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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僊)이란 무엇인가?

기사승인 2020.02.18  01:5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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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찬린의 선맥신학과 유동식의 풍류신학(1)

▲ 변찬린, 『성경의 원리 上』, 한국신학연구소, 2019, 67)

 

예시 1) 혹자가 ‘신선’이라는 말을 들으면 구름을 타고 긴 지팡이를 들고 흰 머리를 휘날리는 인간의 모습을 상기할 터이고, 혹자는 불룩 나온 배에 온화한 미소를 띠고 지팡이를 가진 산신 옆에 익살스런 호랑이와 소나무 가지에 까치가 있는 한국의 신선도를 연상할 것이다. 눈 밝은 이는 엘리야가 회오리바람을 타고 승천하는 모습을 상상할 터이다. 그럼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후 로마 군병이 찢으려고 한 속옷이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는 성구는 어떻게 이해할까? 이 통으로 짠 속옷이 바로 영화(靈化)하고 선화(仙化)하는 궁극적 인간이 입는 천의무봉(天衣無縫)이다.(1)

 

예시 2) 종교학자인 동료 교수가 한국 목회자의 초청으로 강연을 한 후 질의에 대한 응답과정에서 나온 얘기라고 한다.

목회자 : 강의는 잘 들었습니다. 그런데 구름타고 우화등선 하는 신선의 얘기를 정말로 믿습니까?

종교학자 : 그럼 목사님들은 예수가 빈 무덤에 세마포를 남겨두고 부활했다는 얘기를 믿으십니까?

목회자들 : …

 

예시 3) 변찬린은 니고데모와 예수의 대화에서 말하는 ‘거듭난 자’가 단지 도덕적인 개과천선이 아닌 ‘영으로 거듭난 사람’을 의미한다고 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요 3:8)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바람같다 하였다. 바람! 바람은 무엇을 암시하는가? 바람은 아무 곳에도 머물지 않고 집착하지 않고 항상 흐른다. 절대 자유한 존재는 바람처럼 머물거나 집착하지 않고 흘러야 한다. 그러므로 바람은 절대 자유한 자이다. 율법과 죽음에서 해방 받은 자이다. 진리로 자유하게 된 존재이다. 절대 자유한 자는 풍류체가 되어야 한다. 무애자유한 거듭난 사람, 이것이 영으로 다시 난 사람의 정체이다.”(2)

선맥(僊脈), 한국의 전통사상이자 한국 종교의 근본 흐름

선(僊)은 한국 종교문화의 기층을 형성하는 원류이자 본류이다. 중국의 13경에도 보이지 않고, 『노자』에도 없으며, 춘추시대를 지나 전국시대(B.C. 403-B.C.221)의 『장자』에 와서야 신선설이 등장한다.(3) 도교는 신선사상을 기반으로 노장 사상, 그리고 유교와 불교와 교섭하면서 다양한 중국 민중신앙을 받아들여 형성된 중국 종교로 알려져 있다. 교단 도교는 중국에서 자생한 제도 종교이지만, 신선사상의 원류는 동이족이다.

선맥(僊脈)의 전통은 동이족이 살던 청구(靑丘)이며, 선맥의 하늘을 개천한 사람은 동이족이라고 한다. 선맥은 한국의 종교기층을 형성하는 종교의 핵이다. 선맥 전통은 단군신화에 이어 최치원의 『난랑비서』에서 그 종교적 정체성을 나타낸다. 바로 ‘풍류’이다.

변찬린은 1960년대 중반부터 풍류에 대한 언급을 시작한다. 1979년에는「선고僊(仙)攷」에서 동이족의 선맥사상, 풍류도를 성경텍스트와 이해지평에서 융합시키는 작업을 시도한다.(4) 이때는 변찬린의 『성경의 원리(상)』을 세간에 선보이며 새 교회 운동을 펼치던 시기이다.

