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흐와 산책하기 (41)
▲ <몽마르주의 일몰> (1888, 7, 캔버스에 유채, 73.3×93.3cm, 개인소장, 노르웨이) |
변화와 성장, 또는 성숙은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과정이다. 과정과 평가를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누구에게나 과정은 있다. 더디고 미숙하여 답답해 보일 수 있더라도 지난한 과정을 부정하거나 외면할 수는 없다. 달팽이의 걸음이 토끼보다 느리지만 다를 삶일 뿐 틀린 삶은 아니다. 느리더라도 각자에게 품부 된 삶을 사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다.
자신의 기준으로 남을 함부로 평가하는 일은 잘못이다. 좋은 결과를 기대한다면 지난한 과정을 참고 기다려야 한다. 완성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살아있는데 정체되어 있거나 변화하지 않는다면 고장 난 것이 분명하다. 그렇더라도 인내가 필요하다.
인생도 그렇다. 빈센트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가 보리나주 탄광촌 전도사의 길에서 낙오한 후 1880년 화가의 길에 들어선 후 무던하지 않은 과정을 겪어야 했다. 그는 자신과 싸웠고 가난과 싸웠고 때로는 아버지와도 싸웠다. 승산 있는 싸움은 아니었지만 그는 늘 최선을 다했고 물러서지 않았다. 힘든 하루하루의 연속에서도 창조의 기쁨은 더디게라도 이어졌고 감추어 있던 예술성은 드러나 진보하였다. 빈센트의 예술은 점점 빈센트다워지기 시작하였다.
빈센트가 프로방스의 아를에 머물면서 그의 예술에 깃든 특징은 생명력과 생동감이다. 아를에 도착한 것은 1888년 2월 20일 눈이 흩날리는 쌀쌀한 날씨였다. 곧 지중해의 따스한 기운이 자연의 생명을 약동시켰다. 과일나무들이 꽃망울을 맺기 시작하였다. 6월 여름 추수기가 다가오면서 밀밭은 황금색으로 변했다.
전에 살던 북부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자연의 역동을 보며 빈센트는 적잖게 놀랐다. 그는 생기 넘치는 이 광경들을 부지런히 스케치하여 캔버스에 옮겼다. 그렇게 하여 아를이 보여주는 자연의 경이로움이 빈센트의 캔버스에 고스란히 스며들기 시작하였다. 아를의 자연이 캔버스 안에서 꿈틀거렸다. 생명의 환희였다.
다만 빈센트의 캔버스에 담긴 생명의 환희를 세상은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 아쉽기는 하지만 이 또한 어쩔 수 없다.
최광열(기독교미술연구소 연구원) webmaster@ecumen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