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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는 민중을 창조한다

기사승인 2018.09.22  21:3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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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훼 하나님, 권력을 해체하는 오직 하나의 신

신명기 6장 4절을 민중의 탄생을 증언한다. “야훼는 하나이다”<야훼 엑하드 יְהוָה אֶחָד>라는 선언은 신명기 6:4에 단 한 차례만 언급되는 희귀한 선언이다. 기독교 신학자들은 유일신 신앙을 오래 동안 그토록 중요하게 강조해왔는데 정작 오경 자신은 이 선언을 단 한 차례만 언급했을 뿐이다. <엑하드>란 말에 담긴 뜻을 아무리 곱씹어 보아도 신비한 느낌은 여전하다.

1. <엑하드>는 모든 존재자를 발출하며 모든 존재자를 내포한다

<엑하드>는 ‘일(壹)’ 내지 ‘하나’란 뜻이다. 수학으로 보자면 1은 모든 수의 기본 요소이며 물리학으로 보자면 1은 모든 존재자의 개체를 가리킨다. 눈금자에서 1은 무한수로 나눌 수 있기에 1 안에는 또 다른 1이 무한하게 내포되어 있다. 눈금자에서 2, 3, 4로 계속 세어나가고, 마이너스 방향으로 -2, -3, -4로도 무한히 나아갈 수 있다. 이 모든 1의 존재자들을 포함한 피조계 전체로서의 1도 존재하기에 1은 만물 자체이며 모든 개체로 상상할 수 있는 무한수이다.

그러므로 <엑하드>는 무한히 광대한 우주 자체이기도 하며 무한히 미세한 퀀텀의 세계이기도 하다. 고대의 신명기 저자가 이 점을 현대 과학의 언어로 이해하지는 못했겠지만, <야훼 엑하드>란 짧은 선언은 무한한 생명체를 창조하고 무한히 다양한 존재자들을 품는 창조주에 대한 신앙이다. 무한히 광대하고 무한히 미세하며 신비한 차원들을 초월하는 창조주를 야훼라고 인식하고 선포하는 큰 깨달음이 신명기 6장 4절이다.

에큐메니즘은 성서의 <엑하드> 사상 위에서 가능해진다. 모든 다른 것들을 발출한 한 존재를 함께 인식하고 그 존재 안에서 모든 다른 것들의 통일성과 연대성을 선언하는 성서의 <엑하드> 사상 위에서 다른 종교들과 다른 문화들과 다른 인종들이 생명과 정의와 평화라는 보편의 깃발 아래 모여들 수 있다.

2. <엑하드 야훼>는 해방의 사건으로 현존한다

유일신 사상(monotheism)의 반대말은 다신론(polytheism)이다. 고대제국의 사상계와 신들은 다양한 부족들의 이야기를 담은 기호들로서 신전과 신화에서 등장하였다. 다신론은 소수의 엘리트들이 노예제 체제의 제국을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로 봉사하였다. 제국의 권력을 독점하고 수많은 노예들을 통제하기 위해서 다신론은 신화의 이데올로기를 창출하였다.

▲ 애굽인에게 두들겨 맞는 노예들 ⓒWikidpedia

권력자들은 종교인 엘리트들과 합작하여 일반에 통용되는 민담과 신화들을 소재로 신들의 체계를 조합하였다. 이 조합은 곧 사회 통합의 이데올로기로 작용하였다. 이러한 제국의 상황에서 <엑하드>로서의 야훼라는 신을 깨달은 자는 아무도 없었다. 출애굽의 해방 사건을 체험한 모세와 이스라엘이 <엑하드>의 하나님을 세계의 질서 속에 내놓을 수 있었다.

<엑하드 야훼>는 새로운 신이었다. 아무도 인식하지 못하는 신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신명기의 저자는 모세의 설교 안에 <야훼 엑하드>를 포함시켰다. 그는 히브리인들을 노예제의 제국에서 탈출시킨 야훼의 드라마 속에서 <엑하드>를 보았던 것이다.

억압적 사회경제체제 하에서 고통을 당하는 노예와 같이 살던 비참한 인간에게 해방이 선포되었다. 노예에게 자유를 주는 해방의 신이 <야훼 엑하드>이다. 유일신 신앙은 세상의 모든 생명을 억압하는 일체의 체제나 질서를 뿌리치는 사상으로 현존한다. 그러므로 진정한 유일신은 매일의 일상에서 생명창조의 사건으로 역사를 이끌고 간다.

3. <엑하드 야훼>는 민중으로 화육한다

야훼를 인식하고 만나는 순간에 역사 속에 민중이 탄생했다. 성서는 민중의 문예로서 역사 속에 비로소 등장하게 되었다. 성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역사적 사건으로 현존한다.

