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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 뿌리기에 늦은 시간은 없다

기사승인 2024.08.03  01:2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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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흐와 산책하기 (48)

▲ <해질녘에 씨뿌리는 농부> (1888. 6, 캔버스에 유채, 64×80.5cm, 크롤러-뮐러박물관, 오텔를로)

빈센트가 존경해 마지않던 농민의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1814~1875)는 당시에 호불호가 뚜렷이 갈리는 화가였다. 프랑스 혁명 후 몸살을 앓고 있던 사회에서 1849년 바르비종의 삶을 시작하며 그린 작품들은 사회주의자들의 칭송을 들었는가 하면 보수주의자들로부터는 심한 비난을 받았다.

신고전주의 풍토에서 역사화가 각광받던 시대에 밀레는 신화나 종교, 또는 지나간 역사 속의 장면을 상상해서 그리기보다는 현실에서 만나는 사람들, 특히 농민의 고단하면서도 진솔한 현실을 작품에 담았다. 그는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의 표정은 생략한 채 대신 농민의 진실을 그렸다.

그의 예술 세계를 높이 평가한 프랑스 정부는 1868년 최고훈장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여하였다. 그렇다고 밀레가 처음부터 주목받는 화가는 아니었다. 에콜 데 보자르를 나온 후 여러 차례 살롱전에 출품하였으나 번번이 낙선하였고 가난에 시달렸다.

아내가 결핵으로 죽는가 하면 자신도 결핵을 앓기도 하였으나 신념을 굽히지 않고 농민의 진실한 삶을 캔버스에 담았다. 그의 예술은 사실주의를 확장시켰고 인상주의의 태동을 재촉하였으며 현대미술의 디딤돌이 되었다.

역사와 문화에 섬은 존재하지 않는다. 빈센트 반 고흐라는 전에 없던 독특한 화풍의 화가가 등장하는 배경에는 걸출한 화가 밀레가 있다. 밀레 역시 동시대 화가 오노레 도미에(1808~1879)와 니콜라 푸생(1594~1665)의 영향을 받았다.

밀레가 없었다면 고흐의 예술 세계는 우리가 아는 것과 달랐을 수도 있다. 개성과 독창성은 어느날 갑자기 독불장군처럼 유아독존 용출하기보다 전통과의 대화와 끊임없는 모방 훈련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예술의 모토이다.

빈센트의 <해질녘에 씨뿌리는 농부>(1888)는 밀레의 파스텔화 <씨뿌리는 사람>(1865)을 본 딴 작품이다. 이미 추수를 끝낸 밭이 보이고 추수를 기다리는 밭도 멀리 보인다. 지중해 연안의 아를은 이모작이 가능하였다. 부지런한 농부는 다음 수확을 위하여 씨를 뿌리고 있다. 씨앗을 노리는 까마귀도 보인다.

특이하게도 농부가 씨를 뿌리는 밭은 보라색과 황토색이 조화를 이룬다. 빈센트의 보색 처리 능력이 놀랍도록 발전했음을 본다. 그는 보이는 세상을 그린 게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화면에 채웠는지도 모른다. 노란 밀밭과 더 노란 태양, 그리고 보색으로 이루어진 밭은 삶의 긍정으로 읽힌다. 씨를 뿌리기에 늦은 시간은 없다.

최광열(기독교미술연구소 연구원)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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