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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복음서 Q는 성전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기사승인 2020.09.02  16:5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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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복음서와 성전 및 제사장 (2)

▲ 예수 시대의 헤롯 성전 모형 ⓒGetty Image

Q복음서에서 성전이 자주 등장하지는 않는다. 성전은 몇몇 구절에서만 언급된다(Q4:9; Q11:49-51; Q13:34-35 / Q의 장과 절은 누가복음의 장과 절을 일컫는다). 이 짧은 구절들을 통해서 Q복음서가 성전에 대해서 어떠한 입장을 취했는가를 판단해야 한다. 성전이 직접적으로 언급되거나 성전과 연관된다고 생각되는 본문은 다음과 같다.(1)

Q4:9 마귀가 그를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τοῦ ἱεροῦ) 꼭대기에 세우고 그에게 말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너 스스로 뛰어내려 보아라

Q11:49-51 그러므로 또한 지혜가 말씀하셨다. “내가 그들에게로 예언자들과 지혜자들을 보내겠다. 그런데 그들이 그들 중에서 몇 명을 죽이고 박해할 것이다. 그 결과 창세 이래로 흘린 모든 예언자들의 피의 대가가 이 세대에게 요구된다. 곧 아벨의 피로부터 제단과 집(τοῦ οἴκου) 사이에서 죽임을 당한 사가랴의 피까지이다.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것이 이 세대에게 요구될 것이다. 

Q13:34-35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언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사람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날개 아래로 제 새깨들을 모으는 것 같이 얼마나 자주 내가 너의 자녀들을 모으기를 원했느냐? 그런데 너희는 원하지 않았다. 보아라 너희의 집이(ὁ οἶκος ὑμῶν) 버려진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는 복되시다!’라고 너희가 말한 그 때가 오기까지 너희는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위의 본문에서 성전은 당연하거니와 “집,” “너희의 집”도 맥락상 성전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이 본문에 의거하여 Q복음서와 성전의 관계를 알 수 있다.

성전을 향한 Q의 두 가지 입장

Q복음서가 성전에 대해서 어떠한 입장을 취했는가에 대해서는 연구가들의 견해가 양분된다. 한규삼은 선행전인 연구들을 잘 정리했고, 필자는 다른 글에서 한규삼의 정리를 서술한 바 있기에 이를 다시금 인용하려고 한다.

역사비평적 Q 연구에서 Q 공동체가 성전에 대해 가지는 입장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이다. 캐취폴을 위시한 “긍정적인 평가”(possitive assessment)의 전통이 있고, 클로펜보그를 대표로 하는 “부정적인 평가”(negative assessment)의 그룹이 있다. 긍정적인 평가그룹은 “(1) 율법이 바리새인들과 Q 공동체에 의해서 준수되었다(Manson, Schulz, Wild, Jacobson, and Tuckett), (2) 언약이 성전의 지원을 유지함에 있어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Freyen)”고 주장한다.

반면, 부정적인 평가그룹은 “(1) Q는 논쟁을 해결함에 있어 율법에 호소하지 안는다(Schelkle and Kosch), (2) Q의 사회적/서사적 지도는 예루살렘을 중심적 위치에 놓지 않는다(Reed), (3) Q11:42b는 Q가 성전/십일조를 지원했다는 증거가 될수 없다. 왜냐하면 이 구절은 십일조에 대한 합법적인 논쟁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적인 비평이기 때문이다(Vaage, Jolliffe, and Horsley)”고 주장한다.(2)

한규삼은 긍정적 평가와 부정적 평가를 고찰한 후 석의를 통해서 “Q공동체가 성전의 지도력에 대립해 있었다”고 결론내린다.(3)

김명수는 “원시 그리스도교 Q공동체와 예루살렘 성전 공동체의 관계”에서 Q복음서와 성전의 문제를 다룬다. 김명수는 기존의 연구의 고찰을 통해 Q복음서가 성전에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입장(Catchpole, Manson, Schulz, Wild, Jacobson)(4)과 부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입장(Kloppenborg, Schekle, Horsley)(5)으로 양분되어 있는 상황에서 주석을 통해서 예비적 결론을 내리고 있다. 김명수는 셰클레(K. H. Schekle)의 주장에 근거하여 성전에 대한 Q공동체의 부정적 입장이 기독교가 “유대교로부터 분리되어 독자적인 하나님 통치 공동체로 발전하는 역사적 과정을 보여준다”고 본다. 김명수는 또한 Q의 초창기의 전승층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이는 텍스트들이 성전에 대해서 반대하는 입장에 서 있고, 후대 편집으로 보이는 텍스트들에서는 Q공동체와 예루살렘 공동체의 갈등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후대 편집 텍스트는 Q공동체와 예루살렘 공동체의 완전한 분리를 암시한다고 본다.(6)

존재의 긍정, 제도의 부정

필자는 이러한 학자들의 견해와 달리 Q복음서가 원칙적으로는 성전 제도를 인정했을 것이라고 본다. 티발트(M. Tiwald)는 Q4:1-13의 율법 인용, Q11:42에서 알 수 있는 제의적-종교의례적 규정 준수, Q16:17에서 나타난 바 “전체 율법”(die ganze Tora) 준수의 요구 등을 고찰하면서 Q복음서를 “통일적인 신학을 가진 팔레스타인-유대기독교적 문서”라고 칭한다.(7) 그는 이러한 입장에서 예수의 예루살렘 비판 말씀(Q13:34f)을 아래와 같이 범죄-예언자의 경고와 거부-포기와 회개-연민과 구원의 도식에서 읽는다.(8)

그는 또한 예수의 성전 비판을 초기 유대교의 예언의 맥락에서 독해한다(왕상9:1-10; 사5:1-7; 렘22:5; 겔9-10(특히 10:18f; 11:23) 그리고 시리아 바룩 8:2).(9)

Q복음서를 유대적 맥락에 위치시키는 여러 학자들의 주장처럼, Q복음서는 구약성서적 언어와 정신이 만연하며, 구약성서의 인물들이 빈번하게 인용된다.(10) 무엇보다도 Q복음서는 율법에 대해서 보수적인 입장에 서 있으며, 구약성서에 대해서 철저하다. 안식일에 대해서도 바리새인과는 다른 입장이지만 안식일을 지켰음을 암시하는 구절이 있다(Q14:5). 뒤에 다루겠지만 Q복음서는 십일조도 긍정한다.

