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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벨라르와 엘로이즈: 냉정과 열정 사이

기사승인 2024.08.05  03: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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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수일의 ‘기고만장’(基古萬張, 기독교 고전 만장 읽기) 27

이 원고와 영상은 ‘사이너머’ 연구소에 진행하고 있는 채수일 교수의 ‘기고만장: 기독교 고전 만장 읽기’입니다. 기독교 고전을 독자들과 함께 읽고 우리 시대의 문제와 씨름하는 것입니다. 영상과 원고의 게재를 허락해 주신 채수일 교수님과 사이너머에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 편집자 주

안녕하세요, 채수일의 ‘기고만장’입니다.

유럽 중세 최고의 러브스토리로 알려진 아벨라르와 엘로이즈의 연애편지를 기독교 고전에 포함시킬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와 두 사람이 나눈 편지의 애절함은 흥미로운 일이지만, 편지의 진정성에 대한 논란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주제를 벗어나지만, 약간 쉬어 갈 겸, 안셀무스의 제자이자 스콜라 신학의 초창기에 뛰어난 신학자로 알려진 아벨라르와 스물 두 살 연하의 엘로이즈의 사랑 이야기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희망의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Ernst Bloch, 1885-1977)는 피에르 아벨라르(Petrus Abaelardus, 1979-1142)를 ‘유명론’과 ‘실재론’을 결합한 중세 최고의 신학자이자, 중세 대학의 토론 기술을 창조한 학자로 격찬했습니다.(1) ‘유명론’은 각기 다른 사물을 하나의 개념으로 묶는 일반개념, 예를 들면 개별 인간들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종’이나 ‘유’ 등의 일반 개념으로 파악하는 것은 단지 언어의 산물에 불과하다는 이론입니다. 그러나 ‘실재론’은 사물들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와는 관계없이 보편자가 실재한다는 주장입니다.

아벨라르는 실재론과 유명론의 이분법적 논리에서 벗어나 인간 사고의 경험적 측면과 추상적 측면을 모두 중시함으로써 중세 보편 논쟁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한 것입니다. 아벨라르는 스무 살의 나이에 이미 스승을 능가하는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 때문에 아벨라르는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었고, 인간의 이성과 자유, 개인의식을 중시하는 위험한 이단적 사상가로 오해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은 오히려 뛰어난 철학자요 교회 교사로 인정받은 서른아홉 살의 신학자와 스물 두 살 연하인 17세의 제자 엘로이즈(Heloise, 1101-1164)와의 스캔들로 더 잘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엘로이즈는 뛰어난 학식과 재능을 가졌고 라틴어, 그리스어, 히브리어에도 능통했습니다. 파리 대성당 성직자이자 참사회원이었던 숙부 질베르의 엘로이즈에 대한 뜨거운 교육열 덕분이었습니다. 엘로이즈에 대한 소문을 들은 아벨라르는 스스로 가정교사가 되겠다고 나섰고, 숙부 질베르는 당대 최고 교사의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것처럼, 두 사람은 사랑에 빠졌고, 마침내 엘로이즈는 임신을 하게 됩니다. 충격을 받은 숙부 질베르의 분노, 세간의 비난을 피하는 길은 결혼이라고 생각한 두 사람은 결혼으로 사태를 수습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결혼으로 학문의 길이 막히고, 교회 교사로서의 명성이 상처받을 것을 염려한 두 사람은 비밀결혼을 하기로 합니다. 그리고 태어난 아들은 아벨라르의 누이에게 맡깁니다.

그런데 분을 참지 못하고 복수에 눈이 먼 숙부 질베르는 아벨라르의 하인을 매수하여 어느 날 저녁, 아벨라르를 거세해 버립니다. 결국 아벨라르와 엘로이즈는 모두 수도원으로 들어갔고, 죽기 전까지 서로를 그리워하면서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아벨라르가 세상을 뜨자(1142년) 엘로이즈는 그의 시신을 아벨라르가 세우고 엘로이즈가 원장이었던 ‘파라클레트 오라토리’ 수도원에 묻었는데, 엘로이즈도 후에 아벨라르의 옆에 묻혔습니다(1164년). 그 후 프랑스 혁명기, 수도원이 파괴된 후, 다른 곳으로 이장되었다가, 1817년 파리에 있는 페흐 라셰즈 공동묘지에서 마침내 두 사람은 마지막 쉴 곳을 찾았습니다.

