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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예언자 구별하기: 디다케 1

기사승인 2024.02.05  03:2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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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수일의 ‘기고만장’(氣高萬張, 기독교 고전 만장 읽기) 1

이 원고와 영상은 ‘사이너머’ 연구소에 진행하고 있는 채수일 교수의 ‘기고만장: 기독교 고전 만장 읽기’입니다. 기독교 고전을 독자들과 함께 읽고 우리 시대의 문제와 씨름하는 것입니다. 영상과 원고의 게재를 허락해 주신 채수일 교수님과 사이너머에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 편집자 주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채수일의 ‘기고만장’을 시작하겠습니다. 그런데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기고만장’(氣高萬丈)은 ‘일이 뜻대로 잘되어 뽐내고 기세가 대단함’이나, ‘펄펄 뛸 만큼 몹시 성이 남’이라는 뜻이 아니라, ‘기독교 고전 만장 읽기’를 줄인 것입니다.

시대가 어지럽고 복잡하여 답을 찾기 어려우면 우리는 역사에게 묻습니다. 미래가 어두우면 우리는 오래된 미래인 ‘고전’에서 빛을 찾습니다. 한국교회의 어지러운 현재, 어두운 미래 때문에, 과거의 고전을 살펴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을 기획한 배경에는 저의 개인적 경험도 있습니다. 평생 신학을 공부하고 또 가르치면서 절실히 깨달은 것인데요. 1차 자료를 기반으로 공부하지 못하고 주로 해설서 같은 2차 자료에 의지해서 공부한 것에 대한 한계를 느낀 것이 그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고전공부를 시작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늦었다고 생각되는 때가 바로 시작해야 할 때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공부하면서 여러분에게 소개할 기독교 고전들은 2천 년 동안의 기독교 역사에서 결정적인 전환기에 이정표가 되었던 책들입니다. 이런 책들을 서방 고대 교회 시대부터, 중세, 근대, 현대에 이르기까지 시대별로 나누어 공부할 계획입니다.

그러나 고전 그 자체에 대한 이해도 중요하지만,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당면한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과 토론을 불러일으키고 길을 제시하는 것이 고전 공부의 중요한 과제입니다.

예를 든다면 교회 안의 직제는 언제 왜 생겼는가? 반유대주의는 언제부터 생겼는가? 가톨릭교회는 왜 개신교인들에게 성만찬 참여를 허용하지 않는가? 왜 기독교는 인간의 성(性)적 욕망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하게 되었는가? 동성애 문제에 대해 왜 교회는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가? 다른 종교에는 구원이 없다는 주장은 누가, 언제, 어떤 배경에서 했으며, 과연 그런가? 왜 교회는 분열되었는가 하는 등 교회 안에서 제기된 논쟁과 갈등은 물론, 이데올로기, 국가권력, 돈에 대해 교회는 어떤 태도를 보였는가? 이웃 종교에 대해 교회는 왜 그토록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는가? 진영논리와 증오심으로 가득 찬 사회적 양극화 극복을 위해 교회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이런 질문들에 대하여 고민하고 답을 찾아간 인물들의 책이나 우리가 제기하는 질문들에 대하여 길을 안내하는 책을 중심으로 여러분과 함께 읽으면서 생각하려는 것입니다.

물론 독자 여러분들도 함께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책들을 제안하실 수 있습니다. 본래 유튜브를 매체로 전제하고 작성한 원고이기 때문에, 시간 제약으로 내용이 짧고 간단해서 더 많은 것을, 상세하게 소개할 수없는 한계가 있습니다. 다만 이 짧은 연재를 통해서 여러분 스스로 고전을 읽겠다는 마음을 불러일으키고 또 고전 읽기를 통해 여러분 스스로 길을 찾기만 해도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 그러면 채수일의 ‘기고만장’, 이제 출발하겠습니다. 그 첫 시간에 저는 《디다케》(1)를 선정했습니다. 이 《디다케》는 열두 사도들의 가르침이라는 제목으로 제가 존경하는 가톨릭 신약성서학자이신 정양모 교수님께서 번역하셨는데요, 가톨릭 분도출판사가 교부문헌총서로 1993년에 출간했습니다.

