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화를 짓는 농부이야기 12
▲ 낫을 기다리는 남도참밀 ⓒ정아롬 |
6월은 겨우내 살았던 풀들이 죽고, 따뜻함을 좋아하는 여름풀이 서로 교차하는 달이다. 농작물도 마찬가지다. 한쪽에선 갈무리를 해서 정리를 하고 있다면, 다른 쪽에선 새롭게 밭을 만들거나 씨앗을 뿌리는 작업을 한다. 처음과 끝이 동시에 존재하는 시간이다. 그만큼 분주하고 바쁜 나날이자 자연의 흐름을 몸으로 살아낸다.
가장 걱정이 되는 작업은 맥류 추수이다. 밭에 심은 보라보리, 검정보리와 같은 보리는 익으면 고개를 숙이기에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있다. 반면에 남도참밀, 검정밀 등 밀은 베어야 하는 시기를 가늠하기 위해 매일 몇 알씩 비벼 까서 살펴보거나 먹어 본다. 추수하는 시기가 너무 늦으면 새의 밥이 되거나 곰팡이가 피고 너무 빠르면 익지 않은 상태가 되니 그렇다.
하루에 수십번 기상청의 날씨 예보와 밀, 보리의 상태를 번갈아 가면 본다. 익었다고 판단하면 하늘이 맑은 날 아침, 이슬이 마르는 시간에 낫을 들고 밭을 향한다. 끈을 바닥에 깔고 맥류를 추수한다. 숙기가 빠른 보라보리부터 만생종인 검은 밀까지 추수하는데 1주일 정도가 걸렸다. 낫으로 베고 묶고 터는 것까지 풍구를 제외하곤 모두 수작업이다. 다행히 추수하는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다. 햇빛에 널어 말린 보라, 검정, 노란빛의 밀,보리를 보며 뿌듯함이 밀려온다.
맥류 추수가 끝난 뒤 비가 잡혔다. 비오기 직전 날까지 고구마 밭을 만들어 모종을 심고, 보리갈무리가 끝난 밭에는 콩을 심는다. 몇일 동안 비가 오지 않아 한필지 논에는 금이 가기 시작했다. 다행히 지난 비에 다른 필지의 논은 물을 잡고 손모내기를 시작했다. 이제 큰 비가 와줘야 다른 천수답에 모를 심기 위한 물을 잡을 수 있다. 밭을 만들기 위핸 비가 내리면 안되지만 한편으로 비가 매우 필요한 상황이다.
올 봄엔 비가 매우 자주 내렸다. 감자는 흐린 날씨가 많아 꽃이 피기도 전에 꼬구라져 수확양이 매우 적다고들 한다. 마늘도 땅이 습해지면서 씨앗만 간신히 건질 정도만 거두었다. 양파는 녹아 없어지거나 크기가 매우 작은 것밖에 수확하지 못했다. 반면에 물이 필요한 논은 그동안 내린 비에 마른로타리를 안치고 바로 물로터리를 쳐도 될 만큼 물이 있다. 경운기 하루의 작업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다.
▲ 모판의 가장자리의 모는 키도 크다. ⓒ정아롬 |
이런 시기의 농사철을 지내다 보면 ‘모순’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비가 필요한 시기이지만 햇빛도 중요하다. 젖은 상태의 밭도 중요하지만 마른상태의 땅도 필요하다. 농부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하늘의 도움도 무시할 수 없다. 맞지 않을 것 같은 상황에서 농사일을 쪼개어 하다보면 결국은 모두 소중하고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된다.
모자리의 모판을 자세히 살펴 보면 항상 모판의 가장자리의 모가 가장 잘 큰다. 가장 바깥이라 햇빛과 바람의 영향을 받아 더 잘자라는 것 같다. 오히려 모판의 중앙이 모에 둘러쌓여 있어 잘 자랄 것 같지만 그 반대인 것을 살필 수 있다. 퍼머컬쳐 농법에서 이를 ‘가장자리 효과’라 부른다. 밭의 모양을 일렬로 반듯하면 구성하지 않고 열쇠구멍 모양이나 구불구불한 모양으로 조성한다. 밭의 주변과 닿는 경계가 늘어나면서 ‘가장자리 효과’가 일어나는데 서로 다른 식생이 만나 이루는 다양한 환경의 변화를 겪는다. 밭 외부환경의 영향을 받는 범위가 넓어질수록 내부의 저항성이 커지고 다양성도 높아지게 되는 효과이다. 서로 맞지 않을 것 같은 외부의 경계와 맞닿으면서 오히려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이다.
서로 맞지 않는 ‘모순’의 상태일지 모르지만 결국은 서로 상반된 상황이 ‘조화’를 이루어 더 큰 효과를 낸다. 농사라는 건 그런 게 아닐까. 서로 안맞는 상황에 화내거나 짜증내지 않고 때와 상황에 따라 일하다 보면 ‘지혜’라는 시너지효과를 발현하게 된다. 자연의 흐름을 몸소 살다보면 보이는 모순 속에서의 조화로움을 맛보고 싶다면 조금씩 농부가 되어보는 것은 어떨까.
유대은(기장 총회사회선교사) webmaster@ecumen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