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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도모하는 일에 힘쓰자! (로마서 14:19)

기사승인 2017.08.14  12:3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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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8월 20일 한반도 평화통일 공동기도주일 설교

1. 남북교회 기도회

1) 세계개혁교회커뮤니언(WCRC) 총회 기도회

2017 WCRC 총회(6.29~7.7/독일 라이프치히)

제26차 세계개혁교회커뮤니언(WCRC) 총회가 지난 6월말부터 일주일 동안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열렸다. WCRC는 장로교회와 개혁교회, 회중교회 등 105개 나라 225개 회원 교단, 8천 만 교인이 참여하고 있고, 한국은 예장 통합과 기장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7년 만에 열린 이번 총회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면서, 특별히 조선그리스도교련맹(KCF) 대표들을 공식적으로 초청하였고, 마침 평화조약 유럽 캠페인을 벌이고 있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대표들과 함께 기도회를 열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남북한 기도회에서 설교하는 조선그리스도교련맹 강명철 위원장

성찬식에 앞서 조선그리스도교련맹 강명철 위원장이 오늘 성경 말씀을 본문으로 설교하였다. 평화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며 하나님의 자녀라고 불릴 것이라는, 별로 새로울 것 없는 북측 교회 대표의 설교는 그런데 그 자체로 감동적이었다.

오늘 사도 바울은 로마의 기독교인들에게 주님의 산상수훈의 말씀에 이어 평화를 도모하는 일에 힘쓰라고 권면하고 있다. 오늘 이 말씀이 바로 한반도의 위기 상황에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실행해야 할 소중한 뜻이다.

 

 

2) 조그련과 니콜라이 교회

2차 대전의 결과로 똑같이 분단의 상처를 안고 있던 독일과 한반도는 이제 하나는 통일 국가로 하나는 아직도 분단국가로 운명이 갈려있다. 우리로서는 독일이 참으로 부럽기만 하다. 독일 통일이 어느 날 갑자기 몰아닥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전후 분단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서독은 통일을 위해 준비하고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감당했다. 그 중에서 특히 서독 교회의 동독교회를 위한 기도, 지원, 교류는 독일 통일을 가능하게 한 동시에 물리적 통일의 한계를 극복하는 매우 소중한 토대가 되었다.

독일 통일의 근저에는 서독이나 동독이아 교회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종교를 적으로 규정하고 말살하려는 공산정권 아래서 동독 교회는 심각한 억압을 받았다. 원론적으로 말하면 동독교회는 공산당과 맞서 싸워서 순교하든지 자유를 찾아 피신하든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다. 그러나 동독교회는 피신하지도 순교하지도 않았다. 동독 공산당과 교회는 일정 정도 서로 타협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우리는 동독교회를 향해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왜 순교하지 않았느냐고, 아니면 신앙의 자유를 찾아 공산당과 결별하고 서독으로 피신하지 않았느냐고!

라이프치히 시의 성 니콜라이교회

동독교회가 온전한 신앙을 자유롭게 펼칠 수 없었고 아주 제한적인 한도 안에서만 신앙생활을 유지했지만, 하나님은 그 좁은 가능성 속에서 통일의 위대한 역사를 진행하셨다. 이 점이 매우 중요하다. 라이프치히에는 유명한 니콜라이 교회가 있다. 동독의 민주 인사들과 그리스도인들이 이곳에서 매주 모여 기도회를 열고 집회를 지속한 것이 통일의 밑거름이 되었다. 동독에 교회가 없어지지 않고 존재하는 것 자체만으로 동독인들은 공산주의 치하에서 민주주의를 배우고 경험하는 공간이 되었다. 그리고 통일의 위대한 역사를 꿈꾸고 토론하고 기도하고 외치는 중심지가 되었다.

