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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조코위 정권, 민주주의 이전으로 회귀하고 있다

기사승인 2020.10.11  15:4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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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네시아 2020 옴니버스 법안과 시민사회의 인권·민주주의·환경정의 투쟁

▲ 이전 군부독재정권으로 회귀하는 인도네시아 조코 위도도 정권의 행보로 인해 인도네시아는 다시 민주주의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Getty Image

인도네시아 시민사회는 지금 인권·민주주의·환경정의 후퇴 위기에 맞서 싸우고 있다. 지난해 9월부터 현재까지 인권, 민주주의, 언론, 환경운동 단체들이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을 무릅쓰고 거리에서 또 소셜미디어에서 조코 위도도 행정부에 맞선 총력 투쟁을 벌이고 있다. 동남아시아 민주주의 챔피언으로 꼽히던 인도네시아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2019년 재임에 성공한 조코 위도도(이하 ‘조코위’) 행정부가 재임 초반인 지난해 말부터 귄위주의 행보를 감행하고 있다. 지난해 있었던 공직자 부패감시기구인 부패척결위원회(KPK)법 개정이 본격적인 신호탄이다. 부패척결위원회는 1998년 민중의 하야시위에 밀려 퇴진한 수하르또 군부정권(1965-1998)의 유산인 ‘부패·결탁·족벌주의(KKN·Korupsi, Kolusi, Nepotisme)’ 극복하기 위해 마련된 정부독립 부패감시기구다.

‘2002년 부패척결위원회법’에 근거하여 2003년 말 설립됐다. 스포츠부 장관, 경찰 총장 등 고위공직자의 부패혐의를 조사하고 기소해 형사처벌까지 이끌어냈다. 수하르또 이후 인도네시아에서 민주적 권력 감시 기능을 가장 성공적으로 수행한 기구로 평가받고 있다. 동시에 과거 군부정권과 유착해 온 정재계 집권층의 강력한 반발을 사온 기구이기도 하다. 그러나 조코위 정부는 대학생을 비롯한 시민들의 연이은 거리 시위를 외면하고, 재임 직후인 지난해 9월 부패척결위원회의 조사와 기소 독립성을 흔드는 내용의 개정 법안을 발의하고 통과시켰다.

조코위 정부는 이어 ‘2020 옴니버스 법안’과 ‘광산법 개정안’을 연내 통과 목표와 함께 발의했다. 산업부문 규제완화를 골자로 하는 두 법안은 또 한 번 시민사회의 강한 반대에 부딪혔다. 사업권을 갖고 있는 재계 일부와 이들 사업에 지분을 보유한 정계 주요 인물 및 고위공직자들의 편의를 위한 법안이라는 우려 탓이다. 2020 광산법 개정의 경우, 시민사회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난 5월 정부 발의 원안대로 의회에서 통과됐다.

최근 1년간 두 차례나 시민들의 참여가 막힌 상태에서 비민주적으로 법안이 처리된 것이다. 인도네시아 시민사회는 조코위 정부가 평범한 시민들의 삶을 개선하고, 전국민 복지 향상을 위한 인프라 개발을 약속했지만 이를 저버렸다고 보고 있다. 이에 시민들은 ‘2020 옴니버스 법안’ 통과 저지만큼은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인도네시아 시민사회는 2월 12일 의회 발의 직후부터 현재까지 옴니버스 법안 의회 심의 중단과 입법 전면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2020 옴니버스 법안’은 조코위 행정부가 2020년 2월 12일 인도네시아 의회(DPR)에 발의한 규제 완화 패키지 법안으로 공식 명칭은 ‘일자리 창출에 관한 법안’(RUU Cipta Kerja)이다. 총 1,028쪽에 달하는 이 법안은 15조 174개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존의 언론법, 노동법, 환경법 등 79개 법률의 1,244개항을 일괄 개정한다는 내용이다. 크게 고용, 환경, 사업 허가와 관련된 기존 규정을 폐지하거나 완화하는 것을 골자로 하며, 개정법 위반시 정부가 행정 제재하는 조치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법안 전문에서 다루는 투자활동, 토지취득, 사업활동, 중앙정부 투자와 국가전략사업 등에 대한 조항이 148개인 반면, 고용과 일자리 창출에 관한 조항은 12개로 법안의 상당 부분이 투자와 사업 규제 완화에 집중되어 있다. 이런 이유로 의회 옴니버스 법안 심의위원회에서는 법안의 제목을 “일자리 창출에 관한 법”이 아니라 “사업활동 용이성을 위한 법”으로 바꾸자는 말도 나왔다.

