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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주의라는 전염병

기사승인 2018.05.26  22:5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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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본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성경공부, 어떻게 할 것인가?

김재준, 송창근, 안병무, 서남동, 문익환, 등 깨어있는 선진들이 일제 시대부터 가르쳤던 신학의 참 뜻과 방향은 오늘날에도 더욱 절실하다. 성서로부터 참다운 역사신앙을 배워서 한국교회로 하여금 한국사에 올바르게 기여하려는 것이 필생의 작업이었다. 어떻게 하면 미국 선교사들이 이식해준 미국식 근본주의 신앙을 버리고 역사의 요청에 부응하는 올바르고 건전한 신학을 한국교회에 정립할 것인가?

애석하게도 근본주의는 오늘날 한국교회에 전염병처럼 편만하게 퍼져 있다. 유신독재 정권과 군부독재의 비호를 받고 성장한 교회들과 선교단체들의 종교지도자들이 보수진영을 형성하면서 근본주의 신앙을 평신도들에게 주입하였다. “정통보수”를 표방하는 진영들과는 또 다른 축에서 근본주의자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촛불정국에 대항하여 태극기 부대를 형성하여 기독교의 이름으로 성조기와 이스라엘 국기를 흔들어대는 자들이 그들이다. 이들을 어떻게 바르게 견인할 것인지는 지난한 과제라 할 수 있다. 근본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선 그들과 대화하고 소통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터인데 그 중심고리는 성서일 수밖에 없다. 성서를 바르게 읽고 해석하고 적용하는 작업을 함께 하는 일밖에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최근에 근본주의를 놓고 내가 가입해 있는 고등학교 동창생 신우회의 단톡방에서 나눈 격한 대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나의 고등학교 동기생인 000 장로는 근본주의를 경계하자는 나의 제안에 대해서 격하게 반응하였다. 그 분과 나눈 대화는 아래와 같다.

이영재 목사: “최고의 지성 00고등학교 신우 동문들이여~ 이 나라와 종교의 지성계를 짊어지고 열공하시기 바랍니다. ~ 온 세계는 근본주의 종교사상의 폐해를 당하고 있으니 먼저 한국교회에 편만한 근본주의(fundamentalism)을 계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서울대 종교학과 배철현 교수의 책 중에서 한 쪽을 참조해 보세요. (저는 멀리 살고 있어서 참여하지는 못하오나) 재미난 성경공부 계속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배철현, 인간의 위대한 여정, 66쪽을 카메라로 찍어서 단톡방에 올렸습니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대부분의 과학자와 인문학자는 우주와 인간에 대한 탐구 성과를 공유하고 서로 자극하는 공생관계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이런 이상적인 공생관계가 깨지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말부터다. 이 시기에 등장한 눈부신 과학적 성과를 수용하지 못한 일부 종교인들이 스스로를 근본주의(根本主義)라는 이데올로기에 가두어버린 것이다.
근본주의란 세상의 긍정적인 변화나 다름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경험을 통해 만든 무식無識이라는 환상 안에 스스로를 감금시키려는 삶의 태도다. 무식은 배움이나 지식이 모자란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지식에 대해 성급히 판단해 남과 자신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여러 가지 근본주의 형태 중 가장 골치 아픈 집단이 바로 종교적 근본주의 집단이다. 이들은 자신이 수용한 나름의 진리를 아무도 이해할 수 없고 논쟁할 수 없는 저 너머의 세계에 두고, 막무가내로 그 무식을 주장한다. 그들이 생각하는 진리는 사실 신이나 피안의 세계라는 어설픈 용어를 빌려 자신의 편견을 확장한 자기 기만인 경우가 허다하다.”

