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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복

기사승인 2024.06.16  06: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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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기 목사와 함께 하는 <성서와 위로>

▲ 민수기의 제사장 축복문을 읊을 때 제사장이 취하는 손 모양. ⓒGetty Images
야훼께서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며,
그 얼굴의 빛을 네게 비추시고, 네게 은혜를 베푸시며
그 얼굴을 네게 향하시고 네게 평화 주시기를 빕니다.(민수기 6,24-26)

이스라엘을 향한 제사장들의 축복으로 일컬어지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시내산에 도착한 이후 시내산을 떠날 때까지 대략 1년여의 시간을 그곳에서 이스라엘을 단련시키십니다. 하나님을 잘 알지 못했던 광야의 이스라엘이 제3자로서의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들의 하나님으로 섬길 수 있는 시간입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출애굽할 때와는 달리 당당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가나안을 향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 당당함과 새로움이 남은 여정 동안에도 계속되지 못했음은 민수기가 보도하는 대로입니다. 그렇지만 그 모습은 그들에게 자신들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그래서 희망의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 모습을 잃게 되었는지 반성의 재료가 될 것입니다.

그 모습이 계속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위와 같은 말로 축복하십니다. 그 축복이 일방적인 것은 결코 아님을 이로부터 알 수 있습니다. 축복은 그 모습의 삶을 만들어내는 것이 목적입니다. 야훼의 얼굴을 맞댄 삶입니다. 두려움의 하나님이 아니라 평화의 하나님입니다. 세상은 평화를 모르고 평화를 멀리 하지만 평화를 주는 것이 야훼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의 얼굴을 외면하는 세상에 평화는 자리잡을 수 없을 것입니다. 세상 자체는 웬일인지 평화를 원치 않습니다. 평화는 서로에 대한 존중과 인정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이익의 극대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정의 위에 평등한 세상이 된다면, 평화는 극대화될 것입니다.

야훼의 얼굴을 맞댄 삶은 그 얼굴 빛으로 빛나는 삶이 될 것입니다. 야훼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없지만 그 얼굴의 빛은 모세를 통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뵙고 내려올 때 그의 얼굴은 빛으로 가득해서 사람들이 그에게 가까이 가기를 두려워 했습니다(출 34,29 이하).

야훼는 그의 얼굴 빛을 반사하는 얼굴의 빛이 모세뿐만 아니리 모든 사람에게서 비추기를 원하십니다. 그 빛 속에서 하나님의 은총을 경험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은 나의 이익의 관점에서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평가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하는 그의 얼굴 빛을 두려움이 아니라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이미 그의 은총 가운데 있습니다.

하나님을 대하기 두려워했던 아담과 하와가 아니라 새로운 아담과 하와로 하나님 앞에 있을 수 있는 것이 그의 은총입니다. 그 안에 희망이 있고 그 안에 평화가 있습니다. 그의 얼굴 빛이 희망과 평화의 빛으로 우리 얼굴에 자취를 남길 것입니다. 은총의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바로 이러한 것입니다. 그 얼굴 앞에서 그 빛 가운데 다니는 것이 곧 복이며, 그런 사람을 그 빛으로 지키실 것입니다. 그 빛이 이스라엘 곳곳에 그리고 이스라엘을 넘어 어둠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비쳐지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기대가 이 축복 속에 들어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께서는 바로 이 기대의 실현을 위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빛입니다.

그 빛 가운데서 사는 오늘이기를. 그 빛으로 평화를 이루는 이날이기를.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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