▲ 변찬린, 「僊(仙)攷」, 『甑山思想硏究』 5輯, 1979)

최치원은 당나라에 유학을 가 문필을 떨친 엘리트 학자로서 당시 장안은 동서종교의 교류지인 국제도시였다는 점을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 그래서 변찬린은 “당나라에 유학하고 돌아와서도 풍류의 얼을 고이 간직한 고운”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한국의 주체적 종교심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 그가 “왜 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 이를 풍류라고 했을까?” 김정설은 ‘풍류’의 이해가 한국 종교사의 운명을 결정짓는 핵심개념이라고 지적한다.

변찬린은 풍류의 첫 출전인 「난랑비서」의 난랑(鸞郞) 자체가 신선을 일컬으며, 난랑은 신선의 다른 이름이라고 논증한다. 난랑의 난새(鸞)는 봉황(鳳凰)이고 봉황은 동방에서 난 신선을 상징하는 바람새(鳳凰은 風+ 鳥, 風+皇의 합성어이다)이다. 이처럼 ‘풍류’는 신선인 난랑을 기리는 문서에 기록되어 선맥을 발현된 최초의 종교적 언어이다.

또 『삼국유사』의 미시랑(未尸郞)도 미륵불의 은어이며 시신을 남기지 않기에 미시(未尸)라고 표현한다. 미륵불의 용화세계도 잃어버린 선맥의 자취이다.

▲ 청와대 앞 봉황새

이런 선맥은 근대의 최제우와 강일순 등에 의해 주체적인 근대 종교체험의 표현으로 드러난다. 근대 신종교의 창교자가 동이족의 고유한 하늘님 체험을 통해 공통적으로 개벽과 신선사상을 주장하는 것은 토착화된 근대의 풍류도의 재현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원시반본(原始反本)’이라 한다.

변찬린은 한국의 종교적 바탕인 선맥을 고증하기 위해 떼이야르 드 샤르댕, 『성경』, 『장자』, 『노자 도덕경』, 『중용』, 『시경』, 『성경통지(盛京通志)』, 『삼국사기』, 『대순전경』, 『삼일신고』, 송호수 편 『민족정통사상의 탐구』, 『동방사상논총』, 이능화의 『조선도교사』, 최인의 『한국학강의』, 『단재전서』, 『동문선』, 『포박자』, 『고려도경』을 참고하여 그의 논지를 전개한다.

1979년에는 발표된 「선고僊(仙)攷」는 1987년 류병덕이 『한국철학사(상)』의 「화랑도와 풍류사상」, 1988년에 김상일이 『한밝 문명론』, 또 유동식이 책임편집한 『한국종교사상사(증산교, 대종교, 무교)』(1998)에도 인용된 이 연구분야의 선구자적인 논문이다.(5)

한국종교 문화의 원류는 무맥(巫脈)이 아닌 선맥이며, 선맥의 관점에서 죽어가는 실존인 인간의 한계상황을 극복하는 것은 바로 잃어버린 선맥의 복원에 달려있다. 그런데 희랍의 헬레니즘에 의해 해석된 서구신학의 해석전통은 ‘산 자의 하나님’을 증언하는 성서텍스트를 ‘죽은 자의 영혼이나 구원하는 죽은 자의 하나님의 문서로 만들었다고 변찬린은 비판한다.

선맥과 도맥의 지평융합

성서의 죽은 자를 살리는 도맥은 교리화된 그리스도교의 신학체계에서는 성경사상의 핵인 부활의 도맥과 변화의 도맥은 규명될 수 없다. 다시 말하면 “성경은 선(僊)을 은장한 문서이다.”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성경의 에녹과 엘리야의 승천기사와 모세와 예수의 부활사상을 동방의 ‘풍류’인 선맥과 이해지평에서 융합시키고 있다.

