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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적인 운명의 최초의 여성 예언자 - 미리암 이야기

기사승인 2020.06.23  17:4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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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수일 목사의 성경 인물 탐구 12

< 1 >

출애굽 사건의 주인공은 당연히 모세이고, 모세의 누이인 미리암과 형인 아론은 조역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놀랍게도 출애굽은 모세라는 위대한 지도자 한 사람에 의해서 가능했던 것이 아니라, 수많은 여성들의 목숨을 건 신앙에 의해 가능했습니다.

우선 모세가 태어났을 때, 막 태어난 히브리 남자 아이들을 죽이라는 파라오의 명령을 따르지 않은 히브리 산파들, 성경은 이들의 이름을 기억하여 전승하고 있는데, 십브라와 부아가 아니었으면, 모세는 이 세상에서 목숨을 부지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런 명령을 내린 파라오는 람세스 2세로 추정됩니다. 출애굽기 1장 11절에서 히브리 노예들이 동원된 공사 현장, 곧 곡식을 저장하는 성읍의 이름이 ‘비돔과 라암셋’임을 볼 때 그렇습니다. 이 파라오는 이스라엘 백성의 빠른 확산을 막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을 혹독한 강제노역에 동원했는데, 한 사람이 하루에 벽돌 3,000장을 만들게 했다고 합니다. 그 노동 강도가 얼마나 혹독했을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습니다. 당시에 벽돌 한 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짚을 넣고 앞면을 굳히기 위해 3일간 말리고, 뒷면도 똑같이 3일간 말리는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이집트의 파라오는 글자 그대로 ‘위대한 집’이라는 뜻인데, 이것이 ‘가장 중요한 사람’으로 의미가 바뀌었고, 결국 모든 이집트 왕을 통칭하는 용어가 되었습니다. 파라오는 태양신 ‘라’(Ra)가 특별히 점지한 아들로서 신적 권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파라오의 명령을 어기는 결과가 무엇인지도 우리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 산파 두 사람은 파라오의 권세를 두려워하지 않고 지혜롭게 히브리 남자 아기들의 목숨을 구한 것입니다. 이 산파들의 지혜와 용기가 아니었다면, 히브리인들은 소수민족으로 전락하거나 아예 역사에서 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두 번째 출애굽 사건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여인들은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과 누이 미리암이었습니다. 요게벳은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아기 모세를 남이 모르게 석달 동안이나 길렀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숨길 수가 없게 된 요게벳은 딸 미리암과 함께 아기 모세를 갈대상자에 담아 파라오의 딸이 목욕하러 나왔을 때, 강으로 흘려보냅니다. 갈대 상자 속에서 히브리 아기를 발견한 파라오의 공주, 아기를 불쌍히 여기는 모습을 본 미리암, 얼른 달려가 아기에게 젖을 먹일 유모를 구해주겠다고 하여 모세의 친모 요게벳을 소개합니다.

모세는 파라오의 궁전에서 공주의 아들로 성장했지만, 히브리 어머니 요게벳의 젖을 먹고 자란 것이지요. 얼마까지 요게벳이 모세를 길렀는지, 그녀가 모세를 키우면서 모세에게 히브리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각인시켰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성장한 모세가, 고된 노동하는 히브리 사람이 이집트 사람에게 매를 맞는 것을 보고, 이집트 사람을 쳐죽여서 모래 속에 묻어 버린 사건이 일어나고, 그 일로 마침내 모세는 이집트에서 피난을 가게 됩니다.(출 2,11-12).

역사에 ‘만일’은 없지만, 만일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의 용기와 누이 미리암의 지혜가 아니었으면, 모세는 태어나자마자 죽을 운명이었을 것이고, 출애굽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 2 >

그리고 그 후, 모세의 누이 미리암은 출애굽 사건의 조연이 아니라 모세의 경쟁자, 혹은 모세와 대등한 여자 예언자로 등장하여 이스라엘 백성의 존경받는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미리암이 모세와 대등한 여자 예언자로 존경을 받았다는 것은 이집트 군대를 전멸시키신 주님의 크신 권능을 보고 부른 모세의 승리의 노래에 이어 곧바로 미리암의 승리의 노래가 등장하고, 모든 여인들이 그를 따라 소구를 들고 춤을 추었다는데서 알 수 있습니다(출 15,21).

여신학자 구미정은 비록 미리암의 승리의 노래가 모세의 노래보다 훨씬 짧게 전승되고 있지만, 모세의 노래의 원형이라고 합니다. 게다가 미리암을 ‘아론의 누이요, 예언자’라고 칭함으로써, 미리암은 이스라엘 역사상 최초의 여성 예언자였음이 확인된 것이지요(출 15,20).

