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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야, 생태문제는 분배문제야

기사승인 2022.01.24  14: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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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중신학자의 눈으로 세상 읽기 (40)

▲ 기후 붕괴라는 전대미문의 생태계 문제는 인간 사회의 경제 문제인 분배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Getty Image

어느 대선 후보도 국가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통령 선거가 40여 일 정도 남았지만, 어느 대선 후보도 우리나라가 나아가야 할 미래를 또렷하게 말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 체제가 우리 사회에 자리를 잡은 이후로 사회적 양극화는 날로 심화했다. 소득 격차와 자산 격차는 하늘과 땅처럼 벌어지고, 가계부채는 극에 달했다.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키는 부동산 가격 폭등은 사회적 양극화를 불러오는 체제 모순의 한 표현일 뿐이다. 생태계 파괴와 기후위기는 우리 사회의 존속을 위협하고 있다. 중국과 미국의 패권 경쟁으로 인해 동북아시아와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기는 더는 견딜 수 없는 상황에 부닥쳤다. 우리 사회가 직면한 이 엄중한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사회적 통합, 생태계 보전, 동북아시아와 한반도 평화에 관한 큰 그림을 제시하고 한 시대를 이끌어갈 시대정신을 표현해야 하지만, 대선 후보들 가운데 이를 보여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들은 기껏해야 GDP, 코스피 지수, 세계 경제 순위 등으로 표시되는 경제성장 목표를 내세우고, 인공지능·양자기술·우주항공 등 경제성장을 달성하기 위한 기술적 수단들을 제시하는 데 급급하다. 서울시의 노후 아파트 단지나 1기 신도시 등지의 용적률을 500%로 상향하고 가용 공간을 총동원하여 서울시와 수도권에 수백만 채의 주택을 공급하겠다고 주장하지만, 가속화하는 수도권 집중과 지방 공동화, 생태학적 재앙 등에 대해서는 짐짓 모른 체한다. 영구분단 체제를 당연시하면서 한미일 동맹을 강화하고 전쟁능력을 강화하는 것 이외에 한반도 평화와 동북아시아의 지정학적 안정을 꾀하는 방도가 없는 듯이 행세한다.

대선 후보들의 눈에는 우리 시대의 근본적인 도전들에 대응하면서 우리 사회의 미래를 제시하는 것보다 눈앞의 득표가 더 급하다. 그들은 유권자들을 연령, 성별, 직업, 직능, 이해관계 등에 따라 구분하고, 유권자 유형과 범주에 따라 맞춤식 공약을 내세우는 데 골몰한다. 그러한 공약은 너무 많아서 하나하나 예를 들기조차 어렵다. 한두 가지 예를 들면, 뜬금없이 부동산 거래세와 보유세를 완화하겠다는 공약, 5천만 원까지 가상자산 투자 수익에 대한 과세를 면제한다는 공약 등이 그렇다. 그러한 맞춤식 공약의 두드러진 선례는 이명박 씨의 뉴타운 개발 공약이다. 그것은 한 마디로 매표 행위에 가까운 공약이었다. 오늘의 대선 후보들이 매표 행위에 가까운 맞춤식 공약을 남발하는 것은 매우 개탄스럽다.

이 글에서 사회적 통합, 생태계 보전,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평화 등 우리 사회의 미래 과제에 관련해서 대선 후보들의 정책을 모두 다룰 수는 없다. 지면이 한정되어 있기에, 오늘은 생태계 보전에 관련해서 대선 후보들의 공약을 살피고, 우리 사회의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반드시 추진해야 할 과제를 몇 가지 제시하려고 한다.

