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스도교-주체사상 대화연구소 운영위원들을 만나다
지난 12월19일(수) 오후6시 종로1가 르메이에르 빌딩 한 사무실에서 “그리스도교-주체사상 대화연구소 운영위원회”가 열렸다. 출범한지 한 달 남짓, 앞으로 연구소가 어떤 사업을 해나갈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논의하는 자리였다. 여전히 한국 혹은 남한사회에 ‘주홍글씨’처럼 낙인이 찍혀 있는 ‘주체사상’을 왜 대화의 상대로 생각할까 의문을 품어볼만한 자리였다.
그리스도교-주체사상 대화연구소에게 대화는
그것도 일반 시민사회단체가 아닌 그리스도교인들이 왜? 남한사회 반공 이미지를 누구보다 굳건히 지키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왜? 과연 이들이 생각하는 그리스도교-주체사상과의 “대화”는 무엇일까?
이 연구소의 창립 취지문을 잠시 살펴본다.
“옛 시대와 새 시대가 교차하는 이 시기에 한국 교회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모색하면서, ‘그리스도교-주체사상 대화연구소’를 창립하게 되었습니다.”
▲ 지난 12월19일 종로1가 르메이에르 한 사무실에서 그리스도교-주체사상 대화연구소 운연위원들이 모여 2019년을 준비하며 사업계획을 논의하고 있다. 사진 오른쪽부터 예벗교회 최성민 전도사, 조헌정 연구소 소장, 윤인중 목사, 정대일 연구소 연구실장, 장병기 KSCF 총무. ⓒ이정훈 |
작금의 현실에 대한 시대인식이 묻어 있다. 옛 시대와 새 시대가 교차하는 시기로 해석하고 있다. 한국사회 사상초유의 탄핵으로 전임 대통령이 물러나고 새로운 사회를 꿈꾸며 출범한 현 정부, 그러나 새 시대는 여전히 요원하다고 본 것이다.
또한 취지문에는 이런 문구가 눈에 띄인다.
“한반도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 남북 화해와 교류, 협력은 선결적인 과제입니다. 그 핵심에는 남북의 상호이해 증진이 놓여 있습니다. 한국 교회가 이에 이바지 할 수 있는 첫 걸음은 북의 유일 신념체계인 주체사상과의 진지한 대화입니다. 이를 통해 남북의 민중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해석의 지평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맞이해 한국 교회가 이바지 할 수 있는 첫 걸음을 주체사상과의 진지한 대화로 꼽았다. 북한 사회에 무너진 교회를 다시 세운다던지 몰수 당했던 교회의 재산을 다시 찾는다던지 하는 문제는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서로 소통할 수 있는 해석의 지평을 앞세우고 있다.
그래서 운영위원들에게 물었다.
“그리스도교와 주체사상 간의 대화가 그리스도교에 어떤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는가?”
조헌정 소장(이하, 조): 주체사상과의 대화를 통해 그리스도교와의 공통분모를 찾아가는 작업이 의미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땅’의 문제에 대해 주체사상과 그리스도교 간 깊은 대화가 가능할 것이다. 성서는 철저하게 땅의 사유화를 부정하고, 땅의 공유화를 주장하는 입장이다. 그리스도교는 ‘땅은 하느님께 속한 것’이라는 신앙고백을 가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 땅에 대한 사회주의의 시각과 그리스도교의 시각이 서로 통하고 대화할 수 있다고 본다. 현재 세계에서 이스라엘·러시아·쿠바·북한 등등이 땅의 사유화를 금지하고 있다.