동기생 000 장로의 답글: “이영재 목사님이 제시하는 글 많이 불편합니다. 다른 분들 생각이 어떤지는 몰라도 이런 글 더 이상 올리지 않으실 수 없는지요? 기존의 신앙을 부인하는 자유신학의 얘기들, 이 시대의 거짓교훈이라 생각합니다. 과연 이 목사님은 예수님이 하나님 되심과 그분의 부활, 성령 하나님, 그리고 다시 오실 주님을 믿으시는지 질문하고 싶습니다. 일반 종교학으로써 계시의 신앙인 기독교를 얘기하는 것은 선천적 시각장애인에게 색깔을 설명하는 것 보다 더 우매한 것입니다.”

000 장로의 이어진 글: “계속 올리시면, 이 방에서 조용히 나가겠습니다.”

이영재 목사의 답글: “내가 그렇게 불편하게 했군요. 사과합니다. 이제부터 안 올리겠습니다.”

000 장로의 이어진 글: “이 목사님은, 만나 본 적이 없는 동기라도 인물이 훌륭해 보이시지만 신앙의 내용은 너무 다릅니다. 서울대 종교학과 배 교수는 목사라고 하면서도 원죄교리를 인정하지 않는 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저와 대다수 동기들의 신앙적 모습을 무식한 근본주의로 몰아가고, 우리가 믿는 진리를 과감히 버리라는 말을 어떻게 수용할 수 있습니까? 나 혼자 믿어 4대(손자까지 하면 5대)가 믿게 된 평생의 신앙, 시간과 공간을 넘어 각 시대에 선한 영향력을 끼친 신앙의 선조들과 같은 성경, 한 성령 안에서 동일한 신앙고백임을 늘 확인했습니다.”

000 장로의 이어진 글: “사랑하고 아끼는 신우회 동기들에게, 제 신앙고백 같은 글을 마지막으로 올리고 당분간 침묵하겠습니다. 가치관이 무섭도록 급변하며 우리를 위협하는 시대입니다. 꼭 한 번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혹이라도 소중한 00신우회 모임을 혼란스럽게 할 마음은 추호도 없음을 말씀 드립니다. 생각이 다른 분들도 다 사랑합니다~ 혹 강한 표현으로 신우회 동기들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면 용서바랍니다~”