아벨라르와 엘로이즈가 주고받은 편지들은 ‘아벨라르와 엘로이즈–전설로 남은 중세 수도사와 수녀의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어로 출간되었습니다.(2) 그리고 독일의 유명한 여성 작가 루이제 린저(Luise Rinser, 1911-2002)도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를 소설로 썼는데요, 린저의 소설은 아벨라르와 엘로이즈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아스트롤라비우스의 시각에서 쓴 것입니다.(3) 태어나자마자 부모로부터 버림받아 고모의 손에 자라면서 겪은 고통, 후에 아버지인줄 모르고 아벨라르의 제자가 되었다가 사실을 알게 되면서 존경과 증오 사이에서의 번민, 수녀가 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이해할 수 없는 냉정한 태도에 대한 슬픔 사이에서 고통 받는 아들의 입장에서 만든 작품입니다.

그런데 서두에 말씀드린 것처럼, 아벨라르와 엘로이즈가 나눈 편지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독일 학자 슈마이들러에 의하면, 편지는 아벨라르 혼자서 쓴 문학적 허구라는 것입니다. 버트런드 러셀도 그의 ‘서양철학사’에서 아벨라르의 성격으로 보아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합니다.(4) 그러나 사실 여부를 떠나 편지들은 중세를 빛낸 뛰어난 두 지성인의 사랑과 내적인 갈등을 매우 솔직하고 감동적으로 표현합니다. 육체적 욕망과 영적 순결, 아벨라르의 소심한 비겁함과 엘로이즈의 담대한 용기, 명성과 사랑, 학교와 가정 사이의 긴장, 이루지 못한 사랑의 고통과 절절한 그리움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물론 아벨라르가 연애편지만 남긴 것은 아닙니다. 아벨라르가 남긴 저서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책은 1121년부터 1122년 사이에 쓴 ‘긍정과 부정’입니다. 아벨라르는 성서를 제외하고 변증법이 진리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고, 논리학이야말로 뛰어난 그리스도교 학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동시대의 뛰어난 인물이었던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두스(Bernardus Claravalensis, 1090-1153)는 ‘이성을 찾는 행위’를 악마의 작업으로 간주하고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이에 반해 아벨라르는 생명력 넘치고 때로는 열광적이며 현대적 감각을 지닌, 날카로운 판단력과 오성에 입각하여 깊이 사고하는 인물이었고(5), 변증법에 바탕을 둔 뛰어난 토론 기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가 남긴 문헌, ‘철학자, 기독교인 그리고 유대인 사이의 대화’, ‘긍정과 부정’은 토론의 기본 서적이었습니다.(6)

아벨라르의 스승이었던 안셀무스(Anselmus, 1033-1109)는 ‘신앙은 지성을 위한 것이다’고 주장했습니다. 아벨라르 역시 이 점을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아벨라르는 지성에 대해 방법론적으로 의혹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학문적 연구란 의심 내지는 의혹으로 시작되는 것이지, 신앙으로 시작되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7)

다시 말해 아벨라르는 우리가 미리 깨닫지 않은 것이라면 어떤 것도 맹목적으로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그리고 인간은 이성을 매개로 하여 신과 닮을 수 있고, 이성을 활용함으로써 신과 비슷한 존재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신이 자신의 모습과 동일한 상으로 인간을 창조했듯이, 인간 역시 자신에게 부여된 신의 사명을 완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벨라르가 생각한 신학적 변증법이었습니다.(8)

