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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성결

기사승인 2024.06.09  04:4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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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라엘아, 거룩하라!”, 종교적 복종을 위한 명령 (3)

▲ 포로 후기에 이스라엘 땅에 남아 있던 사람들과 귀환한 사람들 사이의 갈등은 권력 투쟁의 성격도 띠고 있었고 특히 제사장 집단이 그 한 가운데 있었다. ⓒGetty Images

약자의 전략

레위기 17–26장에서 드러나 있는 헤게모니적 권력에 대한 광범위한 주장은 이 본문이 예루살렘 제사장이 (율)법에 대한 공동체적 복종과 성전 및 제사장직에 대한 무조건적 충성을 강요할 수 있는 상당한 권한을 가진 시기에 작성되었다는 점을 암시할 수 있다. 하지만 성결법전(Holiness Code, ‘H’)의 공동체적 성결 개념은 상대적 약자의 전략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레위기 17–26장은 바벨론 포로 기간이나 ‘아케메네스(Achaemenid)’ 페르시아 제국 시대인 기원전 6세기 혹은 5세기에 최종적으로 완성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이 본문이 신명기(기원전 7세기 후반에 작성된)의 핵심 법 자료를 알았고 이에 대응하며, 포로의 위협 뿐만 아니라 땅으로의 귀환 보장(레위기 26:27–45)에 대한 언급으로 끝맺는다는 점에서 설명될 수 있다.

이 시기 예루살렘 제사장은 상당한 어려움에 직면했다. 기원전 586년 느부갓네살에 의해 성전이 파괴되었을 뿐만 아니라, 예후드(Yehud, 페르시아 시대 유다에 대한 아람어 명칭) 지방을 괴롭힌 일반적인 빈곤과 인구 감소, 공급을 보장할 수 있는 현지 왕실 지도자의 부재로 인해 성전 재건 시도가 방해받았다.

초기 회복기에 예루살렘 대제사장은 공동체에 분명히 중요한 인물이었지만, 그가 페르시아 시대 예후드 지역 통치에 상당한 영향력이나 공식적 권한을 누렸다는 역사적 증거는 없다. 느헤미야는 예후드 사람들이 십일조를 성전에 바치는 것을 꺼려하는 풍조로 인해 성전은 너무 가난했고 이 때문에 레위인 봉사자들은 충분한 수입을 얻을 수 없다고 한탄하며 제2 성전이 직면한 투쟁을 가슴 아프게 묘사한다:

.נחמיה יג:י וָאֵדְעָה כִּי מְנָיוֹת הַלְוִיִּם לֹא נִתָּנָה וַיִּבְרְחוּ אִישׁ לְשָׂדֵהוּ הַלְוִיִּם וְהַמְשֹׁרְרִים עֹשֵׂי הַמְּלָאכָה

느헤미야 13:10 내가 또 알아보니, 레위 사람들은 그 동안에 받을 몫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사람들은 맡은 일을 버리고, 저마다 밭이 있는 곳으로 떠났다.

이스라엘 사회에 대한 제사장의 이상

경쟁적인 요구에 직면해, H 서기관들은 당시 사회 현실이나 실제 권력 관계를 반영하는 대신 이스라엘 사회의 이상적인 모습을 제시해 공동체 내에서 자신들의 권위, 특권, 자원에 대한 주장을 강화하려고 했다. 일상적인 거룩 개념은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삶의 모든 측면에서 성전에 복종하고, 분열이나 지역 파벌을 피하며, 중앙화된 사회-문화적 위계에 동의하고, 중앙 성전 제의를 보호하는 데 끊임없이 헌신하도록 설득하기 위한 의도였을 가능성이 있다.

한편, 성결한 이스라엘 백성이 야훼의 종으로 그 땅에 살며 중앙 성전에서 영원히 예배드린다는 이미지는 이러한 중앙집권적인 이상에 강력한 힘을 실어주었다:

.ויקרא כה:נה כִּי־לִי בְנֵי יִשְׂרָאֵל עֲבָדִים עֲבָדַי הֵם אֲשֶׁר הוֹצֵאתִי אוֹתָם מֵאֶרֶץ מִצְרָיִם אֲנִי יְ־הוָה אֱלֹהֵיכֶם

레위기 25:55 이스라엘 자손은 나에게 속한 나의 품꾼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내가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낸 나의 품꾼이다. 내가 주 너희의 하나님이다.

모든 농업 활동은 이스라엘 백성이 야훼의 소유라는 전제 하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이 땅에서 생산하는 모든 것을 궁극적으로 야훼의 소유로 여겨야 한다. 따라서 그들이 정기적인 제물과 헌금의 형태로 야훼의 성전에 자신들의 소산물 중 일부를 제공하는 것은 상싱적인 일이다.

궁극적으로 실현된 비전

일상 생활에서 레위기 17-26장을 실제로 공동체적인 복종으로 실행했다는 증거가 부족하기 때문에 H의 표준화된 담론이 기록될 당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추적하기 어렵다. 하지만 H가 처음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제사장 권력이 성전을 넘어 백성들의 문제에까지 확대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결국 널리 받아들여져 늦어도 기원전 2세기경 헬라화된 유다에서 신정 통치 형태가 등장했다는 사실은 알 수 있다.

이러한 발전을 H와 직접적으로 연결짓는 것은 증거를 넘어서는 것일 수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발전이 레위기 17-26장의 담론적 추친력과 이스라엘 백성의 행동을 표준화하고 사회·제의·경제 영역을 넘어 제사장의 특권적 지위를 끌어올리는 규범, 권력 구조 그리고 공동체적 행동을 확립하는 수단으로 공동체적 성결에 대한 성결법전의 독특한 초점과 양립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줄리아 라이더 교수(하버드대)/이정훈 번역 typology@naver.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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