대선 후보들의 환경정책을 들여다본다

그동안 대선 후보들은 환경 문제 해결에 관해 여러 가지 공약을 발표해 왔다. 그 공약들을 분석해 보면, 대선 후보들의 입장과 문제점을 알 수 있다. 가장 빈약한 환경 공약부터 살피기 시작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국민의힘 당의 대통령 후보 윤석열 씨가 내세운 환경 공약은 매우 빈약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경제성장 지상주의자이기 때문이다. 그가 옹호하는 것은 민간주도 경제성장이고, 그것도 경제성장을 가로막는다고 여겨지는 규제를 전면적으로 혁파하는 방식의 전형적인 신자유주의적 성장 패러다임이다. 그러한 패러다임을 앞세우다 보면, 생태학적 시장 규제의 필요성이나 생태학적 의미가 있는 대안 에너지 체제 구축의 필요성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다. 물론 윤석열 씨는 2018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가 채택한 가이드라인에 따른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준수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그가 그 목표를 달성하는 수단으로 선택한 것은 핵발전이다. 그는 신재생에너지 공급 확대나 지역 기반의 에너지 공급과 소비 체제를 발전시키겠다는 구상을 내놓은 적이 없다. ‘환경정책’에 관한 한, 그는 거의 청맹과니나 다를 바 없다.

둘째, 국민의당 안철수 씨 역시 환경정책에 별 관심이 없다. 그는 소형모듈원전(SMR)을 상용화해서 탄소중립을 실현하겠다는 것 이외에 환경정책에 관해 더 밝힌 것이 없다. 그는 신재생에너지는 비용이 많이 들기에 적절하지 않다고 아예 외면하다시피 한다.

셋째,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 이재명 씨는 윤석열 씨나 안철수 씨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풍부한 ‘환경정책’을 제시했다. 그는 2050년 탄소 중립 목표를 달성하겠다고 천명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정부에 기후에너지부를 창설하고, 탄소세를 도입하고, 지역 기반의 신재생에너지 생산과 소비 네트워크를 유기적으로 엮는 에너지 고속도로를 신설하고, 전기자동차 보급을 확대하고, 플라스틱 제로 사회를 구축하겠다고 공약했다. 그가 기후에너지부를 창설해서 기후위기와 에너지 공급 및 소비 체제를 서로 연계해서 다루겠다고 나선 것은 문제의 핵심을 나름대로 포착하여 의미 있는 해법을 제시하였다고 볼 수 있다. 탄소세 같은 교정세를 도입해서 탄소 배출을 억제하겠다는 정책도 설득력이 있다. 전반적으로 보면, 이재명 씨의 ‘환경정책’은 한국판 뉴딜의 한 장을 이루는 그린뉴딜 정책을 받아들인 것이고, 그런 만큼 환경 문제에 대한 기술주의적인 접근과 해법에 방점을 찍었다. 다만, 그는 문재인 정부의 ‘탈핵’ 노선을 포기하고 ‘감(減)핵’ 노선으로 후퇴했다. 핵발전의 위험성과 장기적인 비경제성을 고려한다면, 감핵 노선은 논란의 여지가 많다. 

넷째, 정의당 대통령 후보 심상정 씨는 가장 포괄적이고 선진적인 ‘환경정책’을 선보였다. 그는 정의당의 환경정책이 담긴 ‘구해줘 지구 5050 플랜’의 틀에서 ‘탈핵’ 노선과 석탄발전 종료를 분명히 천명했다. 그러한 전제 아래서 2030년까지 탄소 배출을 50% 감축하고, 총 전력생산 가운데 재생에너지 비율을 50% 달성하겠다고 선언하였으니, 심상정 씨의 환경 공약은 매우 야심 차다. 또한, 그는 내연자동차 판매를 금지하고, 가구마다 태양광 시설을 설치하고, 분권적인 에너지 공급 및 소비 체제를 구축한다는 계획도 제시했다. 더 의미심장한 것은 GDP의 2%를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녹색 전환에 투입하고, 향후 10년 동안 산업구조를 녹색경제로 전환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것이다. 그러나 심상정 씨의 환경정책 역시 기술주의적 편향을 보이고, 한국 경제가 성장주의적 강박에서 벗어나는 방안을 포괄적으로 제시하는 데까지 이르지 못했다.

환경 문제에 대한 기술주의적 접근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이재명 씨가 정부에 기후에너지부를 창설하고 탄소세를 도입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나 심상정 씨가 ‘구해줘 5050 플랜’에 탄소 배출 감축에 관한 구체적인 계획을 담은 것은 두 정치인이 생태계와 경제계의 에너지-물질 순환에서 발생하는 생태계 위기와 기후위기의 본질을 나름대로 인식하였음을 보여준다.