아벨라르는 그의 윤리학에서 중세에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대담한 개인주의적 요소를 주장했습니다. 그의 저서 《너 자신을 생각하라》에서 아담과 이브의 타락 이후로 인간의 마음속에는 죄악을 선택하는 ‘성향’이 도사리고 있는 것을 동의합니다. 그러나 원죄는 사람들이 죄악에 대해 동의할 경우에 한해서, 비로소 존재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만약 내가 죄악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면 나는 아무런 죄 없이 존재하는 셈이라는 것이지요.(9)

이런 입장은 그 당시까지 한 번도 제기된 바 없었고, 행동의 결과보다 행동하는 사람의 의지를 중시하는 태도는 근본적으로 신약 성서의 내용에 위배되는 것이었지요. 특히 결과의 윤리를 전형적으로 주장하는 야고보서와는 대조적이었습니다. 아벨라르는 인간의 의지 속에 담겨 있는 자유의 정신을 강하게 부르짖은 것입니다(10)

그렇게 되면 신의 은총은 인간의 자발적인 자유의 뒷전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고, 그리스도의 희생적 죽음이라는 것도 부인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아벨라르가 그렇게 주장한 것은 지금까지 자행된 가장 끔찍한 인류의 죄악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짓인데,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장렬한 죽음을 인류를 화해시키기 위한 의도에서 나온 것으로 생각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미주 11) 그래서 아벨라르는 그리스도가 세상의 모든 죄를 사하기 위해서 희생적으로 죽음을 자청했다는 사도 바울의 주장을 부인한 것입니다.(12)

아벨라르는 그리스도의 죽음보다도 오히려 그리스도의 삶을 하나의 모범으로 삼고, 우리가 이를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삶을 따르는 일이 바로 우리가 죄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아벨라르가 백년 후에 이런 주장을 했다면 그는 분명히 화형에 처해졌을 것입니다. 다행히 아벨라르 자신은 화형을 면했지만, 후에 그의 이론을 추종한 학자들은 모두 화염이나 칼에 의해 죽임을 당했습니다.(13)

다행히 조금 일찍 태어나서, 그러나 무엇보다 그의 뛰어난 지성과 수도사로서의 엄격함 덕분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지만, 그는 평생을 사랑의 고통과 그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스승과 동료들의 배제와 탄압을 견디면서 살아야 했습니다.

오늘의 ‘기고만장’은 서두에 말씀드린 것처럼, 약간 곁길로 나가, 아벨라르와 엘로이즈의 편지를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편지는 모두 다섯 편의 “사랑의 편지”와 일곱 편의 이른바 “교도의 편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교도의 편지”는 엘로이즈가 수녀 교단의 기원, 수녀 생활의 법칙, 성서에 대하여 질문한 편지와 그에 대한 아벨라르의 답신입니다. 모두 12편의 편지를 시작하는 첫 번째 편지는 아벨라르가 한 친구에게 보낸 편지로서, 그의 삶 전체를 조망하는 일종의 서장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아벨라르는 엘로이즈에 대한 사랑이 육체적 욕망으로부터 시작된 것임을 인정합니다:

“교육이란 구실 하에 우리는 완전히 사랑에 몰두했던 것이네. … 책이 펼쳐져 있었지만, 철학 공부보다는 사랑의 이야기가 더 많았고, 학문의 설명보다는 입맞춤이 더 빈번했으며, 내 손은 나의 책으로 가는 일보다 더 자주 그녀의 가슴으로 갔던 것이네. 사랑은 두 사람의 눈을 교과서의 문자 위를 더듬게 하지 않고 서로의 눈망울 속에 머물게 했네.”(14)

연예는 자연스럽게 아벨라르로 하여금 철학에 열중하는 일이며 학당 일을 살펴보는 일에 소홀하게 만들었고, 소문은 바람처럼 빠르게 퍼졌습니다. 사람들의 이목을 끈 일이, 각별히 그 명예를 훼손당한 당사자인 엘로이즈의 삼촌에게만 숨겨질 수는 없었지요.

