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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김과 봉사2: 이유 없이 미움당하리라!(수 24:14-28 행 3:22-26 요15:18-27)

기사승인 2019.10.11  19: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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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조절 일곱째 주일(10월13일)

1. 천국과 지옥의 전화번호

최근에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천국에도 전화가 있고 지옥에도 전화가 있어서 좌석 예약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우리 교회 교인들에게만 비밀을 공개합니다(그리고 에큐메니안 독자들에게도). 천국의 전화번호는 66-3927이고, 지옥의 전화번호는 11-1111입니다. 천국전화번호가 66-3927인 이유는 구약성경의 권수 39와 신약성경의 권수인 27을 합한 66이 국번이 되고, 39와 27이 그 고유번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옥의 전화번호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고집대로 자기 생각만 하는 11-1111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천국의 전화번호보다는 지옥의 전화번호가 훨씬 외우기가 쉽습니다. 따라서 지옥 좌석 예약자들이 천국의 좌석 예약자들보다 더 많다고 합니다.

사실 천국 좌석을 예약하려면 성경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고, 또 성경 말씀대로 사랑을 실천해야 하니까 힘이 듭니다. 그러나 지옥 좌석은 자기 마음대로, 자기 고집대로 살면 되니까, 지옥 좌석 예약은 쉬울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세 본문 말씀은 천국의 전화번호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것은 곧 섬김과 봉사의 삶이겠죠?

그러나 구약의 말씀은 천국의 전화번호를 받았고, 알았으나 그것을 지키지 못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 관한 말씀이고, 사도행전의 말씀은 사도 베드로의 설교로, 천국의 전화번로를 알고 지켰던 한 선지자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 선지자는 베드로에 따르면, 예수님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천국의 전화번호대로 섬기고 봉사하며 살면 지옥의 전화번호를 가진 이들에 의해 미움을 당한다는 것을 복음서의 말씀을 통해 보여줍니다. 곧, 섬김과 봉사의 사명을 감당하는 예수님의 제자들은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2. 질투하시는 하나님

여호수아 24장은 여호수아의 고별사입니다. 이 고별사에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만을 섬기도록 신앙서약 하도록 만듭니다. 백성들로 하여금 그들을 위해 베푸신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깨닫고, 그 분만을 섬기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 때로 돌아가 여호수아의 고별설교를 들어 볼까요?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수 24:14-15)

그때 분위기가 어떠했는지 몰라도, 백성들은 여호수아의 말을 수용합니다.

“백성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결단코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기를 하지 아니하오리니, 이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친히 우리와 우리 조상들을 인도하여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올라오게 하시고, 우리 목전에서 그 큰 이적들을 행하시고 우리가 행한 모든 길과 우리가 지나온 모든 백성들 중에서 우리를 보호하셨음이며 여호와께서 또 모든 백성들과 이 땅에 거주하던 아모리 족속을 우리 앞에서 쫓아내셨음이라. 그러므로 우리도 여호와를 섬기리니, 그는 우리 하나님이심이니이다 하니라.”(수 24:16-18)

백성들은 하나님을 출애굽의 하나님, 이적을 행하시는 하나님, 그들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으로 고백하며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너희는 하나님을 섬기지 못할 것이라 말하며, 하나님을 ‘거룩하신 하나님, 질투하시는 하나님’으로 소개합니다. 말씀을 볼까요?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여호와를 능히 섬기지 못할 것은 그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시오,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 너희의 잘못과 죄들을 사하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만일 너희가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 신들을 섬기면, 너희에게 복을 내리신 후에라도 돌이켜,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시고 너희를 멸하시리라 하니” (수 24:19-20) 백성들은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아니니이다! 우리가 여호와를 섬기겠나이다(수 24:21).”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여호와를 택하고 그를 섬기리라 하였으니, 스스로 증인이 되었느니라 하니, 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증인이 되었나이다 하더라(수 24:22).”라고 말합니다.

곧, 이스라엘 백성 스스로가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겠다는 선택에, 증인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남을 보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자신의 보증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증거로 세겜 지역에서 큰 돌 하나를 상수리나무 아래에 증거물로 세우게 됩니다.

