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상기 목사와 함께 하는 <성서와 위로>
▲ 교회에서 흔히 듣게 되는 거짓말은 믿음으로 모든 것이 다 되었다는 것이다. ⓒGetty Images |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 때문에 의롭다고 하실 것을 성서가 미리 알고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먼저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갈라디아서 3,8) |
믿음과 의라는 문제는 복음이라는 틀 안에서 다양하게 설명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아주 기본적인 것이기에 기독교의 기초에 속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늘 그 기초에 머물며 그것을 새기고 되새기는 교회를 안타깝게 바라보며 기초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 나아가라고 권고합니다(6,1). 일종의 믿음의 정체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또다시 이 문제를 끌어낸 이유는 그러한 기초가 오남용되고 소위 이단이라는 것들의 출발점이 되고 있어서입니다. 하지만 어느 쪽이 먼저인지는 모르지만 그와 동일한 오남용이 다수의 교회에서도 행해지고 있습니다. 영화 밀양이나 최근 pd 수첩이 다룬 다락방 사태에서 볼 수 있는 대로입니다.
양자의 공통점은 죄용서가 가져오는 자유를 방종의 허락으로 이해하고 뭐든 할 수 있고 해도 되며 모든 책임으로부터 해방된 것으로 간주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말을 하나님의 명령으로 포장하여 요즘 말로 하면 가스 라이팅이나 그루밍으로 사람을 지배합니다. 이 지점에서 보면 다수 교회의 행태는 이단이라는 것들로부터 아주 가까이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도대체 믿음과 의로움은 무엇인지요? 믿음은 하나님 앞에 있음을 고백하고 하나님 앞에서 이 세상의 삶을 살 것을 서약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고 의롭다는 그러한 고백과 서약을 하나님께서 인정하고 그 앞에서 살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삶은 방종일 수 없습니다. 그 삶에는 목표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거룩하니 그 앞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거룩하라고 요구하시며 그들과 더불어 하나님의 나라라는 공동체를 세우고자 하십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출애굽 역사에 기초하여 하나님을 그들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다시 말해, 그 하나님이 그들의 구원자 하나님이심을 믿고 그의 명령을 지키기로 서약했습니다. 이방인들에게는 우선 닫혀 있는 하나님과의 관계였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하나님의 시선은 이방세계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독점하고 싶어했지만, 하나님에게 이스라엘은 장자 같은 존재입니다. 장자 이후는 열려 있습니다. 이방세계가 그 뒤를 이을 것입니다. 어떻게 그 문이 열리는가가 모두의 관심사입니다. 바로 예수 사건이 그 문을 열었습니다.
예수는 우리를 죄의 굴레로부터 해방시키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했습니다. 해방자 예수의 사역에 기초하여 예수와 그를 보내신 하나님을 받아들임으로 우리는 그의 나라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과 다른 것은 이스라엘이 집단이라면, 우리는 개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은 그 나라의 질서를 따라 살아야 하는 의무와 책임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미 완료된 것이 아닌데도, 완료된 것처럼 말함으로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그들의 자유를 세상 사람들에게 조롱당하고 비난 받는 이유로 만드는 것이 이단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사는 것이 하나님께서 뜻하신 복입니다. 그 삶은 사랑으로 사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믿음은 우리 속에 사랑의 강이 흐르게 합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그의 백성으로서 그의 말씀을 지키며 살도록 사랑의 힘도 주시는 셈입니다. 믿음이 시작이면 사랑은 완성입니다. 사랑을 낳지 못하느 믿음은 죽은 가지와 같아서 잘라져 버릴 것입니다. 그렇기에 믿음으로 다 되었다는 것은 거짓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래전부터 계획하시고 우리에게서 실현시키시는 사랑의 역사에 참여하는 오늘이기를. 우리의 믿음이 우리를 사랑의 강으로 인도하는 이날이기를. |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