《디다케》 혹은 ‘열두 사도들의 가르침’이라고도 불리는 이 책은 기원후 100년경, 신약성경이 한창 기록될 무렵에 시리아 지방의 어느 시골 교회의 그리스도인이 편집한 규범집으로 알려져 있어서, 신약성경의 일부 문서들보다 더 소중한 문헌이라고 하겠습니다.

‘12사도들의 가르침’이라는 제목 때문에 사람들이 흔히 저자가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이라고 오해할 수 있는데요, 제자들은 저자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편집한 규범집이라고 하겠습니다.

신약성경의 일부 문서들 아주 더 소중한 문헌으로 여겨지는데요. 이 《디다케》에 주장된 혹은 나와 있는 내용이 2천 년이 거의 지나가는 지금까지도 교회에 매우 중요한 전통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디다케》는 100년 쯤의 초대교회의 실상을 아주 생생하게 우리에게 보여주는데요. 그들이 어떻게 신앙생활을 했고 또 어떤 문제들과 를들에게 보여줍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하나 오늘 우리가 함께 생각해 보려고 하는 것은 이른바 가짜 예언자 구별하기입니다. 초대교회 안에는 떠돌이 사도들과 예언자들이 있었는데요. 그들 가운데는 사기꾼들도 또 가짜 거짓 예언자들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그래서 진짜 예언자와 가짜 예언자를 구별하는 일이 중요했는데, 그 판단의 기준을 《디다케》는 제시합니다.

그 기준은 그들이 어디에서든 ‘하루만’ 머물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필요하다면 이틀을 머물 수는 있지만, 사흘을 머물면 그는 거짓 예언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들이 떠날 때에는 다른 곳에 유숙할 때까지 필요한 빵 외에 다른 것은 받지 말아야하고, 그가 만일 ‘돈’을 요구한다면 그는 가짜 예언자라는 것입니다.(2)

초대교회의 중요한 다른 과제는 가짜 예언자들을 구별하는 것만이 아니라, ‘거짓 영과 성령’을 분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구별하는 기준을 《디다케》는 ‘생활 태도’로 제시합니다:

“영으로 말한다고 해서 다 예언자가 아니고 오직 주님의 생활 태도를 지녀야만 예언자입니다. 거짓 예언자와 참 예언자는 그 생활 태도로써 밝혀질 것입니다. … 진리를 가르치는 모든 예언자가 만일 가르치는 것들을 행하지 않는다면 그는 거짓 예언자입니다.”(3)

돈에 대한 태도와 생활태도로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이 기준은 지금도 타당하지요. 설령 영으로 말하는 것처럼 신령하고 경건하게 보이는 인물일지라도, 그의 생활을 보면 그 사람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극단적인 진영논리에 사로잡혀, 온갖 가짜뉴스를 퍼 나르면서, 증오로 가득 찬 혐오발언으로 돈을 버는 목사들은 《디다케》에 의하면 거짓 예언자입니다.

열매를 보고 나무를 안다고, 생활태도로 가짜와 진짜를 구별할 수 있는 기준이 어찌 종교인들에게만 적용될 수 있겠습니까! 처음과 마지막, 앞과 뒤가 갑자기 다르게 처신하는 사람들은 어느 영역에나 있고, 그들의 변신의 동기에는 대부분 돈이 작용하는 경우가 많지요.

2024년 총선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정치판이 더욱 요동하고, 빛 좋은 공약들이 남발되겠지요. 온갖 혐오발언에, 인신공격과 색깔 뒤집어씌우기, 가짜 뉴스도 넘칠 것입니다. 그러니 민주주의를 도둑맞지 않으려면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부터 1900년 전 시리아의 한 작은 촌락 공동체는 신념이나 이념이 아니라 돈을 i는지 아닌지가 진보건 보수건, 태극기건 촛불이건, 좌파건 우파건,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기준이라는 것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시간에는 《디다케》에 나오는 점치는 것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미주

(1) ⟪열두 사도들의 가르침: 디다케⟫, 정양모 역주 (경북 왜관: 분도출판사, 1993).
(2) ⟪열두 사도들의 가르침: 디다케⟫, 81.
(3) ⟪열두 사도들의 가르침: 디다케⟫, 83.

채수일(전 한신대 총장) sooilchai@hanmail.net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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