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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차드 빌라데서의 신학적 미학이론

기사승인 2022.11.22  01:2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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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교와 미술: 테오 순더마이어를 중심으로 (3)

▲ 리차드 빌라데서는 현대의 학문적 신학이 신학의 미학적 차원을 상실한 것을 비판하면서 신학이 종교와 종교적 언어가 가지는 감정, 아름다움, 그리도 예술의 측면을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Getty Image

신학을 미학과 연결하여 이해하려는 매우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연구는 리차드 빌라데서의 ‘신학적 미학: 상상력, 아름다움, 그리고 예술 속의 하나님’에서 전개된다.(1) 주로 문학, 음악, 미술의 영역에 미학을 제한하면서, 신학적으로는 로너간과 칼 라너의 초월적 신학에 의존하는 빌라데서는 신학적 미학이론을 정립하려고 한다. ‘신학적 미학이론’은 ‘하나님, 종교, 그리고 신학이라는 대상을 감각적 지식(감각, 상상력, 감정), 아름다움, 그리고 예술과 관련하여 성찰한다’.(2)

현대의 학문적 신학이 신학의 미학적 차원을 상실한 것을 비판하면서 빌라데서는 신학이 종교와 종교적 언어가 가지는 감정, 아름다움, 그리도 예술의 측면을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신학 자체도 감정을 가지고, 이미지 속에서, 그 담론의 종교적이고 시적인 요소들을 통합하며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하며, 신학이 단순히 추상적인 학문이 될 수 없는 것은 신학의 목표가 모든 개념들 너머의 하나님의 신비 체험에로 우리를 인도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3)

이런 입장은 배타적으로 언어적 텍스트에 기초하고 있는 신학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언어적 택스트에 기초한 신학은 주로 한 사회의 상류계급, 문화적으로 특권층이며 고등교육을 받은, 남성의, 특히 수도사들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학에 있어서 언어적인 측면보다 훨씬 더 보편성을 지니는 종교적 상징과 예술을 연구하는 것이 정당한 작업이라고 한다.(4)

종교적 상징과 예술이 비언적이라고해서 전합리적(pre-rational)인 것이나, 언어적이고 개념적인 사유의 번역이나 설명이 아니다. 상징과 예술은 그 자체로서 고유한 사유방식이다. 다시 말해 예술에서 단지 종교적 전통의 비언어적 표현들을 발견할 뿐 아니라, 인간의 의식과 자유에 의해 수용되어지고 있는 계시, 즉 하느님의 자기-의사소통의 장소를 발견한다는 것이다.(5)

빌라데서는 언어적 택스트에 기초한 그리스도교 신학의 역사에서 어떻게 이미지가 추방되었는지를 역사적으로 검토한다.(6) 이른바 ‘성상파괴논쟁’을 역사적으로 검토하면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형상적 묘사 금지에 대한 구약성서적 근거에서부터 개신교 내부에서 제기되는 미신의 위험과 말씀의 우월성에 대한 강조를 한편으로 분석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하느님에 대한 시각적 표상이 사실상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존재해 왔으며, 오히려 시각적 표상이 개념이나 말을 능가하는 구체성과 강조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7)

성상파괴논쟁에서 드러났듯이 서방교회 대부분은 아이콘에 대한 동방교회의 성례전적인 관점을 거부한다. 서방은 이미지의 제작을 본질적으로 교훈적인 목적에 봉사한다고 보았으며, 예술적 이미지는 이론적으로 선포된 말씀, 특히 성서에 종속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전통적으로 종교적 이미지는 빈곤한 성서, 즉 글을 읽지 못하는 자를 위해 성서의 이야기를 그림의 형식으로 표상한 것으로 여겼다.(8)

그러나 빌라데서는 언어가 그리스도교 계시의 배타적 매개물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비록 언어가 직접적이고 개념적으로 하느님을 전달할 수는 있지만, 은총의 삶은 그 개인적이고 공동체적인 차원에 있어서 생활방식, 행동, 예배, 이미지, 그림 등에서도 비언어적으로 표현되며, 이것들 또한 하느님의 영의 사역들이고 하느님의 성육화된 말씀들이라는 것이다.(9)

종교적 미술은 크게 두 가지 기능을 가지고 있는데, 교훈적 기능과 성례전적 기능이 그것이다. 교훈적 기능은 메시지의 전달을 지향하는데, 그런 예술은 형식에 있어서 상징적 혹은 표의 문자적이거나 혹은 이야기적일 수 있다. 반면 성례전적 예술은 주로 숭상, 회상, 그리고 명상을 목적으로 한다. 그것은 감상자의 마음에 그것이 표상하는 것의 현존을 가져오는데, 종종 종교적 초상화의 형식을 취하기도 한다.(10)

그러나 빌라데서는 종교화만을 그의 신학적 미학의 성찰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까닭은 모든 진정한 예술은 그것이 직접적으로 종교적이든 그렇지 않든 우리로 하여금 아름다움이 성스러움 속으로 넘어가는 교차점을 발견하도록 초대하기 때문이다.(11)

빌라데서는 신학과 미학의 관계를 가장 포괄적으로 정립한 신학자로 기억될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이론적 작업이 서구의 콘택스트에 머물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미술해석이 선교학적 의미를 갖지 못한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그가 한국어판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해방과 문화들간의 대화에 봉사하는 상상력, 아름다움, 그리고 예술의 실천적 신학을 창조하여야 하는 보다 어려운 과제는 … 민족과 문화 속에서 구체적으로 씨름하는 한국 신학자들의 열정과 사유’에 맡겨져 있다.(12)

미주

(1) Richard Viladesau, Theological Aesthetics: God in Imagination, Beauty, and Art(New York: Oxford Unviersity Press, 1999), 손호현, 『신학적 미학: 상상력, 아름다움, 그리고 예술 속의 하나님』 (천안: 한국신학연구소, 2001).

(2) 리차드 빌라데서, 위의 책, 42.

(3) 리차드 빌라데서, 위의 책, 44.

(4) 리차드 빌라데서, 위의 책, 51.

(5) 리차드 빌라데서, 위의 책, 55.

(6) 리차드 빌라데서, 위의 책, 114-143 참조.

(7) 리차드 빌라데서, 위의 책, 315.

(8) 리차드 빌라데서, 위의 책, 312; 그리스도교 형상금지와 우상타파 논쟁에 대해서는 Gerardus van der Leeuw, Sacred and Profane Beauty: The Holy in Art, 윤이흠, 『종교와 예술: 성과 미의 경계에 대한 현상학적 이해』 (서울: 예화당, 1994), 66-81 참조.

(9) 리차드 빌라데서, 위의 책, 315.

(10) 리차드 빌라데서, 위의 책, 319-320.

(11) 리차드 빌라데서, 위의 책, 336.

(12) 리차드 빌라데서, 위의 책, 6.

채수일(전 한신대 총장) sooilchai@hanmail.net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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