해방 후 북쪽은 공산당의 핍박에 수많은 조선 그리스도인들이 순교했고 대부분은 남쪽으로 피난을 내려왔다. 그리고 아주 소수가 남아 공산체제 속의 기독교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조그련은 북한 체제 속에 편입되어 있으며, 정치 구조 속에서 자유롭고 독립적인 활동을 하는 데는 근본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교회의 개념과 온전히 일치하지는 않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명백한 한계를 지닌 동독교회를 통해 통일의 물꼬를 트고 새로운 역사를 단행하셨듯이, 북측 기독교가 현실적으로 분명한 한계를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북측의 교회를 통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놀라운 계획을 실행하고 계시다는 것이 분명하다. 이번 남북 교회 대표들이 함께 예배드리면서 설교와 성만찬을 통해 우리는 그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2. 전쟁의 불행

1) 스코틀랜드 참전용사들(베테랑스)

한국전쟁 전사자 추모 공원 안의 추모 시설

한국전쟁에 참전한 영국은 1,089의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 중 600명 이상이 스코틀랜드 청년들이었다. 스코틀랜드 남동부 린리스고에는 한국전쟁 참전추모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스코틀랜드 참전용사 모임도 결성되어 있는데, 지난 6월 말 한국교회 대표들은 이들과 특별한 만남과 예배를 드렸다. 당시 참전한 영국인들은 대부분 17~20세 청년이었다.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머나먼 한국 땅에 가서 지옥을 경험한 이 어린 청년들은 이제 모두 80대의 노인이 되었다. 정말 다행스럽게 살아남아 고향으로 돌아와 80 세가 넘게 살고 있는 이들은 그러나 지옥의 전체를 경험한 것은 아닐 것이다.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 두려움과 고통의 지옥을 통째로 경험한 이들은 사실 죽은 자들이다. 그들은 살아 돌아오지 못했으며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살아남은 이들은 지옥의 일부분을 경험한 것이다. 온전히 전쟁의 지옥을 경험한 것이 아님에도 그것조차도 너무 끔찍하여 이들에게는 평생 기억하고 싶지 않은 상처일 것이다.

우리나라 고등학생 나이의 청소년들이 지구 반 바퀴를 돌아와서 처음 보는 조선의 산하에서 투입된 지 사흘 만에 중공군이 밀려와 600명 이상이 한 번에 전사했다. 이들은 무엇 때문에 그 어린 나이에 죽음의 전장에 왔을까, 그들은 끔찍한 죽음의 순간에 무엇을 보았을까, 두고 온 부모와 식구들이 얼마나 그리웠을까, 얼마나 두렵고 고통스러웠을까, 이런 생각들이 한국 전쟁 참전용사들과 함께 드리는 예배와 이후의 식사 만남 시간에 내 가슴을 아리게 했다.

2) 영화 ‘하얀 전쟁’과 양민학살

아군은 무조건 선이고 총도 잘 안 맞고 적군은 절대 악이며 우리 군이 총 쏘는 대로 맞고 쓰러지는 영화를 벗어나서 전쟁의 민낯과 본질을 우리에게 보여준 전쟁 영화의 고전 ‘하얀전쟁’.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쓴 안정효의 동명소설을 정지영 감독이 1992년에 영화화했고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을 겪은 우리 사회에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영화의 중요한 분수령이 되는 사건은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양민 학살이다.

영화 부분(8분) :

https://www.youtube.com/watch?v=1DM-ylQ4pwA

한국 전쟁에서 살육이 전선에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무고한 양민들을 향해 여기저기서 발생했다는 것을 우리는 이후에 알게 되었다. 전쟁에서 군인에 의한 양민 학살은 왜 발생하는 건지 한동안 고민했었다. 직접 전쟁을 경험하진 않았지만 영화와 책을 통해 추측한 양민학살의 이유는 두 가지다 – 증오와 공포!

