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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경 통일신학의 하나님, 하나님 나라 이해와 ‘민족’

기사승인 2019.10.12  18:3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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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여성신학자 박순경 통일신학의 세계문명사적 함의와 聖·性·誠의 여성신학 (2)

박순경 신학의 출발점으로서의 존재사건

8.15해방을 맞이할 무렵부터 부모님의 별세와 병마, 그리고 민족해방 사건에 직면해서 신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한 박순경은 1946년 감신에 들어간다. 그러나 인생과 신앙에 대한 회의로 여전히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사상적 훈련”을 위해서 1948년 서울대 철학과에 입학했다고 하고, 그러한 회의와 번민 속에서 고민하던 중 그녀는 1949년 한 놀라운 신앙의 경험을 한다. 즉 그것은 어느 날 길을 걷다가 “다 이루었다”(요한 19:30)라고 하는 예수의 십자가상의 마지막 언어가 확연히 떠오르면서 그의 죽음과 부활 사건이 바로 “나의 실존뿐만 아니라 온 역사의 종말적 의미”로 깊게 깨달은 것을 말한다.(1)

그의 고백에 따르면 이 “엄청난 직관”의 체험은 결코 “나의 주관적인 소리도 아니요 철학적 사상 훈련의 결과도 아니었다.” 이러한 순간의 깨달음을 얻고 그녀는 “이제 다 살았다”라고 거리에서 뛰고 소리치고 싶을 만큼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고, 바로 그러한 이해에 근거해서 자신의 존재가 있기까지 계셨던 부모님의 존재의 의미가 이해되고, 아브라함과 모세 선지자 등의 전 구약의 의미와 예정이 모두 자신을 위해서 그리 된 것으로 깨달아졌다고 밝힌다. 이것은 ‘지금․여기’의 한 존재에게로 우주 만물의 모든 존재의 의미가 수렴되는 깊은 ‘존재사건’을 경험한 것을 말한다. 그녀는 이 경험을 통해서 “시간과 역사 안에서 (일어난) 한 궁극적 종말적 사건”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고, 그로 인해 지금까지 시간과 역사에서 무의미하고 죄와 죽음을 피할 수 없다고 느끼던 존재가 “재포착”(Recapitulation)되었다고 언술한다.(2) 바로 이 사건을 겪고서 바르트의 『로마서 주석』(Der Roemerbrief, 1922년 판)을 이해할 수 있었고, 나중에 박사학위 논문, 칼 바르트의 예정론과 역사이해의 계기도 얻었다고 고백한다.

나는 박순경 선생의 이 고백과 경험을 그리하여 한 사상가에게서의 정신적 재생과도 같은 큰 ‘존재사건’으로 표기하고자 한다. 그것은 일종적 신학적 재탄생으로서 여기서부터 출발하여 그녀 신학의 방향이 정해지고, 토대와 기초가 놓인 것을 말한다. 지금까지 박순경 신학에 대한 연구가 이 특별한 ‘시작점’(the starting point)에 대해서 별로 주목하지 않았지만 나는 이 경험이야말로 그녀 사상에 있어서의 흔들리지 않는 기초라고 본다. 즉 ‘계시의 직접성의 경험’을 말하는 것이고, 그래서 이 경험에서 얻어진 “온 역사에 의미를 부여하는 예정의 촛대”와 “시간과 역사 안에 한 성취점”이 있다는 확신과 깨달음이 앞으로 이어질 그녀의 모든 신학적 탐구의 기준점이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구약의 구원사와 동이족(東夷族)의 창조이야기

이렇게 지금여기의 시간과 공간 안에서 하나님의 강력한 계시사건을 경험한 박순경에게 있어서 이 시간과 공간 전체가 하나님 나라가 되어야 하고, 역시 그 안에 있는 한민족의 역사가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구체적인 역사의 사건 속에서 행위 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고 신학 공부를 시작할 때부터 민족문제를 의식했고, 항일민족운동과 해방시점부터 민족분단을 의식할 때마다 거듭 거듭 기독교의 반공이데올로기를 문제로 여겼다는 박순경에게(3) “한민족 전체”의 역사와 시간이 세상의 창조자이고 구원자가 되시는 하나님의 구원사 안에 포괄되는 것을 신학적으로 해명하는 일이 긴요하게 된 것이다.

