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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다’와 ‘머문다’

기사승인 2020.05.24  16:5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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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기 목사와 함께 하는 <성서와 위로>

이에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내 말에 머물면 참으로 내 제자‘이다’. 진리를 알리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한복음 8,31-32)

여기에는 기독교인이 간과하기 쉬운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을 점차 알아듣게 되었고 마침내 그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그들에게 ‘너희가 내 말에 머물면’이라고 하시며 덧붙이시며 ‘믿는다’와 ‘머문다’를 구분하십니다.

우리가 양자의 차이를 얼른 느끼지 못하는 까닭은 양자를 모두 믿음이라는 말로 뭉뚱그려 말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믿음의 단계로 구분할 수도 있겠지만, 거기에도 위험이 따릅니다. 그 단계 이행이 자동적이지도 않고 믿기 시작한 처음 단계에 계속 있어도 된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듣고 그를 믿는다거나 또는  믿기 시작했다는 것이 그의 말에 머무는 것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관점은 정반대이지만 씨뿌리는 비유가 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길가나 돌밭 또는 가시밭은 거기 떨어진 말씀을 열매 맺을 때까지 품을 수 없습니다. 여기의 관점으로 바꾸어 말하면 말씀에 머물 수 없습니다. 말씀을 받아들아들이고 믿기 시작하나 그 말씀을 계속 품지 못하고 그 말씀에 머물지 못하면, 그 믿음은 더이상 계속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말씀에 ‘머문다’는 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말씀을 떠나지 않고 그 말씀에 남아있는 것일까요? 분명 그러한 측면이 있습니다. 이를 위해 옛사람들은 어디서나 말씀을 볼 수 있도록 눈길이 미치는 곳이면 어디에나 말씀을 써붙여 놓았습니다. 말씀을 잊지 않고 말씀을 떠나지 않기 위한 노력들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실패가 보여주듯이 그것으로는 충분치 못합니다. 그래서 말씀에 머무는 것을 보다 적극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말씀 안에 사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말하자면 단지 ‘믿는다’고 제자가 되는 게 아닙니다.

그 ‘믿음’은 제자가 되기 위한 전제입니다. 말씀 안에 머물러 ‘살기’ 위해서는 이 바탕 위에 말씀이 마음에 새겨져야 합니다(렘 31,31-34). 이러한 의미로 말씀에 ‘머무는’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제자입니다’.

그에게는 진리를 알라고 말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는 그의 마음에 새겨진 말씀을 통해 진리를 알 것이기에 그렇습니다(렘 31,34 참조). 그리고 그 진리는 자유를 가져올 것입니다.

무엇으로부터의 자유입니까? 실천의 자유입니다. 그 실천을 가로막는 죄의 근원 곧 탐심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이것은 우리를 통해 ‘말씀’이 육화되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읍니다.

‘우리는 주님의 제자입니다.’라고 감히 스스로 고백하지 못하지만 그렇게 인정해주실 주님 앞에서 평화를 얻는 오늘이기를. 우리 속에서 역사하시는 진리에 힘입어 우리를 지배하고 억누르는 우리의 탐욕을 넘어 자유의 나라로 향하는 이날이기를.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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