“여호수아가 이르되, 그러면 이제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들을 치워 버리고 너희의 마음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향하라 하니, 백성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우리가 섬기고 그의 목소리를 우리가 청종하리이다 하는지라. 그 날에 여호수아가 세겜에서 백성과 더불어 언약을 맺고, 그들을 위하여 율례와 법도를 제정하였더라. 여호수아가 이 모든 말씀을 하나님의 율법책에 기록하고, 큰 돌을 가져다가 거기 여호와의 성소 곁에 있는 상수리나무 아래에 세우고,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보라! 이 돌이 우리에게 증거가 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하신 모든 말씀을 이 돌이 들었음이니라. 그런즉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을 부인하지 못하도록 이 돌이 증거가 되리라 하고, 백성을 보내어 각기 기업으로 돌아가게 하였더라.”(수 24:23-28)

세겜은 예루살렘 북쪽 약 62km 지점에 있습니다. 모세가 출애굽한 이후에 축복과 저주의 메시지를 선포한 그리심 산과 에발 산 사이의 골짜기 성읍입니다. 사실 세겜 주변은 사람이 살지 않는 산들이 있었기 때문에 하비루(Habiru, Hapiru, Apiru, 메소포타미아 도시 국가에서 성 밖의 사람을 부르는 말)와 같은 도망자, 범죄자들이 몸을 피신한 곳입니다. 종교,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중심지입니다.

<왼쪽 그리심산과 오른쪽 그발 산 사이에 있는 세겜 지역 모습>

나중에 이스라엘이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갈라지기 전,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남유다의 왕이 된 후, 북 이스라엘 지파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세겜으로 갑니다(왕상 12:1). 그러나 북이스라엘 사람들을 만난 르호보암은 아버지 솔로몬의 멍에 보다 더 무거운 멍에를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부여함으로, 북이스라엘 사람들은 르호보암을 따르지 않고, 대신 에브라임 사람 여로보암을 세겜에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추대합니다. 이것은 선지자 아히야에 의해 예언된 것입니다(왕상 11:30-31). 그리고 여로보함은 세겜을 북 이스라엘의 수도로 삼습니다.

<상수리나무>

신약 시대에는 사마리아인들이 그리심 산을 합법적인 예배 장소로 생각하여 그곳에 신전을 짓게 됩니다. 따라서 세겜 지역은 하나님과 계약을 맺은 중요한 곳입니다. 또한 상수리나무는 참나무 등으로 표현되는 도토리나무입니다. 고대 근동에서 신적 계시를 받는 용도로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겜에서 언약을 맺습니다. 하나님만 섬기고, 또 제사장의 나라가 되어, 이웃나라에 봉사하는 민족으로 살겠다고 다짐한 것입니다. 이것은 천국의 전화번호를 받았고,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것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3.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이렇게 구약의 말씀이, 이스라엘 민족을 섬김과 봉사의 민족으로 하나님께서 언약을 맺고 세우셨다면, 오늘 사도행전에서 사도 베드로는 모세를 인용하며, 그 섬김과 봉사의 직무를 한 선지자로 연결시킵니다.

“모세가 말하되,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의 모든 말을 들을 것이라. 누구든지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멸망 받으리라 하였고, 또한 사무엘 때부터 이어 말한 모든 선지자도 이때를 가리켜 말하였느니라.”(행 3:22-24)

잘 아시다시피, 사도행전의 말씀은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에 벌어진 일입니다.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가던 베드로와 요한은 성전 입구에서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일으켜 걷게 만듭니다. 그리고 이 사건을 계기로 백성들에게 복음을 증거 합니다. 본문은 베드로가 솔로몬 행각에서 행한 설교의 한 부분입니다.

죽임을 당했지만,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께서 바로 모세가 말했던 선지자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과 맺은 계약처럼,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그 계약을 완성하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요, 그렇지 않는 자들은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선지자의 자손들인 이스라엘 백성의 사명을 다시금 상기 시킵니다. 그것은 바로 언약의 자손으로, 모든 족속들에게 복을 베푸는 민족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악함을 버리라고 합니다.

“너희는 선지자들의 자손이요, 또 하나님이 너희 조상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의 자손이라, 아브라함에게 이르시기를, 땅 위의 모든 족속이 너의 씨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셨으니, 하나님이 그 종을 세워 복 주시려고 너희에게 먼저 보내사, 너희로 하여금 돌이켜 각각 그 악함을 버리게 하셨느니라.”(행 3:25-26)

4.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리라

구약 여호수아의 고별사와 서신서의 베드로 설교의 핵심은 ‘섬김과 봉사’입니다. 아브라함의 씨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복을 받을 것이니, 악함을 버리고 하나님의 종, 예수 그리스도의 섬김과 봉사를 본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사랑을 실천하고, 섬김과 봉사의 삶을 살면 이 세상에서 존중 받지 못합니다. 오히려 이유 없이 미움을 받습니다. 그것이 세상입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이 그것을 잘 보여줍니다. 말씀을 볼까요?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요 15:18-19)

세상에 속하지 않고, 예수께 속했기 때문에 세상이 미워한다는 것입니다. 어둠은 빛을 싫어합니다. 불의는 정의를 집어 삼킵니다.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 그러나 사람들이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하리니, 이는 나를 보내신 이를 알지 못함이라.”(요 15:20-21)