‘2020옴니버스 법안’에 대해 인도네시아 시민사회가 우려하는 대목은 첫째, 법안 발의와 추진 과정에서 민주적 대표성이 심각하게 결여되어 있으며, 둘째,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세계적인 보건의료 위기 상황과 의회 휴회도 건너뛰면서 강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광산법 개정과 옴니버스 법안으로 인해 전지구적 탈석탄 에너지 전환 흐름과 자연생태계 재생 흐름에 역행한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인도네시아 시민사회에서 지금 '옴니버스 입법 반대 저지 운동'(#Tolakomninuslaw)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배경이다.

인도네시아의 대표적인 인권·민주주의 단체인 인도네시아 법률구조재단(YLBHI)는 2020옴니버스 법안에 대해 “노동자의 권리를 빼앗아가고 희생을 요구하는 개발 집착”이라고 논평했다. 인도네시아환경포럼(WALHI)은 “대통령궁과 의회의 집권층이 만든 이 법안은 더러운 사업들을 합법화하고 환경과 인류는 외면”했다고 평가했다. 인도네시아 독립기자연맹(AJI)은 ‘언론사의 사업허가권한을 정부가 쥐고, 정부 조치에 따르지 않을 경우 제재’하는 퇴행적 법안이라는 우려를 밝힌 바 있다. 얼마 전에는 국가인권위원장까지 나서 “모든 인도네시아 시민의 인권을 실현하고 보호하고 존중하는 맥락에서 대통령과 의회에 법안 심의 중단을 권고”했다.

이런 와중에 최근에는 정부와 의회에서 대중연예인을 동원한 ‘인도네시아에는 일자리가 필요하다(#IndonesiaButuhKerja)’ 홍보 캠페인을 추진한 사실도 전해졌다.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에서 해당 캠페인 해시태그로 홍보 포스팅을 업로드한 대중연예인 등에게 500만루피아(한화 약 40만원)에서 1,000만 루피아(약 81만원)을 주기로 해 시민들이 크게 분노하고 있다.

2020 옴니버스 법안은 민주화 이후 인도네시아 시민사회가 뛰어넘어야 할 가장 큰 민주주의 과제로 떠올랐다. 1998년 수하르또 대통령 하야 후 인도네시아 민주주의의 과제였던 1965-66년 반공 대학살 등 국가폭력 과거사 청산, 정경유착 구조 청산, 개발 정의와 환경 보호 정책 도입 등의 개혁은커녕 인권과 민주주의 상황이 한꺼번에 후퇴할 수 있는 상황이다. 역동적인 시민사회 투쟁 덕분에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일찍 정치적 민주화를 이룬 인도네시아가 이런 위기를 맞은 이유는 뭘까?

인도네시아 경제 정책 전문가와 경제학자들은 초선 후보 시절부터 조코 위도도 정부의 경제적 자유주의를 우려하는 목소리를 내왔다. ‘조코위가 친서민 이미지로 유명하지만 복지의 중요성을 아는 시장친화형 리더’이며, 경제 정책 기조에 있어서는 일반 대중보다는 사업가와 투자자의 눈높이에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조코위 정부는 첫 임기 2년차에 접어든 2016년 내각 개편부터 국가폭력 과거사 청산이나 빈곤·경제적 불평등 해결, 환경과 개발 정의 대신 ‘경제 개발’에 방점을 찍었다. 오스트레일리아 연구자 이브 왈버튼은 ‘조코위와 신개발주의’(2016)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조코위가 임기 초반 폭발적인 대중 지지를 기반으로 정치적 안정을 확보한 후 경제 개발 의제 실행을 위해 정치지형을 새로 짰다고 봤다. 역설적으로 이 시기에 많은 인도네시아 연구자들이 조코위를 이해하기 위해 수하르또 군부 정권 시절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현재 인도네시아가 경험하고 있는 정치적 권위주의화는 대통령이 강력한 개발 정권을 확립하기 위해 개혁 대신 다당제 엘리트 민주주의 현실 정치와 타협한 결과로 보인다. 조코 위도도 대통령은 견고한 전통 엘리트, 군부 정치와 후원 민주주의(patronage-driven democracy) 지형에서 과거사 청산 같은 정치적 위험부담 대신 집권층의 저항을 최소화하는 정치 동맹을 택한 셈이다. 이는 오랜 권위주의 정치를 경험한 아시아 사회에서 여야 정권교체나 민선정부 등장만으로 민주화가 완성될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시켜준다. 아시아 시민사회는 낙후된 경제와 인프라를 개발한다는 명목으로 인권·민주주의·정의의 가치가 짓밟히는 반복되는 경험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이슬기(자유기고가)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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