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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국가 재정 운영 준칙인가

기사승인 2020.09.28  18: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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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중신학자의 눈으로 세상 읽기 (30)

▲ 박홍근 예결위 여당 간사(왼쪽 네번째)가 지난 7월1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638호에서 열린 2020년도 제3회 추경예산안 등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조정 소위원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News1

기획재정부 관료들의 재정건전성 집착

추석 전에 기획재정부는 재정준칙 안을 발표한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재정준칙은 국가재정의 건전성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하여 균형예산, 재정수입, 재정지출, 국가채무 등을 규율하는 지침이다. 일단 이 규범이 제정되면, 재정건전성은 국가의 모든 활동을 재정적으로 통제하는 강력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재정준칙은 정부의 의무적 지출을 신설하거나 증액할 때 반드시 재정조달 방안을 명시하도록 하는 절차 규정인 Pay-go 원칙을 포함하기도 한다. 이 원칙이 재정준칙에 포함되면, 정부의 의무적 지출을 필요로 하는 입법 활동은 크게 제한되는 효과가 나타난다.

물론 재정준칙 도입은 문재인 정권에서 처음 시도되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전두환 정권이 레이거노믹스를 흉내 내면서 신자유주의 정책에 따라 세입의 범위 안에서 재정을 지출한다는 방침을 세웠을 때 재정건전성은 재정운영의 원칙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볼 수 있다. 재정준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을 뿐이지 재정준칙의 가장 핵심적인 규범이 확립된 것이다. 그 뒤에 아주 오랫동안 재정적자는 금기시되었다. 그 금기는 외환위기 극복 과정에서 깨졌다. 은행과 기업의 부실을 털어내기 위해 방대한 공적 자금을 조성하고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기 위해 재정 지출이 급증하자 재정 당국은 재정건전성 원칙의 훼손을 우려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 중반 이후에 고령화에 따르는 복지지출 증가, 잠재성장률 저하에 따르는 세입 감소, 연기금 고갈 등이 장차 재정 적자를 큰 폭으로 증가시켜 국가재정의 건전성과 지속가능성을 위협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관변 학자들에게서 터져 나오자 재정당국은 2010년부터 5개년 국가재정운영계획의 틀에서 재정건전성을 사수해야 한다는 의지를 가다듬었다. 재정당국의 지도부는 재정지출 증가율이 세입증가율보다 적어도 2-3%는 적어야 한다는 비공식적인 지침을 세웠다. 2015년 박근혜 대통령이 Pay-go 원칙을 입법화할 것을 강력하게 주문하자 이 원칙을 포함해서 재정준칙의 입법화를 위한 여러 법안들이 발의되기도 하였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뒤에 복지정책, 고용정책, 투자정책 등을 확충하면서 다소 확장적인 재정정책을 추진하자 기획재정부는 재정준칙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전두환 정권 시절부터 재정 당국에 뿌리 깊이 자리 잡은 신자유주의적인 재정건전성 집착의 발로로 볼 여지가 있다. 홍남기 기획재정부 장관을 위시해서 기획재정부에서 잔뼈가 굵은 고위 관료들은 최근 코로나19 재난에 대응하여 재정지출과 국가 채무가 급증하는 것을 빌미로 삼아 재정준칙 제정을 서두르고 있다.

재정준칙은 입법의 길로 갈 수 있을까?

기괴하게도, 이러한 기획재정부의 재정준칙 제정 시도는 야당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지만, 집권 여당에 의해서는 도리어 견제를 받고 있다. ‘국민의힘’ 당에서는 세 의원이 나서서 각기 다른 재정준칙 법안을 발의하고 있다. 그 법안들은 조금씩 다르지만, 매우 엄격한 재정 운영 규범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그 법안들에는 연도별 재정적자를 GDP의 2% 이하로 억제하고 그 총량을 GDP의 일정 비율(45%-60%)을 넘지 않도록 규율하는 내용이 들어 있기도 하고, 재난이나 금융위기에 직면했을 때에는 재정적자가 준칙의 범위를 초과하는 것을 예외적으로 인정하더라도 재난이나 경제위기가 해소된 뒤에 세계 잉여의 50%를 채무 변제에 우선적으로 사용하도록 하는 규정이 들어 있다.

