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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사회학과 우크라이나 전쟁의 역사학과 계보학

기사승인 2022.11.26  00:4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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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스 베버와 젤렌스키 (2)

▲ 2022년 1월 22일 토요일 우크라이나 키이우의 숲에서 키이우 국토방위군 소속 민간인 참가자들이 열차에 탑승하기 위해 행진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수천 명의 민간인들이 기본적인 전투 훈련을 받기 위해 참여하고 있으며 전쟁 시에는 우크라이나 군의 직접 지휘를 받게 된다. 우크라이나 관리들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전면적인 침공을 막을 기회가 거의 없다는 것을 인정했지만, 러시아 점령군은 뿌리 깊고 분산된 장기적인 반란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의 국경에 수만 명의 병력을 집결시켰다. ⓒSean Gallup/Getty Images

우쿠라이나 전쟁의 계보학

미국의 정치학자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2014년 오바마 정부의 국제정치의 부산물로 본다. 완충국가를 세워서 나토의 확장과 더불어 자유주의 주도의 세계질서를 확립하면서 러시아를 둘러싸는 봉쇄전략이다. 러시아의 푸틴으로서도 존립의 위협을 느끼게 된다. 2004년 오렌지 혁명에서 선거부정으로 인해 친-러시아 정치가인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야당 지도자인 친-유럽 성향의 빅토르 유센코에게 밀려났다.

그러나 이후 재기에 성공한 야누코비치가 대통령직에 있으면서 2013년 우크라이나와 유럽연합의 협정서를 거절하고 친러시아 정책으로 돌아섰다. 2013년도와 2014년 사이에 일어난 시민저항 운동에서 급기야 정부건물이 시위대에 점령당해 경찰과 대치과정에서 80여명이 사망 하자 결국 의회는 야누코비치를 대통령직에서 탄핵하고 해임시켰다. 러시아로 도피한 야누 코비치를 보호하면서 푸틴은 시민저항을 쿠데타로 규정하고 2014년 3월 크림반도를 무력으로 합병시켰다.

2019년 4월 젤렌스키가 대통령 선거를 통해 70% 이상의 지지율을 얻으면서 정계에 등장했다. 그러나 2020년 테헤란에서 키이우를 운항하는 우크라이나 비행기가 이란 혁명 수비대에 의해 격추당해 176명의 승객전원이 사망하면서 러시아와의 관계는 급속도로 냉각되었다. 2021년 대통령 명으로 친러시아 방송 프로그램이 중지되고 푸틴의 지지자들과 특히 푸틴의 대부인 빅토르 메드베츄크와 그의 아내에게 제재가 가해졌다. 2021년 브뤼셀 정상 회의에서 유럽연합은 우크라이나의 가입을 허락했고, 2020년 우크라이나는 회원가입 신청서를 냈다. 그러나 2022년 2월 21일 러시아의 푸틴은 전면전을 개시했다.

대략 이 정도가 전쟁의 역사적 배경이 된다. 시카코 대학의 저명한 국제 정치학자인 존 미어샤이머는 푸틴의 무모한 전면전을 비판한다. 동시에 오바마 정부시절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의 완충국으로 만들어 러시아의 힘을 소규모의 영토에 국한시켜려 했던 전략에 날카로운 각을 세운다. 이 일로 전쟁이 일어날 경우 국제법 차원에서 더 이상 전쟁을 해결한 중앙 집권 적인 정부는 존재하지 않는다.

UN이나 유럽연합 역시 무력할 수 밖에 없다. 모두 다 개별 연방 국가들의 전략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고, 여기에 군산 복합체와 의약품과 식량을 공급하는 다국적 기업의 비즈니스가 호황을 누린다. 약육강식의 세계가 국제 정치 관계에서 가장 리얼하게 드러나는 현장이 범죄로 얼룩진 전쟁이다.

전쟁 사회학: 민족위신과 문화적 경험

역사 사회학자는 국제정치문제를 다룰 때 전쟁의 역사적 배경이나 국가의 문제를 정치학자와는 다르게 본다. 이런 전쟁사회학에서 베버가 분석한 연방-국가 내지 민족주의에 대한 이해는 중요하다. 문화적 공동체와 정치적 연합으로서의 국가가 융합될 때, 영토 방어를 위한 군사제도와 사회체제를 유지하는 관료제의 지배방식 그리고 국가권력이 강화된다. 정치 엘리트들이 민족이념을 확립하고 확장시켜 나간다. 국가는 영토적으로 확정되는 신분그룹에 의해 정치 문화적으로 형성된다. 여기서 민족개념은 근대국가와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근대 정치사에서 개혁이나 혁명을 통해 군주제나 귀족제로부터 권력을 획득은 시민이 이제 정치주체로 등장한다. 이들이 바로 근대국가의 담지자가 되며 동시에 제국주의 확장에서 민족의 위신과 국가 권력의 위신 그리고 식민지배를 위해 국가의 도구로 이용되기도 한다. 이러한 사회학적 분석은 1848년 유럽전역에 불어닥친 민주주의 혁명에서 나타나는 민족주의와 연방국가 독립에 역사적인 기원을 가지고 있다.