사실 성경에서 여성을 ‘예언자’로 부른 경우는 흔하지 않습니다. 기원전 12세기에 활동한 여성 사사 드보라(사사기 4-5장), 기원전 8세기 유다 왕국에서 활동한 예언자 이사야의 아내(이사야서 8,3), 기원전 7세기 유다 왕 요시야의 종교개혁을 이끈 홀다(왕하 22,14-20), 기원전 5세기 유대교 재건에 힘씀 느헤미야에 대적한 네비아(느헤미야서 6,14) 정도가 알려진 여성 예언자였습니다.

그렇다면 미리암은 이스라엘 여성 예언자 전통의 효시로 볼 수 있고, 모세는 남성 예언자 전통의 원형이라고 하겠습니다. 성경은 남성중심의 가부장제가 엄격했던 시대, 놀랍게도 미리암에게서 모세와 아론과 평등한 민족 해방의 한 지도자를 본 것이지요. 그래서 예언자 미가도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온 지도자들을 거명하면서, 모세와 아론과 함께 미리암을 언급한 것입니다:

“나는 너희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나왔다. 나는 너희의 몸값을 치르고서, 너희를 종살이하던 집에서 데리고 나왔다.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을 보내서, 너희를 거기에서 데리고 나오게 한 것도 바로 나다.”(미가서 6,4)

미리암은 출애굽의 조역이 아니라, 당당한 주역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미리암을 모세와 동등한, 혹은 모세보다 더 나은 지도자로 보지 않는 것은 미리암이 모세를 비방했다가, 하나님의 벌을 받아 심한 피부병에 걸린 사건 때문입니다.

민수기에 의하면 모세가 구스(에티오피아) 여인을 아내로 맞아들이자, 미리암과 아론이 그 일로 모세를 비방했습니다. 그것은 모세가 이방 여인과의 혼인을 통하여 우상 숭배가 들어올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라고 추정됩니다. 그런데 미리암과 아론은 “주님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시지 않았느냐!”라고 주장함으로써, 사실상 모세와 자기들의 지도력에 차이가 없음을 표현한 것이지요.

그런데 이 말을 들으신 하나님은 “모세로 말하자면,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겸손한 사람이다.”고 말씀하시면서(민 12,3), 세 사람을 모두 회막으로 불러 세우시고, 아론과 미리암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나의 말을 들어라. 너희 가운데 예언자가 있으면, 나 주가 환상으로 그에게 알리고, 그에게 꿈으로 말해 줄 것이다. 나의 종 모세는 다르다. 그는 나의 온 집을 충성스럽게 맡고 있다. 그와는 내가 얼굴을 마주 바라보고 말한다. 명백하게 말하고, 모호하게 말하지 않는다. 그는 나 주의 모습까지 볼 수 있다. 그런데 너희는 어찌하여 두려움도 없이, 나의 종 모세를 비방하느냐?”(민 12,6-8)

진노하신 주님이 떠나가시고 구름이 장막 위에서 걷히고 나니, 미리암이 악성 피부병에 걸린 것입니다. 이에 미리암이 호소하자 모세는 주님께 부르짖었고, 하나님은 미리암을 이레 동안 진 밖에 가두었다가 돌아오게 합니다.

이 이야기는 모세의 지도력을 비방하는 이들에게 어떤 벌이 내리는지를 보여줌으로써 미리암의 지도력을 상대화하려는 성경 저자의 의도가 엿보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출 수 없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미리암에 대한 무한한 신뢰입니다. 미리암이 진 밖에 갇혀 이레 동안 있을 때, 이스라엘 온 백성은 그가 돌아올 때까지 행군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민수기 12,15).

▲ Julius Schnorr von Carolsfeld, 「Miriam's Song」 (1860) ⓒWikipedia

< 3 >

성경 속 인물들을 탐구한 이상명은 미리암을 ‘지혜와 교만의 얼굴을 한 여선지자’로 봅니다. 남동생 모세를 이집트 왕 파라오의 살해 명령으로부터 살려내고, 모세를 나일 강에서 발견한 파라오의 공주에게 생모를 유모로 주선할 만큼 수완이 뛰어난 지혜로운 여인이었지만, 모세가 구스 여인을 아내로 맞자 그것을 비방하는 경솔한 행동을 해서, 하나님의 진노로 악성피부병에 걸렸다는 것이지요.

미리암은 한 편으로 지혜로운 행동으로 모세를 살기기도 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그 지혜의 교만함으로 모세를 정죄하기도 했는데, 그것은 분별력 없는 지혜가 자신뿐만 아니라, 공동체 전체를 무너뜨릴 나균(癩菌)같은 해악을 끼칠 수 있다는 예증이고, 그런 점에서 미리암은 두 얼굴을 가진 여선지자라는 것이지요.