▲ 박순경 선생님이 1991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되어 법정 출두 ⓒ월간 <말>

그것은 그녀에게 ‘한민족’이 신학의 “주체와 주제”가 된 것을 말한다.(4) 여기서 그녀는 한국에서 이루어졌던 기독교 복음선교가 알게 모르게 복음을 서양문명과 동일시했다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그러한 왜곡과 서양 민족주의적 교만을 털어내고 한민족이 신학의 주체로 서는 일이야말로 바로 서양 민족들에게도 새로운 신학의 지평을 여는 일이라고 역설한다. 그렇게 되려면 하나님의 全 구원사 안에서 한민족의 위치와 역할(命)이 밝혀져야 하고, 그 가능성이 그에 의하면 “구약과 신약에 암시되어 있”기 때문에 그녀는 “민족들의 성서적 근거와 신학적 해석”을 시도한다.(5) 그것은 민족들의 기원을 다루는 문제를 살펴보고, 거기서 이스라엘 민족의 특수성과 또한 그 이스라엘 민족과 한민족의 관계, 오늘 20세기로 들어서면서 민족 분단의 현실을 겪는 한국 역사의 이해 등을 추구하는 매우 통합학문적이고, 특별히 역사신학적인 관점을 첨예화시키는 작업이다.

여기서 그녀가 주목하는 개념이 ‘계약’(berith) 개념이고, ‘계약신앙’ 사고이다. 위에서 몇 차례 언급했듯이 일관되게 이어지는 그녀 신학의 핵심 탐구인 ‘시간’ 탐구에서 민족의 기원과 시원을 살피는 그녀에 따르면 타민족과 구별되는 이스라엘 민족의 특수한 의미가 구약 전체의 중심적 주제이다. 하지만, 창세기 10장의 노아 이야기도 그렇고 모든 민족들의 통일성이 창조신앙과 하나의 혈통이라는 개념 안에 내포되어 있다고 한다.(6) 그러나 우리가 알다시피 창세기 11장의 바벨탑 설화는 그 민족들을 하나님 스스로가 나누어지게 한 사건으로서 이 의미를 박순경은 하나님과 같아지려는 피조물의 그릇된 시도를 하나님이 용납하지 않은 원(原)사건으로 보면서 이 하나님과 세상의 이원성, 하나님의 초월성과 피조물의 상대성과 조건성에 대한 분명한 구별을 끝까지 밀고 나간다.

나중으로 갈수록 점점 더 한민족의 ‘천부경’(天符經)이나 ‘삼일신고’(三一神誥) 등의 창조설화를 하나님 나라 이해와 시간 이해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이지만 그녀가 끝까지 담지 하고자 하는 것이 이 하나님의 초월성과 주체성에 대한 강조이다.(7) 앞에서 살펴본 대로 그녀 사고의 기원에 놓여진 ‘다 이루었다’라는 성서 언어와 함께 체험한 강력한 ‘존재사건’이 그녀로 하여금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의 초월성을 훼손하는 듯한 시도는 용납하지 못하도록 했고, 그래서 그녀는 “형이상학적이든 역사적이든 범신론적 일원론에 그러한 근원적인 문제가 들어 있다”라고 지적하면서 한민족 고유의 사상에서도 그러한 범신론적 일원론의 문제점을 보고 있는 것이다.(8)

그녀에 따르면 바벨탑 사건이란 이 “원시적 일원론”이 깨어진 사건이고, 그러나 거기서부터 다시 “민족의 신적 기원과 통일정신”이 하나님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서 새롭게 회복되고 시작된 사건이 일어나는데, 그것이 아브라함 사건이라는 것이다. 창세기 12장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박순경은 수메르족 우르 지역의 아브라함 가족이 그 고향을 떠나서 가나안 땅으로 이주하면서 바로 야웨 하나님과 새로운 ‘계약’을 맺고, 아브라함이 인류 ‘계약신앙’의 원조상으로서 모든 민족들의 시조라는 이상을 담고 있는 이야기로 이해한다.(9) 이렇게 해서 이후로 이어지는 모세의 출애굽 사건이나 십계명 등 ‘야웨의 백성’으로서의 이스라엘 민족의 특수성이 성립되고, 여기서 가장 핵심은 ‘야웨신앙’, 야웨 하나님의 의로운 주체성에 대한 신앙에 근거해서 ‘계약사회’가 이루어진 것이고, 그것이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한 특수한 선택받은 민족에 의해서 시작되었다고 이해한다.

