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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니어그램으로 보는 지도자 여호수아

기사승인 2016.06.08  18: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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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서의 인물을 통해서 보는 에니어그램 - 6번 유형>

충실한 여호수아 

성서의 수많은 인물 가운데 가장 충실한 사람을 뽑으라고 한다면 아마 여호수아 일 것이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학대받으며 노예생활하고 있을 때 민족의 영도자인 모세를 가까이에서 보좌하며 살았다. 그는 에브라임 지파 눈의 아들로 태어나 85세에 모세의 후계자가 되어 이스라엘 지도자가 되었다. 110세에 고향 에브라임 산간 지역 딤낫세라에서 죽을 때까지 충실하게 절제하며 청렴하게 살았다.

여호수아의 본명은 호세아였는데, 모세가 각 지파 가운데서 지도자들 한 사람씩(민수기 13:2) 뽑아 가나안 땅을 탐지하려 보낼 때 “눈의 아들 호세아를 여호수아”라고 불렀다.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구원’이라는 뜻이다. 모세는 여호수아의 충성심과 함께 잠재적인 지도자로서의 품성을 알아보았을 것이다. 에니어그램 6번 유형은 충실한 사람이요. 질서와 규칙과 명령을 잘 따르는 수호자이다. 그래서 6번 유형들 중에서는 유독 한 나라의 지도자인 대통령이 많다고 한다. 

1번 유형인 모세는 완벽을 추구할 뿐만 아니라 격노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런 지도자 밑에서 일하는 보좌관은 많은 인내심과 절제가 필요하다. 만약 모세의 반복되는 격노에 여호수아가 그 때마다 반응을 보였더라면 둘 사이의 관계는 위태로워졌을 것이고 결국 깨어지게 되었을 것이다.

6번 유형인 나는 1번 유형의 상사를 십여 년 정도 모신 적이 있었다. 내가 모시던 상사는 1번 유형답게 완벽한 성격의 소유자로서 모든 일에 완벽을 추구했는데, 이 완벽이 다른 사람에게도 잣대가 되어 화를 잘 내었다. 그러나 그분이 추구했던 높은 이상과 올바른 개혁을 향한 가르침을 보면서(여호수아처럼 충실한 보좌관은 되지 못하였지만) 존경하는 마음을 늘 가지고 있었다. 당시 20대였던 어린 시절 내가 볼 때 언제나 완벽해 보였던 상사를 대하는 나의 마음은 ‘두려움’과 ‘어려움’이었다. 내가 만약 그때 좀 더 일찍 에니어그램을 공부했었더라면, 성숙하고 충실한 여호수아처럼 더 많은 부분에서 상사를 이해하고 순종하며 충직한 보좌관으로 일했을 것이라 생각을 잠깐 해 본다.

여호수아는 40년 동안이나 모세의 보좌관 생활을 하면서 그의 권위에 순응하고 순종하였다. 그 과정에서 그는 모세의 지도력과 영성을 배웠고 준비된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갖추게 되었다. 결국 하나님은 모세에게 “너는 눈의 아들 여호수아를 데리고 오너라. 그는 영감을 받는 사람이다”(민수기 27:18)라고 말씀하셨고,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지도자가 되었다. 모세가 세상을 떠난 후,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며 정착하는 동안 수없이 많은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이때 수련하며 쌓은 결과물일 것이다. 

용기가 필요한 여호수아

에니어그램 6번 유형은 어린 시절 아버지를 의지하며 인정받고 살았거나, 반대로 독재자적인 위치에 있는 보호자로부터 영향을 받는 경우, 또는 어린 아이가 보호받지 못한 환경에서 자랐을 때 6번 유형이 될 가능성이 높다. 에니어그램 6번 유형인 나는 어린 시절 늘 보호해 주는 누군가를 찾고 혼자서 무엇인가를 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지금도 확실한 근거지가 없거나 믿음이 없는 곳은 여행하기를 꺼려하고 심지어 혼자 영화관을 가는 것도 하지 않는다. 무엇인가를 추진하는 것을 힘들어 하며, 두려움을 벗 삼아 새롭게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틀 안에 갇혀 익숙한 일들만 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발전이 없는 내 자신에 늘 불만을 품고 사는 것 같다. 

