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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허무주의 극복을 위한 노력

기사승인 2019.02.24  19: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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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무주의 시대에 지피는 영성의 불꽃 (3)

앞으로 전개될 『허무주의 시대에 지피는 영성의 불꽃』이라는 제목에서 천명하고 있듯이 우리는 허무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영성을 제안한다. ‘영성’이라고 말하면 벌써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한다. 영성으로 뭘 어쩌겠다는 것인가 라고 말이다.

이미 시작된 영성의 시대

그렇지만 이미 20세기 후반부터 많은 세계적인 지성인들이 인류의 구원을 위해 이제 인간은 자기 자신의 능력을 재고해야 한다고 이야기 했다. 그러니까 기술과 과학이 극에 이른 현대가 과연 인류에게 행복을 약속해 주고 있는가? 인류에게 구원을 약속하고 있는가?

오히려 기술 문명의 최고점에 올라선 현대에 인간은 의미를 찾지 못하고 오히려 자살을 생각한다. 아니러니 하게도 잘 산다는 나라일수록 자살율이 높다. 그것은, 인간은 빵이 아무리 많아도 의미가 없으면 차라리 죽음을 택한다고 한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이 맞기 때문이다.

비록 자살을 택하지 않더라도 마약, 알코올, 순간적인 쾌락을 쫓아 순간 순간을 죽여 가는 그러한 삶을 살게 된다. 이것은 서구 문명이 너무 정신적인 것을 몰아내고 오로지 물질적인 것만을, 돈, 쾌락, 욕망, 소유, 소비 등등을 전면에 부각시킴으로 해서 등장하게 되는 역사적인 추세다.

위대한 역사학자 토인비(Arnold J. Toynbee, 1889-1975)는 지금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유럽문명에 커다란 약점이 있음을 환기시킨다. 지금 세계를 정복한 듯 보이는 유럽문명은 그 힘을 오직 물질 문명적 측면에서만 길어내고 있다고 말한다. 단지 과학기술로 전세계의 물질적인 면만을 장악하고 있을 뿐, 거기에는 정신적인 원리가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이 정신적인 원리의 결여, 그것이 큰 공백을 만들고 있고 그 공백이 
‘무(無)’라는 망령으로 우리 자신을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이 무의 망령을 퇴치하기 위해서 우리가 쫓아 낸 신적인 것, 성스러운 것, 이것을 다시 찾아와야 한다. 그러니까 인간의 능력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여태까지 인간은 이성적인 능력, 그 중에서도 계산해 내는 능력, 셈할 수 있는 능력,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 그래서 눈앞에 세워 가지고 그것을 조종하고 지배할 수 있는 능력, 내 것으로 만들어 쾌락을 도모할 수 있는 능력, 이러한 물질적인 것, 존재자적인 차원만을 극대화 시켰다.

그러나 그것 외에 인간에게는 다른 능력도 있다. 그 다른 능력이 바로 영성, 이성에 반대 급부인 또는 이성적인 차원이 접근할 수 없다고 하여 외면하였던 다른 차원으로서의 영성적인 차원이다. 토인비는 21세기는 새로운 영성의 시대, 새로운 종교성의 시대가 되어야 한다고 얘기한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영성

포스트모더니스트들도 바로 이러한 탈근대로써 주장하고 있는 것은 이성이 아닌 다른 것, 우리가 이성적이 아니라 해서 외면했던 것들을 다시 부각시켜 보자는 추세로 가고 있다. 이성이 아닌 다른 것, 그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광기, 폭력, 섹스다.

▲ 현대를 규정하는 대표적인 단어는 포스트모던과 다원주의이다. 보수 우익 개신교측은 이 시대 규정을 거부하고 있다. 그러나 이 두 용어로 대표되는 현대를 긍정하고 수용할 수 있는 새로운 모험을 위한 용기가 필요하다. ⓒGetty Image

그래서 그들은 바로 이것들에 대해 새롭게 접근하고 새롭게 해석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들이 보고 있는 이성이 아닌 다른 것으로서의 이러한 것들도 전부가 아니다. 이성적인 현실이 아닌 다른 현실이 있다.