최성민(이하, 최): 조헌정 소장의 말씀에 동의한다. 좀 더 지평을 넓혀보면, 성서는 땅 뿐만이 아니라, 모든 소유에 대해서 하느님의 것으로 인정한다. 만나 사건이 이 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만나를 저장하려고 했을 때, 모두 썩은 것이다. 저장을 부정하는 것이다. 저장에서부터 계급이 생겨나고 빈부의 격차가 생겨났다. 성서가 저장을 금지한 것은 모든 소유가 하느님께만 있음을 선언한 것이다. 이러한 성서의 가르침과 사적 소유의 철폐를 말하는 사회주의는 대화할 수 있는 지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장병기(이하, 장): 주체사상이 추구하는 인간형과 그리스도교가 추구하는 인간형을 서로 비교해보고 대화하면, 그리스도교의 인간 이해가 더 깊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그리스도교에서는 ‘하느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사람’이라는 고백에서 유래하는 천부적 인권에 관한 개념들이 있다. 각자가 소중한 존재라는 것이다. 주체사상이 주체적 인간의 가치를 실현하려고 하는 사상이라면, 그리스도교에서 자기 존재의 근원을 확인하고자 하는 인간 이해와도 대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조: 주체사상이 말하는 주체철학은 사람중심의 철학이라고 하는데, 휴머니즘이라는 틀에서 주체사상의 휴머니즘과 그리스도교의 휴머니즘이 대화의 지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대화를 통해, 그리스도교의 인간 이해를 심화시킬 수 있는 계기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 사진 가운데가 그리스도교-주체사상 대화연구소 소장을 맡게 된 조헌정 목사. 조 목사는 그리스도교와 주체사상과의 대화의 가능성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이정훈 |
윤인중(이하, 윤): 20세기 이 땅을 찾아 온 외래사상은 크게 맑시즘과 그리스도교이다. 이 두 사상이 황석영의 표현을 빌면 한반도를 찾아온 ‘손님’인 것이다. 북에서는 맑시즘이 주체사상으로 꽃피고, 남에서는 그리스도교가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대형교회들이 여럿 있을 정도로 꽃피었다. 이제는 이 두 손님들이, 이 땅에 왜 왔는지 되돌아보는 대화를 진지하게 나눔으로써, 이 땅의 손님이 아닌 주인이 되는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주인의 관점에서 대화를 전개해 나가길 바란다.
조: 그리스도교 신앙의 진정한 토착화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유의미한 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정대일 연구실장(이하, 정): 교회사를 통해 볼 때, 그리스도교는 항상 타자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면서 성숙하고 발전해왔다. 21세기, 특히 4.27 선언으로 대표되는 통일시대를 맞이하여, 북은 반드시 남의 그리스도교가 이해를 해야만 할 타자이다. 남의 그리스도교가 북의 주체사상을 대화를 통해 이해하는 것은, 남의 그리스도교가 한층 더 성숙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그리스도교와 주체사상 간의 대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본다.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다.
조: 그리스도교가 히브리적 사유를 바탕으로 팔레스타인에서 출발했지만, 결국은 바울을 통해 로마를 중심으로 한 헬레니즘 체계 속에서 꽃을 피웠다. 새로운 문화와의 접촉과 대화를 통해 그리스도교는 세계화 되는 과정을 겪은 것이다. 그리스도교의 자기 성숙을 위해서도 주체사상과의 대화는 필요하다. 더구나, 북은 우리와 같은 민족이다. 민족동질성의 회복을 위해서도 북의 주체사상과 남의 그리스도교가 대화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대화는 동등한 위치에서 진행되는 것이다. 그런 위치가 아니라면 그건 강연이나 강의가 된다. 그리스도교-주체사상 대화연구소가 강조하는 것은 그리스도교 신학과 주체사상이 어느 한 곳으로 종속됨 없이 동등한 입장에서 서로의 이해를 위해 대화하자는 것이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근·현대 사회에서 비로소 시작된 것은 아니다. 성서, 특히 신약성서는 대화의 움직임을 너무도 선명하게 남겨 놓고 있다. 이방인을 위한 선교사로 각인되어 있는 사도 바울.
바울의 궤적을 이들이 추구하는 것일까? 물어보았다.
“바울은 이방인 선교를 위해 유대교라는 옷을 벗어야 했다. 그리고 실제로 벗었다. 대화는 그런 것이다. 그리스도교-주체사상 대화연구소가 추구하는, 그리스도교는 주체사상과의 대화 과정에서 어디까지 버릴 수 있다고 보는가?”