충실한 여호수아는 모든 것을 잘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음에도, 마음속에는 늘 불안과 두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더욱이 하나님 앞에 서야할 때에는 이런 두려움이 더 심했을 것이다. 그래서 모세가 죽은 뒤에 주님께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던 것이다.(여호수아 1:1). “굳세고 용감하여라”(여호수아 1:6), “오직 너는 크게 용기를 내어”(여호수아 1:7)라, “내가 너에게 굳세고 용감하고 명하지 않았느냐! 너는 두려워하거나 낙담하지 말아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주, 나 하나님이 함께 있겠다.”(여호수아 1:9).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여러 차례 강조했던 말씀을 통해 볼 수 있듯이 여호수아에게는 용기와 담대함이 필요했을 것이다.

6번 유형이 누군가를 신뢰하는 믿음이 생길 때는, 그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나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어렵고 힘든 일들도 극복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된다. 여호수아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믿고 의지했을 때는 진정한 용기와 충실한 사람으로 자신이 가야할 길을 갈 수 있었지만, 믿음이 흔들리고 약해질 때는 사람들에게 속아서(정복 과정에서 기브온 주민들에게 속아 넘어간 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원망을 들었고, 이스라엘이 남과 북으로 분열되는 씨앗을 남기게 되었다. 특별히 여호수아는 우유부단한 행동으로 후계자를 육성하지 못하였다. 그 결과 그가 죽은 뒤에 사사 시대에 큰 혼란이 야기되었다. 여호수아가 ‘현재’에 진정으로 충성했다면 미래지향적 역사의식을 가지고 성찰하면서 여호수아 이후 시대를 내다보는 바른 분별과 선택, 결단을 했을 것이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지금 내 앞에 있는 현재를 제대로 살지 못한 경험을 나도 가지고 있다. 내 진로 문제를 놓고 고민하고 있을 때, 어떤 분께서 나에게 앞으로 노인 복지가 유망하다며 노인 복지 대학원을 들어가라고 추천해 주셨다. 그분의 제안이 상당히 타당해 보였고, 나는 가톨릭 대학원 사회복지 노인학과에 들어갔다. 그런데 입학 한 후에 공부를 하면서 노인 복지가 내 적성과는 맞지 않는 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노인복지 대학원을 어찌어찌 해서 졸업은 했지만, 결국 지금은 전공과는 전혀 상관없는 다른 일을 하게 되었다. 나 스스로 내 인생의 길을 깊이 고민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았다면, 내 적성에 맞는 공부를 했을 것이고 지금은 좀 더 행복한 현재를 살고 있을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용맹한 여호수아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너와 함께 하며,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겠다.”(여호수아 1:5)고 약속하신 말씀 속에는 그의 내면의 깊은 심리적 필요가 반사된 것이다. 여호수아가 하나님이 주신 그 말씀을 날마다 확인하면서 진정한 용기가 생기고 올바른 지도력이 발휘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때 느꼈던 불안과 공포가 여호수아에게도 같은 무게로 다가왔을 것이다. 아니 더 큰 책임과 무게가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백성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공포를 뛰어넘게 인도했다. 여호수아 안에 있는 참 된 용기가 발휘된 것이다. 6번 유형이 진정한  용기를 가지게 되면 마음속의 불안과 걱정, 두려움이 점차 사라지고 진정으로 하나님을 의지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용기와 지혜가 조화된 여호수아처럼 멋진 지도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함께 가는 여호수아

여호수아는 지식과 정보의 필요성을 알았기에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고, 경청하는 사람이었으며 백성들과 함께 가는 지도자였다. “모세와 함께 있던 것처럼 너와 함께 있다는 사실을 그들이 알게 하겠다.”(여호수아 3:7)고 약속한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신념이 백성들과 함께 길을 걸으며 백성들을 하나님께 충성하도록 이끌었다. 또한 여호수아는 스스로 절제하며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였기 때문에 인간적인 욕심을 버리고 청렴하고 검소하게 백성들과 함께 살았다. 하나님께 충성하며 백성들에게도 충실한 여호수아의 고별사는 이런 그를 잘 나타내 준다. “당신들이 어떤 신들을 섬길 것인지를 오늘 선택하십시오. 나와 나의 집안은 주님을 섬길 것입니다.”(여호수아 24:15)

에니어그램을 공부하면서 6번 유형인 나는 개인보다는 공동체적인 삶을 더 깊이 인식하고 살아간다. 이것은 어쩌면 6번 유형이 특별히 공동체적인 삶을 편하게 인식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삶을 찾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공동체적인 삶을 더 인식하고 살아간다고 해서 하나님의 은총 안에 살아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여호수아가 늘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게 될 때, 용기를 얻어 참된 지도자가 되었듯이 내 속에 있는 내가 하나님의 뜻을 찾고 의지할 때, 진정한 ‘내’가 되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회복되며 용기 있게 나의 삶을 개척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이 글을 마친다.

박미례 (공동체문화원 총무)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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