따라서 예수님은 그들의 죄를 드러내실 것입니다. “내가 와서 그들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요 15:22).”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합니다. 적폐세력들은 회개할 줄 모릅니다. 그러나 종은 주인보다 크지 못합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미워하는 자는 또 내 아버지를 미워하느니라. 내가 아무도 못한 일을 그들 중에서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그들에게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들이 나와 내 아버지를 보았고 또 미워하였도다. 그러나 이는 그들의 율법에 기록된 바, 그들이 이유 없이 나를 미워하였다 한 말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요 15:23-25)

세상은 이유없이 선한 일을 하는 이들을 미워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선한 사역에 지치지 말고, 또한 섬김과 봉사의 직분을 포기하지 말고, 힘써서 행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진리의 성령과 함께 우리는 예수님의 증언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이 예수님의 보증이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명의 전화번호는 11-1111이 아니라, 66-3927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시며 우리를 위로하십니다.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언하느니라.”(요 15:26-27)

5. 조광조와 조국: 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

2019년은 기해년(己亥年)입니다. 500년 전 1519년은 기묘년(己卯年)이었습니다. 기묘사화(己卯士禍)로 유명하죠? 현재 기해년에 언론과 검찰, 야당에 의해 박해받는 조국(曺國) 법무부장관과 같은 성(한자로는 다릅니다만)인 조광조(趙光祖, 1482~1519)가 500년 전 박해받은 해입니다. 배경을 볼까요? 연산군의 폭정에 신하들은 훈구파(勳舊派, 공신)나 사림파(士林派, 유림 선비) 할 것 없이 언제 목이 날아갈지 모르는 상황이었으며, 백성들 역시 연산군의 사치와 향락에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훈구파는 조선 초기 세조의 집권을 도와, 공신이 되면서 정치적 실권을 장악한 귀족적 관료학자들입니다. 그리고 사림파는 훈구파의 대척점에 있는 재야의 정치 세력입니다. 유림 선비를 뜻합니다.

<조선 중기의 문신, 조광조>

결국 진성대군을 왕위에 올리는 ‘중종반정’(1506년)이 일어났고, 연산군은 폐위되었습니다. 이로써 조선 초기 강력한 왕권 시대는 종지부를 찍게 됩니다. 중종 시대부터 조선은 이제 신하들의 권력인 신권의 힘이 강해졌습니다. 지금 검찰의 권력이 그렇죠? 아무튼 중종은 유교적 도학정치를 부활시키고, 자신을 왕위에 올려준 신하들과 사림파들을 적극 등용합니다. 그 대표적인 이가 바로 사림파의 조광조입니다. 조광조는 성리학을 조선에 보급시키려 지방 마을(향촌)마다,  권선징악과 상부상조를 목적으로 만든 향촌규약인 향약(鄕約)을 보급합니다. 이것은 지방에서 사림파의 지위를 강화시키게 됩니다.

또한 현재의 과거시험은 사람의 행실을 알 수 없고, 글재주로만 인재를 뽑는다고 생각해, 인재 추천제도인 ‘현량과(=천거제)’를 실시해, 인재를 등용하게 했습니다. 그러자 지방에 숨어살던 사림파들이 조선 중앙정계로 나왔습니다. 사실 조광조는 사림파들이 꿈꾸던 유교적 이상 정치를 구현하려 했습니다. 특히 조광조는 깨끗한 정치를 추구하며 이전 중종반정 때 공신 작위를 받았지만, 실제 반정에 참여가 없었던 자들의 공신 직을 회수하자는 주장을 하였습니다. 이것을 역사는 ‘위훈삭제(僞勳削除)’라고 합니다.

결국 개혁에 전면적으로 나서는 조광조와 사림파들을 시기 질투하던 훈구파들과 신하들은 조광조와 사림파를 몰아내려고 작당합니다. 이들은 나뭇잎에 꿀을 발라서 벌레들이 나뭇잎을 갉아 먹게 해서 ‘주초위왕(走肖爲王)’ 곧 ‘조(趙)씨가 왕이 된다’라는 글씨를 새겼고, 이 나뭇잎을 본 중종은 깜짝 놀라 조광조와 진보적 사림파들을 죽이거나 귀양 보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기묘사화, 곧 ‘기묘년의 선비들의 재앙’입니다. 이러한 조광조의 성리학은 조선의 대학자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에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고려 정몽주로부터 이어지는 사림의 계보>

자, 그럼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중종은 왕권이 약화된 불안정한 상황에서도 좋은 임금이 되려고 노력했지만, 쉽지가 않았습니다. 조광조가 제거 된 후, 국내 정치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중종 15년인 1520년 10월 16일 『중종실록』에 실린 사관의 평가입니다.