국가와 민족 위신의 확장이 식민지배나 제국주의로 나타날 때 자본주의는 해외 식민지와 시장을 약탈하는 자본주의적 성격을 ‘정치적’으로 갖는다. 이것은 베버에게서 자본주의의 정치적인 유형에 속하고, 약탈 자본주의로 드러나는데, 베버가 경제적인 측면에서 합리적으로 파악한 자본주의 유형과는 전혀 다르다. 에밀 뒤르캠 역시 민족주의를 애국주의로 파악하고, 식민지배나 전쟁으로 발전되는 타입을 공격적이고 집단 이기주의에 근거된 아노미적인 병리 현상으로 말한다. 그러나 시민사회안에서 합리적인 노동분업을 통해 유기적 도덕과 공공선으로 나타나는 유형은 바람직하다.

베버가 규정하는 민족개념을 좀 더 살펴보자. 민족은 국가의 국민과 동일시되지 않는다.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는 인종 공동체와도 구별된다. 인종사회가 신분그룹으로 이루 어지고 공동기원이나 동일한 모국어가 사용된다고 해도, 이런 신분그룹이 근대의 연방국가나 민족주의를 구성하는 충분조건이 되지 않는다. 독일어, 프랑스어, 그리고 이탈리아를 사용하는 스위스 연방국가가 대표적인 사례에 속할 것이다.

민족이나 민족주의를 규정하는 것은 역사 문화적인 경험과 더불어 전쟁이나 박해와 같이 정치적으로 함께 나누었던 공동운명이다. 이것이 민족적인 연대감정의 바탕이 되며, 대중들의 문화가치를 세워 나간다. 그런가 하면 종교적인 차원이 중요해진다. 유고슬라비아의 구성원이었던 ‘정교회’ 세르비아족과 ‘가톨릭’ 크로아티아족이 인종과 언어가 유사해도 서로 다른 민족국가로 갈라서는 이유이기도하다.

역사가 야로슬라브 히리차크에 의하면, 우크라이나는 18세기 중엽부터 민족감정의 열망이 시작되었다. 우크라이나가 소비에트 연방의 부속되었다고 해도 이미 1917년 러시아 혁명이 발발하자 자체 독립을 선언한 적도 있다. 1932-33년 사이에 일어난 대기근에서 4-5백만명이 죽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대부분은 우크라이나 사람들이었다. 스탈린의 집단 대농장 정책에서도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최대의 희생자였다. 십만명 이상의 가족들이 시베리아나 카자흐스탄으로 강제이주를 당했다. 스탈린의 러시아 인종 우대정책은 우크라이나 문화적 가치와 열망에 사망선고나 다름 없었다.

1941년 나치 독일이 소비에트를 침략했을 때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은 독일을 해방군으로 간주하기도 했고, 소비에트로부터 독립하려고 비밀결사를 만들기도 했다. 1991년 소련 연방이 해체되면서 우크라이나는 독립이 되지만, 유럽연합과 러시아 연방의 영향권 사이에 끼어 있어 정치적 분쟁을 자체 안에 배태하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 베버는 민족의 유대와 연대감정을 중요한 요인으로 파악하고, 이것을 역사적인 경험과 공동의 정치운명에 묶여있다고 보았다. 전적으로 혈통에만 기인하지 않는다. 미국의 독일계 이민자들은 기꺼이 미국을 위해 2차 세계대전에서 군대에 복무하고 히틀러 파시즘에 대항하여 총을 들었다. 근대에서 민족 개념은 문화적 가치의 영역에 속하고 위신과 연대감정에 근거된다. 이것이 공동의 국가를 설립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자유, 평등, 박애라는 프랑스 혁명의 이념에서 자본주의와 개인주의가 전통적인 인종 공동체를 대체했다.

그러나 전통으로 회귀하려는 낭만적 민족(인종)주의는 영국의 보수정치가 에드몬드 버크(1729-1797)가 대변하는데 프랑스 혁명에 대한 그의 혹독한 비판에서 나타난다. 여기서 민주주의는 고작해야 군주제와 인종/민족의 전통을 유지하는 문화적 관습에 지배당하거나 아니면 악세서리 정도로 취급된다.

그러나 미국독립선언(1776)에서 버크의 정치철학은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존 로크의 삼권분립과 루소의 국민주권과 시민적 승인이 중요한 자리를 갖는다. 어이가 없는 것은 국내의 태극기 부대를 지지하는 정치이론가들이 보수정치의 수장을 에드몬드 버크로 강조하면서, 자유 민주주의나 공화제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은 블랙 코메디나 다름없다. 그리고 이승만, 박정희의 업적이 대한민국에 근대성을 가져왔다고 말한다. 근대성은 독재나 군사 파시즘이 경제개발을 통해 가져다줄 수 있는 값싼 상품이 같은 것이 아니다.

정승훈 교수(시카고 루터신학대학원)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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