윤: 바울이 ‘나는 이방인을 위한 사도이다’라고 한 선언이 얼마나 심각한 것이었는지를 최근에 다시 깨닫게 된다. 바울의 선언은 단순히 베드로를 중심으로 한 유대인을 위한 선교와의 업무분담 정도가 아니라, 금기를 뛰어 넘는 혁명적인 선언이었다.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초대 교회의 기득권자들이 듣기에는 너무도 불온한 선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그리스도교를 한층 더 업그레이드 시킨 혁명적인 선언이라고 인정해야 한다. 현재 남의 그리스도교는 내부자들을 위한 그리스도교로 전락해 있다. 노아의 방주처럼 방주 안에 들어온 사람들만을 위한 그리스도교로 전락한 것이다. 이제 남의 그리스도교는 바울의 고백, 즉, 외부자, 이방인들을 위한 사도로 부름 받았다는 고백을 회복해야 한다. 주체사상과의 대화는 남의 그리스도교가 이 고백을 회복하는 데에 유의미한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 윤인중 운영위원은 그리스도교-주체사상 대화연구소가 그리스도교와 주체사상 사이에서 대화가 시작될 수 있는 조그만 물꼬를 틔울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이정훈 |
정: 북에서 지난 반세기 이상 종교, 특히 그리스도교를 비판해 온 지점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그리스도교는 관념론이기에 영육이원론을 주장하며 현실세계를 주목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고, 둘째, 그리스도교는 지배계급에 복무하면서 피지배 계급에 대한 착취를 정당화 한다는 것이다. 주체사상과의 대화를 통해서 남의 그리스도교가 버려야 할 것도 이것들이라고 본다. 적어도 남의 그리스도교가 민중의 아편 노릇을 하는 관념화된 그리스도교, 지배계급의 착취를 정당화하는 그리스도교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주체사상과의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지난 7-80년대를 거쳐 형성되어 온 민중신학은 관념화되고 지배계급에 부역하는 그리스도교에 대한 처절한 반성적 통찰을 통해 민중과 함께 하며 현실세계를 발붙이고 살아가는 훌륭한 전통을 만들어왔다. 하지만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북에서 잘 모르고 있을 수 있으니, 대화를 통해서 그리스도교에 대한 편견을 불식시켜야 할 것이다.
장: 그리스도교가 주체사상과의 대화를 통해 버려야 할 것 보다는, 오히려 회복해야 할 것에 대해 말하고 싶다. 주체사상의 핵심은 수령론이다. 수령을 절대화하고 공경한다. 남의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에 대한 절대가치를 인정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데, 정말 철저하게 그 믿음대로 행하고 실천하는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주체사상과의 대화를, 그리스도교가 정말 지켜야 할 절대적 가치를 회복하는 기회로 삼았으면 한다.