000 장로가 단톡방에 게재한 입장문: 요즈음 한국교회 안에 확대되고 있는 인본주의, 다원주의, 과학주의, 이성주의에 바탕을 둔 자유주의(?) 신학이 많이 염려가 됩니다. 교회를 포함해서 내가 속한 모든 신앙공동체에 거의 예외 없이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지금의 정치적인 상황과 맞물려 돌아가고 있습니다. 정치적 보수의 몰락과 함께 교계의 불미스러운 일들로 인해 기존제도권 교회가 많이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성도인 우리의 책임도 크지만 개혁의 이름으로 교회를 위협하는 불순한 외적 요인들이 우려가 됩니다.
나의 판단으로는 ‘성0 0국’, ‘뉴0앤0이’, 지금은 ‘복0과0황’까지 염려스러울 정도로 많이 편향되어져 가고 있습니다. 덕망 있는 목사님, 젊은 목회자, 선교단체 등 참 좋았던 분과 기관들이 동참하고 있는데…. 많이 우려가 됩니다. 영적 전쟁입니다. 우리의 소견이 옳고 그름 보다 성령님의 분별력이 어느 때 보다 필요할 때입니다.
요즘 진보적 성향의 신학자들이 교회나 신앙공동체를 다녀가면 예외 없이 두 진영으로 갈라집니다. 분열이 일어납니다. 신앙공동체에도 성경 보다, 시대적 흐름과 정치적 성향이 영향을 많이 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청년들의 마음이 기성세대에 대해서 많이 실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함께 다음 세대와 교회의 유익을 위한 최선의 길이 무언지 기도하며 풀어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의 올바른 신앙적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청년과 다음 세대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지혜를 구해야겠습니다.
진보적 성향의 신학자 일부는 그 동안 기독교인들을 공개 처형까지 하는 비인권적인 북한 독재정권은 안고 포용하며 평화를 외치면서도, 기존 보수나 제도권 교회에 대해서는 무섭도록 적대적이고 비난적입니다. ‘우리’로서 함께 울어야 하는데 ‘타자’로서 공격을 합니다. 요즘 정치적으로 보수의 몰락과 진보의 약진으로, 그 동안 보수의 한 파트였다는 이유로 주님의 몸된 이 땅의 교회와 순진한 성도들까지도 너무 매도되는 것이 우려가 됩니다.
나는 또한 이 시대가 ‘평화’의 이름으로 모든 것을 인정하는 다원주의적 성향으로 ‘복음’도 희석될까 두렵습니다. 이슬람 근본주의가 너무 살상을 일삼는 극단주의여서 ‘근본주의’라는 말이 부정적으로 인식된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모든 종교를 포용하는 혼합주의도 동의하기가 힘듭니다. 바울의 말처럼 고기를 먹고 안 먹고 하는 등 진리와 관계없는 ‘아디아포라’ 문제에 대해서는 ‘다른 복음을 전하면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저주를 받을지어다’는 그 말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습니다. 버드나무처럼 말입니다. 실가지는 바람에 한들거려도 그 둥치는 굳건한….
이 시대에 고수해야 할 복음과 성경적 진리가 혹 ‘근본주의’라는 비판으로 희석되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그런 것이 근본주의라면, 나는 주님의 재림을 문자적으로 사실적으로 고대하는 ‘올바른 근본주의자’이렵니다. 근본주의를 좁고 명확하게 정의를 해야지 건전한 보편적 신앙을 도매금으로 ‘부정적인 근본주의’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창조론과 진화론에 대한 의견입니다. 창조론과 진화론 둘 다 가설입니다. 아무도 하나님께서 이 땅의 기초를 놓을 때 관찰한 자가 없습니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욥38:4).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성인 아담과 세상을 창조하신 것을 신앙합니다.
우리 신앙고백(사도신경)의 전부가 초과학적인 것입니다. (비과학적이 아닙니다.) 천지를 지으시고, 온 우주의 주재이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영이신 초월자 하나님,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 예수님의 부활, 예수님의 재림… 모두 과학으로 증명될 수 없는 실재적 사실들입니다. 홍해의 갈라짐, 만나와 메추라기, 뿐만 아니라 엘리야의 승천, 과부의 아들을 살리심, 오병이어, 베드로와 함께 물 위를 걸으심, 나사로를 살리심, 변화산 사건, 닫힌 공간에 들어오신 영광의 부활체…. 이 모두를 우리는 역사적 사실로 믿습니다. 우리 신앙고백 중심에는 영적 실존의 강이 도도히 흐르고 있습니다.
살아 역사하시는 영이신 하나님 ….. 대학생 때 영적 눈이 뜨여지고 보니 이것은 내 존재 만큼이나 확실한 영적 실재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계시며, 눈에 보이는 자연세계뿐 아니라 초월적, 영적 세계도 주관하십니다. 그런데 이성과 과학으로 하나님의 세계, 성경을 모두 다 해석하려는 것은 마치 욥이 하나님께 따지는 것과 같습니다. 인간의 쪽박 같은 지혜로 바다 같은 하나님을 판단하다니요. 2차원 평면에서는 꼭 만날 수 밖에 없는 두 직선이 3차원 공간에서는 만나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2차원적 사실(fact)이 3차원에서는 아닐 수 있듯이 과학적 논리(3차원, 시공간)로 신앙적 세계(4차원 이상, 초월차원)을 논하는 것은 그 자체가 이미 한계가 있습니다. 불신자와 신자의 인식이 본질적으로 다르듯이 기독교인 안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이해와 인식의 깊이가 신학적인 입장을 다르게 할 수 있습니다.