‘죽느냐 죽이느냐’라는 이분법이 강요되는 비정한 현장에서 내가 죽지 않으려면 적을 찾아내 죽여야 하고, 적에게 발각되어 죽지 않으려면 때로 평범한 양민들 속에 위장해서 숨어있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그러다가 기습적으로 적을 공격하여 타격을 주기도 해야 한다. 이것이 전쟁이다. 전쟁에서 정의, 진실, 양심, 동정, 우정 따위는 설 자리가 없다. 오직 죽이느냐 죽임 당하느냐만 존재할 뿐이다. 농부와 노약자, 부녀자와 어린이들로 구성된 선량한 양민인 줄 알았는데 그 중에 적이 위장하고 숨어 있다가 갑자기 총과 수류탄으로 공격한다. 전우의 목이 날아가고 창자가 터지고 손발이 잘려나가 죽는 모습을 본다. 단 한번이라도 이 장면을 현장에서 경험한 군인은 오직 두 가지 감정만 지니게 될 것이다. 극도의 증오심(복수심)과 공포! 이때부터는 아무리 선량해 보이는 양민도 그냥 양민으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부스럭 소리만 나도, 조금이라도 수상한 몸짓만 해도 총을 난사하고 수류탄을 던진다. 그러지 않으면 내가 죽고 내 동료들이 처참하게 살육당하기 때문이다.

양민 학살은 있어서는 안 되는 비인간적인 극단적 범죄지만, 그 모든 책임을 전쟁터의 군인 당사자에게만 돌릴 수는 없다. 보다 근본적인 책임은 어떤 다른 여유도 허락하지 않고 오직 죽이느냐 죽임 당하느냐만 존재하는 전쟁 자체가 주범이다. 그러기에 양민학살이라는 끔찍한 범죄를 근절하는 방법은 전쟁을 예방하는 것이며 이를 막아내지 못할 경우 어느 전쟁에서나 양민학살의 악순환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3) 기독교의 평화(샬롬)는 생명과 정의와 사랑이 충만한 상태를 가리키는 깊고도 넓은 의미지만 그 첫출발은 전쟁 없는 세상이다. 전쟁만 없으면 곧 샬롬은 아니지만 전쟁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는 어떤 방법으로도 평화는 가능하지 않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평화를 위해서 일해야 하며 평화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고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될 것이라고 한다. 반대로 평화가 절실한 상황임에도 평화를 위해서 일하지 않는 사람은 행복하지 못하다, 더 강하게 말하면 불행할 것이라는 말씀이다. 평화를 외면하고 복음을 말한다는 것은 기독교 복음과 무관한 것이다. 오늘 우리가 이 땅에서 예수를 믿고 복음의 증언자가 된 것은 다시 말하면 평화를 위해서 일하라는 주님의 뜻이다.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우리 모두가 불행에 빠질 것이라는 뜻도 들어 있다. 평화를 위해서 일하지 않으면 평화는 자동적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의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3. 한반도 긴장 고조

1) 한반도 전쟁 가능성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4형

우리의 바람과는 달리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 북측은 핵실험과 대륙 간 탄도 미사일을 실험하느라 국제사회의 반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한국 전쟁을 통해 미군 폭격에 의해 초토화 되었던 악몽을 간직한 북한은 강대국이 함부로 할 수 없는 강력한 한방의 무기(핵무기)를 포기하려 하지 않고 있다. 이란이나 리비아 사태를 보면서 핵 없는 국가가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가를 보고는 더욱 핵무기에 집착하는 것 같다.

사진 : dailystar.co.uk

세계 패권국가로서 자신에게 위협적 국가의 존재를 허락하지 않으려는 미국은 연일 험악한 압박을 가하고 있다. 선제공격과 전쟁 발발도 기꺼이 감행할 태세다. 왜냐하면 남의 나라 땅에서 벌이는 전쟁이기 때문이다. 자국이 아니라 남의 땅에서 벌이는 전쟁은 시도하기가 훨씬 수월하다. 본토와 자국민의 피해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며칠 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실제로 이런 발언을 했다고 한다 : 공화당 중진인 그레이엄 의원은 1일(현지시간) NBC방송 ‘투데이’에 출연해 트럼프 대통령은 내 면전에서 ‘전쟁을 하더라도 저쪽(한반도)에서 하고, 수천명이 죽더라도 저쪽에서 죽지 이쪽(미 본토)에서 죽지 않는다’고 말했다 소개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땅에서 벌어지는 전쟁이기 때문에 미국과는 처지가 전혀 다르다. 그래서 우리 정부도 이전 정부와는 달리 대화를 통한 한반도 평화 정착을 추진하고는 있지만, 북측이나 미국과 중국 등 강대국들을 상대하며 우리의 입장을 관철시키기에는 매우 힘겨워 보인다.