하지만 이렇게 야웨의 백성으로서의 이스라엘 민족공동체가 당시 위대한 고대 애굽 문명에 대한 “반립”(反立)으로서 계약신앙과 계약 공동체의 전통을 시작했지만, B.C. 11세기 초 다윗 왕조로부터 시작해서 타 민족국가들과 같이 왕권국가의 체제가 확립되고, 급기야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나라가 갈라지고, 결국 B.C. 6세기 초 남유다 왕국의 멸망에 이르자 그러한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적 특수성이 그치는 것으로 지적된다. 즉 온 민족들의 근원으로 고백되는 한 분 창조자 하나님과의 계약이 이스라엘 민족에 의해서 시작되고 증언되었지만, 결국 예레미야 등의 대예언자 그룹에 의해서 그러한 특수한 민족사로서의 경지가 초월되고, 제2 이사야 등에서는 바벨론 포로와 귀환 등을 겪은 이스라엘 민족의 고난 체험이 세계 민족들에게 한 분 하나님의 의와 구원을 증언하는 계기로 재해석되는 등 세계 보편사의 지평을 얻어갔는다는 것이다.(10) 박순경의 한민족 신학과 통일신학이 접목되는 지점이 바로 이 지점이다.

어떻게 보면 박순경의 이러한 구약과 하나님 나라 이해는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일반적인 기독교 신학에서의 이해와 그렇게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안에 한국 여성신학자로서의 고유함과 기여가 놓여있는데, 특히 그녀의 고대 수메르(Sumer) 문명이해와 그와 연관된 한민족 원류로서의 동이족(東夷族) 이해와 관련해서이다. 그녀는 옥스퍼드 대학교수였던 C. J. Ball 교수가 메소포타미아 수메르족의 상형문자와 중국고대의 상형문자의 긴밀한 유사성을 지적한 연구(1913)와 20세기 중국의 임어당(林語堂, 1895-1976)이나 안동준(安東濬), 임승국(林承國), 안호상(安浩相) 등의 국내 학자들이 그 중국문자의 원류가 동북방의 동이족이고, 수메르족은 동북방으로부터 근동에로 이동해 간 동이족 계보의 한 지류라는 주창을 받아들인다.(11) 다시 말하면 이것은 심지어 그녀가 비판하는 토착화 신학자 윤성범의 단군신화 이해보다도 더 급진적으로 한민족의 원류성을 주창하는 것으로서 한민족의 단군설화(三神一體)가 기독교(삼위일체)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를 말할 수 있는 근거로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 글을 쓰는 나도 평소 한국 토착화 신학으로부터 거리가 멀다고 생각해온 박순경 선생에게서 이러한 반전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작년에 한반도 통일과 평화를 논하는 자리에서 그 유사한 질문을 던졌고, 올해 3.1운동 백주년을 맞이하여 한국 종교개혁의 길에 대한 탐색에서 기독교 신앙의 미래를 위해 이러한 발상의 전환을 요구한 바 있다.(12) 그것은 지금까지의 신학에서 서구 기독교 창조설화가 가졌던 세계 창조 이야기의 독점적 지위를 흔드는 것이기 때문에 매우 전복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고, 나는 박순경 통일신학 안에 그러한 전복성을 보면서 이러한 ‘불이성’(不二性)과 전복성이 그녀 신학의 제1의 특성이라고 여긴다.

그녀는 최근 저서 『삼위일체 하나님과 시간-제1권 구약편』에서 한국 대종교의 《삼일신고(三一神誥)》나 여전히 위서(僞書)논란이 많은 《환단고기桓檀古記》도 언급하면서 동이족의 ‘환국’을 신석기 시대 B.C. 7000여 년 전에 ‘실재’했던 ‘인류 최초의 나라’로 자리매김한다. 그러면서 그로부터 그 조상이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문명권(B.C. 4000년 경)의 셈족 아카디아(Akkadia)계에 속한다고 하는 아브라함 이야기도 새롭게 보고자 한다. 또한 B.C. 1250년경의 출애굽의 이스라엘 하나님 이해란 인류가 모두 함께 하나님의 백성이고, 같이 신적 기원을 가진다는 동이족 환국의 환인 천제의식을 다시 한 번 근본적으로 변혁한 이야기라고 이해한다. 즉 인류 최조의 동이족 환국의 민족과 나라의식은 인류 최초로 여러 씨족들과 부족들을 통합시켜서 민족을 대두하게 했지만, 이후 이스라엘의 계약신앙과 출애굽 신앙의 구원사와 해방사는 창조자 하나님의 타협할 수 없는 초월성과 타자성을 강조하면서 동이족 환국도 포함해서 고대 동방-근동의 신적인 제왕 개념을 다시 한 번 극복한 것이라고 했다.(13) 그래서 박순경은 그 둘 사이의 “반립”을 말하고, “환국의 신관은 문제”라고 선언하는데, 왜냐하면 그 신관은 “죄악을 자행하는 왕국들과 세계를 심판하고 변혁하게 하는 창조자․구원자 하나님의 초월성이 간과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14)