“조광조 등이 힘을 쓰고 있을 때는 탄핵과 논박(論駁)이 크게 이루어졌으므로, 조정의 재상들이 주현(州縣, 지방 행정 구역의 명칭인 주와 현)에 요구할 수 없었고, 주현의 관원들도 역시 각자 자신을 단속하였기 때문에 백성들이 침탈당하는 걱정이 없었고, 조정에도 뇌물을 주고받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이때에 와서 사류(士類, 학덕이 높은 선비의 무리)가 화를 당하자 청렴한 절조가 따라서 무너졌고, 조정은 더러운 재물을 탐내게 되었고, 군현도 그 풍조를 휩쓸려 도무지 법도라고는 없었다.”

당시 외부적으로도 북방에서는 여진족들이 다시 일어나고, 남방에서는 왜구(일본해적) 들의 침략이 일어났던 상황입니다. 중종 5년인 1510년에 부산포, 염포, 제포 세 개의 포(항구)에서 왜란이 일어나게 되는데(삼포왜란) 진압이 되기는 했지만, 나라의 위기였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죠? 일본의 경제 보복으로 외교적으로 정신이 없는데, 정치와 언론은 온통 조국장관 문제로 정신이 없습니다. 이렇게 500년 전에도 개혁이 물거품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후, 조선은 내리막길을 가게 되죠?

11대 중종 이후, 12대 인종은 즉위 8개월 만에 병사했습니다. 13대 명종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종의 둘째 아들이며 인종의 이복동생인데, 어머니 문정왕후와 왕후의 동생인 윤원형과 요부 정난정의 무소불위의 권력행세와 전횡 속에서 살았습니다. 1545년(명종 즉위년)에 일어난 을사사화(乙巳士禍)는 연산군이 일으킨 무오사화(戊午士禍)와 갑자사화(甲子士禍), 그리고 중종 때 조광조를 제거하고자 남곤(南袞) 등이 일으킨 기묘사화(己卯士禍)와 더불어 조선의 4대 사화로 불립니다.

그리고 14대 선조 때는 임진왜란으로 조선은 고통을 당하고, 16대 인조 때는 병자호란으로 삼전도의 치욕을 당합니다. 잠시 21대 영조, 22대 정조 시대(정조 말기는 미국이 독립할 때입니다)’에 부활의 빛을 발하다, 이후 세도정치(勢道政治)와 붕당정치(朋黨政治)로 분열되었고, 다시금 조선은 일제에 의해 짓밟힙니다. 세도정치는 조선후기 특히 19세기에 한 명 혹은 극소수의 권세가를 중심으로 국가가 운영되던 정치형태를 말합니다. 그리고 붕당정치는 의리와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붕당을 결성하여 자신들의 당론을 매개로 국정의 주도권을 획득하려 하는 정치 체제를 말합니다. 사실 정의의 반대는 불의가 아니라, 의리입니다. 지금도 이 의리 때문에 교회가, 교단이, 나라가 정의로운 길로 나아가는데 참 많이 힘듭니다.

결국 이러한 관료의 타락은 백성들에 대한 침탈로 이어집니다. 사림의 개혁이 실패로 끝나자, 백성들이 고통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것은 외세의 침략에 무기력한 나라의 모습으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그렇게 이 나라와 민족에 고통을 준 이들은 지금도 자신들의 배만 채우려고 합니다.

저 개인적으로 오늘의 조국이 500년 전 조광조와 같이 무너지지 않고, 개혁을 단행할 때, 우리 대한민국은 새롭게 변화될 것이라 믿습니다. 불의한 검찰세력들은 언론과 몰지각한 야당(조선 초기 훈구파이자, 중기에 선조의 즉위를 계기로 등장한 사림파, 나중에 노론 세력이죠?)과 결탁하여 개혁을 무마시키려 합니다. 500년 만에 기회가 돌아왔습니다. 새로운 세상으로 가느냐! 500년 전 그 과오를 되풀이 하느냐? 칼 마르크스는 ‘정치학의 자본론’이라 평가 받는 『루이 보나파르트 브뤼메르 18일』 (비르투, 2012)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 한번은 희극으로, 한번은 비극으로!” 500년 전 역사가 비극이었다면, 지금은 희극으로 반복되어야 할 것입니다. 해피엔딩으로 끝나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은 세상으로부터 이유 없이 미움을 당합니다. 왜냐하면 어둠은 빛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제자들은 섬김과 봉사의 길을, 생명과 정의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의 조국은 ‘비극의 역사’를 ‘희극’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그때 새로운 세상이 올 것입니다! 그러한 새 세상을 사모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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