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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 농민들은 누구였을까

기사승인 2023.05.25  02:5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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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중 메시아론에서 농민의 위치 (1)

▲ James Tissot, 「The Rich Young Man Goes Away Sorrowful」 (1894) ⓒGetty Image
안재학 목사님의 “민중 메시아론에서 농민의 위치”는 「신학사상」 2023년 봄호에 게재된 논문입니다. 게재를 흔쾌히 허락해 주신 안재학 목사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안재학 목사님은 한국기독교장로회 전북동노회 석천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사역 중입니다. 이 논문을 통해 민중신학과 농민 문제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 편집자 주

본 논문은 민중신학의 담론들이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 속에서 여전히 신학적으로 유효한 논의들인가를 예수의 비유에 숨어있는 진의를 파헤쳐 봄으로써 민중 메시아론을 중심으로 민중의 메시아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민중의 집단적 정체성을 가진 집단이 우선적으로 농민일 가능성을 살펴보고 특별히 오늘날 남반구 가난한 나라들, 특별히 농촌의 현장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끊임없는 농민 봉기와 농민의 민중 사건들을 민중신학의 눈으로 돌아봄으로써 민중신학의 새로운 과제와 대안에 대해서 성찰해보고자 한다.

왜 농민 문제인가

오늘날 남반구 농민들은 많은 어려움과 고통에 직면해 있다. 기후 변화로 인한 가뭄과 병충해 등의 피해로 농작물 생산이 감소하여 식량 부족 문제에 시달리고 농업 생산성 감소로 인한 소득 감소로 가난과 굶주림의 악순환은 끊임없이 생명이 위협받고 있다. 이에 더해서 땅과 자원의 점유 및 활용에 있어서도 농지와 자원은 대부분 정부와 기업이 소유 및 점유하여 농민들은 생계를 위한 농업조차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이 밖에도 농민들의 노동권, 환경파괴 문제, 식량안보의 많은 문제들이 남반구 농민들을 중첩적으로 둘러싸고 있다.

민중신학은 이렇게 복잡한 오늘날의 남반구 농민들의 고통에 함께 연대하고 책임성을 가져야 한다. 내부와 외부에서 함께 구원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실천함으로써 새로운 역사의 주체로서의 농민의 위치를 찾아보고자 한다.

또한, 안병무가 집중한 마가 공동체의 오클로스(민중)는 구체적으로 누구인가를 사회학적 성서해석과 탈식민주의 성서해석, 그리고 은닉 대본이라는 도구를 통해 성서해석의 권리는 누구에게 있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다음으로 예수의 비유들을 가로지르는 큰 흐름 중 하나인 부재지주와 소작농의 관계에 대한 예수의 관심과 비유들을 분석함으로 ‘씨 뿌리는 농부의 비유’를 재해석해 내고 이러한 해석의 결론을 통해 민중 메시아론에 있어서 중요한 신학적 함의들을 살펴볼 것이다. 이를 통해 민중 메시아론에서 농민의 메시아적인 역할의 가능성에 대해서 논의를 해보고자 한다.

예수의 민중은 누구인가

예수는 민중들과 함께 먹고 마셨다. 그리고 예수 자신이 민중이었다. 자신이 민중의 삶을 살았고 민중과 더불어 밥을 먹고 잠을 자고 함께 걸었다. 그 민중들은 누구인가?

예수 당시의 사회적 배경과 경제적 상황은 농업 위주의 사회였다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유대 지방이 박토였던 반면에 갈릴리 지역은 농사짓기에 유리한 농지들이 많았으나 절대농지가 부족하여 소작농들이 다수였고 지주들은 지역의 대지주들과 도시에 거주하는 부재지주들이 토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농민들은 가혹한 삼중 세금으로 자신의 토지를 잃어버리고 일일 노동자나 소작농의 삶으로 전락하여 빈궁한 삶을 살고 있었다. 부농은 소농에게 토지를 담보로 종자 또는 돈을 빌려주고 기일 내에 갚지 못할 경우에는 가차 없이 토지를 합법적으로 빼앗는 일이 성행했다.(1)

안병무는 예수 당시 이방인의 땅, 갈릴리와 남유다 왕국의 후예임을 자처하는 예루살렘 사이의 갈등 관계에 주목하면서 갈릴리 지역에서 발생했던 농민 봉기들의 원인들을 살피는데, 그 원인을 유다 지방의 부유층들이 갈릴리의 농토를 많이 점유한 까닭으로 갈릴리의 농민 사회는 가난할 수밖에 없었고 정치, 경제적으로 소외된 갈릴리 지역이 민중 봉기의 중심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보고 있다.(2)

마가복음이 쓰일 당시 주 후 70년경, 유대 농민 전쟁이 끝났을 무렵이었다.(3) 전쟁은 로마의 승리로 끝이 났고 농민들은 그나마 가지고 있던 땅을 빼앗겼다. 전쟁의 과정과 패배의 결과는 기독교 공동체에 심각한 갈등의 요소로 작용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땅을 잃고 쫓겨난 무리들, 체포와 추적을 피해 군중 속에 몸을 숨기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런 와중에 민중들을 병이 들고 굶주리며 지쳐 쓰러졌을 것이다.

복음서에는 이러한 마가의 민중과 예수의 민중이 공존하며 합류한다. 예수의 민중은 분명히 쇠락한 농민과 그의 가족들, 그리고 땅에서 쫓겨난 이들, 그들은 농민이었다. 이러한 필자의 주장이 농민만이 민중이라는 말로 오해받을 소지가 있지만, 이는 농민만이 민중이라는 말은 아니다. 예수를 따르던 민중들의 삶의 원래적인 자리가 농지를 박탈당하고 자신의 땅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었던 농민들의 현실이었을 것이라는 사회학적 성서해석에 기반을 두고 살펴보고자 한 것이다.

