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흐와 산책하기 (54)
▲ <별이 빛나는 밤> (1889 셍레미, 캔버스에 유채, 73×92cm, 현대미술관, 뉴욕시) |
흔히 빈센트 열정의 화가라고 한다. 그의 삶을 뜨겁게 달군 것은 예술과 신앙과 독서이다. 한때 그의 가슴을 불태우던 구령 열정은 당시 교회의 벽을 넘지 못했다. 하고 싶다고 다 하는 것이 은총은 아니다. 하고 싶은 것을 막은 것이야말로 더 큰 은총이다.
빈센트가 목사의 길을 걸었다면 그는 행복했을까? 그의 목양지는 평안하였을까? 만일 빈센트가 그 길을 걸었다면 위대한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빈센트에게 목사의 길도 거룩하지만, 화가의 길은 훨씬 고귀한 길이 아닐 수 없다. 신학교 입학에서 낙방하고, 수습 전도사의 길에 제동이 걸린 일은 참 잘된 일이고 축하할 일이다. 그렇게 하여 위대한 영혼의 화가가 탄생되었다. 만사형통만 복은 아니다.
그의 작품은 하나하나가 탁월한 설교다. 그래서 인류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설교를 눈으로 보고, 영혼으로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 앞에서 시각적 아름다움만 음미하는 일은 그 영혼 세계의 반쪽만 접근하는 셈이 된다. 그의 예술에 깃든 깊고 높은 하늘의 메시지를 들을 수 있는 안목이 열릴 때 비로소 그의 예술은 별이 된다.
하나님의 계시를 담은 메시지를 종교 울타리와 예배당의 첨탑 안에서만 들으려 한다면 이는 전근대적 사고방식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은 온 우주에 충만하고 그의 사랑은 온 누리에 가득하다. <별이 빛나는 밤>(1889)에서 교회는 다른 건물들과 마찬가지로 여러 은총 가운데 하나이다. 교회를 소중히 여기는 일과 교회를 절대시하는 것은 다르다. 세상에는 교회 못지않게 소중한 기관이 많다. 가정도, 학교도, 정당도, 도서관도, 신문사, 출판사 등… 모두 소중하다.
열두 개의 별이 빛나는 하늘은 굽이치는 은총으로 가득하다. 누구라도 예외는 없다. 크고 화려한 별도 있지만 작고 희미한 별도 다 소중하다. 거룩과 세속, 삶과 죽음, 성공과 실패가 다 은총 안에 있다. 경중과 귀천을 함부로 정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은총을 제한적으로 이해하려는 사람에게 빈센트의 그림은 아직 비밀일 수도 있다. 이런 그림을 생레미의 정신병원에서 그렸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 조차도 은총이 아닐 수 없다.
최광열(기독교미술연구소 연구원) webmaster@ecumen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