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기봉 광주옥합교회 목사를 만났다
▲ 엄기봉 목사 전남노회 포괄적 차별금지법 동성애대책위원회에 출두를 기다리고 있다. 엄 목사는 자신의 다양한 활동에 대해 어떤 후회도 없다고 했다. ⓒ홍인식 |
지난 6월 1일(토) 오전 11시 30분 서울 을지로역 입구에 30여 명의 목회자들이 모였다. 성소수자들과 이들과 연대하는 사람들의 축제인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이들을 축복하기 위해 모인 개신교 목회자들이었다. 여러 교단에서 자원해 모인 사람들이었다. 이들 가운데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측 전남노회 광주옥합교회 엄기봉 목사도 함께했다. 이들 모두는 꽃잎을 하늘로 뿌리며 차별과 혐오 없는 세상을 기원하고 성소수자들을 마음껏 축복했다. 모두가 즐겁고 행복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축복식이 끝나고 6월 11일(화) 엄기봉 목사는 전남노회 ‘포괄적 차별금지법 동성애대책위원회’로부터 공문 하나를 받게 된다. 공문의 내용은 이랬다. 동성애대책위에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하게 된 경위서를 6월 20일(목) 오후 16시까지 제출하라는 것과 6월 21일(금) 오전 11시 동성애대책위에 출두하라는 것이었다. 공문에 기록된 것을 보면 두 번째 요구인 노회 출두 명령과 함께 괄호 안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었다. “단, 경위서 제출 불이행과 노회 출두 명령 불이행시 노회 및 총회 징계 절차 개시 진행.” 일단 내용 자체가 무섭다. 하지만 먼저 이 문구에 대해 몇 가지 점검이 필요해 보인다. 이 위원회의 성격은 무엇일까? 이 위원회에 총회나 노회가 어떤 권위를 위임했을까?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왜 소환인가? 엄 목사가 이미 죄를 지은 자로 고발이 되거나 확정된 것인가? 마지막으로 이 위원회가 징계의 권한이 있는 것인가? 어느 물음 하나 명확하지 않다. 그럼에도 엄 목사는 동성애대책위에 출두해 위원들로 여러 가지 질문을 받았다. 엄 목사의 증언해 의하면 강압적인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았다고 한다. 특히, 위원들의 질문은 3가지로 압축될 수 있었다고 한다. ‘동성애자인가’, ‘동성애를 지지·옹호하는가’, ‘헌법의 내용을 알고 있으면서 목사의 직을 걸고 동성애를 지지·옹호하는 활동을 계속할 것인가’. 이성애자이기에 이미 결혼한 상태이고 성소수자들을 향한 혐오와 차별에 반대하는 활동해 온 엄 목사에게 동성애대책위는 마치 엄 목사의 미래를 이미 정해놓은 듯한 느낌마저 드는 질문했다. 에큐메니안이 엄기봉 목사를 동성애대책위 출두 전에 만났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엄 목사의 심경에 대해 충분히 들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한국교회와 성도님들의 관심이 한국 교회가 외면하고 있는 이들에게 모아지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이보다 더 명확할 수 있을까. |
다음은 엄 목사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 반갑습니다.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목사님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광주 518 민주광장 옆, 예술의 거리에 위치한 광주옥합교회에서 2021년부터 목회하고 있는 엄기봉 목사입니다. 차별과 배제로 소외된 사람들과 조건 없는 연대! 차별 없는 환대! 공명과 유대! 하는 교회가 되기를 꿈꾸고 있습니다.
▲ 이번 목사님에 대한 노회의 조치를 전한 기사에 독자들의 반응이 굉장히 뜨겁습니다. 공문을 받으시고 어떤 생각이 드셨는지요.
옥합교회 성도들과 호남지역 성소수자 부모 모임에서 만난 부모님과 친구들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그들에게 피해가 가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이 앞섰습니다. 2022년 5월에 교회 간판을 길벗체로 할 때부터 언젠가 일어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 엄기봉 목사도 지난 6월 1일 서울 을지로 일대에서 진행된 서울퀴어문화축제의 성소수자들을 위한 축복식에 참여했다. ⓒNCCK인권센터 |
▲ 언제부터 성소수자 문제에 관해 관심을 가지게 되셨나요? 어떤 계기가 있으셨나요?
