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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누마 엘리쉬와 창세기

기사승인 2020.07.13  17:4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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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쐐기문자의 해독과정을 찾아서 (1)

▲ 에누마 엘리쉬 7개 토판 ⓒTherealsmizdat

그리스도인들에게 성서는 가장 중요한 신앙생활의 원천이다.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유독 이러한 성향이 강하다고는 하나 전세계적으로 봐도 성서를 신앙생활의 근본으로 삼는 것은 동일이다. 이에 대한 이견은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성서의 생성과 기원에 관해서는 신학적 경향을 달리하는 교단 혹은 교파별로 다양하다. 성서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에 누구도 토를 달지는 않지만 성서가 구체적인 문자로 정착되는 과정과 방법에 관해서는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를 신학적 용어로 ‘영감설’이라고 하는데, 크게 보아 기계적(축자적)·유기적·역동적 영감설로 분류한다.

이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기회된다면 차후에 이야기해도 될 것 같다. 분명한 것은 성서, 특히 제1 성서 혹은 히브리 성서라 불리는 구약성서에는 다양한 시대적·문학적 전통들이 들어와 있다. 소위 고대 근동이라고 불리는 현재 중동 지역의 문화적 모습들이 들어와 있다는 것이 성서 고고학자들의 의견이다.

특히 19세기 중후반부터 유럽을 중심으로 광풍이라고 불릴만큼 강하게 성서학계에 몰아닥친 성서비평학은 구약성서 자체가 고대 근동의 문화와 교류하며 발전해 왔다고 강조했다. 성서 책의 배열과 시기를 엮어 서술하자면 창세기 1장에서 시작하는 천지창조 이야기는 인류 최초 문명이라고 하는 기원전 30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수메르 문명의 창조설화에 대한 안티-테제로 발전한 것이라는 점은 이제 상식과 정설이 되었다. 즉 ‘북왕국 이스라엘’(기원전 722년)과 ‘남왕국 유다’(기원전 586년)가 멸망하며 앗수르와 바벨론, 지금의 이라크-이란 지방으로 포로로 잡혀가 본격적으로 고대 수메르 문명의 전통을 접하면서 이에 대한 안티-테제로 구약성서의 많은 부분이 형성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예를 조금 더 부연하자면, 성서비평학의 견해에 따르면 천지창조 이야기는 두 개로 구분되는데, 창세기 1:1-2:4a와 2:4b-2:25은 언어적이나 내용적으로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서로 다른 자료와 시기로부터 연원했다고 주장한다. 학자들에 따르면 창세기 1:1-2:4a은 제사장 집단이 자료를 수집·정리했고, 창세기 2:4b-2:25은 하나님의 이름을 ‘야훼’로 쓰고 있는 다윗-솔로몬 왕국 시대 궁중 학자들에 의해 편집되었다고 한다. 전자의 집단에 의해 수집·정리된 성서 본문들을 ‘P’1 본문 혹은 자료라고 하고, 후자 집단의 본문 혹은 자료를 ‘J’2라고 한다.

하지만 이제 이러한 구분도 거의 무색해진 시대를 지나고 있다. J문서의 실존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 성서비평학계의 논쟁이다. 현재 성서비평학계에서는 P자료와 신명기계 자료(D), H3 자료로 구분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러한 학계의 흐름을 보자면 언급한 창세기 2:4b-2:25의 창조 이야기가 기존의 주장처럼 실재로 다윗-솔로몬 왕국 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지 의문이 제기된다. 실제로 J 자료 본문들 혹은 집단을 포로기로 보는 학자들도 존재한다.4 그야말로 구약성서, 특히 오경 연구에 있어서 백가쟁명의 시대가 또 다시 시작되었다.

하여간 전통적으로 창세기 1:1-2:4a의 창조 이야기는 인류 최초의 문명인 수메르 전통의 창조 이야기에 대한 안티-테제로 설계되었다는 점은 거의 정설이며 아직 깨지지 않고 있다. 즉 포로로 잡혀간 ‘남왕국 유다’의 엘리트들이 접한 2천년 이상을 이어온 수메르 문명의 창조 이야기에 압도되지 않고 고유한 신학적 서술을 해냈다는 뜻이다. 이제 포로로 잡혀간 ‘남왕국 유다’의 엘리트들이 접한 수메르 전통의 창조 이야기가 무엇이냐는 문제만 남는다.