개방계 이론(open system theory)의 관점에서 보면, 생태계와 경제계는 에너지-물질 순환 관계에 있다. 생태계에서 경제계로 투입된 에너지와 물질은 경제계 안에서 형태변화(transformation)를 거쳐 소비된 뒤에 경제계로부터 생태계로 폐기 에너지와 폐기 물질의 형태로 방출된다. 에너지-물질 보존의 법칙에 따르면, 생태계에서 경제계로 투입되는 에너지와 물질의 양은 경제계에서 생태계로 방출되는 폐기 에너지와 폐기 물질의 양과 같다. 만일 경제계 안에서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서로 맞물려 돌아가게 되면, 생태계에서 경제계로 투입되는 에너지와 물질의 양은 엄청나게 늘어나 생태계에서 부존자원의 고갈이 나타나고, 경제계에서 생태계로 방출되는 엄청난 폐기 에너지와 폐기 물질은 생태계의 안정성과 건강성을 위협하고, 급기야 생태계 파괴와 기후위기를 불러일으킨다.

생태계와 경제계 사이의 에너지-물질 순환에서 나타나는 환경 문제는 경제학자들과 정책학자들, 행정부 관료들과 정치인들에게도 점차 인식되기 시작했다. 기후위기가 경제계에서 생태계로 방출되는 폐기 에너지와 폐기 물질이 대기권에 쌓여서 나타나는 현상이므로 기후위기와 에너지-물질의 순환 문제를 서로 연관해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인식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정부에 기후에너지부를 창설하겠다는 것도 그러한 발상에서 나왔다. 기후에너지부는 에너지-물질 투입의 효율성, 에너지-물질 형태변화의 효율성, 폐기 에너지와 폐기 물질의 감축과 재활용 등의 기술주의적 해법을 제시하는 데 집중할 것이다. 탄소세를 도입한다든지, 탄소 방출을 감축하는 방안을 도입하여 생태계와 경제계 사이의 에너지-물질 순환을 규율하고자 하는 것도 전형적인 기술주의적 접근이다. 이러한 기술주의적 접근의 한계는 자원고갈과 생태계 파괴 및 기후위기를 같은 동전의 양면처럼 결합하는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정치경제학을 외면한다는 데 있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정치경제학을 깨뜨려야 생태계 보전의 길이 열린다

자본주의적 시장경제 체제에서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는 자본이 빠른 속도로 축적됨으로써 나타나는 현상이다. 사람들이 상품을 대량으로 소비하려는 욕망을 갖게 되어, 상품의 대량생산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진리는 정반대다. 대량생산은 자본이 축적되고 생산능력이 팽창하면서 발생하는 현상이고, 대량소비는 대량생산에 뒤따라가는 현상이다. 자본의 축적은 노동자들에게 돌아가는 몫을 제도적으로 착취하는 데서 비롯된다. 따라서 자본의 축적과 사회적 가난은 함께 간다. 이러한 구조적인 모순은 생산과 소비가 서로 맞물려 돌아갈 수 없게 만들기 때문에, 결국 국가부채나 가계부채의 증가를 통해 봉합되었다.

19세기와 20세기 초반의 자유주의적 시장경제 체제의 실패를 넘어서기 위해 들어선 국가개입주의는 결국 국가부채를 통해 유효수효를 늘림으로써 생산과 소비의 거시균형을 이루었다. 국가개입주의가 1960년대 말부터 본격화한 자본축적 위기와 스태그플레이션, 실업 증가, 사회복지 지출 증가, 국가부채 급증 등의 악순환을 이기지 못하고 와해되자, 신자유주의 체제가 들어섰다.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국가는 긴축 정책을 취했고, 자본축적은 엄청나게 증가했고, 가계 소득은 줄어들었다. 대량생산이 필요로 하는 대량소비는 오직 가계부채의 증가를 통해서만 가능했다.