변찬린은 풍류에 담긴 종교적 함의를 궁극적 인간의 이율배반적인 존재양태를 ‘풍류체(風流體)’라 하고, 삼교를 포함하는 융합적인 인식체계를 ‘풍류심(風流心)’, 일상생활에서 다양한 종교적 황금율을 실천하는 인간을 ‘풍류객(風流客)’이라는 신조어를 발명한다. 즉 풍류는 새로운 실존인 풍류체라는 존재론적 탈바꿈을 한 궁극적 인간, 다양한 학문을 통섭하고 회통하는 인식론적 차원의 ‘풍류심’, 그리고 생활세계에서 신행일치하는 ‘풍류객’이라는 존재론적 차원에서 그의 풍류세계의 밑바탕을 형성한다. 이런 풍류적 개념을 가진 것이 한국인의 종교적 심성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별도로 상세히 말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풍류신학의 풍류가 ‘불 혹은 광명’의 이두어라고 하면서, 요한복음 3장 8장을 연계하여 개념화하고 있지만 ‘광명’이라는 개념과 성서텍스트와의 내적 맥락이 결핍되어 있다. 더 나아가  풍류가 ‘불, 태양과 광명’과 연관성을 가지는데 이것이 어떻게 ‘멋진 한 삶’이라는 유비적 관계를 가진 언어가 될 수 있는가?

이에 대해 선맥신학의 풍류는 바람이라는 상징어로 영화(靈化), 영기화(氣化), 선화(仙化)의 인간 존재의 변화와 탈바꿈의 창조적 영적 에너지를 일관되게 개념화하여 변찬린은 내적 맥락을 가진다고 평가된다. 성서의 영화(靈化)와 동아시아의 선화(仙化)는 ‘풍류’라는 상징어에서 맥락적으로 ‘이해지평’을 이루고 성서해석에 적용되고 있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예수는 땅에 속한 자의 형상에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으로 변화받은 존재가 되었다.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은 자유한 형상이다. 자유한 형상은 풍류체가 되어 어떠한 시공에도 자유자재로 그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 그러므로 선(僊)은 곧 풍류체이다. 형체없는 바람처럼 자유한 자가 되어 생명의 피리구멍으로 나들이 하는 영, 영은 바람이며 바람은 영이다. 영은 풍류체이다. 본래 모습이 없지만 방편따라 자유자재로 모습을 나타낼 수 있는 <무형(無形)이면서 무한형(無限形)>의 모습! 이것이 풍류체이다. 풍류체가 되면 지구의 좁은 마당을 뛰어넘어 우주를 넘나드는 자유로운 존재가 된다. 그러므로 예수는 우주적 그리스도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6)

이런 동방의 선맥인 ‘풍류’의 사건을 변찬린은 유·불·도에서 발견하지 못하고 성서에서 발견한다. 변찬린은 “성경은 선(僊)의 문서이다.”라고 하면서 “에녹과 멜기세덱과 엘리야와 모세와 예수로 이어지는 도맥(道脈)은 이날까지 미개발의 황금광맥이었다.”라고 말한다. 이처럼 창조적 진화의 완성태인 풍류체는 존재탈바꿈의 궁극적 신인(神人)으로 동방의 선맥과 성서의 변화와 부활사상은 이해지평에서 융합된다.

변찬린의 선맥신학

영이란 무엇이며, 영기(靈氣)란 무엇인가? 예수가 부활 후 남겨놓은 세마포(마 27:59-61;요 20:6-7)와 빈 무덤 사건(요 20:13-15)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에녹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죽지 않고(창 5:24) 하나님과 동행한 사건(히 11:5)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엘리야가 불 수레를 타고 승천했다(왕하 2:11)는 소식은 문학적 상상력에 불과할까? 부활과 승천 사건은 다양한 해석이 공존하는 생명과 영생의 이야기이다.

선맥신학에서 인간은 영과 육이 죽지 않고 거듭나는 에녹과 엘리야적 변화와 모세와 예수처럼 죽어서 부활하는 두 유형으로 존재론적 탈바꿈을 예시하고 있다. 이런 변화체와 부활체를  새 실존으로 거듭난 영화된 사람을 풍류체라고 변찬린은 말한다. 성령의 한국적 표현이 풍류이다. 영화의 선가적 표현이 선화이다. 동학의 언어로 ‘지기(至氣)’이다. 풍류는 하나님의 영으로서 인간을 영화(靈化)시키는 구원의 영적 에너지, 선화(仙化)에너지이다.