▲ Edmund Leighton, 『Abelard and his pupil Heloise』 (1882) ⓒWikipedia

그런데 얼마 후 엘로이즈는 임신을 합니다. 그녀는 말할 수 없는 환희를 가지고 그 사실을 아벨라르에게 알립니다. 그러나 아벨라르는 엘로이즈를 삼촌 몰래 자기 누이 집으로 데리고 가 그녀가 출산할 때까지 그곳에 머물러 있게 합니다. 엘로이즈의 삼촌은 거의 미치광이처럼 되어 있었습니다. 아벨라르는 그를 찾아가 용서를 구하고, 그가 요구하는 어떠한 속죄 행위도 다 할 것을 맹세합니다. 그리고 엘로이즈와 결혼하겠다고 제안합니다. 그러나 아벨라르는 자신의 명예가 손상당할 것이 두려워 결혼을 비밀로 해 준다는 조건 하에 제안한 것입니다. 엘로이즈의 삼촌은 제안에 동의했지만, 기꺼이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그를 속이기 위한 전략이었다고 보입니다.

그러나 엘로이즈가 갑자기 결혼을 반대합니다.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삼촌의 성품을 잘 알고 있던 엘로이즈는 그 결혼이 위험하다는 것과 결혼이 아벨라르를 불명예스럽게 만든다는 이유를 들었습니다. 엘로이즈는 아벨라르라는 찬란한 빛을 세상으로부터 자기가 약탈했다는 비방이 자기에게 퍼부어질 것이며, 얼마나 큰 손실을 이 교회에 줄 것이며, 철학에는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게 할 것인지. … 그리고 자연이 전 세계를 위하여 창조하신 한 남자가 단 한 여자에게 시중들며 수치스러운 속박 아래 굴종되어 있는 일은 얼마나 어울리지 않는 탄식할 일이냐는 이유를 들었다는 것입니다.(15)

뭔가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과연 엘로이즈가 진실로 그렇게 말했을지 의심이 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솔직히 편지의 문맥을 뜯어보면, 아벨라르는 자신의 탐욕에서 비롯된 사랑을 정당화하고 오히려 책임을 엘로이즈에게 전가하는 것 같습니다. 엘로이즈가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는 주장을 들으면, 아벨라르가 과연 자신의 명성과 명예보다 더 엘로이즈를 사랑했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입니다. 엘로이즈가 이렇게 말했다는 것입니다:

“아내가 당신의 철학 연구에 초래하게 될 지장은 잠깐 제쳐 놓고라도, 정식 결혼이 당신에게 줄 위치를 생각해 보십시오. … 결국 신학이나 철학의 명상 속에 잠겨 있을 사람이 옆에서 들리는 갓난아기의 울음소리며, 유모의 노랫소리며, 집안 살림에 분주한 하인배들의 시끄러운 소요 소리를 견딜 수 있겠습니까? … 부를 찾아 헤매게 되거나 세속적인 일에 휘말려 살게 되고 보면 신앙이나 철학 연구에는 거의 전념치 못하게 됩니다.”(16)

엘로이즈의 입을 빌려, 아벨라르는 마치 자기는 원했지만, 결혼을 반대한 사람이 엘로이즈라는 것을 정당화하고 있는 것처럼 들립니다. 아벨라르는 심지어 엘로이즈가 결혼 관계의 사슬로 그를 묶어 두기를 원하지 않고 애인의 자격으로 있는 것이 자기에게 더 바람직하다고 했다는 것입니다.(17)