이에 반해, 여당 의원들은 코로나19 재난이 극복되지 않아 큰 규모의 재정지출을 얼마나 더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재정준칙을 제정하면 정부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그 때문인지 여당 의원들 가운데 재정준칙 입법안을 대표 발의하는 경우는 아직까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집권여당이 재정건전성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재정준칙을 제정할 필요가 없다고 여기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집권여당의 이낙연 대표는 2015년 국가채무 한도 설정을 골자로 하는 재정준칙 입법을 발의한 바도 있다.

재정준칙은 법률의 형태를 취할 수도 있고, 시행령, 훈령, 지침 등의 형태를 띨 수도 있다. 재정준칙을 법률로 만드는 손쉬운 방법은 「국가재정법」을 개정하여 거기에 재정준칙을 담거나 국가재정법에 재정준칙의 법적 근거를 일단 마련하고 재정준칙의 구체적인 내용을 시행령에 담는 방식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당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지 못할 경우, 기획재정부의 재정준칙 제정 시도는 입법의 길로 갈 수 없을 것이다. 그 차선책은 재정준칙을 정부 내부의 지침이나 훈령으로 가다듬는 것이다. 재정준칙이 그 정도로 명문화되어 정부 안에서 규범의 위상을 갖는다면, 정부와 그 산하기관의 예산안에 대해 사전 심의권을 갖고 있는 기획재정부는 지금보다 더 막강한 영향력을 갖게 될 것이다.

재정준칙 제정이 과연 필요한가?

재정준칙을 제정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OECD 국가들이 대부분 재정준칙을 도입했고, 우리나라와 터키만이 예외라고 지적한다. IMF 편람에 따르면, 2015년 현재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등지의 개발도상국들을 포함해서 89개국이 재정준칙을 도입하고 있다. 편람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외환위기와 재정위기를 겪었던 라틴아메리카 여러 나라들과 북구의 핀란드, 스웨덴 등이 재정준칙을 도입했고, 엄격한 통화주의 원칙에 따라 통화동맹을 맺은 유럽 연합의 구성 국가들이 재정준칙을 받아들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2008년 지구적 차원의 금융공황을 겪은 뒤에 수많은 나라들이 재정준칙을 서둘러 도입하였음을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사례들은 재정준칙 제정의 배후에 신자유주의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신자유주의는 정부의 시장개입을 최소화하고, 가계와 마찬가지로 정부도 수입의 한도 안에서 지출을 해야 한다는 것을 당연한 듯이 전제한다. 정부가 세입을 초과하여 지출을 하게 되면 빚을 지게 되는데, 그 빚을 민간에서 이자를 주고 조달하도록 규정하는 제도도 신자유주의적 재정 규율을 강화하는 요건이 된다.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재정 규율을 받아들이면 정부는 긴축 재정을 강제 당하게 되어 국가의 시장 개입은 축소되고, 복지정책과 사회정책은 크게 뒷걸음치게 된다. 금융의 자유화와 지구화가 실현된 오늘의 세계에서 신자유주의적 재정 규율은 화폐자본의 지배를 공고히 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재정준칙의 모범국으로 알려져 있는 독일은 신자유주의적 재정 긴축이 어떤 결과를 가져 오는가를 잘 보여준다. 독일은 1969년에 헌법에 균형예산 준칙을 못 박았다. 1947년 재정법에 재정준칙을 명시한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재정준칙을 도입한 것이다. 1969년의 재정준칙은 딱히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기초했다기보다는 경제성장과 물가와 고용의 균형을 이루고자 하는 질서정책의 성격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전쟁 채권 등으로 인해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겪은 적이 있었던 독일은 방만한 재정 지출에 따르는 화폐 가치 하락을 금기시하였기에 재정준칙 도입을 수용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독일은 2009년 헌법 개정을 통해 재정적자를 GDP의 0.35% 이내로 엄격하게 제한하였고, 2011년부터 이를 시행하였다. 그것은 신자유주의적인 재정 규율 원칙에 충실한 조치였다. 그 결과, 독일은 2010년 GDP의 82.4%에 달했던 국가채무를 2019년까지 59.8%로 줄일 수 있었다. 그러나 엄격한 재정 긴축 아래서 사회복지정책은 후퇴하였고, 사회, 문화, 교육 인프라는 낙후하였고, 공공서비스의 질은 크게 악화하였다. 정시 운행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갖고 있었던 독일철도는 요즈음 최악의 연착과 급작스러운 운행중지로 악명을 떨치고 있다. 하루면 독일 어느 곳에나 배달되던 우편은 어느 세월에 배송되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외국의 사례들을 돌아 보건대, 우리나라가 신자유주의 기조의 재정준칙을 제정하여 재정건전성을 관리하여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깊이 숙고할 필요가 있다. 물론 필자는 재정 운영이 방만하게 이루어져서 국민경제 차원에서 생산과 소비의 균형이 깨뜨러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대중영합적인 소비 진작을 위해 생산으로 돌아갈 몫을 과도하게 세금으로 빼앗거나 국채를 과도하게 발행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러한 극단적인 경우를 배제한다면, 신자유주의자들이 금과옥조로 내세우는 재정건전성을 위해 재정준칙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적 성격의 재정준칙 제정에 반대하는 다섯 가지 이유