그러나 선서와 신선은 ‘괴력난신(怪力亂神)’의 비합리주의 현상을 배척하는 유학자에 의해 미신화되었으며, 불가에 의해 무시당하였다. 이성신학과 피안신학에 의해 오해되는 ‘변화와 부활’이라는 성경적 사건은 당대인과 새로운 관점으로 소통되어야 하며, 변찬린은 이에 대해 하나의 가능성 있는 해석학적 관점을 제공하고 있다.

선맥신학에 나타나는 풍류는 종교적 영성(靈聖)으로서 궁극적 인간이 시공우주에서 종교적 황금율을 실천하는 성스러운 종교적 기제이며, 죽지 않고 영성(靈聖)우주로 가는 동방의 사유체계와 서방의 사유체계를 포월하는 종교적 상징어이다. 즉 영화이고, 기화이고, 선화로서 존재론적 탈바꿈을 말하는 창조적 진화의 완성체인 새 인간을 말한다.

선맥신학은 선(僊)이라는 한국 종교의 중핵과 성서의 핵심인 부활사상을 한국의 종교적 정체성인 ‘풍류’를 상징어로 대화하고 소통시키고 있다. 앞으로 선맥신학의 하나님론, 예수그리스도론, 성령론, 교회론 등은 조직신학적 방법으로 조명해 나갈 것이다. 그는 신학의 틀을 만드는데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성서가 신학의 틀 안에서 화석화되지 않고 종교적 인간과 관계성을 맺고 생활세계에서 재현되어야 하는 성서해석에 주력하고 있다.

변찬린은 선(僊), 즉 “풍류는 천하의 신기(神機)”라고 하며 다종교적 언어, 간텍스트적 해석, 다학제적 방법으로 성서텍스트를 해석하며 그의 종교적 사유체계를 펼치고 있다. 이런 성서해석의 체계를 필자는 ‘ᄒᆞᆫ밝성경해석학’이라고 명명한 바 있다. 선맥신학은 ‘한밝 성경해석학’이라는 틀 안에서 그의 신학적 의미를 밝히기 위한 학문적 장치라고 할 수 있다.

다음은 ”변찬린의 선맥신학과 유동식의 풍류신학(2) : 선교신학으로 토착화 신학은 토착될 수 없다“는 주제로 글을 이어간다.

미주

(미주 1) 변찬린,  『성경의 원리(下)』, 한국신학연구소, 2019, 542.
(미주 2) 변찬린, 『聖經의 原理』(서울: 文岩社, 1979), 187-188.
(미주 3) 구두 전승으로 이어오던 다음 성구가 형성된 성서 문서편집의 시기를 상기해 비교해 보라. 창세기 2장 7절에 아담의 생령(a living soul)의 기사와 이를 인용한 고린도전서 15장 45절, 창세기 5장 4절의 에녹의 승천기사, 열왕기하 2장 11절의 엘리야의 회오리 승천사건, 요한복음 3장 6절-8절의 예수와 니고데모의 ‘성령으로 거듭난 자’의 모습, 고린도전서 15장 14절의 바울이 말한 “신령한 몸”등이 우리의 주제와 관련되는 주요 성구의 일부분이다.
(미주 4) 변찬린의 선맥사상과 성경해석과의 관련성을 이해하려면 다음을 참고할 것: 변찬린, 「僊(仙)攷」, 『甑山思想硏究』 5輯, 1979, 179-212; 변찬린, 『성경의 원리(上)』, 한국신학연구소, 2019, 62-90; 변찬린, 『성경의 원리(下)』, 한국신학연구소, 2019, 557-570 등에 주로 있으며 이 외에도 『성경의 원리』 4부작 여러 곳에 발견할 수 있다.
(미주 5) 물론 현대적 기준으로 볼 때 엄밀한 학술적 기준은 충족시키지 못하지만, 그의 논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유영모, 함석헌 등이 논문식 글을 쓰지 못한 것이 강단학계에서 수용되지 못한 큰 원인 중의 하나라고 박재순은 지적한 바 있다.
(미주 6) 변찬린, 『성경의 원리(下)』, 같은 책, 568.

이호재 원장(자하원) injiche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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