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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를 극복하는 길

기사승인 2020.03.26  17: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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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기 목사와 함께 하는 <성서와 위로>

예수께서 그들 모두에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곧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누가복음 9,23)

자주 대하고 자주 하는 말이지만 그때그때마다 늘 새롭기만 합니다. ‘따름-부인-십자가-따름’의 구조는 자기를 부인하는 것과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 사실상 같은 내용의 말을 하고 있습니다. 뒤엣 것은 앞에 것의 설명임을 보여줍니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주님을 따르기 위해 부인해야 할 자신의 모습이 무엇일지요? 뭉뚱그려서 말한다면 주님을 따르며 사는데 장애가 되는 나의 모든 것이 되겠지요.

주님은 바로 앞에서 자신의 십자가 죽음을 이야기하십니다. 죽음의 길을 가는 주님을 따라야 한다면, 생의 욕구가 나를 사로잡을 수 있고 그러면 나는 그가 그 길을 가지 않도록 하려고 애를 쓸 것입니다. 주님의 길을 방해하는 나의 욕구를 부정하지 않으면 그를 제대로 따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욕구에 충실하면 할수록 나는 하나님 앞에서 오히려 생명을 잃는 자가 되리라고 주님은 경고하십니다. 과연 우리의 욕구가 주님의 뜻과 충돌하고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어지게 할 때 우리의 기본적인 생의 욕구를 부인할 수 있을까요? 이러한 나를 부인하는 것이 내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러한 욕구가 곧 내가 짊어져야 할 나의 십자가입니다. 바울은 이를 좀더 극적으로 표현합니다. 내가 십자가에 못박혔다고(갈 2,20).

생의 욕구가 문제되는 경우는 실제로 매우 드물고, 보다 자주 문제가 되는 것들로는 경건치 않은 것과 세상적인 욕심이 있습니다(딛 2,12). 이것들이 우리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임을 인식할 때 우리는 그것들이 우리를 지배하지 않도록 억제할 수 있고 십자가에 못박을 수 있습니다(갈 5,24). 주님께서는 우리를 단련시키시되 이러한 것들을 부인하는 자로 선한 욕구를 따르며 경건하게 살게 하십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주님의 은총입니다.

현재 코로나19의 가장 파괴적 영향은 그것이 계속되면 사람들이 서로를 잠재적 질병전파자로 보고 그에 따라 사회적 거리 이상으로 서로를 멀리 하고 스스로 또 강제적으로 고립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때 어떻게 해야 할런지요? 우리들이 부인해야 할 우리의 모습은 무엇인지요?

원론적으로 말하면 우리 자신이 질병 전파자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는 한편 사람들과 사람들을 잇는 사랑의 띠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이 두려움을 이기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사람들을 고립된 섬에 갇히지 않게 하고 그 섬에서 벗어나게 할 것입니다. 사랑의 띠가 되어 사랑으로 묶는 우리가 되도록 주님께서 우리를 훈련시키십니다.

사람들에게서 멀어지려는 우리를 부인하고 우리에게 오신 주님을 따르는 오늘이기를. 너 없이 나만 살 수 있는 양 착각하게 하는 '땅의 지혜'를 십자가에 못박고 사랑의 띠를 손에 잡는 이날이기를.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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