필자가 신자유주의적 기조의 재정준칙 제정에 반대하는 이유는 다섯 가지이다. 가장 사소하게 여겨지는 이유부터 말하고 싶다.

첫째, 재정준칙 제정은 전두환 정권 이래로 신자유주의적인 재정건전성 교리에 사로 잡혀 있는 기획재정부의 고위 관료들에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부여할 수 있다. 정부 각 부처와 산하기관들의 예산을 심의하고 조정하여 통합예산안을 작성해서 국회에 제출하는 권한이 있는 기획재정부는 지금도 정부 안의 정부라고 말할 정도로 막강한 부서인데, 재정 준칙에 따라 예산 계획과 지출 계획을 수립하는 전문적 역량을 갖는 기획재정부 관료들은 초월적인 위치에서 정부 각 부처와 산하 기관들의 사업 계획과 그 실행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권력을 행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둘째, 재정준칙은 국가 활동에서 목표와 수단의 관계를 자칫 전도시킬 수도 있다. 재정은 국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국민의 행복 추구와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고, 경제 발전의 기반을 조성하고, 경제 주체들 사이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생태계의 안전성과 건강성을 유지하는 것과 같은 목표를 추구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재정을 운영한다. 재정은 국가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지, 재정 그 자체가 국가 활동의 목표가 될 수 없다. 재정건전성은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따라서 재정건전성을 지키기 위해 국가  활동을 제약하거나 위축시키거나 중단시킬 수 없다. 국가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할 경우 재정건정성은 언제든 파기될 수도 있다.

셋째, 신자유주의적 기조의 재정준칙은 국가재정에 대한 아주 잘못된 고정관념에 근거하고 있기에 제정되어서는 안 된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정부 재정이 가계와 같은 것이라고 가정하지만, 그 가정은 근본적으로 틀렸다. 가계는 한정된 소득을 쪼개가며 지출하고, 소득을 초과하는 지출이 있을 경우에는 빚을 내야하고, 빚이 늘어나 빚에 대한 이자와 원금을 갚지 못할 경우에는 파산한다. 정부 재정이 가계 운영과 같다고 생각하는 신자유주의자들은 정부의 재정 지출이 정부의 수입에 제약되고, 정부의 수입을 초과하는 지출이 있을 경우에는 빚을 져야 하고, 정부가 빚을 과도하게 지게 되면 원금과 이자를 갚지 못해 결국 파산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부는 제 아무리 많은 적자를 내고 제 아무리 많은 빚을 진다고 해도 파산하는 법이 없다. 정부는 가계와는 달리 언제든 화폐를 필요한 만큼 발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중앙은행(한국은행)과 정부를 별개의 기관으로 간주하지만, 중앙은행도 정부의 일부분이다. 중앙은행이 발권은행인데, 정부가 어떻게 화폐 고갈 상태에 있을 수 있겠는가?