조: 중요한 지적이다. 내가 부목사가 되기 직전, 1986년 경 미국 뉴저지에서 전도사로 목회하고 있을 때, 모처에서 한인 원로목사님들 20여명과 함께 최은희, 신상옥 씨를 만나는 자리에 함께 할 기회가 있었다. 최은희, 신상옥 씨는 북에서 탈출한 후 미국 CIA의 조사를 3-4개월 정도 받은 상태였고, 남으로 가기 전에 미국에서 목회하는 한인 원로목사님들과 면담을 하게 된 것이다. 2시간 정도 북한의 실상에 대해 질의와 응답이 오갔는데, 주로 최은희 씨가 대답했고, 신상옥 씨는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대화 마지막에 질문이 주로 북한선교 가능성에 대해서 집중이 되자, 신상옥 씨가 큰 목소리로, ‘목사님들, 북한선교, 북한선교 하는 이야기 그만 좀 하세요! 북한은 통일되면 사흘만에 다 예수 믿습니다! 목사님들 교회나 잘 하세요!’라고 참다 못 해 소리쳤다. 지금 와서 다시 되돌아보면, 신상옥 감독은 북한 생활을 통해, ‘신에 대한 절대성’에 상응하는 그 무엇이 북한 주민들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간파했던 것으로 보인다. 2-300년 전만 해도, 통치자, 즉 ‘왕’만이 신의 형상을 띠고 나타난 사람, 신적인 존재로 인정되었다. 수령론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교의 신 이해와 주체사상의 수령 이해는 서로 통하는 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장: 바울이 유대교를 내려놓았듯이, 우리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념체계들을 한 번 내려놓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본다. 빈 마음으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보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평양 봉수교회에서 같이 예배드리면서 북의 교인들이 울면서 예배드리는 것을 목격했다. 남에 와서 그 이야기를 했는데, 사람들이 모두 믿지 않고, 심지어 연기라고까지 말했다. 서로에 대한 편견이 너무 심한 것이다. 분단체제가 심화되고 지속되면서 만들어 놓은 편견이다. 일단 이러한 편견을 비우고 내려놓아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주체사상의 수령 절대주의를 보면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하느님 절대주의에 대해서 다시 성찰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남의 그리스도교가 하느님을 놓치고 맘몬을 주인으로 삼고 있지 않은지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 현 KSCF 총무이자 그리스도교-주체사상 대화연구소 운영위원을 맡게 된 장병기 목사. 장 목사는 북한사회 구성원들을 잘 이해할 수 있고, 다가오는 통일시대의 주역이 될 수 있고, 나아가 한국 교회가 하느님의 선교 가치와 복음의 가치를 잘 실현할 수 있는 주체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정훈 |
대화는 내 앞의 타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이해하고자 하는 움직임이다. 내 앞의 타자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무엇인지 찾아야 하고 그 부분을 내가 왜 이해할 수 없는지를 성찰하는 작업이여야 한다.
“1980년대부터 주체사상과의 대화를 모색해 온 신앙 선배들의 뒤를 이어, 화해협력 선교의 지평을 넓히고, 상호이해의 깊이를 더하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선행되어야 할 신학적 성찰과 신앙고백의 정립에 본 연구소가 하느님의 쓰임을 받기를 소망합니다.”
결국 대화는 자신의 성찰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그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근본부터 다시 생각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가능하다. 새로운 신학적 성찰과 신앙고백의 정립.
그러나 아직도 “주체사상”이라는 단어는 거부감과 두려움을 몰고 온다. “그저 하나의 사상일 뿐”이라는 생각도 할 수 없는 것이 한국사회의 지형이다. 이들은 어떻게 그것을 정면 돌파하려고 할까?
“주체사상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그리스도교인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린다.”
조: 거부감은 다 있을 수 있다고 본다. 나는 박정희 키드다. 나는 한신대를 72년에 들어갔다. 유신반대 시위가 본격화된 것은 73년부터다. 72년에는 큰 데모는 없었는데, 당시 김재준 목사님은 함석헌 선생님과 함께 박정희의 3선 개헌을 반대하는 국민운동본부 대표이였다. 당시 한국신학대학의 반정부활동을 경계하려는 의도로 중앙정보부에서 한신대생들을 대상으로 북측의 당대회 영상을 보여주었다. 북이 수령을 절대화하는 사회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의도였을 것이다. 당대회 참가자들이 수령의 등장에 열광하는 장면을 보여주었는데, 그 장면을 보고 내가 한 생각은 ‘어, 저들도 우리말을 쓰네?’ 하는 것이었다. 그 정도로 북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 후로 박정희에 대한 신화에서는 벗어났는데, 북에 대한 편견에서는 벗어나지 못하였다. 나는 평양을 다섯 번이나 다녀왔지만, 여전히 국가보안법이 주는 포비아가 근본적으로 깔려있다. 적어도 우리 후배들은 국가보안법 포비아를 벗어나고, 북에 대한 편견에서도 벗어나게 하기 위해 ‘그리스도교-주체사상 대화연구소’를 시작하는 것이다.