그것은 예컨대 종교적, 도덕적, 예술적인 현실이다. 이러한 것들이 이성으로 접근할 수 없다고 하여 서서히 하나씩 하나씩 배제되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종교, 도덕, 예술적인 현실에로의 접근을 가로막았던 인간의 잘못된 태도는 무엇보다도 무(無), 공(空), 허(虛) 그래서 없다고 배제한 현실의 영역에 대한 잘못된 관계맺음이다.

이제 우리가 무·공·허, 그래서 없다고 생각한 그것, 그 없는 것, 즉 무가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그 없는 것에 대한 경험의 가능성을 새삼 새롭게 인정하고 거기에 어떻게 이를 수 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럴 경우 우리가 간과했던 새로운 현실이 열리고 우리에게 새로운 삶의 가능성이 주어질 것이다.

동양적 영성을 이야기 하자

바로 이 점에서 동양 사람들 특히 한국 사람들이 이제 숨겨진 재능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본다. 서양은 이성 중심적 추세로 발달되어 왔고 그래서 서양 사람들에게는 무엇보다도 이성적인 능력이 극도로 잘 발달되었다. 이에 비해 동양 사람들, 특히 한국 사람들은 어쩌면 이성적인 능력이 서양사람 만큼 잘 발달하지 못했다.

서양은 근대화를 거치면서 모든 것이 모든 면에서 합리적이 되어 서양 사람들은 이제 그렇게 합리적으로 된 투명한 유리병 속에 살기가 싫다고 하며 유리병을 깨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다르다. 우리의 지난 반만년의 역사 그리고 근대화가 시작된 지난 100년의 역사 속에서 우리는 서양사람처럼 그렇게 합리적이 된 적이 한번도 없었다.

우리의 생활이, 생활세계가 유리그릇처럼 투명해 본 적이 없었다. 그 투명을 배우자고 지금 사방팔방에서 경제적, 정치적, 종교적인 투명을 이야기하지만, 우리는 지금 온통 부정부패에 시달리고 있다. 바로 이성적인 차원에서 본다면 한국은 모든 면에서 실패작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 인류가 이성이 아닌 다른 차원을 찾으며 그래서 영성적인 차원을 찾아야 하는 시대에 들어서고 있기 때문에, 한국사람들이 서양사람들이 갖지 못한 새로운 능력으로 인류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고 말할 수 있다.

다원주의 시대의 새로운 문법을 찾자

20세기 말,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사람들은 흔히 ‘3F 시대’를 이야기한다. 이 3F란 ‘Feeling’, ‘Female’, ‘Fiction’, 즉 감성, 여성, 가상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감각, 여성이 강조된다고 한다면 근대화가 이룩해 논 일면적인 발전인 이성중심, 인간중심, 서양중심, 남성중심의 경향에서 벗어나 이제 감각에도 기회를 주고, 여성적인 차원도 키우고 더 나아가 영성적인 차원도 키워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서양 사람들이 자기들 것만이 절대라고 생각한 “절대중심”에 의해서 지금까지는 이 중심에 끼지 못한 주변이 소외 되었는데, 이러한 절대중심이 무너지면서 이제 다중심 시대인 다원주의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다원주의 시대를 살아갈 삶의 문법을 찾아라! 이것이 현대인들이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의 하나다.

한스 큉은 이 점을 “종교 평화 없이 세계 평화 없다”라는 말로 표현했다. 서양 중심 속에서는 유일한 종교인 기독교에 의한 세계 구원만이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되었다. 이제는 그런 잘못된 선입견에서부터 벗어나야 한다.

이제는 무엇보다도 종교들 간의 평화, 관용 그리고 상호 인정이 필요한 시대다. 평화를 외치는 종교가 평화를 막는 장애요인이 되지는 말아야 한다.

이기상 명예교수(한국외대) saemom@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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