정부는 중앙은행에 계정을 갖고 있고, 그 계정을 통하여 세입과 세출을 한다. 조금 더 전문적으로 말한다면, 정부는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지급준비금으로 세입과 세출, 곧 재정 활동을 하고, 지급준비금은 중앙은행에 의해 필요한 만큼 무한정 창조되기 때문에 정부는 설사 세입이 전혀 없어도 세출을 할 수 있다. 이것이 정부의 재정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점이다.(1) 정부가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국채를 발행할 때, 그 국채는 기본적으로 공개시장조작을 위해 중앙은행이 직접 매입하지 않고 시중은행이 매입한다. 따라서 중앙은행은 정부의 국채 발행에 관여하지 않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국채 발행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중앙은행은 정부의 국채 발행에 간접적으로 관여한다. 정부와 민간은행 사이의 거래는 지급준비금으로 하기 때문에, 시중은행이 국채를 매입하면서 정부에 지급준비금을 지불하면, 시중은행에서는 그만큼 지급준비금이 사라진다. 만일 그 지금준비금을 보충하지 않으면 시중에서 희소해진 지금준비금을 얻기 위해 은행간 경쟁이 일어나고 이 때문에 기준금리가 상승한다. 기준금리 상승은 자산과 부채 관계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민간은행들의 네트워크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중앙은행은 시중은행에 지급준비금을 제공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중앙은행이 정부의 국채발행에 깊숙이 개입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민간은행이 지급준비금이 부족하여 국채를 매입할 수 없는 경우에는 은행에 지급준비금을 제공하여 국채를 매입할 수 있도록 한다.

정부의 재정적자와 국채 발행이 어떤 경우에도 정부의 파산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더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 필자는 한국은행법 75조 규정에 따라 중앙은행이 국채를 직접 매입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그렇게 되면, 정부는 한국은행이 매입한 국채에 대한 이자를 지급하는 조건으로 필요한 만큼 국채를 발행할 수 있다. 중앙은행이 국채에 대한 이자를 징수하면 그것은 중앙은행의 소득이 된다. 중앙은행은 비영리기관이기에 그 소득은 회계연도 말에 기획재정부의 금고로 옮겨져야 한다. 그렇게 되면 정부는 실질적으로 이자를 지급하지 않은 채 국채를 발행하여 재정적자를 충당할 수 있다. 이를 가리켜 화폐적 재정조달이라고 한다. 국가가 그럴 마음을 먹는다면, 화폐적 재정조달은 언제든 가능하다. 따라서 정부는 재정적자가 아무리 많다 할지라도 파산할 수 없다.

이러한 정부 재정의 특성을 제대로 파악한다면, 국가 채무의 증가가 재정건전성을 악화시킨다고 단정하고서 국가 채무 증가의 억지를 재정준칙의 핵심으로 삼는 것은 부질없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정부의 재정적자는 재난이나 금융위기로 인하여 경제가 침체되는 상황에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공장가동이 중단되고 실업이 급격히 증가하여 생산과 소비의 선순환이 끊어진다. 이러한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중앙은행이 양적 완화를 실시하여 시중에 엄청난 규모의 통화를 공급하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정부가 기업과 공장의 생산 능력을 유지하고 실업을 방지하기 위해 재정 수단을 투입하여 직접 지원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다. 기업의 파산을 막기 위해 지원금을 지급하거나 채무에 대한 보증을 서거나 지분 매입을 통하여 기업을 일시적으로 국유화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고, 조업단축을 하는 기업이나 공장의 노동자들을 계속 고용할 수 있도록 고용유지지원금을 지급할 수도 있다. 보편적인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기 위하여 정부가 대규모의 재정적자를 감수할 수도 있다. 그렇게 해서 얼어붙은 소비를 진작시키고 생산을 활성화시키는 확실한 효과를 볼 수 있는데, 그러한 대담한 시도를 하지 않을 까닭이 무엇인가? 재난이나 경제위기에 직면해서 정부가 시행하여야 할 조치가 많아서 천문학적인 재정 적자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 정부에게 재정건전성을 지키라고 강제할 수 있겠는가?