학자들, 특히 고고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고대 수메르 제국의 ‘에누마 엘리쉬’(𒂊𒉡𒈠𒂊𒇺, Enûma Eliš)라고 추정하고 있다. 이 ‘에누마 엘리쉬’는 기원전 20세기에서 기원전 18세기 사이에 창작된,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서사시’이자 신화이다. 1848년, 이라크 ‘니네베’5 지역의 옛 아시리아 왕궁 유적을 탐사하던 중 영국의 고고학자 ‘어스터 레이어드’(Auster H. Layard) 팀이 ‘아슈르바니팔의 도서관’으로 추정되는 방에서 발견했다.

이 에누마 엘리쉬 서사시는 ‘설형문자’6로 점토판에 음각되었고, 발견 당시 여러 조각으로 부서져 있었다. 이후 추가적인 발굴을 통해 1929년까지 일곱 개의 점토판을 발견했다. 현재 5번째 판을 제외한 점토판의 번역에 성공한 상태이다.

분량은 총 7개의 점토판에, 1100여 행의 아카드어로 기록되어 있으며, 그 당시 정치와 종교가 일치했던 사회에서 신년 축제의 4번째 날에 대사제가 이 서사시를 낭송했다고 한다. 태고의 민물로 묘사되는 아프수가 괴로워하자 영웅신 마르두크가 분노한 태고의 혼돈으로 묘사되는 고대신 티아마트에 전투를 벌여 승리하고 주신으로서의 자리를 확고히 한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이 서사시의 명칭인 ‘에누마 엘리쉬’는 이 서사시의 제목이 아니라 발굴된 점토판의 맨 앞 구절에서 따 온 것이다.

특별히 제목이라고 할 만한 것을 발견하지 못해 그냥 ‘에누마 엘리쉬’로 부르게 되었다. 이 ‘에누마 엘리쉬’를 해독한 학자들에 따르면 “그 때 높은 곳에서~”라고 한다. 이 부분이 속해져 있는 첫 부분과 이를 해석하자면 다음과 같다.

1: 𒂊𒉡𒈠 𒂊𒇺 | 𒆷 𒈾𒁍𒌑 𒃻𒈠𒈬
(e-nu-ma e-liš | la na-bu-ú šá-ma-mu)
2: 𒉺𒅁𒇺 𒄠𒈠𒌈 | 𒋗𒈠 𒆷 𒍠𒋥
(šap-liš am-ma-tum | šu-ma la zak-rat)
3: 𒍪𒀊𒈠 𒊕𒌅𒌑 𒍝𒊒𒋗𒌦
(ZU.AB-ma reš-tu-ú za-ru-šu-un)
4: 𒈬𒌝𒈬 𒋾𒊩𒆳 | 𒈬𒀠𒇷𒁕𒀜 𒁶𒊑𒋙𒌦
(mu-um-mu ti-amat | mu-al-li-da-at gim-ri-šú-un)

그 때 높은 곳에서는 하늘의 이름이 없었고, 그 아래 대지 또한 이름을 가지지 않았다. 태초에 모두의 아버지이신 아프수와 어머니 혼돈의 티아마트가 있었는데, 그들의 물을 섞어내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어질어질한 이 수메르어 혹은 쐐기문자를 어떻게 해독하게 되었을까? 다음 시간부터 이 수메르어의 해독과정에 대해 글을 이어가고자 한다.

미주

(미주 1) 제사장을 뜻하는 Priest의 앞 글자를 딴 것이다.
(미주 2) 하나님의 이름 야훼의 히브리어 יהוה이다. 이에 대한 발음표기는 ‘Yahweh’이다. 하지만 영문으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Jehovah’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J 본문 혹은 자료라고 표기한다.
(미주 3) 레위기 17-26장을 일반적으로 ‘성결법전’으로 일컫고, 독일어로는 ‘Heiligkeitsgesetz’, 영어로는 ‘Holiness Code’라고 표기한다. 여기 앞 글자 H를 따른 것이다. 이 성결법전을 수집하고 정리한 제사장 집단의 한 분파가 최종적인 모세 오경의 편집자로 보는 이론도 존재한다.
(미주 4) 대표적인 학자들이 캐나다의 John Van Seters와 독일의 Christophe Levin이다.
(미주 5) 성서에 등장하는 용어로 하자면 ‘니느웨’.
(미주 6) 독일어로는 Keilschrift, 영어로는 Cuneiform이라고 표기하는 쐐기문자. 쐐기문자로 일컫는 것은 글자의 모양에서 따온 말이다.

이정훈 typolog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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