노예가 <엑하드>의 야훼를 만나서 자신의 해방을 인식하고 선언하자마자 그 순간에 그 노예는 역사를 이끌고 가는 삶의 주체로서 “민중”이 된다. 그에게는 새로운 삶이 주어진다. 유일신을 고백하는 히브리인 노예는 그 순간 하나님의 백성이 되며 “민중”으로 살아가게 된다. 유일신은 “민중”의 존재를 역사 속에 창조한다. 성서는 “민중”의 역사적 탄생을 증언하는 문예이다.

라스코 동굴이나 코베 동굴 등의 벽화들을 볼 때, 인간의 아름다운 예술성은 볼 수 있다. 동굴벽화들은 모든 생명체들의 연대 망을 그림으로써 창조주 하나님이 <엑하드>임을 표현하고 있다. 괴베리 태페의 신전과 농업혁명의 긴밀한 연관성은 권력의 분점 과정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창조계인 자연과 인간의 발명체인 문명이 서로 소외되어 가는 과정을 농업혁명 이후의 과정은 노정하고 있다. 도시의 출현과 엘리트의 출현, 그리고 사회적 불평등은 폭력의 체제로서의 문명사를 출범시켰다. 도성과 도시국가와 제국의 출현과 그 발달사는 창세기 3-11장에 뚜렷하게 기술되어 있다.

고대노예제 사회에서 노예가 스스로를 해방의 주체로서 인식하기 이전에는 역사 속에 “민중”은 존재하지 않았다. 스스로를 모든 억압과 차별로부터 해방하는 초월적 주체로 인식하기 시작한 “민중”은 <야훼 엑하드>의 출현으로 역사 속에 등장했다. “민중”은 역사의 주체이며 구원사를 이루가시는 “신(神, deus)”이다. 성서는 “민중 하나님”을 증언하는 역사기록이다.

4. 민중성서해석학과 교회

문명은 문자의 발명과 더불어 역사가 되었다. 문자는 오래 동안 소수 엘리트의 전유물로 사용되어 왔다. 지배 엘리트들은 문자를 통하여 지배자의 권력망을 단단히 구축하고 다수의 인민을 지배하였다.

노예들과 평민들과 농민들은 문자를 사용할 줄 몰랐다. <야훼 엑하드>를 인식한 무지한 민중이 문자를 사용하여 <토라>를 집필하였다. 토라의 집필은 민중의 탄생을 역사에 신고한 민중문예의 결정체이다. 이로서 민중은 제국의 치하에서 <토라>를 통해 해방의 영성을 연대망으로 구축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민중의 연대가 바로 교회의 정체성이다.

성서의 출현과 더불어 민중문예가 활발하게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 시대는 디아스포라 포로기 내지 포로이후기의 시대였다. 민중의 자기 기록으로서의 성서는 세상 제국의 모든 지배이데올로기로서 기능하는 신들의 체계를 우상숭배금령이라는 슬로건으로 송두리째 부정한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교회는 로마제국과 야합하고 크리스텐툼의 질서에 종사하게 되자 유일신 <엑하드>는 다신론의 우상숭배로 변질하고 말았다. 교회의 타락 속에서 민중은 끊임없이 “부정의 부정”의 사건 속에서 구원사의 주체가 되었다. 민중은 교회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가난과 고난을 겪으면서 그것을 뛰어넘는 아름다움의 새로운 세계에로 나아갔다.

민중은 가난과 차별과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정의로운 지배를 체험하는 특별한 생명이다. 민중은 사회 속에서 계급의식을 담보하면서도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주체이기도 하다. 여기에 민중성서해석학의 기초가 놓여 있다.

결론을 내자. 민중신학은 성서의 하나님을 민중으로 고백한다. 민중은 자신의 창조성을 인식하기에 자기 속에서 하나님을 인식한다. 자기 속에 하나님의 충만이 있기 때문에 민중은 모든 차별을 철폐하고, 생명을 죽이는 일체의 폭력을 거부하며, 부를 향한 모든 탐욕을 무욕의 영성에로 초대한다.

민중은 상업화로 나아가지 않는다. 민중은 돈을 벌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생명을 살리는 재화를 창출한다. 민중의 창조성은 자본주의의 폭력적 상업성을 원천에서 차단한다.

개인으로부터 생명을 부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물질적 기초마저 박탈해 버린 무서운 국가주의 체제 하에서 민중은 고난을 당한다. 민중은 생명의 창조성을 발휘하려는 몸부림 속에서 역사적 사건을 부단히 촉발한다. 이로써 민중은 사건이 되고 사건은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

이영재 목사(전주화평교회) rheeyjae200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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