한국의 농촌 사회도 60년대를 지나 7-80년대를 거치면서 이농 현상으로 농촌 사회의 많은 인구가 도시로 유입되었고 농촌은 더욱 피폐해져서 공동화 현상이 일어났다. 농촌에서 도시로 이주한 많은 이들은 달동네와 움막촌으로 모여들어 슬럼가를 형성하였다. 예수 당시의 민중들도 그렇게 땅과 농촌 사회에서 밀려나 유리걸식하던 힘없고 가난한 소작농, 포도원 품꾼, 걸인들, 병자들이었다.

안병무의 사회학적 성서해석

안병무의 사회학적 성서해석(4)에서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할 것은 마가복음의 사회적 정황 다시 말해, 갈릴리 지역에 대한 당시의 삶의 자리(Sitz im Leben)를 복원하여 재구성하여 마가복음서가 말하고자 하는 말의 참 의미를 되살려보고자 하는 데에 있다고 보여진다. 이는 예수 당시 갈릴리 지역의 사회, 문화, 정치, 경제적 상황과 긴밀한 연관성이 있다는 것이고 이는 무엇보다도 예수의 1차 청중이 누구인가를 밝혀내는 것이 사회학적 성서해석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필자는 보고 있다.

안병무 갈릴리의 사회적 특징적 요소로서 농민 봉기가 빈번했던 이유와 젤롯당들의 주 활동 무대였던 갈릴리에 주목한다. 그 가운데에서도 브루그만(Brueggeman)의 연구에서 예루살렘 중심의 왕조 전통과 갈릴리 중심의 해방 전통에 주목하며 해방 전통의 발생 원인으로서 갈릴리의 정치적 경제적 상황을 분석하면서 갈릴리는 예수 당시에는 정치 문화적으로 소외된 지역의 상징으로 묘사하고 있다.(5)

경제적 조건으로는 비옥한 토지를 가졌지만, 소작농이나 품삯 일꾼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로 당시의 토지법과 식민지 영지의 이중 경작과 과도한 세금과 부재지주들의 횡포로 말미암아 토지를 빼앗기고 쫓겨날 수밖에 없었던 농민들의 현실을 고발한다.(6) 이러한 갈릴리의 소작농들이 예수의 비유 중 많은 부분 1차 청중들이었을 것이다. 필자의 의견으로는 예수의 말씀이 선포되던 당시의 1차 청중이 누구였느냐 하는 것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야말로 사회학적 성서해석에서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안병무는 성서해석권에 대해서 성서가 경전화되면서 그 해석권을 교권이 독점하게 된 것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7) 그리함으로 예수의 말씀이 선포되던 그 자리와 1차 청중을 잃어버림으로써 말씀의 진의가 모호해지고 영적인 해석으로 빠져버렸다고 비판하고 있다. 1차 청중이 누구인지를 잃어버렸다고 함은 말씀이 선포되던 그 삶의 자리와 사회적 정황을 송두리째 잃어버릴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어서 위험하다.

그 이후에 교권과 사제 계급들이 독점하고 있던 성서해석권이 종교 개혁을 통해 잠시 민중들에게 돌려지는 것 같았으나 다시 ‘사도적 복음’이라는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다시 굴레를 씌워서 바울의 해석에 의존하게 했으며, 이후에는 계몽사상의 영향으로 학자들의 해석에 전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성서해석권의 긴 역사에 관해서 서술한다.(8) 고로 예수의 말씀이 그리스도론으로 덧칠되어지는 동안 민중의 증언은 무시되고야 말았다고 안병무는 보고 있다.(9) 그리함으로 민중의 성서해석권은 상실되었으며 예수 사건의 민중 전승의 원천은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럼으로 성서의 해석권을 다시 민중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것이 안병무의 주장이다. 이는 예수의 1차 청중들이 제자들에 비해 예수의 비유들을 정확하게 이해했었다는 사실은 복음서 내의 많은 이야기들을 통해서도 반증된다. 그 이후에 교회와 사제들, 학자들이 해석에 의해 오염된 해석들이 수많은 오해와 틀린 해석들을 낳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안병무의 사회학적 성서해석은 오랫동안 화석화되어 있던 기존의 성서해석에서 소외되어있던 민중들의 ‘삶의 자리’를 재구성해냄으로써 민중들이 예수의 1차 청중으로서 들었던 참 의미가 무엇이었는지에 진지하게 접근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는 오늘날에도 민중의 눈으로 성서를 스스로 해석하고 예수의 비유가 무엇을 지시하고 누구에게 말하고 있는지를 다시 살펴볼 수 있게 하는 중요한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겠다.

미주

(1) 안병무, 『갈릴래아 예수』(서울: 한국신학연구소, 2020), 70-71.
(2) 안병무, 『예수의 이야기』(서울: 한길사, 1993), 336.
(3) 서중석, 『복음서의 예수와 공동체의 형태』(서울: 이레, 2013), 16.
(4) 안병무 편, 『사회학적 성서해석』(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1), 89. “사회학적 성서해석이란 성서해석에 있어서 해결되지 못한 몇 가지의 문제들에 대하여 다른 학문과의 상호 교류를 통하여 하나의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는 것이다.”
(5) Ibid., 220.
(6) Ibid., 221-223.
(7) 안병무, 『예수의 이야기』, 272.
(8) Ibid., 278-296.
(9) Ibid., 315-316.

안재학 목사(석천교회, 연세대 박사과정) jagafocu@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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