어쨌든 두 사람은 어린 아들을 아벨라르의 누이이게 맡기고 파리로 돌아와 엘로이즈의 삼촌과 그의 친구들, 그리고 아벨라르의 친구들이 참석한 가운데 결혼식을 거행했습니다. 식이 끝난 후, 두 사람은 비밀리에 헤어졌고, 결혼사실을 비밀로 하려고 가끔 사람의 눈을 피해 만났습니다. 그러나 엘로이즈에 대한 삼촌의 학대가 시작되었고, 아벨라르는 엘로이즈를 아르장퇴유라는 수녀원으로 보냅니다. 그러자 격분한 엘로이즈의 삼촌은 하인을 매수하여 그가 잠든 사이에 거세를 해버립니다. 충격과 수치감은 아벨라르를 수도원으로 도망치게 했고, 소식을 들은 엘로이즈도 수도 서원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사건과 추문에도 불구하고 아벨라르의 학문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았고, 하나님의 진정한 철학자라는 명성도 수그러들지 않았지만, 스승과 동료들의 시기와 질투, 그치지 않는 이단 시비와 위협적 공격, 가난하고 힘든 수도원 생활 속에서 두 사람의 삶이 어떠했을지 우리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습니다. 오직 사랑의 편지만이 두 사람에게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엘로이즈는 아벨라르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를 우연히 입수하고 아벨라르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우리에게 자주 글을 보내 주세요. 그리고 당신이 아직도 떠다니고 계신 인생의 고해에서 당신이 어떻게 출렁대고 계신지 써 보내 주세요... 당신의 고통과 당신의 기쁨을 함께 하겠습니다. 고통은 함께 괴로워하는 자가 있을 때 경감되는 것이며, 무거운 짐은 여러 사람에 의해 나눠질 때 가볍게 지탱되고 쉽게 운반되는 법입니다.(18)
……………
나의 임이시여, 당신은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온 세상이 다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잃으신 것을. 그리고 그 때문에 내가 모든 것을 다 잃었다는 사실을. 비열하고도 감출 길 없는 배신행위가 무서운 일격을 가함으로 해서 나로부터 당신을 앗아감과 동시에 나 자신까지도 스스로에게서 뿌리채 뽑아가 버리고 만 것입니다.... 나는 나의 위로를 위해서 당신 이외의 그 어느 누구도 원하지 않습니다. 모든 내 불행의 근원이신 당신만을 바랍니다. 오로지 당신만이 나를 슬프게도 할 수 있고, 오로지 당신만이 나에게 기쁨과 위안을 주실 수도 있습니다.
(19)
……………
내가 아직도 당신 이외의 다른 아무 것도 구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하느님만이 아십니다. 내가 원한 것은 오로지 당신뿐이었으며, 결혼 후의 어떠한 재물도 생각지 않았으며, 내 기쁨이나 내 소망 따위는 생각조차 없었습니다.”
(20)

아벨라르는 결혼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리라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엘로이즈가 원한 것은 결혼이 아니었습니다. 엘로이즈는 아벨라르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이 결혼보다는 사랑을, 얽매임보다는 자유를 선택하게 된 이유를 온전히 말하지 않은 것을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신을 걸고 맹세합니다만, 전 세계를 다스린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나에게 결혼의 영예를 바치며, 전 세계를 영구히 지배케 하마고 확약해 준다 해도, 나는 그의 황후로 불리기보다는 당신의 창부로 불리는 편을 더 달갑게 여겼을 것입니다. 사람은 재물이나 권력으로 그 위대성이 결정되는 것은 아닙니다.”(21)

엘로이즈는 아벨라르가 당대 최고의 학자였기 때문에 사랑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랑의 기쁨 그 자체가 그녀를 사랑으로 인도했던 것이지요. 엘로이즈는 말합니다:

“나에게는, 우리가 함께 맛본 저 사랑의 기쁨이 너무나 감미로워 그것을 뉘우칠 생각이 일지 않을뿐더러, 그것을 내 기억에서 지워버릴 수도 없습니다. 동을 향해서나 서를 향해서나, 그것은 항시 욕망이 되어 눈앞에 어른거리고, 잠들어 있을 때조차도 그 환상은 나에게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 자신이 저지른 죄과에 대해서 회한을 품고 있어야 할 시기에, 나는 도리어 다시 범할 수 없는 잃어버린 것에 대해 그리움을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22)