이렇게 둘 사이의 차이와 구별, 그녀의 말로 ‘반립’을 말하지만, 박순경의 통일신학과 민족신학은 어떻게든 바로 이 둘을 관계시키려는 작업이고, 앞으로의 한민족의 신학이 이 둘을 연결시켜서 제 3의 ‘다른’ 신학을 이루어내는 일이야말로 세계사적, 문명사적 의미를 가진다고 역설한다. 그녀는 이 관계에서의 두 주체는 단지 관념이나 허구적 신화의 것이 아니라 “역사적 실체”(실재성)라고 명하고, 그러나 그 의미는 결코 세계사 일반에서는 밝혀지지 않고 그녀 신학적 언어로 “묵시론적 종말론”, ‘종말적 구원사’의 “역사신앙”에서 파악될 수 있는 것이라고 본다.(15) 이러한 신앙과 신념으로 그녀는 말하기를, “이 양대 역사적 실체들이 오늘의 우리 남북의 분단 상황을 넘어서는 통일문제에 대한 해답을 위해서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가? … 통일문제에 대한 해답은 민족분단에 결부된 민족 개념의 새로운 정립과 이념 문제 해결을 필요로 한다”고(16) 강술한다.

하나님 나라와 한반도의 항일민족운동

그러나 후기의 이와 같은 전개에도 불구하고 1980년대 통일신학에서 그녀는 아직 민족 개념, 특히 한민족의 시원과 관련한 물음에서 스스로가 정립되어 있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70년대 유럽에서 마르크스 역사혁명론 연구에 몰두한 후 귀국하여 한국사 연구에서 그와 같은 물음에 대한 답을 얻으려고 노력했으나, 대부분의 국사연구에서의 민족 개념이 서구 근현대사의 식민지배 국가들이 마련해 놓은 서구적 민족국가 개념에서 가져온 것을 쓰는 것을 보고 매우 놀랐다고 한다. 이런 근본적인 물음 속에서 당시 박순경 통일신학은 우선 우리 민족적 시원에 관한 질문은 “보류”해 두고서, 먼저 1920년대의 항일독립 운동의 역사부터 주목하면서 전개된 것이다.

박순경에 따르면 근대적 의미에서의 한민족의 주체성 의식은 우선 ‘항일민족운동’과 결부해서 고찰되어야 한다. 특히 그녀에게 긴밀한 과제인 민족 통일과 관련해서 그 분단의 첫 요인이 바로 일본을 비롯한 서구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적 식민세력의 침략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근접하게는 해방 후 우리의 분단은 미국과 소련 분단 상황의 일환이고, 거기에 더해서 일제 때부터 자본주의적 미국에 편승한 기독교가 정신적으로 밑받침했다고 분석한다.(17) 그녀는 우리의 항일민족운동이 3.1운동을 계기로 범민족과 민중, 여성의 운동으로 확대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 운동을 계기로 “민중․여성이 곧 민족”인 ‘민족․민중․여성’의 삼차원적 민족 주체성이 대두되었다고 파악한다. 그리고 그러한 통합성의 민족 주체성 대두는 한민족사에 있어서 “혁명적”일뿐 아니라 부르주아․자유주의적 정서에서는 설명되지 않는 세계사적으로도 큰 의의를 가지는 사건이라고 역설한다.(18)