다섯째, 정부의 재정적자는 경제성장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는 상황에서도 필요하다. 경제성장에 따라 재화와 서비스가 증가하면 이를 구입하기 위한 화폐가 공급되지 않으면 안 된다. 오늘의 금융제도에서는 화폐가 거의 전적으로 민간은행의 신용창조를 통하여 공급되고, 그렇게 공급되는 화폐는 민간 부채로 축적된다. 그 결과, 경제성장은 필연적으로 민간 부채의 증가를 가져온다. 이러한 민간부채의 증가를 막고, 경제성장이 필요로 하는 적절한 통화를 공급하려면, 정부가 부채를 지는 방식으로 통화를 공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것은 정부가 재정적자를 내고 그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국채를 발행함으로써 시중에 지급준비금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필자는 정부의 재정적자를 통해 창출된 통화가 두 가지 방식으로 공급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정부가 시장이 흡수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고용하여 공적인 서비스를 수행하게 하고 그 대가로 그들에게 임금을 지급하기 위해 재정적자를 감수하는 방식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정부의 직접 고용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고 정부 고용 확대를 위해 재정적자를 내는 것을 금기시하지만, 그렇게 생각할 까닭이 없다. 정부가 고용한 사람들이 일을 해서 얻은 소득은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하는 데 사용되고, 그러한 구매 활동은 생산을 즉각 촉진시켜 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기여한다. 그 사람들이 수행하는 공적인 서비스는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무상이나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될 것이니 많은 사람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이바지할 것이다. 사람과 공동체와 자연을 돌보는 무수히 많은 일들이 이러한 공공 서비스의 형태로 제공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정부가 국채를 발행해서 확보한 지급준비금을 민간은행에 맡겨서 모든 국민들에게 조건 없이 똑같은 금액으로 배분하는 방식이다. 비록 정부의 재정적자 규모는 GDP에 경제성장률을 곱한 것을 조금 상회하는 정도밖에 안 되겠지만, 정부가 해마다 그런 정도의 통화를 보편적 기본소득의 형태로 공급하더라도 민간부채의 증가 없이 경제활동이 매끄럽게 펼쳐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재정은 민주적으로 통제되어야 한다

필자는 신자유주의적인 재정건전성 교리에 따라 재정준칙을 제정하여 정부 재정을 운영하는 것에 단호하게 반대한다. 정부는 재난이나 경제위기에 직면했을 때 천문학적인 재정적자를 기꺼이 감수할 수 있어야 하고, 정상적인 경제 상황에서도 흑자 재정을 추구하기보다는 경제성장률을 조금 상회할 정도의 재정적자를 언제든 감수해야 한다. 경제가 성장을 하는데도, 정부가 재정건전성 관리를 위해 재정흑자를 추구한다면, 민간의 부채는 증가하고 기업과 가계는 화폐자본의 약탈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시장경제는 자본의 노동 포섭으로 인하여 공급에 비해 수요가 딸리기 마련이고, 이로 인해 언제든 과잉생산과 공황의 위기를 내재하고 있는 경제체제이다. 여기에 더하여 오늘의 시장경제에서는 민간은행에 의해 창조되는 신용화폐를 매개로 해서 모든 거래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경제성장은 민간부채의 증가를 가져오게끔 되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의 재정이 맡는 역할은 엄청나게 중요해졌다. 정부의 재정 운영은 시민을 부채의 늪에서 벗어나 건강한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하고, 생태계의 건강성과 안정성을 확보하는 가운데 생산과 소비의 거시 균형을 유지하는 조건을 확립하는 데 관심을 두어야 한다.

헌법이 규정하는 국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정부가 재정을 운영하여야 한다면, 그 재정을 운영하는 규범은 신자유주의적 기조의 재정준칙일 수는 없다. 재정 기획과 실행을 엘리트 관료들이 독점하도록 만드는 재정준칙은 결코 제정되어서는 안 된다. 기후위기와 팬데믹 이후의 경제를 이끌어가는 정부의 재정 규범은 공화주의 원칙에 따라 시민들의 사회적 합의와 정치적 합의를 거쳐 확립되어야 할 것이다. 재정은 민주적으로 통제되어야 한다. 재정의 민주적 통제를 위해서는 시민사회와 사회단체들이 참여하는 공론의 장을 거쳐서 재정 운영 규범을 민주적으로 제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규범의 실행 과정을 민주적으로 감독하는 제도를 만드는 것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미주

(미주 1) 정부 재정의 이 중요한 특성에 대한 알기 쉬운 설명으로는 전용복, 『나라가 빚을 져야 국민이 산다 - 포스트 코로나 사회를 위한 경제학』(서울: 진인진, 2020), 127f.를 보라.

강원돈(길마루글방 지기/사회윤리와 민중신학) kwdth55@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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