“내 삶의 모든 단계에서, 하느님이 아시는 일입니다만, 나는 하느님을 노하시게 하는 일보다 당신을 노하게 할까 더 근심해 왔습니다.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려고 하는 욕망보다도 당신을 기쁘게 해 드리려는 욕망이 더 컸습니다. … 긴 세월에 걸친 나의 겉치례는 세상 사람들을 속여 온 것이나 마찬가지로 당신도 속여 왔던 것입니다. 당신은 나의 위선에 불과한 것을 경건으로 생각하고 계십니다. … 정말 부탁이오니, 이 몸을 그렇게 높이 평가하지 말아 주십시오.... 나를 튼튼한 여자로 생각지 마시옵고, 내가 흔들리지 않도록 잡아 주소서!”(23)

겉으로는 최고의 지성을 갖추고 헌신적인 수녀원장으로서 의연하게 보이지만 엘로이즈는 아직도 아벨라르에 대한 사랑으로 흔들리고 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결코 만나지 못한 채, 먼저 아벨라르가 세상을 떠나면서 중세 최고의 스캔들이자 러브스토리도 함께 끝납니다.

누구나 다 알 것 같고, 대답도 거의 비슷할 것 같지만 정작 대답하기가 가장 어려운 질문은 바로 사랑에 대한 질문입니다. 그러나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사랑도 사치라는 생각이 요즘 젊은 세대에 지배적이라는 것입니다. 이른바 ‘삼포세대’, 곧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세대의 현실입니다. 높은 청년 실업률, 엄청난 집값과 사교육비 때문에 사랑도 사치가 되었다는 것이겠지요.

일본에는 ‘사토리 세대’라는 개념이 있다고 합니다. 20년 넘게 장기불황을 겪고 있는 일본에서 2013년에 등장한 개념인데, ‘꿈도 목표도 실현하기 힘든 세대가 도달한 깨달음이나 득도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사토리 세대’는 무의미한 소비에 종지부를 찍을 뿐 아니라, 일체의 소비에 무관심합니다. 그들은 자동차를 사려고 하지도 브랜드 옷을 입으려 하지도 않고, 스포츠나 술이나 여행뿐만 아니라 연애나 결혼에도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은 돈을 많이 벌겠다는 의욕도 없다고 합니다.(24)

한국에도 이런 세대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사랑에 대한 무관심 혹은 냉소라고 하겠습니다. 인간의 삶에서 사랑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지요. 《왜 착한 사람에게 나쁜 일이 일어날까?》라는 책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해롤드 쿠시너(Harold Kushner, 1936-1991)는 그의 다른 저서, 《원하는 것을 모두 얻지 못할 때(When All You’ve Ever Wanted isn’t Enough)》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지금의 젊은 세대가 사랑하기를 두려워하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것을 기피하는 인간으로 살아가게 될까 봐 몹시 걱정스럽다. 이들은 사랑을 얻는 과정이 매우 힘들다는 이유로, 또는 잘못되었을 때 입을 마음의 상처가 두려워서 사랑에서 점점 멀어져가고 있다. 그들은 모험을 걸지 않아도 되는 사랑, 힘들게 감정을 투자하지 않아도 되는 사랑, 즉 쾌락만을 구하려고 한다.”(25)

물론 쾌락으로서의 성애가 사랑의 한 요소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정신의학자인 스캇 펙(Morgan Scott Peck, 1936-2005)이 정의한 것처럼, 사랑은 ‘느낌이나 감정이 아니라 행동’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면 사랑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점도 받아들이게 됩니다. 감정은 우리 의지대로 통제할 수 없지만 행동은 우리가 자의적으로 선택할 수 있고, 목적과 의지만 있으면 어떠한 행동도 취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사랑의 감정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랑의 행위를 하는데 따른 결과인 것입니다.(26)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에 빠진다’(fall in love)고 표현합니다. 아직도 사람들이 그런 환상에 매달리고 있는 까닭은 사랑에 빠지는 것이 의지를 가지고 사랑을 선택하는 것보다는 훨씬 수월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에게 정신없이 빠져 들어서, 황홀한 느낌에 사로잡힐 수 있다고 믿음으로써 선택과 의지라는 힘겨운 과정을 피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의 기술》에서 에리히 프롬(Erich Fromm, 1900-1980)이 거듭 주장하듯이 사랑은 행동입니다. 즉 본질적으로 자신의 의지가 담긴 행동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단지 감정적으로 굉장히 끌린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의 결정(decision)이고, 판단(judgement)이며, 또한 하나의 약속(promise)입니다.’(27)

