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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는 용감했다

기사승인 2024.05.25  02:5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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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흐와 산책하기 (39)

▲ <회색 펠트 모자를 쓴 자화상> (1887~1888, 캔버스에 유채, 44×37.5cm, 반고흐 미술관, 암스테르담)

빈센트와 테오는 형제이지만 형제 이상의 우애와 사랑의 관계를 유지하였다. 빈센트는 테오에게 숨김이 없었고, 테오는 빈센트를 신봉하고 예술 활동을 전적으로 후원하였다. 하지만 아무리 우애가 뛰어난 형제라 하더라도 2년여를 한 아파트에 살면서 피차 갖는 불편함은 있기 마련이다. 테오의 성격은 무난했다.

이 무렵 테오는 S라고만 알려진 여성과 교제하고 있었는데 괴팍한 성격의 빈센트가 거북했으리라고 짐작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테오로서는 형을 좋아하고 존경하고 도와줄 마음에 변함이 없으면서도 형과의 동거가 점점 불편해지기 시작한 것도 어쩔 수 없었다. 테오가 여동생 빌레미엔에게 쓴 편지에 ‘내가 형을 많이 사랑하고 최고의 친구였던 적도 있지만 이젠 끝났어. 형은 너무 지저분하고 더러워. 나는 형이 나가고 혼자 사는 것이 좋겠어’라고 썼다.

이 무렵 빈센트에게도 야무진 꿈이 있었다. 예상은 빗나갔으나 대도시 파리에서 그림을 그리고, 테오가 거들어 주면 그림이 좀 팔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테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그림은 팔리지 않았다. 아직 그의 그림을 이해하고 소비하기에 시간은 일렀다는 사실을 그는 몰랐다.

게다가 몽마르트르는 타락하기에 안성맞춤의 지역이었다. 빈센트는 알코올 중독에 이를 정도로 몸이 망가졌다. 게다가 독특한 성격 탓에 모델 구하기가 어려웠고 심지어 빈센트가 거리에서 그림 그리는 것 조차 제한받곤 하였다. 아마도 여러 차례 소동이 있었던 탓일 것이다.

다행히 형제는 적당한 선에서 화해하고 빈센트는 파리를 떠나기로 하였다.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안고 끙끙 앓기보다는 각자에게 품부된 삶을 사는 길을 택한 것이다. 역시 형제는 현명하고 용감했다. 2년 동안 파리 생활은 한계와 아픔도 있었으나 빈센트 예술의 방향이 바뀌는 이정표가 되었다.

어둡고 침울하였던 그림 분위기는 밝고 경쾌해졌다. 붓 터치에 개성이 드러나기 시작하였으며 두려울 정도로 담대해졌다. 캔버스에 생기가 돌았고 자신감이 배기 시작하였다. 인생에는 누구에게나 빈센트의 몽마르트르에 해당하는 시기가 있다. 몽마르트르가 없으면 아를도 없고, 오베르도 없다.

최광열 목사(아리랑인문지식연구소 연구원)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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