최: 말씀을 듣다 보니, 왜곡된 그리스도교, 왜곡된 주체사상이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왜곡된 예수님의 모습, 잘못 알려진 주체사상에 대한 편견 등을 극복해야 한다고 본다. 참 그리스도의 모습, 참 주체사상 사이에 진지한 대화가 있었으면 한다. 주체사상에 대한 거부감은 물론이고, 우리가 고백하는 참 그리스도의 상에 대해서조차도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앞으로 그리스도교-주체사상 대화연구소가 왜곡된 그리스도교, 왜곡된 주체사상으로 인한 편견들을 바로 잡아나가는 데 일정한 역할을 감당했으면 한다.
윤: 요즘 베트남 축구대표팀 박항서 감독에 대해 100명의 외교관이 할 일을 혼자 해냈다는 평가가 있다. 베트남은 반제국주의 국가이고, 사회주의 국가인데, 한국 사회에서 베트남에 대한 금기는 통하지 않는다. 북한과 베트남에 대한 태도가 너무도 다른 것이다. 그리스도교-주체사상 대화연구소가 박항서 감독과 같은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 그리스도교와 주체사상 사이에서 대화가 시작될 수 있는 조그만 물꼬를 틔워야 한다. 한국 교회에서 누군가는 해야 할 역할이고 십자가라 생각한다.
정: 저는 불교를 예로 들어 말씀드리겠다. 그리스도교와 불교는 전혀 다른 신앙체계를 가지고 있지만, 남의 그리스도인들이 불교인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전혀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게 종교를 물어본다면, 나는 그리스도교인 이라 대답하고, 개종 의사를 물어본다면, 불교로 개종할 의사는 전혀 없다고 대답하더라도, 마트에서 장을 보고 계산을 할 때, 계산원이 그리스도교인지 불교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도 없고,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는 것이다. 불교인 기관사가 운전하는 열차가 위험할 것이라는 의심을 하지도 않는다. 종교를 막론하고 이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것에 대한 기본적인 믿음과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주체사상을 국가종교로 보면, 주체사상 신봉자나 불교인이나, 그리스도교인들에게는 모두 같은 이웃종교인이다. 그리스도교인들이 불교인들에게 느끼지 않는 거부감과 공포심을 주체사상 신봉자들에 대해 가지게 된 이유는, 주체사상 자체의 내용보다는 반세기 이상 지속된 분단체제와 그 체제가 빚어낸 무지와 공포가 상승 작용을 일으켜왔기 때문이다. 남북관계에서 평화가 안착되면, 주체사상이라는 신념체계에 대한 거부감은 불교라는 신념체계에 대한 거부감 수준으로 현저히 낮아질 것이라고 말씀드리겠다.
▲ 그리스도교-주체사상 대화연구소 연구실장을 맡게 된 정대일 박사. 그 자신이 주체사상 전공자이기도 하다. 정 박사는 대화를 통해서 그리스도교에 대한 편견을 불식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정훈 |
장: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지를 질문해보아야 한다. 분단체제가 낳은 거부감의 역사성을 인정하지만, 이제 평화통일의 시대가 열리고 있는 때에 계속해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시대착오적일 수 있다. 북한의 주체사상을 북한사회를 지탱하는 국가종교로 인정하고, 주체사상과 그리스도교가 맥을 같이하고 있는 부분을 중심으로, 거부감 없이 빈 마음으로 대화를 이어가면, 우리가 북한사회 구성원들을 잘 이해할 수 있고, 다가오는 통일시대의 주역이 될 수 있고, 나아가 한국 교회가 하느님의 선교 가치와 복음의 가치를 잘 실현할 수 있는 주체가 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대화를 통한 자기변혁. 그리스도교-주체사상 대화연구소의 분명한 목표점으로 보인다. 한국 혹은 남한 사회의 유의미한 움직임의 시작을 지켜보고 있다.
이정훈 typolog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