미주

(1) 에른스트 블로흐, 《서양 중세, 르네상스 철학 강의》, 박설호 역 (서울: 열린책들, 2008), 116.
(2) 아벨라르, 엘로이즈, 《아벨라르와 엘로이즈 – 전설로 남은 중세 수도사와 수녀의 사랑》, 정봉구 역 (서울: 을유문화사, 2015).
(3) 루이제 린저, 《아벨라르의 사랑》, 장혜경 역 (서울: 프레스21, 1997).
(4) 버트런드 러셀, 《서양철학사》, 서상복 역 (서울: 을유문화사, 2009), 572.
(5) 에른스트 블로흐, 《서양 중세, 르네상스 철학 강의》, 116.
(6) 에른스트 블로흐, 《서양 중세, 르네상스 철학 강의》, 117.
(7) 에른스트 블로흐, 《서양 중세, 르네상스 철학 강의》, 118.
(8) 에른스트 블로흐, 《서양 중세, 르네상스 철학 강의》, 119.
(9) 에른스트 블로흐, 《서양 중세, 르네상스 철학 강의》, 122.
(10) 에른스트 블로흐, 《서양 중세, 르네상스 철학 강의》, 123.
(11) 에른스트 블로흐, 《서양 중세, 르네상스 철학 강의》, 124.
(12) 에른스트 블로흐, 《서양 중세, 르네상스 철학 강의》, 126.
(13) 에른스트 블로흐, 《서양 중세, 르네상스 철학 강의》, 125.
(14)  아벨라르, 엘로이즈, 《아벨라르와 엘로이즈 – 전설로 남은 중세 수도사와 수녀의 사랑》, 32.
(15) 아벨라르, 엘로이즈, 《아벨라르와 엘로이즈 – 전설로 남은 중세 수도사와 수녀의 사랑》, 36-37.
(16) 아벨라르, 엘로이즈, 《아벨라르와 엘로이즈 – 전설로 남은 중세 수도사와 수녀의 사랑》, 38-39.
(17) 아벨라르, 엘로이즈, 《아벨라르와 엘로이즈 – 전설로 남은 중세 수도사와 수녀의 사랑》, 42.
(18) 아벨라르, 엘로이즈, 《아벨라르와 엘로이즈 – 전설로 남은 중세 수도사와 수녀의 사랑》, 93.
(19) 아벨라르, 엘로이즈, 《아벨라르와 엘로이즈 – 전설로 남은 중세 수도사와 수녀의 사랑》, 98.
(20) 아벨라르, 엘로이즈, 《아벨라르와 엘로이즈 – 전설로 남은 중세 수도사와 수녀의 사랑》, 99.
(21) 아벨라르, 엘로이즈, 《아벨라르와 엘로이즈 – 전설로 남은 중세 수도사와 수녀의 사랑》, 100.
(22) 아벨라르, 엘로이즈, 《아벨라르와 엘로이즈 – 전설로 남은 중세 수도사와 수녀의 사랑》, 129.
(23) 아벨라르, 엘로이즈, 《아벨라르와 엘로이즈 – 전설로 남은 중세 수도사와 수녀의 사랑》, 132.
(24) 정지은, 《왜 우리는 사랑하기가 점점 더 힘들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5년 3월호, 30쪽.
(25) 벨 훅스, 《올 어바웃 러브》, 이영기 역 (서울: 책읽는수요일, 2012), 17 재인용.
(26) 벨 훅스, 《올 어바웃 러브》, 45.
(27) 벨 훅스, 《올 어바웃 러브》, 218.

채수일(전 한신대 총장) sooilchai@hanmail.net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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