2018년 5월 17일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생들이 ‘아이다호데이’를 맞아 무지개색 옷을 입고 채플에 참여한 뒤 기념사진을 찍은 일로 징계를 받았습니다. 한국 교회와 신학교가 이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을 보면서 실망했고, 후배들을 위해 제가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이 미안하고 부끄러웠습니다.
이어지는 총회장의 성소수자에 대한 성명과 헌법 개정 절차를 보면서 ‘성소수자’ 문제를 다루는 총회의 처리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장신대 신학생들의 신학함의 모습이 제가 성소수자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 성소수자 문제로 어떤 활동을 하시는지 이야기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호남지역 성소수자 부모 모임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여하고 있는 ‘광주인권지기 활짝’의 여러 활동가가 소개하는 프로그램과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활짝’은 성소수자의 인권 문제뿐만 아니라 장애인, 이주노동자, 학교 밖 청소년 교육 등 지역의 여러 가지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교육과 운동을 전개하는 단체입니다.
그리고 ‘활짝’을 통해 만난 ‘혐오문화대응네트워크’, ‘국가인권위원회 광주사무소’, ‘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동행’, ‘녹색당’ 등의 활동가들이 참여하는 행사에 참여해 지역의 인권 이슈에 관심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광주에서는 매년 10월 세계인권도시포럼이 열리는데 2023년에 여러 주제들 가운데 ‘성소수자’ 주제는 포함되지 못했습니다. 활짝과 호남지역 성소수자 부모 모임이 함께 2024년 포럼에 성소수자 주제 제안서를 제출했지만 아쉽게 채택되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계속해서 시도할 계획입니다.
2024 차별 철폐 광주대행진이 다음 주 월, 화, 수(24~26)에 열립니다. 월요일 정오, 광주광역시청 앞에서 ‘여성, 성소수자’ 의제로 열리는 선전에 성소수자 부모 모임 피켓을 들고 참여할 예정입니다. 앞으로 청소년 성소수자를 돕는 전문상담가가 되기 위해 대학원에서 상담심리학을 공부하며 학생상담센터에서 객원상담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 한국 교회 대다수가 성소수자 문제에 대해 굉장히 공격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혹시 교회 내 성도님들의 반응을 전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마태복음 25:31~46 말씀이 옥합교회의 교회론입니다. 저는 옥합교회에 부임할 때부터 성도님들에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 말씀을 전했습니다. 교회가 해야 할 일, 교회의 존재 이유에 대해 성도님들과 많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성소수자 또한 한국 교회가 외면하는 소외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성도님들과 저의 공통된 생각입니다.
▲ 노회의 조치에 대해 앞으로 어떻게 대응하실 것인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경위서를 통해 저의 소명은 충분히 했다고 생각합니다. 노회와 총회에서 징계절차가 개시될지는 모르겠습니다. 결과가 나올 때까지 경위서에 밝힌 대로 미국남장로교회 선교사들의 광주, 전남에서의 선교사역을 따라서 교회가 마땅히 해야 할 사역들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한국 교회와 성도님들의 관심이 한국 교회가 외면하고 있는 이들에게 모아지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이제 관심은 동성애대책위의 판단 결과가 어떻게 나올 것인가 하는 점이다. 감리교 총회가 동일한 문제로 이동환 목사를 출교시킨 것처럼 그런 판단을 내릴까. 그렇게 하면 자신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한국 교회가 깨끗하고 사회의 모범이 될 수 있는 것일까. 교단들의 문제로 한정할 수 있을지, 한국 교회 전체의 문제인지 아직 판단하는 것이 섣불러 보이지만 감리교이든 예장 통합이든 한국 교회 전체이든, 교회가 점점 희망이 없는 게토화된 집단이 되었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그의 더러움이 옷자락에 달라붙어 있고, 그는 그것이 어떻게 끝날지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의 추락은 놀라울 정도인데 아무도 위로하는 이가 없습니다.”(예레미야 애가 1,9) |
홍인식 대표(에큐메니안) webmaster@ecumen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