사진 : 프레시안

더군다나 한반도 문제는 단지 남북한의 문제만이 아니라, 세계 양대 강대국 G2인 미국과 중국이 세계를 놓고 벌이는 한판 세 대결이 첨예하게 충돌하는 지점에 한반도가 놓여 있어서 한층 어렵고 복잡하다. 전쟁이 쉽게 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지만 결코 안심할 수가 없다. 이제까지 전쟁은 작은 발화점이 확대되어 전면전으로 이어졌고, 한반도와 국제 정세는 너무 많은 전쟁의 불씨가 상존하기 때문이다.

6.25 한국전쟁도 20세기에 가장 처참한 전쟁 중의 하나였지만, 만에 하나라도 다시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남북은 분명 공멸에 이를 것이며, 우리는 다시 일어서기가 불가능한 현실을 맞이할 것이다. 그 처참한 상황은 생각하기도 싫다. 그러나 우리 현실은 그 가능성이 여전히 높은 상황이라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2) 평화조약의 중요성

NCCK가 벌인 한반도 평화조약 캠페인 포스터

한국교회는 2013년 세계교회협의회(WCC) 총회를 몇 년 앞두고 한반도 평화조약 캠페인을 벌여왔다. 한반도의 상황이 전쟁으로부터 안전하지 않으며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아직도 우리가 6.25 전쟁을 끝내지 못하고 잠시 휴전한 상태로 60년을 넘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다시 전쟁을 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만큼 한반도는 전쟁의 가능성이 늘 존재하고 있기에, 남북한과 관련 강대국들이 협의하여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평화조약 서명 운동을 벌이고, 평화열차를 통해 한반도 평화를 전 세계에 알리고, 평화조약 시안을 만들어 전 세계에 호소하고 있다. 문서 하나가 무슨 그리 큰 효용성이 있겠느냐고 하겠지만, 평화조약은 남북한과 관련 강대국들이 평화의 관계를 회복하고, 다시는 한반도에서 전쟁을 벌이지 않겠다는 공식적인 약속이기에 매우 중요한 과정과 의미를 담고 있다. 

문재인대통령이 7월 6일 쾨르버재단 초청연설에서 한반도 평화구축과 남북관계, 통일 등을 주제로 발언하고 있다.

한국교회가 다양한 방법으로 노력해 온 평화조약 운동은 드디어 지난 7월 문재인 대통령이 독일 G20 정상회의에서 평화협정을 공식적으로 선언하는데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문대통령의 제안이 한계가 있고 이에 대한 북측의 반응도 별로 긍정적이지는 않지만, 우리나라 대통령이 평화조약을 공식화했다는데 중요한 성과가 있다고 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 세대와 다음 세대에 다시는 끔찍한 전쟁을 물려주어서는 안 된다는 사명감으로 이 땅에 평화조약을 맺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4. 세계교회가 함께 기도하는 한반도 평화

1) 한반도 평화통일주일

오늘은 특별히 이처럼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해 온 세계교회가 함께 기도하는 날이다. 한반도의 분단에 일찍부터 관심하며 기도해온 세계교회협의회(WCC)는 전쟁 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남과 북의 교회들을 1986년 스위스 글리온에서 만날 수 있도록 주선했고 그 외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해 노력해왔다. 1989년 WCC 중앙위원회는 8.15 직전 주일을 온 세계 교회가 함께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기도하는 주일로 지키기로 결의하였다. 그러나 이 결의가 그렇게 강력하게 시행되지는 못했다. 또 한국교회가 이를 적극적으로 추동하지도 못했다. 왜냐하면 당사자인 한국교회도 한반도평화통일주일에 많이 동참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2017.8.13. 주보 그림> 임진각 철제 분단의 장벽에 기도 리본을 부착하는 세계교회 대표들 (사진은 파키스탄에서 온 메랍 그리핀 양). 사진 : 세계교회협의회(WCC) 웹사이트에서 가져옴.