하지만 3.1운동에 대한 이러한 평가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1984년 6월 기독교대한감리회 100주년 기념 국제대회를 위해서 쓴 놀라운 글 “한국 민족과 기독교의 문제-민족분단을 넘어서는 길”에서 “3.1운동의 한계점”을 말한다. 거기서 그녀는 근대 서구 기독교 선교와 전래가 소극적이든 적극적이든 서구 자본주의와 식민주의의 침략 이데올로기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지적한다. 그러면서 한국 기독교가 영미 기독교 선교의 부르주아 자본주의와 ‘자유주의’(liberalism)에 경도되어 있어서 3.1운동 이후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 민족해방전선이 필요로 한 항일민족운동에서 사회혁명 운동을 섭렵하지 못하면서 우리 민족의 분단이 시작된 것이라고 밝힌다. 그래서 3.1운동의 한계문제는 민족분단의 상황에서부터 밝혀져야 하고,(19) 그렇게 한국에서의 분단 상황은 1920년대 초부터라고 역설한다.(20)

그녀는 특히 중일전쟁 이후부터 가속화된 친일에로의 기독교의 전환과 민족의식의 상실은 정교분리 등의 자유주의적 기독교 선교 정책과 친일선교사들에 의해서 준비되어져 왔고, “기독교인들의 반공정신이 민족해방과 사회혁신에 대한 지성과 잠재력을 약화시켰고 변질시켰다”고 지적한다.(21) 그녀에 따르면 우리 항일민족운동 민족주의의 첫 번째 한계는 당시 세계사적 상황이 불가피하기도 했지만 그것이 미국 등의 서양 자본주의와 식민주의 세력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고, 사회주의 민족운동에 직면해서 그 한계가 더욱 드러났다고 분석한다.(22) 하지만 만약 상황이 그렇지 않았고 시대의 요청이었던 사회주의의 사회변혁 의지를 잘 통합했다면 한국 민족주의는 “서양의 부르주와 민족주의를 넘어서는 것으로서, 오늘의 제3세계 민족들의 서양에의 예속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예비했었을 것이며,  무엇보다도 우리의 민족분단을 넘어설 수 있는 잠재력을 마련해줄 수 있었을 것”이라며 매우 안타까워한다.(23) 즉 이때부터 이루어내지 못한 좌우 연합의 좌절이 우리 분단의 뿌리이고, 거기에 서구와 미국 자본주의와 부르주아적 자유주의에 경도된 기독교가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 그녀의 시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이것만이 다가 아니고 당시에도 국내 기독교 측에서도 기독교와 사회주의․공산주의의 종합을 역설한 그룹이 있었고,(24) 단재 신채호나 특히 해방 직후 여운형, 김규식, 김구 등의 통일노선이 좁은 민족주의를 넘어선 좌우 연합의 “제3의 길”을 암시해준다고 밝힌다.(25) 박순경은 자신의 대안이기도 한 이러한 제 3의 길을 밝히기 위해서 다시 민족주의와 기독교 복음 사이의 불이성(不二性)에 대한 관점을 더욱 분명히 드러낸다. 그녀에 따르면 우리의 민족 운동이 추구하는 주체성은 궁극적으로 “자유”를 의미하는데, 그것은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영이 이 땅에서 역사하신다는 신앙 없이는 원칙적으로 성립할 수 없다”(26)고 한다. 하지만 여기서 그 하나님의 영을 전하는 기독교 복음이 서구 자본주의와 서양문화의 담보물이나 담지자로 여겨져서 민족을 망각하는 친일이나 보수적 우익기독교가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박순경은 한민족의 역사를 하나님 나라의 ‘구원사’로 해석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것은 제1 세계와 제2, 3 세계, 서양과 동양, 기독교와 민족, 우익과 좌익의 구분을 ‘종말론’적으로 뛰어넘는 제3의 “중립의 길”이다. 그녀에 따르면, 한민족이 지금까지 항일항쟁운동으로 그렇게 고생하고, 전쟁에 시달리고, 남북통일의 고난의 길을 걸어온 것이 이제 세계사적 의미를 얻으려면 바로 과거 긴긴 역사적 과정에서 얻어진 “민족적 동일성”에 기초하면서 ‘자유’와 ‘화해’의 새 주체성을 향한 제3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27) 그녀의 다음 말을 그래서 우리는 그 명징한 결론적 선포로 듣는 것이다:

