건의 평등’ 정신을 실현하는 매우 좋은 정책이라 할 수 있다.

조건의 평등은 ‘대역폭’을 높여주는 일과 같다. ‘대역폭’이라는 개념을 말한 사람은 하버드대학 경제학 교수인 ‘센딜 멀레이너선’이다. 그가 프린스턴 대학 심리학과 교수인 ‘엘다 샤퍼’와 함께 『결핍의 경제학』이라는 책을 썼다. 이 책에서 말하는 ‘대역폭’이란 한 마디로 ‘정신적 처리량’ 혹은 ‘정신적 처리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멀레이너선은 ‘대역폭’에 세금이 매겨진다고 표현한다. 처리해야 할 문제들에 치르는 대가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대역폭이 작은 사람들은 그 세금을 낼만한 여유분이 없다. 그것은 곧 가난한 사람들은 대역폭에 과도한 세금을 물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적은 대역폭을 가지고 당장 해결해야 할 많은 일들을 감당하고 있다. 그래서 단기적인 문제밖에는 처리하지 못한다. 결핍은 터널링 사고를 만들어낸다. 그 한 가지 외에는 다른 것을 보지 못한다. 그러니 단기적인 문제도 처리하기에 벅차다.

그들에게는 ‘풍요가 주는 느슨함(여유, 마진)’이 없기 때문에 장기적인 문제에 대한 처리능력이 없다. 멀레이너선에 의하면 외적으로 보여지는 모습 말고 대역폭이라는 기준으로 비교해서 보면 가난한 이들이 부자들보다 훨씬 열심히 살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이미 열심히 살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열심히 살라고 말해보았자 소용없고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은 ‘대역폭’을 높여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한 마디로 ‘조건의 평등’을 성취하는 일이다. 이 일에 ‘기본소득’만큼 좋은 것이 있을까?

 

무엇보다 ‘능력주의’를 지지할 수 없는 이유는 복음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 부자들은 오만할 정도로 자신을 ‘자랑’하고 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굴욕적일 정도로 ‘수치’를 경험하고 있다. 그런데 복음은 이런 자랑을 근본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든다. ‘자랑’은 성경의 구원론에서 핵심주제로 다룰 정도로 중요한 주제다. 로마서에서 사도바울이 율법의 특징이라고 한 것이 무엇인가? 자기가 얻은 것을 자신의 노력과 수고에 대한 ‘보상’으로 여긴다는 점이다. 보상으로 여기는 사람은 자기와 자기의 소유를 자랑할 수밖에 없다. 반면 은혜의 특징은 무엇인가? 자기가 얻은 것을 자격 없는 자에게 거저 주어지는 ‘선물’로 여긴다는 점이다. 선물로 여기는 사람은 결코 자기와 자기의 소유를 자랑하지 않는다.

엡 2:8-9에 의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은혜로 구원하는 이유가 우리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율법이 지배하는 세상이기 때문에 ‘자랑’을 가치 있게 여긴다. 자랑이란 자기 사랑의 외적 표현이다. 현대판 자랑의 핵심에는 ‘능력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하지만 복음은 근본적으로 ‘능력주의’를 내파한다. 복음을 받아들이는 기독교인들이 능력주의를 지지할 수는 없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선물의 경제학을 지지한다.

이도영 객원기자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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