WCC 제10차 부산 총회가 열리는 중 전 세계로부터 온 기독교 대표들은 분단의 현장 임진각을 순례하였다(2013.11.2.). 이들은 비극과 통곡이 서린 분단의 자리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 기도하고 그 따뜻한 마음을 여러 색깔의 리본에 적어, 동서를 길게 가로질러 남북을 갈라놓고 있는 차가운 철제 장벽에 붙였다. 한국전쟁 이후 굳건히 버티고 서 있는 이 동토의 장벽에 주님께서 작은 틈을 내고 사람들이 그 길을 따라 걷고 걷고 또 걷다 보면 어느새 그 길은 곧 평화가 되고, 남북의 평화는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통일로 이어지리라. 한국의 모든 교회들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 기도하고 세계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우리의 뜨거운 평화통일 기도 순례에 함께 참여하는 날, 주님은 우리에게 주실 평화통일의 은총을 이미 예비하고 계실 것이다. 세계교회와 함께하는 한반도평화통일 공동기도주일, 오늘은 그래서 감사한 날이다.

WCC가 세계교회에 보낸 2017 한반도평화기도주일 성수 안내 서신

다시 2013년 WCC 제10차 부산총회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관한 선언서를 채택하고 한반도평화통일공동기도주일을 전 세계교회가 지키기로 결의하였다. WCC와 WCRC는 올해도 벌써 2주전에 전 세계교회에 기도문과 예배문을 보내 공동기도주일을 성수해 달라는 요청을 한 바 있다. 한국교회는 이러한 세계교회의 기도와 후원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2) 남북교회 공동 기도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위해 협력해 온 남북 교회는 매년 평화통일기도주일을 맞이해서 공동으로 작성한 기도문을 발표하고 있다. 올해 기도문도 남북교회가 합의하여 공동으로 채택한 기도문이다. 오늘 우리가 예배 시간에 함께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해 드린 이 기도문은 남한의 모든 교회와 북측의 교회가 함께 한 마음과 한 믿음으로 기도한 것이다. 나아가 전 세계 교회가 이 기도문으로 오늘 같이 기도하고 있다. 이것이 대단히 중요하고 위대한 것이다. 남북교회가 함께 만든 기도문을 남북교회와 세계교회가 함께 기도하고 있다는 것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이루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3) 한반도 통일은 언제 이루어 주실까?

우리가 오래 전부터 남북 공동기도문을 만들고 평화통일공동기도주일로 지키자고 약속했지만 사실 남한의 교회들도 아직 다 참여하고 있지는 못하다. WCC가 부산 총회에서 결의는 했지만 그렇다고 전 세계 모든 개체 교회들이 동참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통일은 대부분의 세계교회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함께 기도하는 주일에 동참하는 때에 이루어 질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한국교회가 이 기도주일을 적극적으로 지키고 확산시켜야 한다. 한반도평화통일공동주일은 너무나 쉽다. 주보에 이번 주일이 평화통일주일이고 남북교회가 만들고 전 세계교회가 함께 기도하는 기도문으로 기도하면 된다. 아주 간단하고 쉬운 평화통일선교다. 그러나 우리가 진심으로 하나 되어 한반도의 교회와 세계 교회가 한 마음으로 기도한다면 평화의 하나님께서 평화를 위해 일하는 우리를 기뻐하시고 평화통일의 은총을 내려 주실 것이다. 그리스도의 평화를 위해 일하고 매사에 그리스도의 평화를 도모함으로써 행복하고 하나님의 자녀라고 불리기를 기도하자.

 

이훈삼 목사 (성남주민교회)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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