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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딱한 마음(요엘 2:1-17)

기사승인 2019.12.10  17:3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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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천히 걷자

예언자 요엘이 대언하는 “여호와의 날”은 최후의 심판에 관해 흔히 알려진 이미지 그대로 무섭고 위협적인 날입니다. 하나님의 군대가 천지를 뒤흔드는 무시무시한 굉음과 함께 등장하며(5절), 그 위압감이 하늘의 해와 달과 별의 빛을 가릴 정도입니다(10절).

여호와의 날이 이처럼 위협적인 모양으로 나타난 이유는 분명합니다. 도무지 하나님께 돌아올 줄 모르는 백성들에게 심판의 실재(實在)와 실제(實際)를 일러둠으로써 마음을 돌이켜 여호와께 돌아올 기회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위화감을 조성하여 폭력적인 방식으로 잘못을 뉘우치게 하는 것은 상당히 거북스러운 일입니다. 특히나 수준 높은 인문/사회과학을 섭렵한 현대인들에게 이런 방식의 회개요청은 격한 거부와 경멸의 대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호와의 날에 임하는 심판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하여 조금 더 세심한 묵상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 단단한 껍질 속에 있다고 해서 상처받지 않는 것이 아니다. ⓒGetty Image

13절의 말씀을 바탕으로, “상처”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심판의 의미에 대해 묵상해보면 어떨까 합니다.

변화는 귀찮고 피곤한 일일 수도 있지만 두려운 일일 수도 있습니다. 특히, 자기 잘못을 시인하고 그 잘못을 고치려고 노력하다 보면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되곤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애초에 “난 원래 이래”라는 말로 변화를 거부해버리곤 합니다.

그런데 상처받지 않으려는 마음 때문에 변화 자체를 거부해버리는 것은 신앙의 성장을 가로막는 매우 중대한 장애물입니다. ‘마음이 딱딱해졌다’는 표현이 이런 상황에 어울리는 표현이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려 하실 때 먼저 그 마음을 부드럽게 하겠다고 하셨던 것을 기억해보면(겔11:19) 이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마음이 딱딱하게 굳어버리기 전에 찢어서 피가 흐르게 해야 합니다(13절). 자신이 무생물이 아니라 살아있는 존재임을 확인해야 하는 것입니다. 상처받지 않으려고 마음을 딱딱하게 만드는 것은, 죽지 않으려고 돌이나 플라스틱 같은 무생물이 되고자 하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회개의 요청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직접 오셔서 하더라도 듣기 싫은 말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변화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듣기 싫은 말이라도 자신에게 필요한 말이라면 그 말을 받아들이고, 자기 마음에 상처가 나는 것을 무서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호와 라파’께서 결국은 어루만져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예언자 요엘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요청이라고 묵상해 볼 수 있겠습니다.

여상범 목사(제주노회) uptiger@hanmail.net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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