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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장준하 선생의 막내아들 장호준 목사가 박지만 씨에게 보낸 공개편지

기사승인 2012.09.06  19: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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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커네티컷 유콘스토어스 한인교회 담임을 맡고 있는 장호준 목사.
2009년 11월 장준하 선생의 셋째 아들 장호준 목사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 지만씨에게 보낸 편지가 20129월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 진상규명움직임이 다시 일어나면서 SNS를 비롯한 인터넷 상에 다시 회자되고 있다. 

정운현 전 한국언론재단 이사는 2009119일 인터넷 블로그에 박지만씨에게 보내는 공개 편지라는 제목으로 장 목사가 보내온 e메일을 공개했다. 장 목사는 편지에서 자식된 입장에서 아버지의 이름이 친일인명사전에 오르는 것을 막고자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역사는 결코 지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지우려 할수록 번지는 것이 역사이며 지만씨의 행동 또한 수치스러운 역사로 기록될 것이라고 썼다. e메일에는 친일인명사전을 통해 민족의 역사가 바로 서는 길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덧붙였다.
 
 
[박지만씨에게 보내는 공개 편지]
 
 
박지만씨,
 
지만씨의 이름이 내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아버님의 의문사 이후 학업을 중단하고 낮에는 가게 점원으로 밤에는 포장마차에서 일을 하면서 살아가던 시절, 동창들의 입을 통해 중앙고등학교를 다니던 지만씨의 이름이 들려지면서 부터였다고 생각됩니다.
 
그 후 그리도 잔인했던 19805월을 훈련소에서 보내고 전방에서 사병생활을 하던 때,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장교가 되었다는 지만씨의 소문을 심심치 않게 들었었고, 한동안 듣지 못했었던 지만씨의 이름을 내가 다시 듣게 되었던 것은 싱가폴에서 마약중독자 상담원으로 일을 하던 당시 지만씨가 마약중독으로 치료감호를 받고 있다는 소식을 통해서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지만씨의 이름을 다시 듣게 된 것은 최근 지만씨가 친일인명사전에 대한 게재금지 가처분과 배포금지 신청을 법원에 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면서였습니다.
 
박지만씨,
 
지만씨와 나는 너무도 다른 삶의 공간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런 이유로 해서 나는 지만씨와는 스쳐 지나갈 기회조차도 없었고 또한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지만씨가 친일인명사전에 대한 게재금지 가처분과 배포금지 신청을 법원에 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이제서야 지만씨에게 이런 글을 쓰고자 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도 같은 역사 속을 헤치며 살아야만 했었던 한 사람으로서 역사를 향해 다하지 못한 책임에 대한 고백 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박지만씨,
 
나는 지만씨의 아버지는 일황에게 충성을 바쳤던 일본군이었고 내 아버지는 일제와 맞서 싸웠던 독립군이었다거나, 지만씨의 아버지는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독재자였고 내 아버지는 민주와 통일을 위해 목숨 바친 민족주의자였다는, 또는 지만씨의 아버지는 부정한 재산을 남겨 주었지만 내 아버지는 깨끗한 동전 한 닢 남겨준 것이 없었다는 이야기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역사는 역사가 스스로 평가하도록 맡겨 두라는 것입니다.
역사는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몫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고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있었던 역사를 그대로 남겨두는 것입니다. 혹자는 역사는 승자에 의한 기록이라 말합니다. 하지만 내가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 것은 인류 역사는 사필귀정이라는 원리에 의해 움직인다는 신념 뿐 아니라 부정한 권력에 의해 조작되었던 인혁당사건의 진실이 밝혀지는 역사의 현장을 보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자식 된 입장에서 아버지의 이름이 친일인명사전에 오르는 것을 막고자 하는 마음은 당연한 것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역사는 결코 지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지우려 하면 할수록 더욱 번지게 되는 것이 역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만씨가 자신에게 수치스러운 또는 불리한 사실이라는 이유로 역사를 지우고자 한다면 역사는 지만씨의 이와 같은 행동을 또 다른 수치스러운 역사로 기록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기억해 두기 바랍니다.
 
박지만씨,
 
내 아버님은 의문의 죽임을 당하시기 불과 수 개월 전에 지만씨의 아버지에게 공개서한을 보내면서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이 지구상에는 수백억의 인간이 살다갔습니다. 그 중에 가장되었던 사람들은 누구나 내가 죽으면 내 집이 어찌되겠는가하는 걱정을 안고 갔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사회는 발전하여 왔습니다. 우리들도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지만씨나 나도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 민족은 발전해야 합니다. 그런 이유에서 한민족의 역사는 기록되어 남겨져야 하며 또한 전해져야하는 것입니다. ‘친일인명사전은 역사입니다. 역사가 평가하도록 남겨두어야 할 역사인 것입니다. 역사를 지우려는 오류를 범하지 말기를 다시 당부합니다.
 
2차 세계대전 중 유대인 수용소 소장으로서 수천 명의 유대인들을 학살한 아몬 게트(Amon Goeth)의 딸은 내가 과거를 바꿀 수 없다면 미래를 위해 무언가는 해야 한다라고 다짐하면서 생존자 중 한 사람을 만나 잔혹하고 치욕스러운 아버지의 과거를 듣고 용서를 빌게 됩니다.
 
박지만씨,
 
이제 우리는 살아서 오십대 초반을 보내고 있습니다. 짧지만 길었던 삶속에서 또한 우리는 지나온 역사가 결코 우리의 손에 의해 바뀌어 지지 않는 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확실히 믿는 것은 치욕의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게 하기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 분명히 있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 아버지가 되었다는 지만씨에게 내 아버님께서 평생 가슴에 품었었고 이제는 내 가슴속에 품겨져 있는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라는 글귀를 전해 드립니다. 자식에게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친일인명사전에 대한 게재금지 가처분과 배포금지 신청을 취소하십시오. 그리하는 것이 역사와 후손들 앞에서 지만씨의 모습을 부끄럽지 않게 하는 길이 될 것입니다.
우리 민족 통일을 위해 지만씨의 삶이 쓰여 지기를 빌어봅니다.
 
미국 커네티컷에서
장호준

 

편집부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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