이상명은 미리암이 자신의 판단을 앞세워 모세의 행위를 비방한 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살만큼 경솔한 행동이었다고 하는데, 드러난 비방의 배경은 무엇이고, 왜 그 일이 하나님의 진노를 살만큼 심각한 문제였는지를 밝히고 있지 않습니다. 이상명은 다만, 미리암 이야기를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자기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마 7,3)는 예수님의 말씀에 빗대어, 다른 사람의 눈 속에 있는 티보다 내 눈 속의 들보를 스스로 찾으려는 겸허한 태도가 스스로를 성숙하게 하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살린다는 예증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미리암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민수기도 모세를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겸손한 사람”이라고 평가한다는 것입니다(민 12,3). 그래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모세는 겸손의 표상으로, 미리암은 교만의 표상으로 보인 것 같습니다.

< 4 >

그러나 최형묵은 미리암이 ‘위대한 구원자이자, 동시에 위험한 인물’, ‘금기의 인물’로 전환된 것이 ‘남성 중심적 시각을 따른 전승의 결과’라고 합니다. 이 점은 모세를 비방한 일에 미리암만이 아니라 아론도 합류했는데,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악성 피부병에 걸린 것은 미리암 뿐이었다는 것, 아론은 모세와 미리암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했다는 것을 통해서 확인된다는 것입니다.

최형묵은 미리암과 모세 사이의 갈등은 성서가 전하는 표면적인 이야기와는 달리 구원자로서의 미리암의 역할을 오히려 더 분명하게 확인해주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고 봅니다. “주님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시지 않았느냐!”(민수기 12,2)는 말은 미리암이 모세와 대등한 위치에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이 점은 출애굽 후, 모세의 승리의 노래에 이어 미리암의 노래가 함께 전승되고 있다는 점, 출애굽 과정에서 가장 극적인 사건의 현장에 등장한다는 점, 미리암이 진 밖에서 이레 동안 병에 걸려 머물러 있을 때, 그가 돌아올 때까지 백성이 행군을 하지 않았다는 점(민 12,15) 등에서도 확인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리암 이야기를 전승하고 있는 민수기는 남성중심주의 시각에 사로잡혀 미리암을 출애굽 사건의 2인자로 격하시킵니다. “예언자들에게 주님은 환상과 꿈으로 하나님은 말씀하시지만, 모세와는 얼굴을 마주 바라보고 모호하게 말씀하지 않으시고 명백하게 말씀하신다. 모세는 주님의 모습까지 볼 수 있다.”고 함으로써, 같은 예언자였지만, 결코 미리암은 모세와 같은 반열에 있지 않다는 것을 주장합니다.

그러나, 아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감출 수 없었던 것은 미리암이 최초의 여성 예언자로서, 모세와 대등한 지도력을 가지고 백성을 인도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점에서 미리암은 남성 중심주의 시각에 의해서 저평가된, 아니 의도적으로 왜곡된 비극적인 지도자, 최초의 여성 예언자라고 하겠습니다.

< 5 >

미리암은 모세를 비방했다는 이유로, 하나님의 진노로 악성 피부병에 걸렸습니다. 마치 “모태에서 나올 때에 살이 반이나 썩은 채 죽어 나온 아이처럼”(민 12,12) 되었습니다. 모세는 미리암을 고쳐달라고 부르짖어 아룁니다. 모세는 여기서도 하나님과 미리암 사이의 중재자로 등장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미리암의 얼굴에 그의 아버지가 침을 뱉었어도, 그가 이레 동안은 부끄러워하지 않겠느냐? 그러니 그를 이레 동안 진 밖에 가두었다가, 그 뒤에 돌아오게 하여라.”(민 12,14)

어쨌든 이 사건 후, 성서는 미리암을 더 이상 추적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녀의 죽음을 아주 간단하게 언급합니다: “첫째 달에,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이 신 광야에 이르렀다. 백성은 가데스에 머물렀다. 미리암이 거기서 죽어 그 곳에 묻혔다.”(민 20,1)

그 후 아론도 죽었는데, 모세는 호르 산에서 아론의 옷을 벗겨 그의 아들 엘르아살에게 입히고, 이스라엘 온 집은 아론을 애도하여 삼십 일 동안 애곡하였다고 합니다(민 20,28-29).

위대한 영웅 모세의 생명을 구하고, 출애굽을 이끈 최초의 여성 예언자의 최후치고는 너무 초라합니다. 다만 여자라는 이유 때문에, 차별받고, 죽음 이후에도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한 비극적인 운명의 여성 예언자, 그가 미리암이었습니다.

그러나 구약성서의 이름 미리암은 신약성서의 ‘마리아’와 같다니, 우리는 신약성서에 등장하는 수많은 마리아에게서 조금이라도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은 마리아, 십자가 아래의 마리아, 부활사건의 최초의 증인 마리아에게서 우리는 미리암의 부활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채수일 목사(경동교회) sooilchai@hanmail.net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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