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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 대한 고민

기사승인 2024.01.31  03: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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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기 목사와 함께 하는 <성서와 위로>

▲ 예상하지 못하는 길을 걷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고민하게 된다. ⓒGetty Images
야훼여, 내가 알고 있는 바에 따르면, 사람은 자기 길의 주인이  아니고 걷는 사람이 그의 발걸음을 안내하는 것이 아닙니다.(예레미야 10,23)

망해가는 이스라엘을 돌이켜 세우기 위해 몸부림치며 경고하고 지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목청껏 소리치지만, 그의 외침은 메아리쳐 되돌아올 뿐 반향이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창조주 하나님이 자신의 몫으로 선택한 자들임에도 하나님을 떠나 우상들의 품에 안겼습니다. 그 결과 멸망을 목전에 두고 있었고, 끝내 바빌론 행 보따리를 꾸리게 되었습니다. 그때까지도 이스라엘은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예레미야는 그가 처한 현실에서 이런 예언 활동을 하며 개인적으로 숱한 고민과 염려, 울분과 안타까움, 슬픔과 좌절 등을 느끼거나 겪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이겠지만 훗날 그는 하나님께 따지듯 묻기도 하고 하나님 앞에서 물러나기도 했고 다시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그의 이런 활동이나 개인적 경험에 비춰볼 때 위 본문의 말씀은 무슨 역할을 하는지요?

사람은 자기가 가고 있는 길이나 자기가 살고 있는 삶은 자기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뜻에 따라 선택한 길이고 자기의 계획과 결정에 따라 그 길을 간다고 여깁니다.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것이기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계획과 선택에 영향을 끼치는 것들이 있으며 그 결과에 이르기까지는 더욱더 그렇습니다. 결코 단독자처럼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설령 무인도에 홀로 있을지라도 나는 여전히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생각하고 행동하게 됩니다. 너무나 당연하고 평범한 사실입니다.

나는 주변의 영향 가운데 있는 나입니다. 그 속에서 내가 걸어온 길, 걸어가는 길, 걸어갈 길은 내가 선택한 것임에도 내 혼자만의 힘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아님을 우리는 종종 발견합니다. 나는 내가 그 길을 온전히 통제할 수 없음을 압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그 길이 내가 가는 것이라 해도 그것이 내 것이고 내가 그 길의 주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내가 주도적으로 그 길을 가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그 길을 갈 수 있게 하고 그 발걸음을 이끄는 이가 있음을 그 길을 돌아보며 고백하게 됩니다.

예레미야는 자신의 뜻을 거스르며 예언자로 부름을 받았고 심판 선언을 피하고 싶었음에도 피할 수 없었고 온갖 위협 속에서도 자기를 지키시며 예언자의 길을 가게 하신 하나님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것일까요? 그럴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깨달음은 그의 특수한 상황을 넘어 일반적인 경우에도 타당합니다.

다만 영향을 끼치는 많은 관계들과 상황 배후에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계심을 보느냐 못보느냐만 다를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관계들의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관계들을 가능게 하는 관계이기에 그렇습니다. 이 관계가 내 길을 이끌고 가게 하는 것이 되기를 빕니다.

하나님께서 어두운 우리 길의 등불 되시는 오늘이기를. 하나님께서 관계들 속에서 역사하시며 우리의 길을 내주시는 이날이기를.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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