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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 속 갈림길

기사승인 2019.04.19  18:3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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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며 묵상하며

25 그런데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예수의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사람 마리아가 서 있었다. 26 예수께서는 자기 어머니와 그 곁에 서 있는 사랑하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하고 말씀하시고, 27 그 다음에 제자에게는 “자,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 때부터 그 제자는 그를 자기 집으로 모셨다.(요한복음 19:25~27/새번역)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 하면 떠오르는 예술작품은 무엇일까? 많은 이들이 성베드로 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Pieta를 빼놓지 않을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처절한 고통 가운데 죽어간 아들의 주검을 받아 안은 마리아를 이보다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깊은 영감의 근원이 되는 작품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전혀 다른 모습의 마리아가 깊은 울림을 전해줍니다. 엘리자베스 프링크(Elisabeth Frink, 1930~1993)의 “걷고 계신 성모님”(Walking Madonna, 1981)입니다. 영국 솔즈베리 대성당 앞마당에 있는 작품입니다. 제목을 보지 않으면 마리아인지 알아보기 힘들만큼 낯선 모습입니다. 피에타처럼 곱고 아름다운 여인이 아닙니다.

▲ 엘리자베스 프링크(Elisabeth Frink, 1930~1993), “걷고 계신 성모님(Walking Madonna)”(1981, 청동) ⓒ최정선의 현대 그리스도교 미술 산책 (25)

삶의 거친 풍파를 겪으며 늙고 여위어 간 여인의 모습입니다. 힘없고 가난한 이들의 늙어가는 어머니들을 보여주는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성당을 뒤로 하고 세상으로 나아가는 모습입니다. 예배를 드리러 들어가는 사람도, 마치고 나오는 사람도 마주칩니다.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그녀를 만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 가녀린 팔과 발의 선에는 굳은 의지가 서려있습니다. 마리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주검을 안고 울고만 있었을까? 부활한 그리스도가 향한 갈릴리로 나아갔을 것입니다. 아들을 만날 수 있는 곳, 하나님 뜻을 이루는 삶의 자리로 나아가지 않았겠습니까.

십자가에서 죽어가던 예수님도 어머니 마리아에게 새로운 만남을 열어주고 계십니다. 스승을 잃은 제자를 아들로 만나는 길입니다. 그 제자가 곱게만 보였을까? 십자가 앞이니 배신하고 도망 간 제자는 아닐지 모릅니다. 그래도 함께 싸우며 막아주지 않은 제자입니다. 어머니를 모시는 일을 등지고, 어머니보다 더 사랑한 것처럼 보이는 제자입니다. 서운함, 질투, 분노로 바라본다 해도 이상할 게 없습니다.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고 해도 너무나 큰 상실감과 상처는 견딜 수 없는 분노를 쏟아낼 대상을 찾게 마련입니다. 그런 제자를 아들로 만나게 하십니다.

피할 수 없는 고난과 괴로움은 늘 갈림길입니다. 그 앞에 주저앉아 분노할 수도 있습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일어나서 길을 가야합니다. 살아가야 합니다. 그 십자가를 어디에 쓸지 선택하여 나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아들을 잃은 상실감, 스승과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한 자책감… 그 괴로움에 어떤 의미를 담아서 나아갈지 선택해야 합니다. 상실감과 자책감으로 분노의 칼날을 세울 수도 있지만, 함께 아파하며 함께 사랑할 수도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길이셨고 길벗이셨습니다. 티켓이나 보험이 아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길을 가시며 길로 부르십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를 길로 삼는 가능성을 열어 보여주셨습니다. 고통을 더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의미의 상실입니다. 그 고통에서 의미를 빼앗길 때입니다. 어떤 길에서도 빼앗길 수 없는 의미, 그 길로 주님 부르십니다. 어머니와 제자를 하늘 가족으로 만나게 하시듯, 함께 아파하며 함께 사랑하는 길에서 기다리십니다.

하태혁 목사(단해감리교회) devi3@naver.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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