“그러한 종말적인 제 3의 길은 궁극적으로 화해의 길이다. 그러나 이 화해는 주어진 세계의 지배구조를 극복함이 없이, 지배자의 속죄함이 없이, 피지배민족의 실제적인 해방이 없이 성취될 수 없다. 남북한의 화해의 길은 민족적 동일성에 기초하되, 그러나 민족 내에서의 사회평등 없이 성취되지 못한다. 또 남북한의 화해의 길이 어떤 의미로 어떤 조건으로 열리든 간에 그것이 피지배민족들과 민중을 자유롭게 하는 길로서의 표본이 되어야 하리라. 그렇게 할 때에 피억압민족으로서의 항일민족운동의 세계사적 의미가 되살아나게 되고, 분단 상황에서의 모든 죄악이 속죄되고, 민족사의 모든 고난이 세계사적 의미를 가지게 되고, 하나님의 구원과 그의 나라의 의에 참여하게 되리라, 그의 나라의 도래와 성취에 대한 신앙은 세계로 하여금 주어진 체제에 있어서의 기득권에 고착하지 못하게 하는, 즉 자유롭게 하는 능력이다.”(28)

미주

(미주 1) 박순경, “나의 신학 수업”, 『하나님 나라와 民族의 未來』, 14쪽.
(미주 2) 같은 책, 14쪽.
(미주 3) 박순경, 『통일신학의 여정』(서울: 한울, 1992), 12쪽.
(미주 4) 같은 책, 14쪽.
(미주 5) 같은 책, 17쪽.
(미주 6) 같은 책, 18쪽.
(미주 7) 박순경, 『삼위일체 하나님과 시간-제1권 구약편』(서울: 신앙과지성사, 2014), 680-710쪽.
(미주 8) 박순경, 『통일신학의 여정』, 20쪽.
(미주 9) 같은 책, 21쪽.
(미주 10) 같은 책, 27쪽.
(미주 11) 같은 책, 19, 40쪽.
(미주 12)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한국교회-평화신학과 발선(發善)>, 생평마당 2018년 가을포럼, 2018.11.27, 여기에서 한완상 선생님의 발제에 대한 본인의 논평을 보라; 이은선, “3.1운동 정신의 통합학문적 이해와 기독교 신앙의 미래”, 『3.1운동 백주년과 한국 종교개혁』, 3.1운동백주년종교개혁연대,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 2019, 445쪽.
(미주 13) 박순경,『삼위일체 하나님과 시간-제1권 구약편』, 694쪽.
(미주 14) 같은 책, 684쪽.
(미주 15) 같은 책, 694, 697, 702쪽.
(미주 16) 같은 책, 695쪽.
(미주 17) 박순경, “한국 민족과 기독교의 문제”, 『민족통일과 기독교』(서울: 한길사, 1986), 45-46쪽.
(미주 18) 박순경, “통일신학의 정초를 위하여”, 『통일신학의 여정』, 70쪽.
(미주 19) 박순경, “한국 민족과 기독교의 문제”, 『민족통일과 기독교』, 41쪽.
(미주 20) 같은 책, 47쪽.
(미주 21) 같은 책, 44-45쪽.
(미주 22) 같은 책, 48쪽.
(미주 23) 같은 책, 45쪽.
(미주 24) 박순경은 여기서 대표적으로 평북 용천 출신으로 조선기독교청년연합회(YMCA)학생부 간사를 맡았던 이대위(李大偉, 1896-?)을 여러 차례 언급한다. 같은 책, 41쪽; 박순경,  “통일신학의 정초를 위하여”, 『통일신학의 여정』, 73쪽.
(미주 25) 박순경, “한국 민족과 기독교의 문제”,『민족통일과 기독교』, 49쪽; 올해 3.1운동 백주년을 맞이해서 우리가 지금까지 사회주의자로만 주로 알았던 몽양 여운형이 신학 공부를 한 기독교 전도사이기도 했으며 일관되게 좌우 연합의 민족주의를 강조한 세계적 사상가였음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이정배, “몽양 여운형의 좌우합작론 속의 토착적 기독교성”, 변선환 아키브 편, 같은 책, 116-147쪽.
(미주 26) 박순경, “통일신학의 정초를 위하여”, 『통일신학의 여정』, 75쪽.
(미주 27) “한국 민족과 기독교의 문제”, 『민족통일과 기독교』, 51쪽.
(미주 28) 같은 책, 51-52쪽.

이은선 명예교수(한국 信연구소 대표, 세종대) leeus@sejo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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