과학이 얼마나 유동적입니까? 뉴톤의 절대시간 개념이 아인슈타인에 의해 깨어졌고, 지금은 그 상대성 이론도 비판되고 있습니다. 빅뱅이론? 그것도 많이 비판을 받습니다. 우리 동기인 00대 0교수는 유신진화론자(본인은 유신진화론자가 아니라고 묘한 논리를 펴지만)인 우모교수의 빅뱅이론을 설득력 있는 과학적 이론으로 비판합니다. 유동적인 세상학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함부로 훼손시키는 것은 참으로 우려되는 일입니다. 요즘 화학 진화와 종의 진화 등 대진화까지 인정하는 유신론적 진화론, 인권을 내세운 동성애 합법 시도 ……. 이러한 것들이 기독교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도전합니다. 성경이 아니면 아니고 성경이 맞으며 맞는 것입니다.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잘못하면 구속론, 복음의 진리까지 흔들릴 수 있습니다.
한번 더 얘기하지만, 창조과학은 확인된 과학적 법칙이 아닌 가설로서의 진화론을 마치 과학적 사실인 것처럼 가르치는 학교교육에 대한 대응으로 나온 것입니다. 모든 과학이 그렇듯이 창조과학적 접근도 당연히 허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비판을 받기도 하고 창조과학자들 중에도 의견을 달리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렇다고, 창조가 아니고 진화인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종 대로 창조하신 것을 사실로 믿습니다. 성인 아담을 만드셨듯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창조 시 성년 우주를 펼치셨을지 그 누가 알겠습니까?
재림 시 우리도 부활하여 주님과 같은 영광스런 육체를 입을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재창조될 것입니다. 태초의 창조 때처럼, 재림 때는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신묘막측하고 놀라운 일들이 펼쳐질 것입니다. 과학적으로 해석할 수 있을까요? 천만의 말씀~~ 그렇다고 그냥 상징적이고 신화적인 얘기일까요? 천만에~~ 구약에 예언되었던 예수님이 사건이 모두 이루어졌듯이 주님의 재림은 인간의 역사와 마주치는 그 어느 날에 꼭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함께 어린 양 혼인잔치에 참여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위의 글을 여러 차례 꼼꼼하게 읽고 곱씹어 보는 가운데 나는 우리 시대에 기독교 사상의 양극화가 얼마나 심각한지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그의 글을 여러 차례 정독한 까닭은 사고방식이 전혀 다르지만 어떻게 하면 서로 대화할 수 있겠는지 그 접점을 찾아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의 진심은 “이 시대에 고수해야 할 복음과 성경적 진리가 혹 ‘근본주의’라는 비판으로 희석되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라는 말 한 마디에 다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시대에 고수할 복음과 성경적 진리”가 무엇이냐 하는 지점에서 우리는 서로 의견이 갈라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장로로서 교회를 섬기며 진심으로 예수님을 따르고 뜨겁게 사랑하는 성도임에 틀림없어 보입니다. 진보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보수진영의 성도들과 한 마음이 되어서 진리 되신 예수를 바르게 살아낼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우리시대에 극복해야 할 지난한 과제임에 분명합니다.

방법은 오직 한 가지, 말씀을 함께 공부하는 길뿐입니다. 우리는 서로 다르지만, 성서의 말씀을 가운데 놓고 둥그렇게 모여 앉아서 말씀을 함께 읽고 정결한 마음으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며 서로를 경청하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제출된 다양한 견해들을 존중하면서 조금씩 생각을 모아가는 방법밖에는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서로 모이기 어려우니 우선 말씀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글로 써서 서로 나누어 읽고 소통하며 대화하는 방법이 최선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길은 정말 멀고도 길어서 참으로 오래 걸리는 인내의 여정을 요구하는 것 같습니다. 열린 마음으로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고 진지하게 대답하는 방법으로 근본주의를 극복해 나갑시다.

이영재 rheeyjae200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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