따라서 자본축적을 동력으로 삼아 발전하는 자본주의 체제는 국가부채나 가계부채의 증가를 통해서만 생산과 소비를 서로 맞물리게 할 수 있는 특수한 체제이다. 그 체제는 민중을 부채에 묶어 자유를 잃게 하고, 부채의 팽창으로 지탱되는 오늘의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위해 미래 세대가 누려야 할 생태계의 부를 미리 끌어다 탕진하고, 생존의 생태학적 기반을 무너뜨린다.

이러한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정치경제학과 그것이 가져오는 생태학적 파국은 오늘날 거의 모든 경제학자와 정책학자, 관료와 정치인에게 외면되다시피 한다. 그들은 생태계 파괴와 기후위기의 근저에 도사리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의 근본 모순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사회적 가난과 기후위기의 문제를 체계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주장을 한사코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나 진리는 분명하고 확실하다. 사회적 가난을 불러오는 바로 그것이 생태계 위기를 불러일으킨다. 사회적 가난과 생태계 위기는 별개의 사안이 아니라, 같은 동전의 양면처럼 결합해 있다. 사회적 가난과 생태계 위기를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장본인은 자본축적과 팽창의 기제이다. 이러한 자본축적과 팽창의 기제를 제어하지 않고서는, 사회적 가난도 해결할 수 없고, 생태계 파괴와 기후위기도 해결할 수 없다.

문제의 해법은 아주 단순하다. 자본의 수중에 과도하게 축적되는 잉여가치의 일부를 퍼내어 노동하는 사람들의 몫으로 옮기고, 또 다른 일부는 생태계 보전 기금으로 옮기면 된다. 그 나머지 잉여가치가 자본의 몫이다. 그것은 경제성장의 속도를 늦추면서 사회적 가난을 퇴치하고 생태계를 보전하기 위한 소득분배 기획이다.

자본이 잉여가치를 독차지하는 것은 잉여가치가 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부정한다는 뜻이다. 그것은 사회정의에 반한다. 그렇다고 해서 자본이 잉여가치 일부를 차지할 권리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자본에 돌아가는 잉여가치의 몫은 미래를 위한 투자의 기반이 된다. 시장경제에서 미래를 위한 투자는 자본이 자신의 몫을 정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특별한 조건이다. 더 나아가, 생태계가 경제활동을 위해 공짜로 활용되었다는 것을 인식한다면, 경제계는 생태계에 엄청난 부채를 지고 있다고 말해야 옳다. 자본의 잉여가치 가운데 일부를 생태계 보전 기금으로 내어놓는다고 해도, 그것은 경제계가 생태계에 진 부채의 원금을 상환하는 것일 수는 없고, 기껏해야 부채의 이자를 나누어 갚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정도라도 잉여가치 일부를 생태계의 몫으로 배분하는 것이 생태학적 정의에 부합한다.

바로 이 점에서 정의당 대선 후보 심상정 씨가 GDP의 2%를 녹색 전환에 투입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운 것은 주목된다. 물론 그러한 공약을 내세우는 논거가 ‘생태학적 부채’에 대한 인식에 관련된 것인가는 분명하지 않다. 왜 GDP의 2%만이고 그 이상은 아닌가 하는 질문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심상정 씨의 공약은 생태계 파괴와 기후위기의 정치경제학에 대한 인식이 정치인들에게 싹트기 시작했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21대 대통령 선거에 나선 후보들에게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정치경제학을 제대로 인식하고 사회적이고 생태학적인 전환을 구상하라고 요구한다고 해서 그들이 그렇게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대부분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조차 모를 것이다. 그들이 환경 문제의 기술주의적 해법에 매달리는 것을 보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이런 상황에서 시민사회와 사회단체들이 할 일은 정치가 환경 문제의 기술주의적 해법에 머물지 않도록 흔들고, 자본주의 경제를 사회적이고 생태학적으로 재구성하도록 끝없이 요구하고, 그 요구를 관철할 힘을 기르는 것이다.

이제는 생태학적 법치국가를 향해 나아가야 할 때다

생태계와 경제계의 에너지-물질 순환에 대한 인식에 터잡아 자본주의 경제를 사회적이고 생태학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은 사회적 통합과 생태계 보전을 동시에 이루는 과제이지만, 생태계 보전을 위해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야 한다. 그것은 ‘자연의 권리’를 헌법 규범으로 창설하고 생태학적 법치국가를 형성하는 과제이다.(1) 그렇게 하려면, 헌법 개정이라는 엄청난 과제를 해결할 각오를 하여야 한다. 