이러한 유대적 측면에 대해 보수적인 일면으로 미루어 볼 때 Q복음서가 성전 제도를 부정하지 않았으리라고 자연스럽게 추정할 수 있다. 필자는 Q복음서가 유대적 맥락에 서 있으며 제도로서의 성전에 대해서 긍정하면서도 실정적인 당대 성전의 현실에 대해서 비판했을 것으로 보는 입장에 서 있다. 이러한 필자의 입장은 Q복음서를 이방 기독교의 맥락에서만 바라보는 입장(11)과는 대립된다.

Q복음서는 성전 제도에 대해서는 인정했지만, 그와 동시에 당대의 실정적인 성전의 현실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했었다. 에고(B. Ego)는 예수의 성전파괴의 말씀을 전통적인 예루살렘 성전 신학의 배경과 예수 당대의 헤롯 성전 체제라는 양측면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12) Q4:9에는 성전이라고 부르지만, Q11:51과 Q13:35에서는 “집” 혹은 “너희 집”이라고 불린다. Q13:35에서 성전을 “하나님의 집”이라고 부르지 않고 “너희 집”이라고 부른 점을 볼 때 Q복음서가 성전에 대해서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입장을 잘 표현해주는 말씀은 Q11:51이다. 거룩해야 할 성전에 의로운 피가 흘렀다. 성전으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성전에 대해서, 진정성을 잃어버린 성전에 대해서 Q복음서는 비판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13)

미주

(미주 1) Q복음서 본문은 IQP의 비평판본(Critical Edition of Q)를 따랐으며 번역은 소기천 교수의 번역을 따랐다. 소기천, “『예수말씀대조연구서』의 예수말씀 복음서 Q”, 『예수말씀 복음서 Q 개론: 잃어버린 지혜문학 장르의 전승 자료』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4), 338-387.
(미주 2) K.-S. Han, Q and the Temple: The Q community's attitude toward the Temple (Knox College, University of Toronto: 1998), 49-50; 김재현, 『Q의 예수 이야기: 최초의 내러티브 신학을 찾아서』(파주: 한국학술정보, 2009), 205.
(미주 3) Kyu Sam Han, Jerusalem and the Early Jesus Movement: The Q Community’s Attitude toward the Temple (London: Sheffield Academic Press, 2002), 213.
(미주 4) D. Catchpole, The Quest for Q (Edinburgh: T & T Clark, 1993); T. W. Manson, The Sayings of Jesus(London: SCM Press, 1949); S. Schulz, Die Spruchquelle der Evangelisten (Zürich: Theologischer Verlag, 1972); R. Wild, “The Encounter between Pharisaic and Christian Judaisms,” NovT vol. 27. no. 2 (1985): 105-124; A. D. Jacobson, The First Gospel: An Introduction to Q (Sonoma CA: Polebridge, 1992).
(미주 5) J. S, Kloppenborg, “City and Wasteland: Narrative Word and the Beginning of the Sayings Gospel(Q),” Edited by Dennis E. Smith, Semeia 52 (1990): 145-60. Atlanta : Scholars Press, 1990; K. H. Schekle, “Israel und Kirche im Anfang,” TQ 163(1983).
(미주 6) 이상, 김명수, “원시그리스도교 Q공동체와 예루살렘 성전 공동체의 관계,” 『신학사상』 제137집(2007): 67-96.
(미주 7) M. Tiwald, “Hat Gott sein Haus verlassen(vgl. Q13:35)?: Das Verhältnis der Logienquelle zum Frühjudentum,” Hrsg. M. Tiwald, Kein Jota wird vergehen: Das Gesetzverständnis der Logienquelle vor dem Hintergrund Frühjudischer Theologie(Stuttgart: Verlag W. Kohlhammer, 2013), 64-66.
(미주 8) Ibid., 72.
(미주 9) Ibid., 73.
(미주 10) 대표적으로 D. C. Allison, JR., The Intertextual Jesus: Scripture in Q (Pennsylvania: Trinity Press International, 2000).
(미주 11) H. T. Fleddermann, Q: A Reconstruction and Commentary (Leuven, Paris, Dudley, MA: Peeters, 2005), 164-166. 플레더만은 “Q의 배경은 이방 기독교에 있다”는 테제를 일관되게 주장한다.
(미주 12) B. Ego, “Different Attitude to the Temple in Second Temple Judaism: A Fresh Approach to Jesus’ Temple Prophecy,” ed. M. Tiwald, Q in Context Ⅱ: Social Setting and Archeological Background of the Sayings Source (Göttingen: V&R unipress, 2015), 176.
(미주 13) 김재현, 『Q의 예수 이야기: 최초의 내러티브 신학을 찾아서』(파주: 한국학술정보, 2009), 205.

김재현(계명대) verticalkj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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