생태학적 법치국가에서는 자연의 권리를 대리하거나 신탁 받은 인간이 제 역할을 다하고, 사람들이 생태학적 지식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자연의 대리인이 자연의 권리와 이익을 방어하기 위해 재판에 참여하는 것은 물론이고, 재판에서는 인간의 이익과 자연의 이익이 조화를 이루도록 이익형량을 하여야 한다. 자연의 권리와 이익을 제대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재판에 임하는 판사들만이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다양한 생태계들에서 나타나는 생태학적 연관과 생태계들 사이의 네트워크에 대한 지식’을 갖추어야 하며, 시민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이러한 지식을 제대로 습득하도록 법이 제정되어야 한다.

생태학적 법치국가에서는 자연의 권리와 이익을 방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국가와 사회를 생태학적이고 민주적으로 개조하는 것도 필요하다. 생태학적 법치국가의 조직과 관련해서는 기존의 입법기구 이외에 ‘생태학적 의회’를 별도로 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태학적 의회는 생태학적으로 중요한 사안에 관해 법률의 제정이나 개정의 권한을 행사한다. 생태학적 의회는 전문가들로 구성한다.

정부에서는 기왕 설치된 환경부 장관의 권한을 크게 강화할 필요가 있다. 지금과 같이 환경부 장관이 산업자원부 장관, 국토교통부 장관, 재정기획부 장관 등의 위세에 눌려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환경부 장관은 생태학적 연관이 있는 정부의 결정에 대해 비토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사회적 차원에서는 무엇보다도 자연의 권리를 대리하는 협회를 창설하고 그 협회가 생태계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결정이 내려지는 의사결정기구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하려면, 자연의 권리를 대리하는 절차법이 완벽하게 구축되어야 한다. 그러한 절차법은 자연의 권리와 이익을 대변하는 대리인이 생태학적 이익 충돌이 현저하게 나타나는 지역 경제와 정치 차원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과정과 절차에 참여하도록 보장하고, 국민경제 차원에서는 중앙정부를 중심으로 해서 산업계의 이익을 대표하는 협회와 생태계의 이익을 대표하는 협회가 원탁에 모여 공동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보장한다. 자연의 권리를 대리하는 협회는 생태계 보전 목표를 달성하는 데 적절하지 못한 위원들을 배척할 권한을 절차법에 따라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자연의 권리를 헌법에 명문화하는 생태학적 법치국가는 아직 시민사회와 사회단체들에 낯선 개념이고, 국회와 정당들, 그리고 대통령 후보들에게 거의 처음 듣다시피 하는 생소한 용어일 것이다. 생태학적 법치국가의 형성은 오늘의 민주주의를 생태학적으로 새롭게 구성하는 큰 프로젝트이다. 생태학적 민주주의는 자연의 권리와 이익이 경제행위자들의 권리와 이익에 희생당하지 않게 하고, 서로 대립하는 두 권리와 이익이 변증법적 통일을 이룰 수 있도록 한다. 이러한 생태학적 민주주의가 자리를 잡을 때, 생태학적이고 사회적인 시장경제 운영은 입법을 통해 강력한 제도적 뒷받침을 받게 될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이재명 씨나 정의당 대선 후보 심상정 씨는 그 나름대로 포괄적인 환경정책을 제시하고 있어서 다른 대선 후보들을 압도한다. 그러나 그들의 환경정책 공약은 훨씬 더 급진적으로 보완되어야 한다. 시민사회와 사회단체들은 정치가 생태학적 법치국가와 사회적이고 생태학적인 시장경제의 형성을 향한 길을 열라고 큰소리로 외쳐야 한다.

미주

(미주 1) ‘자연의 권리’에 대해서는 “민중신학자의 눈으로 세상 읽기 (39) 자연의 권리, 생태파괴의 주범을 법정에 세우다,” 「에큐메니안」(2022.01.17.)을 보라.

강원돈(길마루글방지기/민중신학과 사회윤리) kwdth55@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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